배달노동자는 정말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영등포산업선교회가 1960-70년대 영등포지역의 가난한 노동자들을 찾아가고 만나 노동자 운동이 시작할 수 있었던 공간이 되었던 것처럼, 이동노동자 쉼터가 기술과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도시문화 속에서 이동노동자 등 기술과 자본이 가려버린 노동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앱을 통해서 간편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배달 오토바이를 탄 귀여운 캐릭터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으면 현실인지 게임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편리한 세상이 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배달 앱 또는 플랫폼과 같은 편리한 시스템을 이용하는 동안 치열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 안에 있다는 현실은 점점 잊게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동노동자는 비가 오면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하고 더위와 추위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 출처 : : trongdat15

배달노동자, 가스검침원, 퀵서비스, 학습지교사, 돌봄종사자, 대리운전기사 등 이동노동자들은 사무실이나 공장처럼 고정된 장소가 아닌 거리와 도로를 다니며 일을 합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쉽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서비스 이용이 간편해졌다고 해서 이동노동자의 노동이 수월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동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속의 깔끔한 화면과는 달리, 이동노동자는 비가 오면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하고 더위와 추위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쉽게 취소되고 환불되지만 그 책임은 이동노동자에게 떠맡겨집니다.

작년 10월 제가 일하는 영등포산업선교회관 1층에 자그마한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열었습니다. 이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와서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서 실제 이동노동 당사자 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였습니다. 땀에 젖은 헬멧을 말릴 수 있는 ‘헬멧 건조기’, 비를 맞은 우의와 옷을 잠시나마 말릴 수 있는 ‘드라이어’, 사무실이 없어도 간단한 서류를 출력할 수 있는 ‘무선프린터’, 피로에 지친 다리를 풀어주는 ‘안마의자’ 등 이동노동자 쉼터를 채우는 물건들에는 이동노동자의 사연이 더해져 있습니다.

땀에 젖은 헬멧을 말릴 수 있는 ‘헬멧 건조기’, 비를 맞은 우의와 옷을 잠시나마 말릴 수 있는 ‘드라이어’, 사무실이 없어도 간단한 서류를 출력할 수 있는 ‘무선프린터’, 피로에 지친 다리를 풀어주는 ‘안마의자’ 등 이동노동자 쉼터를 채우는 물건들에는 이동노동자의 사연이 더해져 있다.
사진제공 : 송기훈

쉼터를 조성할 때 배달노동자로서 경험과 조언을 전해주셨던 배달플랫폼노동조합 배달의민족 분과장 김정훈 님은 식사 시간대, 휴일, 공휴일 등 쉬는 날에 일을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배달 노동의 특성을 “남들이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막상 콜을 받고 배달하기 먼 곳으로 신속히 이동해야하는 순간이나, 콜을 받기 위해서 무한정 대기해야 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거의 하루 종일 일하는 것과 다름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거 알 수 있게 됩니다. 남들이 쉴 때도 일하고 있고 남들이 일할 때도 일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영등포산업선교회가 1960-70년대 영등포지역의 가난한 노동자들을 찾아가고 만나 노동자 운동이 시작할 수 있었던 공간이 되었던 것처럼,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마련된 이동노동자 쉼터가 기술과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도시문화 속에서 이동노동자 등 기술과 자본이 가려버린 노동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리스도교 성서의 표현을 빌리면, 이동노동자 쉼터는 나그네들을 위한 집이라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민족이 달라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일정한 노동을 영위하지 못하던 이들을 당시 성서의 표현으로는 나그네라고 합니다.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정작 여름이고 겨울이고 고생하며 다니는 이동노동자들을 돌봐줄 공동체나 마을 공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같은 ‘민족’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동노동자 쉼터와 같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우리의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달노동자를 향한 멸시의 표현이 아니라 서로의 노동을 존중하고 특별히 조금 더 힘든 일을 하고 계시는 이동노동자들을 기억할 때, 그래서 우리 노동하는 공동체의 안전한 공간을 조금 더 넖혀간다면 누구나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송기훈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연히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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