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협동조합은 일일배송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살림의 배송시스템을 예로 본 자발적 불편함에 대한 제언

빠르고 편리한 배송문화의 그늘을 살펴보고, 빠른 배송을 원하는 조합원과 생협의 구조 안에서 환경 문제와 노동권을 생각하고, 왜 자발적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안을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생각.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기를 지나면서 소비시장은 가히 배달 춘주전국시대다. 나는 배달 앱도 깔지 않고 물품도 가급적 직접구매를 하고 있지만 어쩌다 한번 인터넷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나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진다. 겹겹이 싸인 비닐과 박스를 분리하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고, 내게 오는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을 줄이며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까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기업은 속도전과 가격 경쟁에 불꽃을 튀기며 소비자를 현혹하고 새벽 배송에 뛰어든다.

“한살림은 너무 불편해요.” 조합원에게 종종 듣는 소리다. 매장은 평일 저녁 8시까지, 주말에도 5시까지 문을 연다. 주문도 예전 D-3일에서 D-2일로 단축했고 매일공급을 받는 지역도 넓혔건만 조합원들의 공급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매장에서는 배달도 안 해주고 주문공급은 D-2일이라지만 주문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이다. 반면 생산지는 공급을 맞추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물품을 내느라 어려움을 겪는다. 조합원 편의성과 한살림 시스템 사이에서 고민과 논의가 반복된다.

한살림의 역사를 말할 때, 다섯 가구가 모여 주문을 하고 판 두부를 나눠먹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내가 가입했던 94년도만 해도 그랬다. 가입 후 얼마가 지나니 개별공급이 가능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공급 받는 날은 언제 올지 모르는 물품을 온종일 기다렸다. 집 가까운 곳에 매장이 생기고 공급보다는 필요할 때 매장을 이용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한층 편해졌다. 매장도 5시면 마감을 하고 점심시간에 가면 활동가의 식사시간으로 브레이크 타임에 걸리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당연히 문을 닫았다. 그래도 불편한 마음보다 한살림이 있어서 감사했다.

편리한 배달운송의 이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by Tiger Lily 출처 : https://www.pexels.com/ko-kr/photo/4481258/
편리한 배달운송의 이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 출처 : Tiger Lily

새벽배송시대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라떼는 말이야’가 흔한 꼰대의 뜬금없는 추억팔이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것은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우리는 이미 달콤하고 편리한 소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대가를. 배달 포장을 뜯는 순간 쏟아지는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한다 해도 대부분 생태계 순환고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이다. 포장재로 사용되는 온갖 플라스틱은 구천을 헤매는 유령들처럼 영원히 썩지 않고 갈 곳을 잃은 채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되어 우리 몸에 침투하기도 하고, 환경호르몬이 발생하여 생태계를 교란하고 나아가 기후위기를 부른다. 물론 포장재와 관련된 환경문제는 새벽배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플라스틱 의존도는 높아만 간다. 특히 신선식품을 주요하게 다루는 새벽 배송은 비닐, 스치로폼, 에어캡, 보냉팩 등이 아낌없이 사용된다.

노동자의 인권 역시 심각하다. 우리가 몇 번의 클릭으로 주문을 마치고 편안히 잠 든 사이 주문을 받은 누군가는 밤을 새워 포장을 하고 새벽을 가르며 배달을 한다. 야간노동도 마다않는 일용직 노동자는 넘쳐나는 인력 센터에서 대기 중 쉽게 잘리기도 하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항의도 못한다. 안전교육도 업무교육도 없고 휴식시간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지만 플랫폼 자본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야간노동은 기존의 법과 제도로는 통제가 어렵다고 한다. 어쩌면 내 가족일 수도 있고 나에게 닥칠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배달시장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일자리가 줄면서 젊은 인력이 물류센터 일용직과 배달시장으로 내몰리는 건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다시 한살림으로 돌아가 보자. 조합원이 주인이고 출자금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이지만 비대하게 커진 몸집으로 협동을 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배달과 주문공급도 마찬가지다. 조합원의 욕구는 두 가지다. 안전한 먹을거리와 이용 편의성. 한살림에는 안전한 먹을거리는 있지만 배달과 주문공급에서 새벽 배송을 불사하는 다른 기업에 비해 이용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살림은 모든 조합원이 운영 전반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여 운영 시스템을 이해하고 최선의 정책에 합의하기에 어려운 규모다. 각 단위의 운영위원회를 거쳐 이사회, 대의원총회에서 정책이 결정되고 대다수 조합원들에게는 결정사항만 전달될 뿐이다.

한살림의 경우 매장 배달을 하게 되면 당연히 운영비가 늘어난다. 운영비가 늘어나면 물품가격이 올라가고 운영비와 생산비로 구성되어 있는 물품가격에서 현재 72% 정도 차지하는 생산비 비율이 낮아지게 된다. 또한 주문공급 시간을 줄이려면 신선도가 생명인 1차 농산물의 경우 생산지에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공급을 해야 한다. 새벽 배송을 하는 일반기업과 같은 예측발주시스템은 빅데이터가 작동하여 예측 정확도가 높아야 손실을 줄일 수 있는데, 이는 아무리 한살림이 커졌다 하더라도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가능하지 않다. 현재 새벽 배송업체들도 예측 발주로 인한 폐기물 손실을 감내하면서 1등이 되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을 한다고 한다. 한살림은 주문을 받아서 물품을 공급할 수밖에 없으니 D-2일 주문공급도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정책이다. 가끔 직거래 주문방식도 의견이 나오지만 시스템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시스템의 한계와 앞에서 다룬 포장재로 인한 환경 문제와 노동권까지 생각한다면 한살림이 빠른 배송으로 시류에 편승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협동조합답게 조합원 노동으로 배달을 해결하거나 거점공간을 마련하여 일인가구, 맞벌이부부, 매장과 가깝지 않은 지역 등 공급을 받기 어려운 조합원들이 물품을 주문하고 찾아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히 지금보다 더 편리해지는 것을 추구하자는 게 아니라 조합원 입장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돌봄의 관점으로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동시에 환경과 인권을 고민하고 자발적 불편함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조합원과 소통하고 한살림을 비롯한 모든 생협에서 시작하여 사회적인 의식의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누구나 연결망의 어느 지점에 있다. 내 편의를 위하여 생성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다시 우리를 공격한다. 빠른 배송을 위하여 늘어만 가는 나쁜 일자리로 노동은 소외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화할 것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우리가 당면한 기후위기는 지속가능한 생태순환 고리가 끓어지면서 생겨난 문제다. 위기가 아직은 경고이고 회복가능하길 바라지만 전문가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다. 그럼에도 개개인의 민감도는 차이가 있다. 불이 나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소화기를 들 것이다. 먼저 아는 자부터 먼저 움직여야 한다. 생활실천이든 사회운동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꼼지

학교 다닐 때 꼼지락거린다고 붙은 별명인데 남편이 30년째 부르는 애칭이 되었음. 지금도 여전히 꼼지락거리며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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