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기후행동] 기후위기시대, 예토(穢土)의 땅에서 정토(淨土)를 일군다

코로나19는 성장주의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 오늘날의 삶이 불교의 전도몽상임을 깨닫게 하는 역행보살이다. 부처님의 연기법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와 소비주의의 업식을 끊어내고 소박한 생태적 삶으로의 대전환을 일구어 내야 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전세계는 완전히 멈추었다. 그동안 인간중심적인 개발과 발전이 좋은 거라는 믿음과 환상 속에서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살아왔다. ‘전도’는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는 것을 말하고, ‘몽상’은 헛된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꿈인 줄 모르는 것을 말한다. 즉 바르게 보고 꿈깨라는 말이다.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을 멀리 여의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도몽상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

빈두설경(賓頭設經)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어떤 사람이 큰 들판에 나갔다가 미쳐서 날뛰는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그는 크게 놀라 뒤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망치다가 들 한복판에 있던 옛 우물터에서 뻗어내려간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또 다른 적이 있었다. 우물 네 구석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우물 한복판에서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위에서는 미친 코끼리가 발을 둥둥 구르고 밑에서는 용과 뱀이 혀를 날름거리니, 오도가도 못하게 된 나그네는 유일한 생명줄인 등나무 넝쿨에만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서로 번갈아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그런데 머리 위의 큰 나뭇가지에는 몇 마리의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 앉았다 날았다 하였는데 그때마다 꿀이 떨어져서 입에 들어갔다. 그는 꿀의 단맛에 취해서 모든 위험을 잊고 도취되었다. 그러는 동안 대지에는 난데없이 불이 일어나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우리들 마음에 행복꽃이, 이 땅에 평화꽃이 활짝 피어나길 염원하며 활짝 피어라.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제공.
우리들 마음에 행복꽃이, 이 땅에 평화꽃이 활짝 피어나길 염원하며 활짝 피어라.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제공.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이렇듯 꿀맛에 취한 어떤 나그네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멈추고 돌아볼 일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개발논리로 인해 자연을 인간의 편리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발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그런 미망(迷妄) 속에서 살아왔다. 앞만 보고 무한질주해온 시간들에 대해 자연은 레드카드로 인간을 강제적으로 멈춰 세웠다. 인간중심적인 삶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자연에 의해 ‘멈추고 돌아보기’를 강제당하고 있다.

영원한 성장이라는 전도몽상(顚倒夢想)

지난 5월 5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환자는 총 1억 5,240만 9,365명(사망 319만 6,681명)으로 보고됐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확진자와 사망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코로나19는 역행보살이다. 우리가 미워하고 증오하고 두려워하고 밀어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인류는 한꺼번에 공멸할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고를 보내는 자연 앞에 우리는 이제라도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중심적인 이기적인 삶의 행태를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앨런 와이즈먼이 지은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책 제목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1년을 지난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맘껏 누리고 맘껏 소비하고 맘껏 여행도 하면서 누려왔던 그런 일상을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마스크를 써야 했다.

자영업자들은 눈물과 통곡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학생들은 맘껏 학교를 다닐 수도 없고 뛰놀 수도 없다. 직장인들의 재택근무가 일상화 되었고, 사적인 모임이나 회합조차 할 수 없다. 운동이든 산행이든 사적모임이든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고, 심지어 종교적인 회합이나 공연도 멈추어야 하고 모이더라도 적은 숫자만이 모일 수 있다. 방역담당자들의 노고와 수고로움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멈추고 돌아봐야 할 시간이 벌써 1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가 역행보살(逆行菩薩)이 되기를

미래를 위한 금요행동. 기후위기시대 우리는 무엇을 함께 실천해갈 것인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제공.
미래를 위한 금요행동. 기후위기시대 우리는 무엇을 함께 실천해갈 것인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제공.

이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특히 부처님 가르침은 그 어떤 상황과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남 탓 세상 탓으로 문제의 원인을 돌리지 않는다. 자기자신의 개인의 업[個業]은 스스로 기도와 수행을 통해 극복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코로나19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함께 극복해나가야 할 공업(共業)으로, 함께 지혜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함께 모색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지속가능한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과연 코로나19의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을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께서는 ‘미혹(迷惑)의 세계’라고 말씀하셨다. 미혹의 세계란 달리 말하면 ‘편가르기’ 세상이다.

“지난 20세기는 우리는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온 것 같은데 본질적으로는 편가르기를 해왔던 것입니다. 국가로, 민족으로, 색깔로, 종교로, 이념으로 편을 갈라서 서로 창과 방패의 싸움을 계속 이어왔던 것입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은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문제 해결은 안 되고 악순환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인간 중심의 그 결과가 오늘의 기후위기를 불러왔고 코로나19를 불러왔다는 것을 우리는 자각해야 합니다.”

이런 세계관, 이런 사고방식, 이런 사유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한 삶을 담보해갈 수 없음을 일러주었다. 곧 미혹의 세계에서 생명평화의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했다. 탓하고, 편가르고, 인간중심적인 것을 넘어서 생명평화의 길로 문명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개개인은 맘껏 소비하는 물질과 욕망의 세상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이 아님을 여실히 깨달아야 한다. 부처님의 연기법, 즉 인간과 자연과 이웃과 세상은 자신과 한몸 한생명임을 이제라도 자각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도 결국 부처님 가르침 속에 담겨있다. 이기적 욕망의 사슬을 끊고 연기적 삶을 살아갈 때 작금의 이 위기상황도 극복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업식(業識)을 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해법도 결코 쉽지 않다.

연기법을 깨닫고 물질주의 업식을 끊어내야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고 돌아보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북극곰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섬나라가 탄생되었다는 뉴스는 이제 일상화 되었고, 전세계 유명 관광지도 해양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전세계 홍수, 폭염, 폭설, 산불, 그리고 코로나19의 원인은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위기에 기인한다. 이제 환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딸 다빈이에게 맑고 깨끗하고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어야 한다. 쓰레기없는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해모 제공.
딸 다빈이에게 맑고 깨끗하고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어야 한다. 쓰레기없는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해모 제공.

이제 우리는 각자의 삶터에서 생태적 삶을 위한 변화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의 삶의 패턴을 전환하고 바꾸는 일이다. 전도몽상으로 길들여진 삶을 내려놓고 단순소박한 생태적 삶으로의 대전환을 궁구해야 한다. 단순히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자원순환으로 이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소비중심의 삶의 행태를 바꾸어야 한다. 자본주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유혹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살아간다. 광고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인간생활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불필요하게 구입하지 않는가? 일년에 한번도 입지 않는 옷을 그대로 장롱 속에 쌓아두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은 건강한 먹거리인가? 국적도 없는 곳에서 온 먹거리들을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식탁에 오기까지 수많은 수고로움에 대해 생각하며 음식을 귀하게 여기며 섭취하고 있는가?

과도하게 많은 음식을 먹고 버리며 결국 음식물 쓰레기를 과하게 배출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적당한가? 과도하게 큰 집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넓은 집 속에서 일년에 한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결국 소유의 함정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이 외에도 자신의 일상적인 삶이 진정 우리 이웃과 세상과 자연에 보탬이 되는 일인지를 냉철하게 돌아볼 일이다.

생태적 삶으로의 대전환을 궁구해야

나의 삶이 과도한 소비 속에 놓여있지 않는가? 나의 삶이 탄소배출을 늘여가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삶이 생명평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이롭고 미래도 지속가능한 이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함께 기후위기시대의 어려움들을 풀어가야 한다. 기후위기를 비롯한 공업의 문제는 함께 풀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공업의 과보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모두가 함께 짊어질 과보다.

나 자신도 이롭고 이웃도 이롭고 세상도 이롭고 자연도 이로운 삶의 길을 궁구하고 모색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길, 그게 바로 중도(中道)의 삶이다. 이 세상은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연기적인 사고와 연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일깨워주신 연기(緣起)의 가르침이다. 예토(穢土)의 삶 속에서도 정토(淨土)를 염원하며 일구어가는 사람, 그를 보살이라 부른다. 우리는 긍정과 밝음과 희망의 보살의 길을 오늘도 묵묵히 걷는다.

이해모

지난 2008년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를 창립한 이후 현재 사무총장 소임을 맡고 있으며,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를 고민하면서 광주전남지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반한 평화, 환경 등 다양한 공익적 활동을 해가고 있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는 불교환경활동, 불교의 사회참여활동,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환경교육활동, 회원 및 소모임 활동, 시민사회연대활동 등의 역할을 모색하고 실천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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