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길을 잃다!
대학 입학과 함께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면서, 저는 도시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주는 매력에도 빠져들었습니다. 저 멀리 빌딩숲에 아주 색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았고, 행인들로 북적거리는 거리에서는 우연한 만남과 특이한 사건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죠. 신촌, 홍대, 압구정, 이태원 등 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곳에 가면 전혀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색다른 문물이 즐비하고, 이색적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진출처 : Stéphan Valentin
그러나 역시 저는 촌스러운 시골 사람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그런 이색적이고 신기한 도시문명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학교 주변이 제 생활무대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버렸거든요. 혼자 서울에 올라와 학교 근처 낡은 하숙집에 살면서 가급적 시내로 나가지 않고 복잡한 것을 피하자는 것이 저의 철칙이었습니다. 마치 스피노자의 하숙생활처럼 말이지요. 저는 본능적으로 도시가 주는 선택의 다양성이 사실은 화폐와 부, 에너지의 소비와 외양적인 것 이외에는 별 볼일 없을 거라며 애써 눈을 돌렸지요. 아마 대학 신입생 때였을 겁니다. 한 친구가 “12시에 홍대역 맥도날드 앞에서 만나자”라고 저를 불러냈습니다. 홍대역까지는 잘 찾아갔는데, 출구를 잘못 선택해서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연남동인지 동교동인지, 합정동인지도 모르고 헤매고 돌아다녔지요. 그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저는 도시의 미아가 되어 걷고 또 걸었지요. 사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일을 저는 촌사람 취급을 받기 싫어서 길을 묻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지요. 몇 시간이고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 다녔습니다. 결국 그날 친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서울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는 불야성 같은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도 했지만, 거주지는 대부분 학교 앞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도시에서 시골 사람처럼 사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에야 촛불집회로 서울 곳곳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녀보았습니다. 그런 특별한 경험을 빼고 나니, 지금도 연구실과 학교, 집만을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동시에 제가 지독한 길치인 탓도 있습니다.
익명의 사람들과의 만남과 친밀하고 유대적인 공동체 사람들과의 만남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입니다. 몇 년 전에는 한동안 골목에서 평상을 내놓고 동네 사람들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쥐포를 먹는 데 재미를 붙였던 적도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친밀한 사람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상권이 붕괴되기 시작하더니, 겨우 친해진 사람들이 그 골목을 떠나버렸습니다. 도시의 다양성과 탄력성이 주는 매력을 보여주었던 골목상권, 전통시장은 이제 거의 다 사라져버린 듯합니다. 이제는 골목마다 편의점과 마트가 상권을 장악하고, 골목상권을 형성해 살아가던 사람들은 거의 다 존폐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문을 닫은 상황입니다. 도시는 획일화되었고, 단조로운 문명의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아주 낯설고 위생적인 관계만이 남은 도시는 저로 하여금 다시 길을 잃게 합니다.
도시의 차도녀/남과의 사랑이 정답일까?
스피노자는 헤이그 인근 변두리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렌즈 세공일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지극히 시골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상인으로 성공한 아버지가 있기에 도시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도시를 선택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사는 작은 시골의 공동체를 선택했습니다. 아마 도시의 복잡한 편린들과 화려한 일상은 스피노자의 소박, 순수, 겸양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았겠지요. 동시에 범신론자라는 이유로 대도시 한복판에서 테러를 당했던 경험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도시의 삶은 매우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은 정동, 사랑, 욕망의 흐르는 공간이 아니라 위생적으로 탈색되어 있고 사랑과 욕망이 중화된 공간입니다. 더욱이 스피노자에게는 안전과 평화를 주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스피노자의 작은 공방이 푸리에의 ‘사랑의 신세계’나 에피쿠로스의 ‘텃밭이 있는 정원’처럼 쾌락과 자유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긴 사색과 정념을 응시하는 맑은 눈처럼 렌즈를 깎는 스피노자의 초롱초롱한 눈매가 빛나는 공간이었지요.
장인으로 독립한 스피노자는 기술을 몸으로 체화했고, 그 노하우와 지혜를 전수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장인을 중심으로 한 도제식 노동형태는 지금으로 치자면 전문가 양성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공동체는 기술을 지혜의 일부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기술 발전을 지혜의 통제 아래 놓고 제어하려고 했지요. 특히 장인이 주도하는 도제조합은 적정 수준의 기술만을 유지하고 전수하던 시스템이었습니다. 당시 도제조합은 기술 발전이 결국 인간의 일을 빼앗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지요. 스피노자는 대부분의 생활을 이 도제조합과 하숙집에서 했습니다. 극도로 제한된 범위에서 삶을 배치하는 것, 바로 범위한정 기술을 몸소 실천한 것이지요. 이러한 범위한정 기술에 입각한 삶의 범위의 축소가 갖는 효과는, 도시가 가진 복잡성 배후로 사라져 있던 정동과 욕망의 과정을 기하학적인 그림의 구도로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여기서 기하학적 방법론은 우발적 사건이 어떤 상황에서 신체 능력의 증대와 감소가 되고, 정신의 적합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나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결과를 추적하는, 오늘날로 치자면 역학조사의 방법론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 욕망, 정동이 탈색된 위생적인 관계망에서는 순간의 감정과 기분, 우발적인 것의 취향, 향유를 위한 화폐 등이 결정변수겠지요. 도시에서는 관계망이 주는 복잡성과 탄력성의 시너지 효과가 워낙 강하다 보니 기하학적인 그림의 구도를 그릴 만큼 삶의 자기원인이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우발적인 사건으로만 드러납니다. 그 우발성은 복잡하게 얽힌 선, 또는 그물망의 형태를 띠며, 지금으로 보면 네트워크, 생태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네트워크겠지요. 그러나 시골에서 작은 공동체를 조성하고 있던 스피노자는 지혜와 사색을 통해 사랑과 욕망, 정동의 기하학을 그려내고 그것에 공리와 정리, 각주 등을 달면서 삶의 자기원인이 갖는 역학 관계를 그려냅니다. 그리고 이를 필생의 대작 『에티카』에 오롯이 담아냅니다. 스피노자가 만약 시골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면서 상업을 했다면, 그러한 지도 그리기를 수행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절제된, 어쩌면 촌스럽게 느껴지는 정서의 기하학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익명의 자유와 개인의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정서의 기하학이 귀찮기만 하겠지요. 정서의 기하학은 곧 관계 맺기의 기하학이고, 필연적으로 간섭이 동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쩌면 스피노자 같은 시골 사람들 특유의 단순한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짐작하건대 스피노자의 사랑, 욕망, 정동,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도시 사람, 즉 차도남/차도녀의 감정이나 기분과는 거리가 먼 개념들입니다. 특히 도시에서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사랑과 욕망의 자기원인을 그려나간다는 구상은 관계의 표현양식, 관계의 성숙, 관계의 윤리와 미학 등을 만들기 위한 지극히 지루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스피노자가 갈았던 안경 렌즈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투명한 응시와 발견의 눈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들뢰즈의 발견주의, 즉 초월론적 경험론, 다시 말해 서로의 잠재성과 깊이를 응시하는 것은 스피노자의 렌즈로부터 유래하지 않았나 하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도시의 복잡성은 여러 가지 변수들 속에서 자신의 삶의 자기원인을 감추거나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자유롭게 선택지를 넓히려고 노력하는 삶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스피노자는 삶의 자기원인이 만든 지도를 그려내고 그 위에 사랑과 욕망, 정동의 특이점들을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복잡한 도시에서 길을 잃고 쩔쩔매는 그런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 욕망, 정동의 기하학, 즉 지도 그리기를 하고 있는 이상 스피노자는 영원한 시골 사람입니다.
위생적인 만남과 정동

요즘 1인 가구가 참 많습니다. 서너 명 중 한 명꼴로 1인 가구라고 합니다. 이들 중에는 관계로부터 단절된 삶이 참 많습니다. 미디어나 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굳이 불편하고 참견할 것만 같은 관계 맺기보다 혼자서 위생적으로 살아가는 삶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스피노자도 당시 흔치 않은 1인 가구였다지요. 평생 하숙을 하며 살았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참 많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친구들이나 이웃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스피노자는 관계에서 파생되는 정동, 사랑, 욕망, 무의식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의 철학을 살펴보면 그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고 절실하고 뜨겁게 생각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가 말하는 정동의 종류에는 기쁨, 슬픔이 단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합니다만, 증오, 사랑, 공포, 희망 등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들도 모두 정동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스피노자는 1인 가구이긴 했지만, 오늘날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생적이고 쿨한 만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물론 외로웠겠지만,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고 하숙집 주인 부부가 있었고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스피노자의 외로움은 기성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시대적인 깊은 고립과 고독과 같은 종류의 외로움이었지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철학자의 실존적인 외로움 같은 것입니다.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느끼는 고독은 상상을 불허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웃과 따뜻한 정동으로 대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왔을 테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동, 사랑, 욕망과 같은, 당시에는 매우 생소한 개념을 핵심 개념으로 삼아 자신의 철학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간혹 스피노자가 합리론자이고, 지극히 합리적이고 위생적인 만남을 했던 철학자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증오에 대한 사랑의 영구적인 승리, 슬픔에 맞선 기쁨의 해방을 말하는 그의 『에티카』를 읽다 보면, 쿨한 관계를 유지하는 합리론자라기보다는 지극히 뜨거운 가슴을 가진 혁명가의 모습을 지닌 스피노자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혁명적인 열정의 자기원인이 정동을 움직이고 사랑을 움직이고 욕망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스피노자는 자신을 나폴리의 혁명가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는 화가에게 부탁해서 혁명가 복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해서 그 그림을 거실에 걸어두었다지요. 사실 그의 역할모델은 혁명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것도 사랑의 혁명가이자 정동의 혁명가입니다. 그는 혁명가이지만, 비동시대적인 인물이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는 시대에서 배제된 자, 추방된 자, 이단아, 별종이었습니다. 당시 정치, 종교, 문화, 경제 그 어떤 분야에서도 그는 인정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스피노자에게서 뜨거운 열정의 원천이 되었던 작은 공동체의 정동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생적인 만남이 아닌 뜨거운 사랑과 정동의 만남을 가졌던 스피노자를 우리는 기꺼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정동은 촌스러운가?
서울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촌티를 조금 벗어났다 싶을 때, 저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살림과 돌봄 등의 정동노동에 대해서 촌스럽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밤마다 사무치는 고독과 외로움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1인 가구로 살아가던 저는, 아는 사람이나 돌보는 사람 하나 없는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당시 제가 상당히 쿨하고 차가워서 멋있어 보였다는 친구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활이나 내면은 굉장히 외롭고 고독했지요. 그때 왜 정동을 촌스럽다고 생각했을까요? 왜 욕망보다 환상을, 사랑보다 이미지를, 지혜보다 정보를, 정동보다 감정이나 기분을 중시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잘 안 되는 면도 있습니다. 저는 방황하고 배회하며 정동의 기하학이 주는 소박함과 순수함, 열정적인 측면과는 단절한 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혼자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 혼자만의 사생활만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전의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아내를 만나고 나서 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갔으니까요.
아내는 저의 인생에 정동의 기하학, 즉 기쁨의 인과관계를 구성해낸 주인공입니다. 전까지 정동(돌봄, 살림, 보살핌, 모심, 섬김) 등 공동체의 자기생산하는 활동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선입견과 편견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저에게 살림의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함께 하도록 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 저는 그날 밥상에 오른 반찬 가짓수의 선택지가 그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랑이 만들어낸 경우의 수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유도 없이 주어진 것이 반찬 가짓수라고 착각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깬 적이 있습니다. 아직 밖은 깜깜한데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내가 미역국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잡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와서 아침 일찍 출근할 사람이 웬 잡채며 미역국이냐고 했더니, 그날이 제 생일이라는 겁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잡채를 만들다가 손가락을 베었는지, 아내는 반쯤 피가 배어나온 밴드를 붙이고 쩔쩔매며 제 생일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때까지도 저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만드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그려낸 정동의 기하학이 저를 웃게도 울게도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정동을 촌스럽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철부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새 저도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고, 아내를 위해 기꺼이 빨래를 개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정동의 기하학에 충실해야겠다는 나의 다짐과도 같은 것이 되었지요. 물론 어머니의 정동노동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제가 돌려드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변화는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생활을 구성하는 미디어나 인터넷, 스마트폰이 아닌, 정동의 기하학에 따르는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삶의 형태로 바뀌게 되었지요.
삶의 곁과 가장자리, 주변의 정동
삶(life)의 동의어는 생명(life)입니다. 삶을 정의하기란 참 힘듭니다. 흔히 우리가 삶을 다소 뻔하게 보거나 비루하게 생각할 때 “내 삶은 이런 거야”라고 정의하려는 습관이 있지요. 특히 직분, 기능, 역할에 따라 나의 삶은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업이나 역할을 삶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나는 군인이다”, “나는 변호사다”, “나는 학생이다” 같은 정체성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이 지배적인 질서입니다.
그러나 삶은 조용히 우리 곁에 서식하고 있다가, 군인 혹은 학생이라는 직분과 역할이 끝났을 때 갑자기 정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스피노자는 정동(精動)을 정서라고도 불렀고,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돌봄, 사랑, 욕망은 그것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 삶의 주변에 정동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끝나거나 가만히 옆 사람의 손을 잡았을 때 정동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요. 삶은 그렇게 예기치 않게 문을 두드립니다.
스피노자는 삶의 주변과 곁으로 간주되었던 정동을 가장 핵심적인 철학적 주제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정동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삶의 곁과 가장자리를 감싸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정동은 또한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그저 ‘~은 ~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본질이나 기능이 아니라,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과 같이 우리 삶의 주변에 있던 정동이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정동의 영역은 중심이 되기보다는 기꺼이 주변과 곁에만 있는 것입니다.

사진출처 : Bryan Ledgard
이를테면 우리가 어떤 컵을 샀습니다. 컵의 주인은 본질이나 정체성을 확보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컵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곁에 묻은 때와 티를 닦아냈던 정동의 영역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삶은 곁에서 서식했던 정동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스피노자가 말한 정동의 기하학에 의해 구성됩니다. 정동의 영역은 중심이 아니라 곁과 주변, 가장자리이지만, 사실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동의 기하학은 어떻게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낼까요? 어떻게 자기원인의 수평선을 그릴까요? 그 출발점은 따뜻한 말 한 마디, 사랑이 넘치는 관계, 서로의 욕망에 대한 배려 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다시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라는 정동과 욕망의 질문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습니다. 욕망은 정동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지를 결정합니다. 우리의 삶은 정동의 자기원인 이외에 다른 이유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나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정동과 돌봄, 사랑의 손길, 눈길, 말 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질이나 정체성을 바라보고 삶에 대해 단정하고 뻔한 것으로 여기는 시각, 또는 우리의 삶의 곁과 가장자리에 있는 정동을 촌스러운 것으로 보는 시각, 그리고 엄청난 상냥함, 부드러운 흐름, 따뜻한 감쌈 등으로 나타나는 정동, 돌봄, 사랑을 쿨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 등으로 구성된 현존 문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통속적인 문명을 넘어서는 유력한 방법으로 스피노자가 말한 정동의 기하학을 가만히 떠올려봅니다. 젊은 시절의 방황, 외로움, 고독은 더 강렬한 정동과 사랑, 욕망으로 향하게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