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토지빈(率土之濱)
이까짓 섬 절반을 싹둑 잘라서. 이까짓 바다는 덤벙 메워서. 안전 꽝. 경제 꽝. 생태 꽝을 눈 막고 귀 막아 공항 하나로. 쇼쇼쇼 정치쇼! 반짝 인기몰이로 권력을 얻어 정치들은 등 따시고 배부르지만 결국, 시민들은 나락으로, 국민들은 등골 휘고 생명들은 초고속 죽음의 질주뿐인. 가덕도 신공항.

10월 12일. 김해환경운동연합은 경남환경운동연합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 예정 부지를 다녀왔단다. 물 좋고 숲 좋은 가덕도는 신석기 무덤과 거주지를 시작으로 고인돌, 연대봉에 남아 있는 고려 봉수대 흔적, 조선시대 눌치왜성 등 연구가치가 높은 역사유적이 있더구나. 특히 외양포의 포진지는 러일전쟁의 핵심적 유적지로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지. 물 좋고 숲 좋은 가덕도는 생태계의 보고란다. 공항 건설시 잘릴 국수봉은 궁극의 숲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소사나무 등 최상림 숲이라네. 녹지자연도 8등급(절대보존지역)으로써 수령100여년 동백자생 군락지1를 포함. 사스레피. 곰솔 등 산림유전자 보호 지역이란다. 물 좋고 숲 좋은 가덕도는 해양생태도 1등급 바다도 가졌더구나. 멸종위기 취약종인 토종 돌고래 상괭이가 가덕도 연안 숭어떼와 함께 살고 있고, 천연기념물 수달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라더구나. 가덕도는 철새 도래지의 핵심축인 낙동강 하구2에 위치하고 있지. 가덕도 신공항은 안전하지 않단다. 섬의 육지 지반과 매립될 바다의 지반 성질 차이로 생기는 부등침하(다른 성질의 슬라이딩)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지. 80m 활주로 폭의 안정성을 구비 못하고 45m의 활주로 폭으로 불안하단다. 또 연대봉의 측풍난류는 안전한 비행을 담보하지 못하지. 대형선박이 지나는 길이라 충돌도 우려되고.
가덕도 신공항은 준비된 적자 공항이란다. 정부는 13조 5천억(?)의 공사 예산으로 파급효과 23조를 예상하지만, 경제성이 타당하다면 셈 빠른 건설사들이 계속해서 부지조성공사부터 연이은 유찰사태를 만들었겠니? 코로나 팬데믹을 이미 겪은 지구가 한반도 남부 국제선 활주로 1본의 활성화를 유지시켜 줄 수 있을까? 국토 균형개발은 가능할까? 일자리가 창출될까? 물류는 비싼 항공권을 선택할까? 왜 1~3개월만에 후다닥 환경영향평가를 하였을까? 왜 비민주적 절차로 비실비실하고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하였을까? 왜 억측을 뚫고 ‘가덕도 특별법’을 여야 정치가 대립도 없는 대통합으로 통과시켰을까? 왜? 왜. 왜?
사랑하는 새미야. 얼마 전 엄마는 가덕도에 다녀왔단다. 새미가 기억할까? 새미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가덕도로 여행을 다녀왔단다. 아마도 배를 타고 외양으로 갔던 것 같아.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젖는 것이 엄마의 취미 아니겠니? 가덕도가 아름답다는 풍문에 너희들과 함께 갔었지. 소문 그대로 무척 아름답더구나. 행복이 퐁퐁 샘솟는 엄마의 새미야! 무기력을 절규하는 엄마의 샘아! 너와 나누는 대화 마디마디. 너만은 뜨뜻하게 데우고 싶은데, 네게 무기력병을 엄마가 전염시킨 듯하여 미안하구나. 지금은 ‘사니까 살아진다’에 집중해보자. 추억을 파먹고 살아보자꾸나. 파랑새와 함께한 고즈넉했던 가덕도의 1박2일이었단다. 외양포는 산등성이가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리며 마을을 안고 있었지.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바닷가 마을 같지 않은 푹 감싸여진 포근함이었단다. 긴 지붕 아래 여러 채 집들이 인상적이었어. 사북탄광촌 집들 같았거든. 러일전쟁의 흔적이라더구나. 마을 밖으로 나오면 그제서야 바다가 나즈막하게 펼쳐졌어. 새미랑 파랑새랑 손잡고 걸었던 조용한 밤바다 마실 길이 참 좋았었지. 다음날 아침으로 동네 어르신이 아이들 보면 공부거리가 있다고 일본군 포진지 자리를 가르쳐 주었어. 그때는 꽤 정글 같은 길을 뚫고 그곳까지 가서 신기하게 관찰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정비가 잘 되었더군. 국가가 이곳에 공항을 짓는다고 하네. 외양포와 국수봉을 밀어버리고 바다를 메워 비행기 활주로를 만든다고 하더군.

이 아름다움이 당해야 할 고통이라니? 세바시항으로 가는 길, 생뚱맞게 거대한 커피집이 들어서 있었어. 돈을 처발처발 처발라서 왜? 이곳에 커피집을? 보상을 받기 위해서라네. 대항포 언덕배기에도 도시 같은 건물을 짓고 있더구나. 돈 놓고 돈 먹기의 묘수인지? 안내해 주시는 열정적 김현욱 선생님께서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를 연발하시며 ‘지켜야 합니다. 지켜야 합니다.’ 입가에 하얗게 피를 토하시는 모습이 무척 슬퍼서 혼났단다. 엄마가 기억하는 가덕도랑 지금의 가덕도는 너무 달랐거든. 이미 피골이 상접해 보였거든. 폐허 같았거든. 그런데 현욱쌤은 폐허 속 아름다움을 어떻게든 더더더 보여주시려고 온몸으로 열기를 뿜고 계셨어. 맞아. 아기 새미랑 아이 파랑새의 세포에 심고 싶었던 가덕도 아름다움을 그들도 이미 속속들이 보셨던거지. 그마저 사라질 위기에 그 사랑이 펄펄 날뛰는 거지. 아름다운 가덕도와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며 엄마는 묵묵부답으로 아프기만 했단다. 돌아오는 길 바다에 걸친 노을이 참 곱더구나. 자본 제일주의 대한민국에서 이윤 창출 계산도 맞지 않는 가덕도 신공항은 왜 끝장으로 합을 맺을까? 엄마는 정치쇼라고 생각해. 말초 신경 자극적인 한 번의 선거를 위해 환상을 마취하는 거지. 콩고물로 그나마 지키고 있는 김해들판 논들을 밀어버리고 이름도 거창한 동북아물류센터까지 곁들인다니. 똥인지? 된장인지? 논 습지의 생명성도 밀어버리고 낙동강 하구 습지의 생명성도 막아버리고 가덕도의 생명성도 깎아 버리고 바다의 생명성도 메워버리는 잔인한 당신들은 누구신지?
‘엄마, 하늘을 날고 싶어.’ 파랑새는 자주 이야기 했지. 또, 유난히 파랑새는 바다를 사랑했었어. 논짓물3 바다 끝으로 수영해서 나아가는 파랑새를 엄마가 깍깍 거리며 애타게 부르면 씨익 웃으며 뒤돌아보았지. ‘엄마, 괜찮아. 괜찮다니까.’ 손을 흔들었던 파랑새가 자꾸자꾸 생각나. 맞아. 언니는 하늘을 날고 싶어 했고, 바다수영을 즐거워했었어. 2023년 6월 19일. 파랑새가 꺼진 신호등, 횡단보도 가운데에서 쓰러진 후 9일째 밤이었어.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엄마는 온 신경이 빠짝빠짝 전봇대처럼 서 있었단다. 깜박 잠이 들었나봐. 파랑새가 활짝 웃는 얼굴로 엄마에게 온 거야. 흑백이었어. 엄마 앞으로 바짝 다가선 파랑새는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며 귀까지 찬찬 보여 주었어. 그런 후 엄마 눈길이 아래로 향했는데 파랑새의 치마가 보였단다. 종아리까지 덮는 긴치마를 파랑새가 입고 있었어. 치마단 아래로 꽃무늬가 하얗게 까맣게 보였어. 치맛자락이 흔들흔들. 살랑거리던 바람이 갑자기 급해지더니 블랙홀이 뚫리는 거야. 그러자 파랑새가 아래로 쑥 빨려들어 가기 시작하더구나. 그때 엄마는 해밝게 파랑새와 인사를 했지. ‘진솔아, 그래. 우리 다음에 만나자. 잘 가. 나중에 꼭 만나자’ 막 웃으면서 ‘안녕, 잘 가, 안녕’하며 인사를 했단다. 언니는 순식간에 블랙홀로 사라졌어. 곧 바로 다시 진솔이가 나타나 바다 깊숙 고래와 헤엄을 치기 시작하는 거야. 자유롭고 부드럽게. 그대로 고래와 같이 치솟더니 하늘을 날기 시작했어. 부드럽고 자유롭게. 그 순간 엄마가 깼나봐. 벌떡 일어나 옥상으로 올라갔어. 진솔이는 고래와 함께 흰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는 것 같더구나. 한참을 올려다보며 엄마는 손을 흔들었단다.

유어 습지4 소녀였던 엄마가 바다에 적극적은 관심을 가진 첫 번째 계기는, 어느 해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때란다. 그해는 마지막 종점이 고리 핵발전소였어. 너는 그날 없었던 것 같아. 파랑새와 같이 걸었지. ‘탈핵은 생명입니다. 탈핵은 평화입니다.’ 걸음에 기도를 싣고 뚜벅뚜벅. 곁으로 예수회 박문수 신부님께서 계셨는데 갑자기 한숨을 푹 쉬시는 거야. ‘저 바다를 어떻게 할까요. 바다 속 생명들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지구의 온 쓰레기를 안고 있으니까요.’ 순간 엄마는 가슴팍을 누군가 손바닥으로 세게 미는 힘을 느꼈단다. 바다의 고통이 찰라 느껴진 거지. 파랑 눈 신부님의 한탄이 엄마를 일깨웠어. 그때부터 엄마는 바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랐단다.
사람이 만들어 낸 플라스틱. 사람이 만들어 낸 핵 오염수. 미안하고 부끄러웠지. 핵 오염수, 탄소 14(연대측정법)의 반감기는 5천 9백년이며 이는 방사능이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이 약 6천년이 걸린다는 의미라네. 또, 스트론튬 90의 반감기는 28년이라 하는구나. 방사성 물질을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는데 그 곳이 생명이 살아가는 바다라니? 방사능 물질은 생명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먹이사슬 속에 흡수되어 결국 먹이사슬 꼭대기까지 이어지면서 인간에게 돌아오지. 인간의 미래 세대에게 핵 테러를 하는 격이야. 바다의 핵 오염수는 운동성, 생식 능력, 감각 능력 같은 온갖 종류의 유기체의 특질을 약화시키지. 또 축적된 소량의 방사능의 반복적 노출은 대규모 방사능의 한 번 노출보다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하더구나. 돌연변이가 대표적 예란다. 인간은 자연체계의 일부일 뿐 결코 자연을 만든 존재는 아니지 않니? 바다에 투기한 핵 오염수는 생명 자체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에게 가해졌던 그 어떠한 범죄보다도 훨씬 심각한 도전이지. 미래 세대를 말살할 수 있는 행위란다.
제주살이, 어느 날. 그날도 변함없이 바다 따라 일터로 한참을 걸어갔었지. 바다는 아름답더구나. 흥얼거리다가 문득 이 아름다움 뒤에 숨겨져 새어나오는 아픔을 느꼈단다. 쓰레기들이 떠밀려 사구처럼 쌓여 있었거든. ‘참을 인’은 ‘마음 심’ 위로 ‘칼 도’를 품는 견딤 아니겠니? 칼날에 베이고 있는 바다에게 무척 미안했지. 그래서 엄마는 일주일 한 번 정도는 출근길 ‘해(海) 치우자’며 바다 쓰레기를 줍기로 했어. 엄마의 해(海) 치우자는 특별하지 않아. 마대자루를 챙겨 즐거움에 대한 대가로 할 수 있는 만큼 잠시, 쬐금. 바다에 협조하는 거지. 플라스틱. 스티로폼, 유리까지 다양하게 정말 많더구나. 엄마가 사용했던 플라스틱일 수도 있겠지. 엄마가 친환경 제품, 친환경 생활만 하냐고? 그렇지 않아. 주로 편리를 즐기고 가끔 불편을 감당하지. 그렇지만 내키는 만큼 행동해 보는 거지. 바다 쓰레기를 사회 제도가 해 치워도 괜찮지만 개인이 해 치워도 괜찮잖아. 제도는 효율이 발생하지만 개인은 생존을 담보하거든. 엄마는 너의 생존에 엄마의 역할을 하고 싶었단다.

그리고 바다에게 말했지. ‘너그러운 바다여! 눈에 드러난 세상과 눈에 드러나지 않는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여! 지구의 끝에서 살아남을 바다를 꿈꾸며. 끝으로 받아들이고, 끝으로 받기만 하는’받아’라 ‘바다’ 라고 하나요. 사람의 일상으로 당신을 위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해 치우자로 바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바다, 당신만은 끝에서 살아남으시기를.’
바다가 곪아서 속으로 고름이 가득하네. 이번 여름, 지독하게 더웠잖니? 바다 생명들이 속으로 죽어 나가더구나. 제주 서귀포의 바다는 일평균 표층수온이 30도가 넘는 날이 8월 28일 기준 18일째라 산호수가 녹아버렸다고 하더군. 거제 앞바다 홍합 양식은 80% 이상 폐사 수준이라더구나. 서해도 바지락의 무덤이 되었다네. 어디 하나 뾰족하게 맘 편할 날이 없다. 낑낑 앓고 있는 바다여!
네 언니 파랑새는 바다를 사랑했지. 파랑새를 추억하며 2020년 12월 23일 언니가 기록한 바다를 들여다보자.
“나는 바다를 수영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큰맘 먹고 산 뱃살을 가려주는 수영복을 입고 맨발로 바다 속을 거닐던 그때. 나는 언제나 바다를 동경했고 바다와 맞닿아 있기를 강렬히 바랐다. 수영장에서 배운 것처럼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을 수 없어 머리를 꼿꼿이 들고 수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자꾸자꾸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좋아서 나는 해변가에서 멀어지기만 했다. 내가 바다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바다가 쉼 없이 떠오른다. 바다를 사랑한다고 당장이라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심해 공포증이 있다. 어두컴컴한 깊은 바다, 그 속에 있는 온갖 쓰레기들과 심해어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힌다. 나는 바다의 겉 표면에만 머무르고 싶다. 순간 내가 굉장히 이중적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바다 속은 싫지만 내가 닿을 수 있는 수면은 좋다. 나는 바다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 속까지 감내 하는 건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바다와 그렇게 가벼운 관계로만 남기로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바다와 다를 바가 없다. 두 눈을 마주하고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내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사랑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유지될 수 있는 사랑이라고도 생각한다. 나 딴에는 굉장히 진중한 사랑을 하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다들 바다같이 가벼운 관계였다. 이상한 기분에 괜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겉 표면만 쓰다듬어본다.”
새미야. 우리가 바다의 속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배려도 못한 것처럼 너와 내가 파랑새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제대로 사랑했을까? 파랑새는 늘 깊은 이해와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었지. 따뜻한 우리들의 하느님. 우리들의 파랑새. 파랑새의 오른 팔뚝에 검은 점. 네 오른 발목에 검은 점. 너희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연결된 하나였단다. 엄마의 서투른 붓질이었지만 너희들은 모습도 닮았고 마음결도 같단다. 이제 파랑새가 두려움을 이겨내며 바다 깊이 자유롭게 수영하는구나. 있는 그대로 고통까지 껴안는 아름다움. 견디며 지키는 아름다음. 아름다운 파랑새의 아기동생, 새미야. 새미가 곧 파랑새잖니?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쫒기도 하고 쓰레기로 신음하는 바다 속을 끙끙 앓기도 하면서 너도 바다로 나아가거라. ‘솔토지빈’ 온세상을 향해 온바다를 자유하거라. 부드럽고 슬프게. 그렇게 바다 그대로에 너를 적시며 그렇게 그대로 바다가 되거라. 죽도록 사랑해. 파랑새, 새미야! 엄마는 죽었다 다시 살아낼 만큼 내 딸 솔빈(솔토지빈, 率土之濱) 사랑한단다.

기쁜 죽음
자주 죽고 싶었던 것 같아. 빗물에 운동화가 젖었을 때와 같이. 벗고 싶지만 벗을 순 없는 상태로 찝찝하고 무겁게 걸어 왔던 것 같아. 내겐 늘 우울함이 있었어.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우울함. 내가, 인간이, 우리가, 세상이 싫어서. 다시금 내가 너무 싫어서. 자주 죽고 싶었던 것 같아.
언니도 자주 죽고 싶어 했던 것 같아. 언니는 몸이 아팠고, 병과 싸울 때면 늘 지쳤지. 그렇지만, 언니와 내가 상상한 죽음엔 다른 것이 하나 있어. 나에게 나의 죽음은 슬픈 것이었고, 언니에게 언니의 죽음은 기쁜 것이었어. 언니는 죽고 싶어 했어. 기쁘게 죽고 싶어 했어. 하늘을 날고, 바다를 헤엄치며 아픔 없이 자유로운 그 곳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지. 다시 보니 언니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싶었네.
난 언니가 말하는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어. 언니가 죽음을 말할 때면 오히려 듣기 싫었지. 언니 없는 세상이 너무 무서웠거든. 그러다가 언니가 말한 죽음을 알게 된 때가 있어. 해녀 학교를 다녔을 때야. 바다에 숨을 참고 들어갔는데, 달그닥 소리가 들렸어. 바다 속 생명들이 움직이는 소리 같았어. 그때 생각했어. ‘아,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 반갑고, 기쁘다.’ 바다 속 깊은 곳보단 저 멀리 수평선을 좋아했던 언니. 저 멀리 수평선보단 바다 속 깊은 곳을 좋아 했던 나. 바다는 우리 둘을 ‘기쁜 죽음’으로 정동할 수 있게 만들어 줬어.
어느 해, 크리스마스. 언니는 해녀복을 입은 내가 돌고래와 헤엄치고 있는 그림을 그려줬어. ‘아아, 솔빈아 이렇게만 행복해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너를 사랑하면서, 행복해라’는 뜻이었어. 나도 언니에게 말했지. 나는 그저 언니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어제는 엄마가 울었어. 엄마는 몸을 뒤틀며 벽을 짚어 잡을 걸 찾았지만, 매끈한 벽에 손끝이 쓸려 결국, 벽을 긁었지. 벽을 긁어대며 우는 엄마를 안아주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지만, 엄마는 이미 눈물에 잠식돼버렸지. 정신을 차린 엄마가 내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했어. 마치 당신은 절대 나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죽지 않겠다는 것처럼.
엄마, 기쁜 죽음을 꿈 꿨던 언니는 지금 어떤 죽음을 상상할까. 세상은 언니에게서 기쁜 죽음마저도 앗아갔구나. 엄마, 우리는 어떻게 죽어가야 할까. 세상은 우리에게 죽을 용기마저도 앗아갔구나. 남겨진 우리는 아마 언니처럼 살아야겠지. 언니처럼 바다를 사랑하며. 바다 앞에 반성하며.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으며. 바다가 되어 바다로 나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