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닦인 아스팔트를 두고 가시밭길을 선택하신 당신을 떠올리며 책을 고르고 동보서적 계단을 내려오면서 되뇌는 말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황홀함이여…” 10/18 저물무렵에 정우련 드림.1
창작의 자리로 가는 것은,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무엇을 적어 보는 것은,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괜찮게 사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른 일에서 이만한 성취감을 얻기 어려운 것은 공연한 이유에서는 아닐 것이다.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야 할까,
인건비 없는 공모사업 지원서를 내는 것은,
내 예술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고민하면서 거리를 걷는 것은,
더 적극적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는지 질문을 받고 내 성정을 탓하는 것은,
그림 하나 몸짓 하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에 웃고 흥정도 해주는 것은,
돈을 벌어야 예술도 하지만 돈만으로는 볼 수 없는 예술의 세계를,
예술이라는 생명, 어쩌면 지상의 생물상에 속하지 않는 생명체를 내 한편의 생명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가?
예술의 효용은, 가치는. 문화의 최전방에서 분투하는 예술가… 이 작품이 보이는 태도는 새삼 인간 가치를 되새기게 하고… 반기를 들며, 때때로 저항의 중심이 되는… 생태를 이루고 숲의 하나가 되는 예술가…….
어떤 예술가는 팬이 많고 어떤 예술가는 영업력이 좋다.
어떤 예술가는 전업 작가로 살고, 어떤 예술가는 학업을 잇는다.
어떤 예술가는 활동가의 모습을 띠고 어떤 예술가는 사회운동에 앞장선다.
어떤 예술가는 예술계를 떠나고 어떤 예술가는 지속하는 것에 의의를 두며 생활의 반쪽도 안 되는 영역에서 예술을 잇는다.
어떤 예술가는 작업실에서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윤내며 때를 기다린다.

oil on painting
530x455mm
2026 年 한승욱 作
축복인가, 매일의 질곡인가, 여전히 무지개를 좇는 건가, 진정 아는 사람만 아는가?
올림픽 주제곡처럼 생각해 본다. ‘예술가를 위한 팡파르’가 필요하다.
나무 옆에서 들꽃 옆에서 추는 춤에, 고심하는 펜 끝에, 웅크려 보내는 밤에, 나팔과 현악기, 신디사이저와 타악기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극심한 허무에 빠지지 않고, 그래야 할 때는 마음껏 고집을 부릴 수 있도록, 가능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치는 심벌즈가 필요하다.

무지개를 좇습니다. 따뜻한 시선의 글 잘 읽었습니다
황홀함을 더 많이 느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