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 일상으로

예술을 하며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한다. 예술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때론 어려워지기 일쑤다. 일상과 예술이 잘 조화된다면 서로에게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멋진 그림을 보며 한참을 서서 붓 자국 하나에 감명을 받는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그날 새벽잠을 못 이루고, 책 한 권에서 얻은 한 문장이 다음날 좌우명이 되기도 한다. 쉽게 감동하고 어렵게 넘긴다. 시대의 역작을 보고 입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보통 동료 예술가들이 설명해주는 자신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예술로 얻는 활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얻는 활력과 직접 작품을 만들며 얻는 활력. 나는 전자를 통해 후자로 향하는 중이다.

기름종이에 만화책 캐릭터를 따라 그리던 게 시작이었다. 12살에 처음 그림에 재미를 붙였고 내 그림을 좋아해 주는 것에 감동했다. 내 작품을 재밌게 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처음으로 예술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것을 누군가는 자신의 미감을 타인이 좋아해 주면 굉장히 기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관람자의 공감을 얻어내 내적 자각까지 불러일으켜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예술에 힘에 대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성인이 되고 예술 작품이 하얀색 상자 모양의 전시장에서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형화된 것들과 내적 투쟁을 하던 청소년기의 끝자락에서 전시장을 벗어난 멋진 작품들은 이후 예술이 내 투쟁의 요소로 작동하게 했다.

처음 글 요청을 받고 내가 청년예술가의 입장을 잘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예술이 다양한 만큼 예술가의 삶도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왜 예술을 하는지 그 이유 역시 굉장히 다양하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소견을 쓸 순 있겠지만 예술가에게 ‘보통’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아님을 꼭 말하고 싶다.

창작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고통의 산을 넘을 때 굉장한 쾌락도 동반된다. by RhondaK Native Florida Folk Artist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_Yc7OtfFn-0
창작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고통의 산을 넘을 때 굉장한 쾌락도 동반된다.
사진 출처 : RhondaK Native Florida Folk Artist

예술작업은 쾌락을 준다. 예전에 동료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만들 때 느끼는 희열이 흔히 ‘뽕’이라고 불리는 필로폰 마약을 맞을 때와 비견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친구가 작업실에서 환기도 안 시키고 몇 달 밤샘 작업을 하다가 몸에 해로운 물질들로 인해 현재는 병원에서 종양 덩어리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 친구는 밤과 낮을 초월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 작업실을 쓰던 동료가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기까지 할 정도로 만들었다. 그 친구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던 말이 바로 예술작업 즉, 창작으로 인한 직접적 쾌락이 굉장하다는 것이었다. 창작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고통의 산을 넘을 때 굉장한 쾌락도 동반된다. 나는 작품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잠깐 환상의 세계에 다녀온다. 아직 작업물로 발전시켜본 경험이 적어서 필로폰 맞은 것 같은 짜릿함은 느껴보지 못했지만, 창작이 뇌의 어느 부분을 자극해 뽕에 취하게 만든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몸 상해가며 얻은 활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좀 쓸쓸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답 없는 예술은 매력적이다. 현대미술이 좋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을 때 나는 답이 없다는 부분을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예술이고 아닌지에 대한 부분은 예술가마다 생각이 다르므로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이런 자유로움은 답만 쫓아온 유년기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있다. 습관적으로 답을 찾으려고 하다가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답이 없기에 지금 생각을 고스란히 믿을 수 있다. 그리고 또 그 생각이 완벽히 부서질 수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어떠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것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모두에게 해당한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다. 당연한 풍경이 없다. 익숙함도 세심하게 관찰한다. 나는 이 부분이 예술 행위 중 제일 좋다. 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렇다고 하루하루가 새로울 순 없겠지만, 일상에서 오는 답답함이 환기되는 기분을 느낀다. 오래전 아버지가 마당에 거미줄이 쳐진 것을 보고 매일 아침 어느 만큼 달라져 있는지를 설명해 주신 적이 있다. 이는 예술적 시각과 얼마나 다를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시각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그것이 꼭 예술가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영감은 예술 작품에서 오기보단 일상에서 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상을 잘 사는 것이 예술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작업을 통해 얻는 삶에 활력보다 일상을 통해 활력을 얻고 작업을 지속하는 것이 맞는 것일지 모른다. 대부분의 청년예술가 혹은 신진작가라고 칭해지는 인물들은 공통으로 작가 생활(예술)을 이어갈지에 대해 고민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란 예술 작품만을 만들며 사는 예술가, 프리랜서이자 예술가, 문화기획자이자 예술가, 직장인이자 예술가 등 한 번쯤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려본 많은 종류의 예술가를 포괄적으로 말하려 한다. 모두가 예술작업을 통해 무언가 얻고 무언가를 잃기 때문에 작업을 지속할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다. 많은 것을 얻고 또 잃겠지만 공통으로 많이 잃는 것은 돈이다. 예술도 노동인데 돈이 되는 경우가 너무 없다. 그 때문에 대부분 예술가는 돈을 만들기 위한 수단과 함께 예술을 지속한다. 또래 동료작가는 신진작가가 너무 많고 금방 증발해 버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예술과 일상이 잘 공존하지 못해서 발생한 현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절대 포기할 수 없고 목숨을 걸더라도 예술만큼은 올곧게 예술만을 고수하는 것도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닐까. 예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준형

작년에는 작업도 많이 하고 샘솟는 아이디어에 껴있었는데 올해는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작년 과부하 현상인 것 같습니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벌며 국내 여행을 다니고 인터넷을 많이 하는 중입니다. 예술가이자 노동자의 경계에서 잘 지내는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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