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공동체 어디 없나요?

‘피스오브피스’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오르빌에서 거주했던 대구대 김용휘 교수를 온라인으로 만나게 되었다. 과연 완벽한 공동체란 존재할 수 있을까? 공동체는 완성형일까, 아니면 끊임없는 과정형일까?

나는 ‘피스오브피스’(이하 피옵피)라는 예술가·기획자 콜렉티브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록 7명밖에 안 되고 아직 형태나 모습이 완벽하지 않지만 피옵피는 하나의 생활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함께 밥을 해 먹고,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다. 때로는 서로 다른 점에 대해서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부딪치면서 서로의 모난 점들을 깨어가고 있다.

먼저, 내가 피옵피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먼저 소개해야겠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 해외에 다녀온 친구가 잠시 지낼 곳이 필요하다고 해서 집을 빌려준 적이 있다. 덕분에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본가에서 며칠을 지내고, 친구들의 집을 돌아가며 잠을 청하다 문래동에 있는 피옵피에 가게 되었다. 원래 안면이 있는 사이이기도 했고, 이전에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던 곳이어서 하루 정도 묵을 요량으로 간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몇 명이 지내고 있었는데, 뭇 사이가 가까워 보였다. 따뜻한 환대와 함께 맛있는 밥까지 차려주니 손님 된 처지에서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극진한 대접을 받고 그들이 하는 사업계획서 정리하는 일을 조금 도와주려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밤늦은 시간까지 도왔지만, 사업계획서 정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극진한 환대를 받은 것이 감사하여 늦은 시간까지 돕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멤버 혼자서 사업계획서를 정리하고 있는 것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친구와의 등산 약속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하철역으로 가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하다가 친구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남기고, 다시 피옵피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피옵피라는 예술가·기획자 콜렉티브이자 이상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아직까지 함께하고 있다.

‘평화의 조각들’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피옵피의 일상은 항상 평화롭지만은 않다. 서로의 욕망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에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때로는 상처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부족함을 깨닫기도 한다. 피옵피에서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공동체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나에게 공동체의 기존 정의는 규칙이나 규율이 기반이 되는 사람 간의 모임이었다. 개인적으로 규칙, 규율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특히나 집단의 경우 서로 공유하고 있는 약속과 합의가 필수라고 생각해왔다. 피옵피에 들어가기 전까지 말이다. 피옵피 활동을 하면서 공동체의 약속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동의하는 약속을 만드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동일한 목적으로 가지고 모인 경우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 멤버들은 서로가 좋고,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활동하고 있을 뿐이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멤버 모두가 조금씩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대구대학교 김용휘 교수에게 오르빌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로빌을 상징하는 건물 마트리만디르. by Mrinal Rai  https://unsplash.com/photos/F0WhZ0w2UWU
unsplash
오로빌을 상징하는 건물 마트리만디르.
사진 출처 : Mrinal Rai

오르빌(Auroville)은 인도 동남부 폰디체리 근처에 위치한 공동체 마을이다.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라는 20세기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1968년 마리 알파사에 의해 세워졌으며, 현재는 약 3,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공동체이다. 오르빌은 1988년 인도 정부로부터 자신의 헌장에 따라 발전하는 것을 보장해 줄 ‘오르빌 재단법’을 제정하고, 공식적인 자치기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오로빌은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오로빌은 인류 모두에게 속해 있다
그러나 오로빌에 살기 위해서는
신성 의식Divine Consciousness에 기꺼이 헌신해야 한다


오로빌은 끊임없는 교육의 장, 지속적인 발전의 장이자
영원한 젊음의 장이 될 것이다


오로빌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가 되고자 한다


오로빌은 안팎에서 얻어지는 모든 발견을 선용하여,
미래의 구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오로빌은 실제 인류 화합의 살아있는 구현체를 위한
물질적 정신적 탐구의 장이 될 것이다


오르빌 헌장 (출처: 오르빌 코리아)

오르빌 헌장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오르빌은 신념, 정치, 종교, 국적을 초월한 사회이자, 돈이 없는 경제를 꿈꾼다. 이런 오로빌의 가장 큰 특징은 법이나 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오르빌에는 오직 오르빌 헌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행정적인 조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워킹 그룹이라는 형태로 행정업무를 맡는 사람들이 있다. 더 재밌는 것은 의사결정 방식이다. 오르빌에서는 모든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오로빌의 정식 시민인 오르빌리언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약 2년간 마을에서 머물며 봉사를 해야 한다. 오르빌리언이 되면 교육을 비롯해 의료 시설 등 많은 것을 무료로 누릴 수 있다. 오르빌리언은 일정 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노동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강요사항은 아니라고 한다. 술과 고기 또한 금지되어 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모든 것이 자율로 돌아가는 공동체인 것이다.

자율적으로 잘 돌아갈 것처럼 보이는 오르빌도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로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지만 세계 경제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하고 있지는 않다. 유네스코나 다른 정부 기구, 개인 등 국제적인 지원과 후원은 오르빌의 중요한 재원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거주민이 늘어나면서 지하수 고갈이라는 문제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한, 창립 이념을 따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혼재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내가 보기에 오르빌은 완벽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성장해가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나는 전부터 완성된 공동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왔다. 누구의 불만도 사지 않은 그런 완벽한 공동체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래서 오르빌의 현실을 들었을 때는 조금 실망을 하기도 했다. 김용휘 교수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오르빌은 모두의 이상이 펼쳐지는 세계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오르빌 또한 실험의 단계이며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왜 공동체를 이룰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만드는 것이 공동체가 아닐까. 공동체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그 안을 구성하는 사람들에 따라 성격과 모양이 달라진다.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이고, 그 과정 자체가 공동체의 삶이지 않을까. 반대로 공동체가 완성되고 완벽해지는 것은 환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속해 있는 피옵피라는 공동체 또한 전혀 완벽하지 않고, 그렇기에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라지는 그날까지 나 또한 끊임없이 노력하고,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공동체를 꾸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최정훈

예술가·기획자 콜렉티브인 ‘피스오브피스’의 멤버이자 뉴딜일자리 노동자로, 현재는 지역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한량을 꿈꾸나 성격이 소심하여 마음껏 놀아본 적 없고, 더욱이 제대로 놀 줄을 모른다. 식물과 커피, 햇살 좋은 날 자는 낮잠을 좋아한다. 요즘은 ‘공동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품고 살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