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완주 경천면 구재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을 감싸며 흐르던 신흥계곡은 놀이터이기 전에 나를 키운 시간이었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물속에 들어가 하루를 보냈고, 밤이 되면 평평한 돌을 베개 삼아 누워 하늘을 이불처럼 덮고 잠들었다. 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고, 물소리는 세상의 소음을 모두 지워주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연 속에 있다는 감각만으로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어릴 때 나는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을 몰랐다. 다만 자연 속에 있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이 맑으면 기분이 맑아지고, 바람이 불면 생각이 씻겨 나가는 느낌. 그 단순한 체감이 내 안의 기준이 되었다. 고향이란 주소가 아니라 감각이라는 사실을, 나는 신흥계곡에서 배웠다.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 아래, 노령산맥 계통의 숲은 해발 700미터 안팎까지 이어진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높은 산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높이가 계곡의 생명을 유지하는 조건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숲이 깊을수록 물은 차갑게 유지되고, 차가운 물이 생명을 살린다. 자연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이 끊어질 때 생태는 무너진다. 계곡은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숲과 물, 시간과 생명이 이어진 관계의 결과였다.
그 산 능선 아래에는 만경강의 또 다른 발원지로 전해지는 ‘돼지샘’이 있다. 작은 샘에서 시작된 물은 계곡을 따라 흘러 마을을 지나고 들판을 지나 더 큰 강과 만난다. 어린 시절에는 그 물의 시작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안다. 발원은 단순한 지점이 아니라 흐름이 태어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 작은 시작이 모여 하나의 강이 되고, 수많은 생명을 이어간다.
계곡 위쪽 깊은 산에는 ‘왜제’라 불리던 곳이 있었다. 어른들은 오래전 일본 사람들이 넘나들던 산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름 하나에도 시간이 붙어 있었다. 숲은 조용했지만, 그 아래에는 오래된 발걸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흥계곡은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 겹쳐진 공간이었다.
마을과 마을을 잇던 옛길도 있었다. 포장되지 않았지만 사람의 발걸음이 쌓여 만들어진 길이었다. 흙을 밟는 감각,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 계곡을 건너며 느끼던 물의 차가움. 길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관계였다.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선이었다.
신흥계곡의 가치는 개인의 추억을 넘어선다. 이곳에는 가재와 다슬기, 민물새우 같은 수서생물이 살아가고, 수달과 삵, 까막딱따구리 같은 야생동물도 서식한다고 전해진다. 붉은점모시나비와 반딧불이 등 다양한 곤충이 발견되는 생물다양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태적 중요성 때문에 환경부 자연환경조사에서 이 일대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으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는 가야 시대 제철 유적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남아 있다. 자연과 역사,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겹쳐 존재하는 공간. 신흥계곡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층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계곡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길이 넓어지고 구조물이 들어오고 이용 방식이 바뀌면서 고요함은 얇아졌다. 변화는 늘 발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지만, 자연은 그 이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은 흐름으로 존재하고 숲은 연결로 유지된다. 흐름이 끊기면 썩고, 연결이 끊기면 사라진다.
그 변화를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보다 상실감에 가까웠다. 늘 거기 있던 것이 더 이상 늘 거기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 우리는 고향이 영원하다고 생각하지만, 고향도 지켜내지 않으면 낯선 장소가 된다. 그 낯섦은 오래 남는 슬픔이다. 어린 시절의 일부가 눈앞에서 희미해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모였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땅을 밟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생태 보전은 전문가만의 일이 아니다. 제도와 정책은 위에서 만들어질 수 있지만, 현장의 감각은 현장에서만 생긴다. 매일 그 물을 보고, 숲의 변화를 느끼고, 계절의 차이를 체감하는 사람들의 경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지식이다. 우리가 움직인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갈등도 있었고, 법적 대응 상황도 겪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간을 싸움이라기보다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한 지역 공동체가 자신이 살아온 환경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남기는 기록. 그것은 미래 세대가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생태적 지혜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자신이 선 자리에서 책임을 느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고향을 지키려는 마음은 개인적 감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래에 대한 윤리적 선택이다.
신흥계곡이 부르면, 나는 답할 수밖에 없다.
그 부름은 거창하지 않다. 물소리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나는 안다.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그곳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