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문학모임_일요 세미나(4월 모임 후기)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에 관한 잉문학모임이 2021년 4월 한달간 매주 일요일마다 오후1시 연구공간L 주최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었다. 5월 모임에서도 『지각의 현상학』를 이어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2716.0746

커리큘럼 :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일시 : 2021년 4월 4일 (일요일) 오후 6-9시

* 2부 3장 9절 ‘인간에 앞선 사물’(영 p.324, 불 p.375)

– “사람들이 시각적 사물에서 조망적 모습들로 옮겨가는 것은 제3의 변화에 의해서이다. 즉 나는 주사위의 모든 면들이 내 눈앞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그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변형을 겪는다는 것을 주목한다. 마침내 마지막 변화에 의해 나는 더 이상 사물의 속성도 조망적 모습도 아니라, 나의 신체의 변양인 감각에 이른다. … 사물을 규정하는 모든 시도는 .. 발원적 존재로 있는 사물 자체를 주관적 단편들의 도움을 받아 사물의 불완전한 재구성으로 바꾸어 놓는다.“(487-488)

– 사물은 내 신체의 상관자이자 신체를 거부하는 자라는 것.

* 2부 3장 10절 ‘사물은 내가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학적 술어들을 넘어서 있다.’

– “주어진 것, 이것은 사물 단독이 아니라 사물의 경험, 주체성의 항적으로의 초월, [개인적 역사를 통해 한 눈에 제공되는-번역이 누락되었다] 역사 너머로 비쳐 보이는 자연이다.”(488)

– “지각하는 주체는 자신의 장소와 관점을 포기함이 없이 감각함의 불투명성 속에서 자신이 사전에 열쇠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그러면서 자신 속에 투사를 가져오는 사물들을 향해 하고, 자신의 보다 깊은 곳에서 대비하는 절대적 타자에로 열린다. 사물은 더미가 아니다.”(489)

– 사물은 주관적 현상들의 흐름에서 구성된다.

– 감각(예컨대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일반적 몽타주를 소유하는 것이고, 이러한 유형의 가능적․시각적 관계를 소유하는 것이다. … 신체를 가진다 함은 보편적 몽타주를 소유하는 것이고, 모든 지각적 전재들과 모든 상호감각적 상응들의 유형을 소유하는 것”이다.(490)

– “인간의 행동은 세계에 열려 있고 또한 그 행동이 자신을 위해 만드는 도구들을 넘어 있는 대상에 열려 있다. … 인간의 삶은 이러저ㅓ한 일정한 환경뿐만 아니라 무한한 가능적 환경들도 이해한다. 인간의 삶이 이해되는 것은 그것이 자연적 세계에 던져져있기 때문이다.”(490)

■일시 : 2021년 4월 11일(요일) 오후 6-9시

* 2부 3장 (3) 자연적 세계 17절 ‘시간의 핵으로서의 세계’

– “시간의 핵인 세계는 현재화된 것을 현재로부터 분리하면서 동시에 결합하는 이 유일한 운동에 의해서만 지속한다. 반대로, 명석성의 장소로 간주되는 의식은 바로 애매성의 장소이다.”(498)

– “사물들과 순간들은 사람들이 주체성이라 부르는 그 애매한 존재를 통해서만 세계를 형성하고자 서로 분절될 수 있고, 어떤 관점과 의도에서만 공현재적이 될 수 있다. … 자신을 열린 것으로 나타내는 것, 자신의 규정된 표시들 저 너머로 우리를 회송하는 것, 보아야 할 다른 사물을 언제나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사물과 세계에 본질적인 것이다.”

– “객관적 사고의 이상은 시간성에 의해 기초지어지고 동시에 파괴된다. 세계는 그 말의 충분한 의미에서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 주체성들 그 자체인 균열과 틈새을 가지고 있다. … 불투명한 구조들 … 사물과 세계는 나에 의해 또는 나와 같은 주체들에 의해 체험된 채로만 존재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조망들의 연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든 조망들을 초월하는데, 왜냐하면 그 연계는 시간적이고 미완결이기 때문이다.”(500-501)

* (4) 환각의 분석에 의한 반증

* 2부 3장 18절 ‘객관적 사고가 이해할 수 없는 환각’

– 경험주의와 주지주의는 왜 환각(Hallucination)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 “이 두 교의는 객관적 사고의 우위성을 가정한다는 점, 유일한 존재방식, 즉 객관적 존재만을 처리한다는 점, 환각적 현상을 억지로 객관적 존재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이렇게 해서 그것들은 환각적 현상을 왜곡하고 이러한 현상의 확실성의 고유한 방식과 내재적 의미를 놓친다.”(503)

– “자기 인식의 특전이란 없으며 타인은 나 자신처럼 침투불가능하다. 주어지는 것은 나가 아니고 다른 한편으로 타인도 아니다.” 코기토는 환각의 판관일 뿐이며, 내적 추측으로 축소된 것에 불과하다. “주어지는 것은 환자와 함께 하는 의사, 타인과 함께 하는 나, 나의 현재의 지평에 있는 나의 과거이다.” 공-현재(co-present) 개념.

■일시 : 2021년 4월 18일 (일요일) 오후 6-9시

* 2부 3장 20절 ‘환각적 사물과 지각된 사물’(불 p.393, 영 p.340)

– [환각에 빠진] “그녀에게는 객관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바가 무엇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만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와 관계하거나 그녀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가 문제이다. … 환각은 지각이 아니라 실재성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것만이 오로지 환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고려된다. 지각된 세계는 자신의 표현력을 상실했고 환각적 체계가 그 표현력을 강탈했다.”(512-513)

* 21절 ‘환각적 사물과 지각된 사물은 인식보다 깊은 기능에서 탄생한다’ – “그러나 이러한 허구는 실재성 자체가 유사한 조작을 통해 정상적 주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만 실재성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513) “일종의 원초적 신앙 또는 속견을 통해서 우리를 주체성 너머로 운반하는 것 그리고 우리를 모든 과학과 검증에 앞서 세계에 정주하게 하는 것은 운동이다. 아니면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사적 현상에 파묻히게 하는 것도 운동이다.”(514) “환각들을 가진다는 것과 일반적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이러한 선술어적 세계의 관용을 이용한다는 것이요, 우리가 혼효하는 경험 속에서 존재 전체에 어지럽게 근접하는 것을 이용한다는 것이다.”(515)

* 22절 ‘발원적 속격’

– “세계는 사람들이 항상 의심을 던질 수 있는 사물들의 총합이 아니라 사물들이 끌어내어지는 소진 불가의 저장소”이다.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진 지각된 것은, 그 자신의 가능적 해체와 다른 지각에 의한 우연적 대체를 동시에 알리는 세계의 지평과 함께라면 결코 우리를 기만하지 않는다.”(516) “나와 나 자신의 일치, 코기토에서 실현되는 대로의 그 일치는 실재적 일치가 아니라 지향적, 추정적 일치이지 않으면 안 된다. … 나는 내가 시간과 세계에 내속하는 한에서만, 즉 애매성 속에서만 나를 인식한다.”(517)

* 2부 4장 「타인과 인간적 세계」 1절 ‘자연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의 교착’ 2절 ‘개인적 행동들은 어떻게 침전되는가?’ 3절 ‘타인은 어떻게 가능한가?’

■일시 : 2021년 4월 25일 (일요일) 오후 6-9시

* 2부 4장 4절 ‘지각적 의식의 발견에 의해 가능해지는 공존’

– 영어 p. 350, 불어 p. 403.

– “현상학적 반성을 통하여 나는 시각을 데카르트의 말에 따라 ‘보는 사고’로서가 아니라 가시적 세계를 파악하는 시선으로 발견하는데, 이것이 나에 대하여 타인의 시선이 있을 수 있는 이유이고, 나의 실존이 나의 신체인 인식하는 장치에 의해 운반되듯이 사람들이 얼굴이라 부르는 표현적 도구가 실존을 운반할 수 있는 이유이다.“(526)

– “생후 15개월 된 영아는 내가 놀이 삼아 손가락을 하나 입에 넣어무는 시늉을 하면 입을 열러 보인다. 그러나 영아는 결코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본 적이 없고 영아의 치아는 나의 것과 유사하지 않다. 영아가 내부에서 느끼는 대로 그 자신의 입과 치아는 즉시 그에게는 무는 장치이고 영아가 외부에서 보는 대로 나의 턱은 즉시 그에게는 동일한 의도들을 능히 실행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무는 것’은 즉시 그에게는 상호주관적 의미를 가진다. 그는 자신의 의도들을 자신의 신체에서 지각하고, 자신의 신체로 나의 신체를 지각하며, 이로써 나의 의도를 그의 신체에서 지각한다. 나의 몸짓들과 타인의 몸짓들, 나의 의도들과 나의 몸짓 사이에 관찰된 상관성들은 직접적 지각이 실패할 때 타인의 방법적 인식에 그 실마리를 훌륭하게 제공할 수 있으나, 그것들은 나에게 타인의 존재를 가르치지 않는다. 나의 의식과 내가 체험하는 대로의 나의 신체, 나의 이 현상적 신체와 내가 밖으로부터 보는 대로의 타인의 신체 사이에는 타인을 체계의 완성으로서 나타나게 하는 어떤 내적 관계가 있다.”(526-527)

* 5절 ‘자연적 세계의 정신물리적 주체들과 문화적 세계의 인간들이 공존함’ “내가 감각적 기능들, 시각․청각․촉각적 장을 가지는 한, 나는 역시 정신물리적 주체들로 파악된 타인들과 의사소통한다. 나의 시선이, 작용하고 있는 살아있는 신체에 떨어지자마자 그 주위의 대상들은 새로운 의미층을 받아들인다. 그것들은 더 이상 나 자신이 그것들로서 만들 수 있었던 그런 것만이 아니고, 저 행동이 그것들로서 만들려고 하는 그런 것이다.”(529)

* 2부 4장 6절 ‘그러나 자유와 나의 공존이 있는가?’(532)

* 2부 4장 7절 ‘유아론의 영원한 진리’(535)

* 2부 4장 8절 ‘유아론의 영원한 진리는 신도 극복할 수 없다’

– “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스피노자가 말한 대로, 사실상 신이 나를 통하여 자기를 사랑한다는 그런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타인의 사랑, 타인은 어느 곳에서 없을 것이고 그러나 우리의 삶을 넘어 우리와 하등 관계가 없고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자기 결합적인 자기 사랑만이 오로지 있을 것이다. 신으로 이끄는 반성운동과 사랑운동은 자신이 이끌어오고자 원한 바로 그 신을 불가능하게 한다.”)537)

* 2부 4장 9절 ‘그러나 고독과 의사소통은 동일한 현상의 두 계기이다’

* 2부 4장 10절 ‘절대적 주체, 참여된 주체, 그리고 탄생’

– “내가 나 자신에게 주어진다 함은 나의 주위에 있는 상황이 나에게 감추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나의 주위에 생소한 필연성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상자 속의 대상처럼 그 상황 속에 실제로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자유, 즉 내가 나의 모든 경험의 주체이기 위해 가지는 근본능력은 세계로의 나의 삽입과 구별되지 않는다. 자유롭다는 것, 나를 내가 보는 어느 것으로도 환원할 수 없다는 것, 모든 사실적 상황에 관하여 철회능력을 간직한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의 운명이다. 그리고 이 운명은 나의 선험적 장이 열렸던 순간에 내가 봄과 앎으로 탄생되던 순간에, 내가 세계에 던져진 순간에 날인되었다.”(539)

– “유아론의 … 모든 경험은 언제나 나에게 나의 존재의 일반성을 소진시키지 못하는 특수성으로서 나타날 것이고, 나는 언제나 말브랑슈가 말한 대로 더 멀리 가기 위한 운동을 가진다. 그러나 내가 존재를 피해 지나갈 수 있는 것도 존재 안에서일 뿐이고, 이를테면 나는 사회를 피해도 자연 안으로 들어가며, 실재적 세계를 피해도 실재적인 것의 잔해로 만들어지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540)

연구공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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