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적 인식과 소통이 자멸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다크 코메디 – 영화 《돈 룩 업》 관람후기

[※스포일러 주의!!!] 굳이 적용되지 않아도 될 현장에서 매체 친화적 태도와 비즈니스 마인드가 중시되는 경우를 꼽아보다 보면, 인류가 삶의 도구로써 빚어낸 그런 태도와 마인드에 의해 인류가 도리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소통의 도구는 하루가 다르게 개선됨에도, 그것은 지배의 도구로써의 위력만을 더할 뿐, 정작 소통은 경색된다.

※ 경고!!! 이 글은 영화 《돈 룩 업》에 대한 결정적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멸종 가능성

아담 맥케이 감독,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년 공개, 러닝타임 139분
아담 맥케이 감독,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년 공개, 러닝타임 139분

《돈 룩 업》은 인류 멸종 이야기이다. 천문학자들이 행성을 하나 발견하고, 그것이 태평양으로 떨어져 1㎞ 높이의 해일을 일으켜 인류가 모두 죽게 된다는 예측을 미합중국 정부에 전달하지만, 어떤 권력도 이 사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여, 결국은 인류가 거의 모두 죽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몇몇 사람은 냉동 상태에서 우주로 날아가 지구보다 산소 농도가 약간 높은 행성을 찾아 내려앉은 후 해동이 되어 되살아나지만, 거대한 닭 모습을 한 움직이는 물체에게 둘러싸인 채, 그 중 한 사람이 먼저 물체의 빠른 움직임을 피하지 못하고 충돌하여 죽고, 다른 이들도 그 물체들이 그들을 향하여 움직여오는 것을 맨몸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장면을 끝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크레딧의 엔딩에 미합중국 관리 하나가 살아남아 셀피[Self+Film]를 촬영하는 장면이 추가되었으니, 지구상에 최소한 1명은 살아남았다고 영화는 설정한 셈이다.

하이퍼 오브젝트(Hyper Object), 이해 초과 대상

이 영화의 제작사의 이름은 하이퍼 오브젝트 인더스트리(Hyper Object Inderstry)이다. 찾아보니 하이퍼 오브젝트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는 대상”. “너무 거대하고, 모든 특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변화의 속도가 정확히 예측되지 않으므로, 이해 불가능한 대상”. 이 말은 이해 불가능한 대상 정도로 번역할 수도 있겠으나, 이해가 될 만하면 또 새로운 모습을 띠고 저만치 멀어져가는 대상이라는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서 ‘이해 초과 대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 초과 대상의 대표적 예로 기후 변화가 꼽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인류 멸종 또한 이해 초과 대상이 될만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이해 초과 대상이 인류 멸종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이 영화는, 누군가가 멸종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이야기해 주어도 사람들이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태를 보여준다.

매체 친화적 태도와 비즈니스 마인드, 위기 인식의 공유를 가로막다

행성을 발견한 디비아스키 석사와 행성의 충돌에 의한 인류 멸종을 예측한 민디 교수가 우여곡절 끝에 매일 방송되는 인기 뉴스 쇼 ‘오늘의 쇼킹 뉴스(the daily rip)’에 출연하기 직전, 출연을 주선한 신문사 ‘뉴욕 헤럴드’의 노련한 언론인들은 디비아스키와 민디에게 매체 훈련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계속 이 매체 훈련이라는 개념에 시달리게 된다.

디비아스키 석사는, 첫 번째 출연에서 인류 멸종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보인 언행으로 인하여, 반항적인 청소년, 정신 질환 환자, 소수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꽤 오래 언론에서 살아남았던 민디 교수도 결국은 생방송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채 퇴출되게 된다.

“미안한데, 모든 대화를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게 할 순 없는 거예요.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해요. 한번 더 정리할게요.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오고 있어요. 혜성이 존재하는 걸 아는 이유는 우리가 봤기 때문이에요. 망원경을 통해서 우리 눈으로 봤어요. 아니, 씨발 사진까지 찍었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해? 에베레스트산 만한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날아오는 게 좋은 게 아니잖아요? 우리끼리 그런 최소한의 합의도 못 하고 쳐 앉았으면, 대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서로 대화가 되기는 해요? 어디가 망가진 거예요? 어떻게 고치죠? 기회가 있었을 때 혜성 궤도를 틀었어야지, 하다 말았잖아요!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이제 저처럼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분명 시청자 중에 많은 분이 지금 이 말도 안 들을 거예요. 본인들만의 정치 이념이 있으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어느 쪽의 편이 아니라 그냥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방송 사회자 : 이쯤에서 정리해 보자면 이셔웰과 대통령이 입 모아 말하길 분명 득이 되고……) 미국 대통령이 거짓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예요. 저도 여러분과 같아요. 제발 대통령이 생각이 있는 거면 좋겠고, 국민을 생각하는 거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이 정부는 싸그리 미친 것들 같다고요! 우린 전부 다 죽을 거예요! 집에 가야겠어요. 정말 간절히 집에 가고 싶어요. 단 한 가지 방금 제 말을 들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 모두, 모두가……”

이 영화는 누군가가 멸종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이야기해 주어도 사람들이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태를 보여준다. 언론은 위기를 소비할 뿐이다. 영화 《돈 룩 업 Don't Look Up》 스틸컷.
이 영화는 누군가가 멸종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이야기해 주어도 사람들이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태를 보여준다. 언론은 위기를 소비할 뿐이다. 영화 《돈 룩 업 Don’t Look Up》 스틸컷.

이와 같은 민디 교수의 말은, 디비아스키 석사가 발견한 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여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는 계산을 들고 워싱턴 D.C.로 호출된 후 어느 날 방송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하게 되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하는 것을 대략 보여준다. 특히 “모든 대화를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게 할 순 없는 거예요” 라는 부분은 매체 훈련이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었나를 보여준다. 출연자가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게 말해야만 언론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미국도 그러하겠지만 남한에서도, 매체 친화적 태도가 일상생활에서 표준적 태도가 된 듯하다. “우리 피자 먹으러 갈까?” 라고 말하는 대신 “피자 먹방 찍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하여 피자를 먹는다고 할 때, 그 ‘장면’이 생방송되거나 녹화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피자 먹는 사람은 대개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 듯하다. 이럴 때 말과 행동의 바탕에는 낙관과 긍정의 마음가짐이 깔려있어야 할 듯하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낙관과 긍정을 권하는 자기계발서가 남한 사회에 널리 유포되었던 것 또한 매체 친화적 태도의 일상화와 연관하여 생각하여볼 만하다 하겠다.

이 영화는 미국과 남한이라는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매체 친화적 태도를 가지고자 하는 추세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추세는 매체의 팽창 이전에도 ‘비즈니스 마인드’ 따위의 이름표를 달고 위력을 발휘하였다. 아서 밀러(Arthur Asher Miller, 1915~2005)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 (1949)》과 그 주인공 윌리 로만이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이 그야말로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평생 물건을 팔면서 성공을 꿈꾸지만 단물이 빠지자 사회에서 버려지는 인물. 아서 밀러는 윌리를 미국 사회에서 예외적인 실패자가 아니라 전형적인 인물상으로 그렸다. 아서 밀러는 1949년에 이미 21세기 미국자본주의를 풍미할 매체 훈련을 받은 인간상을 제시한 셈이다. 그것은 매체의 팽창 이전에 자본주의가 이미 요구하였던 인간상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 주요한 의사소통 장면에서, 민디 교수는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 습관을 보여준다. 그는 주장을 하기 이전에 주장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말한다. 알아듣기 쉬운 두괄식 설명을 도통 하지 못한다. 종신직 교수들도 처음부터 종신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은 자기를 전시해야만 하고, 종신직 교수가 된 뒤에도 연구기금의 유치를 위해서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민디 교수가 두괄식을 교육받지 못해서 답답한 말만 하는 사람처럼 그려진 것은 과장일 것이다. 실제였다면, 민디 교수는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인류가 멸종의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라는 문장부터 말했을 듯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과장을 통해서 매체 친화적 태도 혹은 비즈니스 마인드 이외의 태도와 마인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용납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매체 친화적 태도에서는 근거를 갖춘 주장은 주요하지 않은 것이며 더 나아가 용납되지 않는 것인가? 미국이나 남한은 근거를 갖춘 주장이 용납지 않는 사회인가? 사회 전체가 항상 그렇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영화가 미국 사회에서 근거를 갖춘 주장 그것도 인류 멸종의 주장이 제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끔찍한 장면을, 마치 정말로 가능할 것처럼, 실감나게 보여준 것만은 틀림없다.

두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맞불 놓기

퇴출된 민디 교수는 디비아스키 석사, 클레이튼 “테디” 오글소프 박사와 합류한다. 오글소프 박사는 지구방위합동본부의 수장이었다. 그는 민디 교수와 디비아스키 석사를 대통령과 만나게 하여 우여곡절 끝에나마 대통령이 다가오는 혜성을 파쇄하는 자폭선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결단하게 하고, 대통령이 그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퍼포먼스를 할 때 병풍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던 사람이다. 그때 민디 교수는 전문가 정체성을, 디비아스키 석사는 반항적인 청소년 겸 정신 질환 환자 겸 소수자 정체성을, 오글소프 박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정체성을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행성를 조각내서 태평양에 떨어뜨려 행성이 품고 있는 140조 달러 가치의 물질을 미국이 차지하자는, 배시(BASH)의 CEO 피터 이셔웰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폭선을 되돌아오게 하자, 디비아스키 석사와 오글소프 박사는 그러한 대통령의 선택에 일찌감치 반발하다가, 의사 결정 과정과 매체에서 퇴출되어 버렸던 것이고, 행여 일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하여 ‘내부’에 남아있었던 민디 교수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매체 친화적이지 못한 말을 쏟아내고는 퇴출되어 버렸던 것이다.

세 사람은 피터 에셔웰의 제안이 다가오는 멸종의 위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과정에서 ‘룩 업(Look Up)’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들의 활동은 급속도로 거대한 캠페인이 되어간다.

‘룩 업(Look Up)’ 캠페인에, 배시(BASH)의 CEO 피터 이셔웰로 대표되는 세력들이 대응한다. 그들은 ‘돈 룩 업(Don’t Look Up)’ 이라는 구호를 유포시키고, 대통령 제이니 올린이 대규모 집회에서 연설한다.

“저들이 왜 하늘을 보라는지 아십니까? 이유를 아십니까? 여러분이 두려워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올려다보라 하면서 여러분을 위에서 깔고 보는 겁니다. 자신들이 우월하다 이거죠. (유튜버 : 올려다보지마) (유튜버 : 자유를 뺏으려는 거야, 그게 사실이야)”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길을 보세요. 그리고 한 발을 내딛으세요. 한발 또 한 발, 하루 또 하루. (군중 : 보지 마! 보지 마!)”

흡사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극중 미 대통령은 지식인에 대한 반발을 조장함으로써, 인류의 위기를 기회 삼아 개인 스캔들을 무마하고 지지 세력의 덩치를 키우려 한다. 영화 《돈 룩 업 Don't Look Up》 스틸컷.
흡사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극중 미 대통령은 지식인에 대한 반발을 조장함으로써, 인류의 위기를 기회 삼아 개인 스캔들을 무마하고 지지 세력의 덩치를 키우려 한다. 영화 《돈 룩 업 Don’t Look Up》 스틸컷.

대통령의 말은,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Anti-intellectualism]라고 칭하여지는 미국 사회의 두드러진 현상을 연상시킨다. 반지성주의라는 용어는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라는 저서를 내놓으면서 쓰이기 시작한 것이지만, ‘반지성적’ 경향은 건국 이전의 북미대륙에서부터 있어왔던 것이고,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이주민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에 대하여 열등감을 느끼는 동시에 오랜 역사 속에서 빚어진 유럽의 인습들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주민들은 유럽과 다른 무엇을 맨주먹으로 만들어내고 급기야 유럽을 앞서게 되었다. 1963년쯤 되면 미국은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었고 자신들 만의 논리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논리는 그들의 선조들이 맨주먹으로 신대륙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것인 면도 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럽에서 꽤 오랜 역사성을 가지면서 형성되어 전세계 지식인도 존중하고 있는 사고방식, 문화, 논리들을 다소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다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꼭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호프스태더가 위와 같은 저서를 내놓았던 때에 앞서 1950년대 전반에는 매카시즘이 미국을 휩쓸었고, 라디오에 이어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이런 매체들은 상업광고와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서, 대중의 기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역으로 대중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대통령의 말은 이미 1950년대에 완성되다시피 한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을 국외자의 위치에 놓으면서, 세계가 대중과 지식인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설정하고, 양자를 ‘돈 룩 업’과 ‘룩 업’에 각각 배당한 후, 자신은 ‘돈 룩 업’과 손을 잡고, ‘땅에 발을 딛고 뚜벅뚜벅’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 셈이다. 지식인에 대한 반발을 조장하여 위기에 처한 자신을 뒷받침해 줄 세력의 덩치를 키우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민디 교수 등 세 사람과 ‘룩 업’으로 뭉친 사람들은 비판적 인식 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대통령과 ‘돈 룩 업’으로 뭉친 사람들은 반지성주의 진영을 형성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룩 업’으로 뭉친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캠페인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미디어를 활용한다. 민디 교수는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 인형과 코믹한 영상을 찍어서 인류 멸망의 위기를 알리고, 인기 절정의 가수 라일리 비나[아리아나 그란데 분(扮)]가 그들의 캠페인에 출연하여 캠페인의 취지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 노래를 불러서 대중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멸종의 때가 임박한 상황 속에서도 멸종을 경고하는 캠페인은 비즈니스 마인드에 충만한 채 매체 친화적으로 해야만 효과를 보장받는 세태를 영화는 보여준다.

재가족화

스치듯 지나가 버리지만 이 영화에서 나름 강한 타격감을 가지는 장면 하나를 꼽자면, 권력과 매체로부터 진작에 추방당한 디비아스키 석사가 부모를 만나는 장면이다.

“엄마 아빠 집에 와서 너무 좋아요. …… 문 열어줘요. (엄마 아빠 : 정치는 안 된다.) 무슨 소리예요? (엄마 아빠 : 우린 그 혜성이 주는 일자리에 찬성이야.) 아빠! (엄마 아빠 : 이 나라의 분열은 이미 심각해. 집에서까지 그러긴 싫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치’라는 낱말을 지나치게 금기시한다는 면에서 미국과 한국이 닮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이들은 대개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미국이어서였을까? 엄마 아빠가 인류를 구할 수도 있는 일을 한 딸에게 “내 집에 들어올 생각 마!” 라고 잘라 말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임금노동자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가장 신성한 ‘일자리’라는 말을 외피로 하면서 작동한 자본주의의 힘이었을 것이다. 이성간의 1:1 대우혼을 정상성으로 하는 가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연애와 사랑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증폭된 것인듯한데, 디비아스키 가족의 어색한 재회 장면은 현 단계의 자본주의가 이제 가족제도에 있어서의 정상성의 표준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대충돌의 날에, ‘돈 룩 업’으로 뭉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극히 일부 소수만이 지구를 떠나는 비행체에 냉동상태로 들어가서 다른 서식지에 착륙하여볼 기회를 얻는다. ‘돈 룩 업’ ‘룩 업’ 할 것 없이 나머지 사람들이 아무 대책 없이 대충돌과 멸종을 기다리는 때, 엄마 아빠에게 거부당한 디비아스키 석사는, 거리에서 만나 친해진 모태신앙자 청년 율과 함께 민디 교수의 어정쩡한 귀가에 동행한다.

“가족처럼 저녁 식사하면 어떨까 하고”

앞서 ‘오늘의 쇼킹 뉴스(the daily rip)’ 앵커 우먼과 바람 피우는 모습을 아내에게 들킨 바 있는 랜달 민디 교수는,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아내 준 민디 씨와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준에 대한 랜달의 엄청 큰 미안함을 담은 표현이었겠지만, 동행자가 엄마 아빠에게 거부당한 디비아스키 석사와 집에 돌아갈 생각도 않지만 물려받은 신앙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율이었기에, 그 표현에는 작가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모종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가족으로 받아줘”와 “가족처럼 밥 먹자”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예전의 민디 가족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조직하자는 제안 같았다. 어쨌든 준은 망설임없이 이들을 받아주고, 준과 민디의 두 아들도 이들을 환영한다. 와인 두 병을 든 오글소프 박사도 이 새삼스러운 가족에 합류하고, 율이 뻔하지만 겸손하고 진솔한 감사기도를 마친 후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모두는 멸종의 순간을 맞이한다. 인류 멸종 가능성을 소재로 한 영화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졌으며 중심으로부터 퇴출된 소수자들이 다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는 순간에 끝난 것이다.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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