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점, 새로운 삶 –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고

우리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거의 무한대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아는 것이 오히려 소비의 피곤을 줄여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싸도 갖지 않는다.

서구의 산업혁명 이후 발전을 거듭한 자본주의는 이제 첨단 기술과 제휴하여 정보화 시대를 열었으며, 이제는 욕망까지 상품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른 결과로 지구는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 더 나아가서는 인류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지금까지의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박혜윤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박혜윤 저, 『숲속의 자본주의자』 (다산초당, 2021)
박혜윤 저, 『숲속의 자본주의자』 (다산초당, 2021)

“우리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거의 무한대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아는 것이 오히려 소비의 피곤을 줄여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싸도 갖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미국의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의 오래된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 계기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세상의 속도에 맞추기 버거워진 순간 나의 월든을 찾아 삶의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미국 동부의 보스턴 근교의 월든 호숫가 땅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2여 년간 독립적으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자연 속에서의 단순하고 자급자족적인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것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에세이이다.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의 작은 마을로

소로의《월든》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인기를 누리고 있을까? 단순히 숲 속에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자연과 삶을 관조했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는 자본주의의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 속의 생활에서부터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바로 ‘포기를 빨리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포기한 자리에는 무언가가 반드시 채워지고, 무언가를 포기한다고, 삶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포기도 때가 있고 용기도 필요한 일이며, 포기를 잘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결국 무엇이든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포기라는 것은 결국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일찍이 우리에게 쾌락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욕망을 줄여야 한다고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금욕적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하면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가 아니라 금욕주의자였던 셈이다.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에피쿠로스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냉철히 파악하는 지혜,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주요 요지이다.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것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가 정착되면서 우리의 인간관계가 소원해졌다. 저자 역시 이렇게 소원해진 인간관계의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 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그래서 남에게 자연히 기대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실패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이렇게까지 애써도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기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불완전한 남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면서 남에게 기대는 용기를 얻게 된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개인주의보다는 이제는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서로 약간의 폐를 끼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이고 훈훈한 삶은 아닐까? 저자처럼 숲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동경은 하더라도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하여 모두가 실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삶 속에서 추구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기 위해서는 저자의 삶의 지혜에 경청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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