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사업의 불편한 진실

우여곡절 끝에 선정된 사업은 잠잠해질 줄 알았던 코로나 때문에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집합 금지, 인원 제한 등으로 활동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사업을 마무리했다. 결과보고서, 수많은 증빙자료와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치사업에서 얻는 성취감은 엄청나다. 자치사업은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자치사업을 막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민의 힘을 무서워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학부모회가 진행하는 학부모 평생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학부모회 일손이 부족하다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측은지심이 발동했던 나는 도와주기 시작하다가 조금씩 직책을 맡게 되더니 어느새 학부모회장까지 맡게 되었다. 학부모회에서 진행하는 일은 꽤 많았지만, 봉사로만 하다 보니 일손이 항상 부족해 매년 걱정이 없던 해가 없었다. 그리고 학부모회 임원들은 급여를 받고 일을 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했다. 이제 마냥 봉사라는 단어로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활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학부모들과 학부모 평생교육을 몇 년 동안 참여하고 진행해 보니, 활동의 폭도 넓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둘씩 추가로 참여하다 보니, 작년 시민 자치사업 대표제안자로 진행한 사업은 학교 사업뿐만 아니라 도서관 동아리 사업, 구에서 하는 혁신 교육 관련 사업, 마을공동체 사업 등 무려 6개나 되었다. 대표제안자가 아닌 참여자로도 꽤 여러 곳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다양하게 활동하다 보니 비교도 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말이 시민 자치사업이지 실상을 들여다보면 온전한 자치사업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컨설팅과 면접이라는 명목으로 계획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경을 요구했다. 예산만 주민이 집행만 할 뿐, 예산 항목도 촘촘하게 정해져 있었다.

자치사업 중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마을공동체 사업이지만 가장 불편한 사업이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어주는 학부모 동아리 활동을 학교 밖 마을 어린이까지 대상을 확대해서 책도 읽어주고 재밌는 공연도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활동 지원을 받기 위해,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했다.

가장 싫은 것은 사업 제안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스템이다. 
사진출처 : Andrea Piacquadio https://www.pexels.com/ko-kr/photo/3760067/
가장 싫은 것은 사업 제안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스템이다.
사진출처 : Andrea Piacquadio

입맛에 맞는 컨설팅으로 변경된 서류로 1차 심사에 통과한 뒤에 진행된 2차 면접도 정말 최악이었다. 10여 팀씩 온라인으로 진행된 면접에서 소중하게 만든 사업 내용을 다른 팀 앞에서 받았던 조언이 아닌 비난과 공모사업이 만만하냐며 조롱하듯이 질문하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하반기 마을 자치사업에 지원했던 지인도 최악의 불쾌한 면접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가장 태도가 불쾌했던 면접관에 대한 민원이 빗발쳐 더이상 면접을 보지 못하게 조치가 취해졌다고 했다.

공모사업 선정 발표 때는 이유 없이 사업비가 백만 원에서 칠십 만 원으로 감액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글씨로 사업비가 사정에 따라 예고 없이 감액될 수 있다고 쓰여있긴 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를 선정해서 사업비를 30%씩이나 감액했다는 그들의 궁색한 변명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선정된 사업은 잠잠해질 줄 알았던 코로나 때문에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집합 금지, 인원 제한 등으로 활동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고 당시 코로나라도 걸리면 대역죄인으로 몰리는 상황이라 나 역시도 위축되어 최대한 활동을 자제하며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 늦여름까지 다가왔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대개 10월 말이 사업 기간 만료다. 요즘 들어 사업 진행자 편의를 위해 연말까지 사업을 진행하고 연초에 사업 서류 마감을 할 수 있게 사업 마감 기간이 바뀌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대부분 자치사업은 행정 편의로 사업 기간을 짧게 잡고 연말에 결산을 마무리하려고 10월이나 11월에 마무리하게 한다. 사업 기간이 짧다 보니 서류 마감 때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던 나에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졌다. 사업할 여력이 되지 않으면 사업비를 반납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나는 집합 가능한 인원들과 함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공연 연습을 했고 공연 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만들기 키트도 여럿이 모였다가 코로나에 전염될까 봐 거의 혼자 만들어야만 했다. 대표 사업 제안자는 힘들다. 매달 대표제안자 회의도 있고 서류도 마무리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많다. 자치사업은 끊임없이 봉사와 희생을 요구한다. 그나마 활동 수당 항목이 생겨 사업비의 10%를 수당으로 받을 수 있지만 7~10만 원은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활동 수당이다.

기획했던 사업을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한다고 해도 가장 무서운 서류작업이 남아 있었다. 마을 자치사업은 처음이라 기존 사업과 제출 서류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온라인으로 문서를 저장하는 시스템과 통장관리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출력해 제출해야 했다. 출석부, 발열 체크지, 지출결의서, 재료 증빙 사진, 회의록, 영수증 사본, 행사나 회의 증빙 사진 등 한 사업에 최대 7장까지 서류를 첨부해야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끊임없이 서류를 만들고 출력하면서 종이와 잉크젯 비용이 더 나올 것 같은 그리고 서류를 만들다 늙어 죽을지도 모를 것 같은 이 무서운 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가장 싫은 것은 사업 제안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스템이다. 이미 면접관들은 면접 때 그런 의심의 시선으로 사업 제안자를 바라보며 질문한다. 학부모 공모사업의 경우 지원 금액에서 학부모회장 명의로 거금 15,000원을 들여 이행 보증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마을 자치사업은 제안자 3인의 초본을 제출하게 하고, 자치사업이 관리하는 은행 시스템을 이용함에도 각종 증빙을 요구한다. 아무리 증빙이 철저히 해도 맘만 먹으면 사업비를 유용하려면 할 수 있다. 차라리 사업을 하겠다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믿고 서류를 간소화하고 사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부분에 더 힘써주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자치사업은 단점이 많긴 하지만, 성취감은 굉장하다. 자치사업 중 쿠키를 배우고 재능 기부하는 사업이 있는데 작년에 2박 3일 동안 종일 쿠키를 만들어 아이들 학교 전교생에게 선물했다. 재작년엔 예산 부족으로 저학년만 쿠키를 준 것이 아쉬워 욕심을 낸 것이다. 600개의 쿠키를 만들고 몸살이 나서 파스를 여기저기 붙이며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올해 또 그들은 뭘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할지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동네 키움 센터에서 했던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오프라인이라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준비한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해 주었고 끝나고 가지 말라고 문 앞에서 한참을 매달리던 아이들도 눈에 선하다.

자치사업은 단점이 많긴 하지만, 성취감은 굉장하다. 사진출처 :  cottonbro https://www.pexels.com/ko-kr/photo/4880395/
자치사업은 단점이 많긴 하지만, 성취감은 굉장하다.
사진출처 : cottonbro

같이 선정된 다른 마을 사업들의 진행 모습을 보면 너무나 희망적이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의 사업을 지지하면서 나는 많은 좋은 이웃들을 알게 되었다. 서류와 씨름하며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지만, 올해 나는 또 도전할 것 같다. 아무래도 중독이 된 것 같다. 시민으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시장이 바뀌자마자 마을 자치사업 예산을 50%를 삭감하겠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치사업 예산을 늘려도 시원찮을 판에 어떤 사람 눈에는 그게 혈세 낭비로 보이나 보다. 자치사업은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자치사업을 막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민의 힘을 무서워하는 사람일 것이다.

둥둥이

두루두루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은 쌍둥이 엄마입니다.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폭발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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