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 기반 적정세계의 지속을 믿게 하는 시 읽기의 어제와 내일 – 기후 위기 속에서 『시경』 「국풍 주남」 ‘관저’ 다시보기

사람의 의식을 강하게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대개 터무니없이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진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와 그 바탕이 되어주는 허약한 기반을 가급적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평안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시경』의 첫머리를 장식한 시 ‘관저’에 대한 해석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다루는 힘을 키워줄 듯하다.

『시경』 「국풍 주남」 ‘관저’, 남녀상열지사

『시경』은 중국 고대 주나라 초기에서 공자가 태어나기 수십 년 전 사이에 장강 이북의 황하 유역에 있었던 15 제후국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들 가운데 305편을 골라 모아놓은 책이다. 다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 풍(風): 15 제후국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
  • 대아(大雅): 왕실 연회 노래 가사
  • 소아(小雅): 왕실 의식 노래 가사
  • 송(頌): 상나라 주나라 노나라 종묘 제례 노래 가사

아래 시는 『시경(詩經)』 「國風(국풍) 周南(주남)」에 속하는 시이다. 이는 주나라 왕실의 일원이며 중국 역사상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인 주공이 봉하여졌던 영지에 사는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다. ‘關雎(관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시경(詩經)』 「國風(국풍) 周南(주남)」 ‘關雎(관저)’

關關雎鳩(관관저구) / 關關(관관)히 우는 雎鳩(저구)새
在河之洲(재하지주)로다 / 하수(河水)의 모래섬에 있도다
窈宨淑女(요조숙녀) / 요조(窈窕)한 숙녀(淑女)
君子好逑(군자호구)로다 / 군자(君子)의 좋은 짝이로다

參差荇菜(참치행채)를 / 들쭉날쭉한 마름나물을
左右流之(좌우류지)로다 / 좌우(左右)로 물길따라 취하도다
窈宨淑女(요조숙녀)를 / 요조(窈窕)한 숙녀(淑女)를
寤寐求之(오매구지)로다 / 자나깨나 구하도다
求之不得(구지부득)이라 /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지라
寤寐思服(오매사복)하여 / 자나깨나 생각하고 그리워하여
悠哉悠哉(유재유재)라 / 아득하고 아득해라
輾轉反側(전전반측)하소라 / 전전(輾轉)하며 반측(反側)하노라

參差荇菜(참치행채)를 / 들쭉날쭉한 마름나물을
左右采之(좌우채지)로다 / 좌우(左右)로 취하여 가리로다
窈宨淑女(요조숙녀)를 / 요조(窈窕)한 숙녀(淑女)를
琴瑟友之(금슬우지)로다 / 거문고와 비파로 친히 하도다
參差荇菜(참치행채)를 / 들쭉날쭉한 마름나물을
左右芼之(좌우모지)로다 / 좌우(左右)로 삶아 올리도다
窈宨淑女(요조숙녀)를 / 요조(窈窕)한 숙녀(淑女)를
鍾鼓樂之(종고락지)로다 / 종과 북으로 즐겁게 하도다1

심재훈은 에드워드 쇼네시의 견해를 일부 받아들여, ‘관저’ 제1장 제1연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나 대신 외쳐주는 물수리2

『시경』은 중국 고대 주나라 초기에서 공자가 태어나기 수십 년 전 사이에 장강 이북의 황하 유역에 있었던 15 제후국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들 가운데 305편을 골라 모아놓은 책이다.  
사진 출처 : padrinan
『시경』은 중국 고대 주나라 초기에서 공자가 태어나기 수십 년 전 사이에 장강 이북의 황하 유역에 있었던 15 제후국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들 가운데 305편을 골라 모아놓은 책이다.
사진 출처 : padrinan

“결합하자, 결합하자” 물수리가 외치네,
강 속의 섬에서.
매력적인 그 아가씨,
군주 아들이 사랑하는 배필.

위로 아래로 (춤추는) 물풀,
좌우로 그것을 쫓네.
매력적인 그 아가씨,
자나 깨나 그녀를 찾네.

원하지만 그녀를 가질 수 없어,
자나 깨나 생각하네.
아 그립도다, 아 그립도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네.

위로 아래로 (춤추는) 물풀,
좌우로 그것을 뜯네.
매력적인 그 아가씨,
거문고와 큰 거문고를 연주하며 그녀와 벗하네.

위로 아래로 (춤추는) 물풀,
좌우로 그것을 모으네.
매력적인 그 아가씨,
종과 북으로 그녀를 기쁘게 하네.3

심재훈은 제1장 제1연의 새 우는 소리 관관(關關)을 “결합하자, 결합하자”로 번역하였다. 이는 ‘사귀자, 사귀자’ 혹은 ‘성교하자, 성교하자’라고 직설할 수 있다. 앞에 열거한 두 종류의 번역은 모두 ‘관저’를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글 즉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보고 번역한 듯하다. 심재훈의 번역은 그러한 성격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번역이었다.

주희는 『시경』 「국풍」에 수록된 주나라 15 제후국들의 노래들 가운데 음분시(淫奔詩) 즉 남녀 사이의 음탕하고 난잡한 짓을 내용으로 하는 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관저’는 주희의 음분시 목록에 들어있지 않다. ‘관저’는 음분시가 아니라 그저, 낮잡아 보는 의미에서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남녀상열지사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남녀상사지사(男女相思之詞) 즉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정황을 담은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노래 가사를 포함하고 있는 『시경』은 역대 여러 비평들과 얽히면서 유교 경전이 되었다.

『시경』 「국풍 주남」 ‘관저’, 비평들에 의하여 재생산을 강조하는 시가 되다

■ 공자의 비평 : 『논어』 「팔일」에 다음과 같은 공자의 비평이 있다. “공자께서 “‘관저’는 즐겁지만 음탕하지 않고 애달프지만 감정을 상하게 하진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이 비평은 후세 사람들에게 ‘낙이불음 애이불상’이라는 비평 용어를 물려주었다. 그런데 이 용어 자체가 ‘관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곧바로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후세 사람들은 이 비평 용어를 ‘관저’와 연결시키기 위하여 설명을 추가 확장 심화하였다.

■ 『모시(毛詩)』 「서(序)」에 보이는 비평 : “‘관저’는 후비(后妃)의 덕을 읊은 것이요, 풍화(風化)의 시초이니, 천하를 풍동(風動)하고 부부를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를 향인(鄕人)들에게도 쓰고 방국(邦國)에도 쓴 것이다. 풍은 풍동하고 교화함이니, 풍을 일으켜 움직이게 하고 가르쳐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 숙녀를 얻어 군자에 짝함을 즐거워하고 현자를 등용함을 걱정하여 여색에 빠지지 아니하여 요조숙녀를 서글퍼하고 현재(賢才)를 생각하여 선(善)을 상하려는 마음이 없으니, 이것이 ‘관저’의 의의이다.”[관저 30~31쪽]

『시경』은 처음에 공자가 주나라 노래 3000곡 가운데 300여 곡을 선별하여 그 가사를 책으로 편집한 것이었다고 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와중에도 이 책은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았고, 한나라 때 유교가 국교화되면서 오경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시기에 이 경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집단들이 남긴 결과를 삼가시(三家詩)라고 한다. 제(齊)의 원고생(轅固生)에 의해 전해진 제시(齊詩), 노(魯)의 신배(申培)에 의해 전해진 노시(魯詩), 한영(韓嬰)에 의해 전해진 한시(韓詩)가 그것이다. 이 집단들이 정리한 『시경』은 한대의 한문 즉 금문(今文)으로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한 시기, 노공왕이 공자의 집을 철거하다가 고문(古文)으로 죽간에 쓰여진 『시경』의 원문들을 수습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후 모씨(毛氏) 성을 가진 학자가 고문『시경』에 훈고(訓詁)와 해설을 붙였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시(毛詩)』라고 불렀다. 이후 『시경』의 전승과 연구는 이 『모시』를 판본으로 행하여졌다. 위에 인용한 글은 『모시』의 「서(序)」 속에서 ‘관저’에 대한 해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추려낸 것이다.

인용 부분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비평은 ‘관저’의 주인공을 주나라 문왕의 왕비 사씨라고 보았고, 사씨가 자기가 아닌 훌륭한 여자[요조숙녀/현재]를 찾아 그 여자와 문왕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관저’의 내용이라고 보았다. 인용문에 나오는 부부관계를 바로잡는다[정부부(正夫婦)]는 것은 남편의 곁에, 성별에 관계없이, 현명한 인재가 한 명이라도 더 있도록 할 수 있는 부부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인 듯하다.

이 비평에는 공자가 후세에 전한 비평 용어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에 대한 해설이 들어있다. “숙녀를 얻어 군자에 짝함을 즐거워하고[낙(樂)] 현자를 등용함을 걱정하여 여색에 빠지지[음(淫)] 아니하여 요조숙녀를 서글퍼하고[애(哀)] 현재(賢才)를 생각하여 선(善)을 상하려는 마음[상(傷)]이 없으니”라고 한 부분이 그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은 ‘남편 곁에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과 섭섭함[사(私)]에 연연하기보다는 남편 곁에 현명한 자를 한 명이라도 더 둘 수 있다면 그 현명한 자가 여자일지라도 상처받지 않고 도리어 그런 여자를 찾아 남편 곁에 데려다줌으로써 군주인 남편이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기[공(公)] 위한 노력을 앞세우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낙이불음 애이불상’은, 비평 용어일 뿐만 아니라, 지배집단에 속하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해설을 한 사람이 남자 세습군주와 그 곁에 있는 여자의 덕목으로써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그 남녀가 어떻게 해야 천하가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까?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면, 권력이 세습되는 정치체에서 세습 과정이 안정적인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남자 세습군주와 그 곁에 있는 여자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현명함’은 안정적 세습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에는, 군주의 아들을 많이 낳아 두는 것이야말로 안정적 세습의 기본 조건이었을 것이다. 『모시』 「서」에 보이는 비평에서 비평가가 문왕의 부인인 사씨가 갖춘 덕목으로 보았던 것은 아들을 충분히 낳는 것 즉 충분한 재생산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또한 이 비평가가 “이 시를 향인(鄕人)들에게도 쓰고 방국(邦國)에도 쓴 것”이라 한 것은, 재생산을 지배집단 구성원들에게만 권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권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주 왕실뿐만 아니라 제후국에서도 세습은 이루어졌으니, 충분한 재생산은 제후의 부인들에게도 권해야 할 덕목이었을 듯하다.

■ 광형(匡衡)의 비평 : “배필의 즈음은 생민의 시초요, 만복의 근원이니, 혼인의 예가 바루어진 뒤에야 품물(品物)[만물]이 이루어져 천명(天命)이 온전해진다. 공자께서 시를 논하실 적에 ‘관저’를 시초로 삼으셨으니, 태상(太上)[군주]]은 백성의 부모이므로 후부인(后夫人)의 행실이 천지에 비견할 만하지 못하면 신령(神靈)의 전통을 받들어 만물의 마땅함을 다스릴 수가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상고시대 이래로 삼대의 흥(興)하고 폐(廢)함이 이에 말미암지 않은 적이 없었다.”[관저 29쪽]

남녀상사지사(男女相思之詞)를 포함하고 있는 『시경』은 역대 여러 비평들과 얽히면서 유교 경전이 되었다.
사진출처 : DALL·E
남녀상사지사(男女相思之詞)를 포함하고 있는 『시경』은 역대 여러 비평들과 얽히면서 유교 경전이 되었다.
사진출처 : DALL·E

광형(匡衡)은 한대의 학자이자 관료인데, 『시경』 연구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주희는 아마도 광형의 시대와 자기의 시대 사이에 만들어진 『시경』 주석서에 인용되어있던 광형의 비평을 『시경집전』에 위의 인용문과 같이 정리하여 넣은 듯하다. 그리하여 광형의 비평을 오늘날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모시』 「서」에 보이는 비평과 광형의 비평은 공통되게 재생산을 중시하였다. 위의 인용문 속 “배필의 즈음은 생민의 시초요, 만복의 근원이니, 혼인의 예가 바루어진 뒤에야 품물(品物)[만물]이 이루어져 천명(天命)이 온전해진다” 라는 해설에서 생민의 시초란 무엇이겠는가? 물적 토대를 말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생민은 곧 재생산 즉 아이를 낳는 것일 것이다. 이 비평은 곧 사람이 곁에 이성을 두려 할 때가 재생산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왕실에서는 권력 승계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고, 농민에게는 노동력을 창출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자식을 낳고 죽는다면 나를 닮은 존재가 남아있을 것이므로 내 삶이 빚어낸 문화가 나의 죽음 후에도 남아있게 된다는 관념도 중국 고대에 일찍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비평에서는 재생산이 주 왕실와 제후국 뿐만 아니라 당대 경제의 최소단위인 농민의 가족에게도 필요한 것이 되어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 주희의 비평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저’는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상(傷)하지 않았다.” 하셨으니, 내 생각하건대, 이 말씀은 이 시를 지은 자가 성정(性情)의 올바름과 성기(聲氣)의 화(和)함을 얻었음을 말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덕이 저구(雎鳩)새와 같아 정이 돈독하면서도 분별이 있다면 후비의 성정의 올바름을 진실로 그 일단을 볼 수 있고, 오매반측(寤寐反側)하고 금슬종고(琴瑟鐘鼓)로 즐거워하여 그 슬픔과 즐거움을 지극히 하되 모두 그 법도에 지나치지 않게 한 것으로 말하면 시인의 성정의 올바름을 또 그 전체를 볼 수 있다. 다만 그 성기(聲氣)의 화함[곡조(曲調)]을 얻어들을 수 없는 점이 비록 한스러울 듯하나, 배우는 자가 우선 그 말[가사(歌辭)]에 나아가 그 이치를 관찰하여 마음을 기른다면 또한 시를 배우는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다.”[관저 29쪽]

『시경집전』에 들어있는 주희의 비평에는 “이 시를 지은 자가 성정(性情)의 올바름과 성기(聲氣)의 화(和)함을 얻었음”이라는 부분이 있다. 비평의 초점이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시를 지은 자에 맞추어져 있다. 주희는 시인이 얻은 것이 곧 ‘낙이불음 애이불상’의 마음가짐이라고 한 것이다. ‘정이 돈독하면서도 분별이 있다면 후비의 성정의 올바름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슬픔과 즐거움을 지극히 하되 도에 지나치지 않으면 시인의 성정의 올바름을 다 볼 수 있다.’ 주희는 성정의 올바름에 다다르게 해 주는 두 태도를 독자에게 권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후자는 곧 ‘낙이불음 애이불상’의 마음가짐이다. 이어 주희는, 곡조 즉 노래가 없어져서 아쉽기는 하지만, “배우는 자가 우선 그 말[가사(歌辭)]에 나아가 그 이치를 관찰하여 마음을 기른다면 또한 시를 배우는 근본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시 공부에 대한 조언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보편 수양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새길 수 있을 듯하다. 주희에 의하여 ‘관저’는, 재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로 읽기는 데 국한되지않고, 보편 수양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시로 읽힐 수 있게 되었다.

■심재훈의 비평 : 심재훈에 의하면, 시 속 ‘요조숙녀’에서의 ‘요조’가 ‘요적(要翟)’으로 쓰여 있는 ‘관저’ 판본도 있다. 그는 요적을 ‘가늘고 긴 허리’로 해석한다. 그는 그 요적이 한나라 때 발음이 비슷한 요조로 전이되어 정숙한 여인의 의미로 이해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요조숙녀를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허리가 가늘고 긴 섹시한 아가씨’ 정도가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에 더하여 그는 에드워드 쇼네시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해석을 추가하고 싶다. 이 시의 초입에 물수리의 울음소리로 나타나는 ‘관관(關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모시』에서 이를 “암수가 서로 감응하는 조화로운 소리”로 본 이래, 대부분의 후대 연구자들도 이를 수용한다. 그러나 2009년 단국대학 초빙강연에서 시카고대학의 에드워드 쇼네시 교수는 발칙한 해석을 내놓았다. 『시경』 「국풍」의 여러 시에서 나타나는 새와 물고기 같은 자연의 이미지가 ‘섹스’를 암시하듯, ‘관저’의 물수리 울음소리 ‘관관’도 고대 중국어에서 성적 삽입의 완곡어법인 ‘관(串)’ 혹은 ‘관(貫)’으로 불 수 있다고 한다. …… 어떤 여성을 짝사랑하는 남성 주인공인 시인이 ‘관관’이라는 소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수컷 물수리가 그 짝과 결합을 추구하는 모습을 연상했으리라는 것이다.”4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해석한 ‘관저’의 내용은 앞에 제시한 번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주나라 사람들이 ‘관저’를 가사로 하는 노래를 불렀을 때는, 아마도 심재훈이 에드워드 쇼네시 의 견해를 일부 받아들여 한 번역에 보이는 것과 같은 의미로 노래를 향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분명 그런 의미로만 ‘관저’를 읽지는 않았다. 『모시(毛詩)』 「서(序)」에 보이는 비평, 광형(匡衡)의 비평, 주희의 비평이 모두 심재훈의 비평이 보여 준 것과는 다른 ‘관저’ 독법을 보여준다.

『시경』을 편찬하였다는 공자가 ‘관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였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공자는 ‘낙이불음 애이불상’의 마음가짐을 ‘관저’와 관련하여 강조하였고, 『시경』 속의 시가 ‘사무사(思無邪)’ 즉 ‘거기에 담긴 생각에 사(邪)가 없다’고 평가하였다. 이 평가는 ‘모두 도덕적으로 정당하다’일 수도 있고, ‘사실에 어긋남이 없다’일 수도 있어서, 공자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정하기 어렵다. 후대에 가장 강하면서도 오랫동안, 심지어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비평은 『모시』 「서」에 보이는 비평인 듯싶다. 주희의 비평이 그에서 진일보한 것이기 하지만, 그것이 『모시』 「서」가 유교적 교양인들의 의식 속에 심어 놓은 ‘관저’의 상을 크게 흔들지는 못한 듯싶다. 결국, 다양한 비평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모시』 「서」에 보이는 비평이 가장 오랫동안 강력하게 ‘관저’의 해석을 지배하였고, 그에 따라 ‘관저’는 주로 재생산을 찬양하는 시로 읽혔던 것이다.

재생산 기반 적정세계의 지속을 믿게 하는 시 읽기의 어제와 내일

재생산을 찬양하는 시는 재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가 사람들에게 적정한 것이며 지속 가능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전달 수단 역할도 하였다.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씨가 굳이 여자를 찾아 문왕과 함께 살도록 하기를 애타게 바라는 것으로 ‘관저’를 해석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듯하다. 그러면 『모시』가 널리 읽히기 시작했을 한대에는 어떠하였을까? 한대에 『모시』의 독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공자가 『논어』 「팔일」에서 ‘관저’를 언급한 이유를 『모시』 「서」에 보이는 ‘관저’ 비평과 연관시켜 생각하며 추단(推斷)하였을 것이다. 이런 연관 속에서 형성되는 ‘관저’ 이해는, 전체 인민에 비하면 극히 일부였을 중국과 한국 그리고 아마도 베트남의 과거 응시자들 사이에서 거의 2천년 동안 공유되면서 강하게 의식화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화의 흐름이 가능하였던 것은,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이 재생산을 중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왕정에서 지배집단은 계승자의 재생산을 중시하였을 것이고, 농업사회에서 생산의 최소단위인 가족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중시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유교적 교양을 공유한 지배집단은 자신들이 이상사회로 상정하여 놓은 주나라의 왕이었으며 유교 도통(道統)에도 포함되어있는 문왕의 부인 사씨를 ‘관저’의 주인공으로 만든 『모시』 「서」의 ‘관저’ 비평을 저항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제 갓 사문[斯文] 즉 유교적 세계에 발을 들이는 소학들의 의식 속에 ‘재생산 의지가 여자의 덕성’이라는 생각을 심는 수단으로, 『모시』 「서」가 정한 ‘관저’를 활용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재생산 기반 적정세계의 지속을 믿게 하는 시 읽기’의 의식화 과정이라고 설명하여볼 수 있을 듯하다.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재생산이 강조되고, 재생산이 강조됨에 따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적정한 상태 나아가 이상적 상태로 인식되는 순환(循環)이 반복되면서, 그런 세계가 지속되리라는 믿음이 강화되었을 것이고, 『모시』 「서」가 정한 ‘관저’ 읽기는 믿음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 『시경』은 심재훈이 번역한 것처럼 읽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할 듯하다. 그런 『시경』 읽기는 옛 중국 사람뿐만 아니라 뭇 사람들의 마음의 다양하고 미묘한 변화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주희가 음부시라고 분류한 시들을 읽는 일도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 속에서, ‘재생산 기반 적정세계의 지속을 믿게 하는 ‘관저’ 읽기’는 작동을 멈추었을까?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재생산은, 더이상 긴요하지 않은 것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왕정 속에 살지 않으며 농업사회에 살지 않는다. 노동력이 절실하여 아이를 많이 나아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여주는 기계들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출산이 사회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는 갈수록 팽배하고 있다. 소비대중이 필요하며 연금체제를 지탱하여줄 신규 연금 가입자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사람들은 인구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성장의 한계’, 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교란 등이 걱정거리가 된 지 오래라는 것을 잊은 듯한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지금 재생산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분열적이고 모순적이다. 사실 이런 분열과 모순이 문제가 아니라, 기후 환경 위기 자체가 당면의 문제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사람들의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기후 환경 위기 자체와 같은 당면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사람들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상열지사인 ‘관저’를, 재생산을 강조하는 시로 탈바꿈 시키고, 재생산 기반 적정세계의 지속에 대한 믿음을 고착화시킨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기후 환경 위기에 빠져있으면서도 그것에 무감각한 의식을 타파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2천년 가까이 유지되어왔던 『모시』 「서」의 비평에 의거한 ‘관저’ 읽기가 심재훈의 번역과 같은 발상의 전환에 의하여 쉽게 해체되는 것을 보면, 기후 환경 위기에 빠져있으면서도 그것에 무감각한 의식은 어느 시점에 가면 생각보다 너무 쉽게 허물어질 수도 있을 듯하다는 점이다.


  1. 朱熹[撰], 成百曉[譯註], 『懸吐完譯 詩經集傳』 上, 東洋古典國譯叢書 4, 서울 : 社團法人 傳統文化硏究會, 1993, 26~31쪽. 아래에서는 ‘관저’로 줄여 쓸 것임.

  2. 제목까지는 번역하지 않은 심재훈 교수를 대신하여, 글쓰는 이유진이 제목을 번역하여 보았다.

  3. ‘고대문명연구소’[https://irec.study/] 심재훈, 「책의 향기, 고대의 향연」, ‘요조숙녀와의 XX?’ Jan 19, 2021.

  4. ‘고대문명연구소’[https://irec.study/] 심재훈, 「책의 향기, 고대의 향연」, ‘요조숙녀와의 XX?’ Jan 19, 2021.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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