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토론회 특집] ④ 부엔 비비르 사상과 지구의 권리, 그 불편한 동거 그리고 그 너머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 논평문으로 발표된 내용으로,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착한책가게, 2018)에 대한 서평형식을 띠고 있다. 생명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며 상호의존적인 유기적 존재로서, 모든 것은 연결된 하나라는 부엔 비비르의 세계관을 우리는 얼마나 체화하고 삶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기후 온난화로 인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오늘 토론회의 주제인 ‘부엔 비비르’ 또한 그러한 논의의 갈래 중 하나이다.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의 저자들은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기후 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 생산주의, 채굴주의, 금권주의, 가부장제, 인간중심주의로 진단한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이러한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오늘의 문제가 심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지구 생명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저자들은 7가지 대안으로서 “부엔 비비르,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을 제시한다. 그 중에 가장 핵심은 세상을 인식하는 근본 토대가 되는 세계관의 전환, 바로 “부엔 비비르”이다.

파블로 솔론 외,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착한책가게, 2018)
파블로 솔론 외,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착한책가게, 2018)

부엔 비비르는 남미 안데스 산맥의 선주민인 볼리비아 아이마리족의 수마 카마나나 에쾌도르 케추아족의 수막 카우사이 등의 전통에 녹아있는 세계관으로, ‘자아가 실현되는 삶, 온화한 삶, 조화로운 삶, 포용하는 삶’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부엔 비비르의 세계관에서는 사회와 자연은 분리되지 않으며 다른 생명체와 요소들을 아우른다. 전체는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는 하나이다. 부엔 비비르의 시간과 공간은 단선적이지 않으며 순환적이다. 따라서 근대 인류가 추구하고 있는 성장이나 진보와 같이 단선적이고 일방향적인 가치관은 부엔 비비르와 양립할 수 없다. 부엔 비비르의 세계관에서 우리는 모두 자연의 일부이며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전체 공동체 즉 파차공동체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윤리적 당위성이 도출된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 자연은 파괴하면 안 되고 돌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당위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지구가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오늘 발제자분이 소개한 많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유발한 여러 요인 중에 하나가 인간중심주의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두들 인간중심주의가 야기한 문제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근대 이후의 서구화된 사고로 인하여 너무나 뿌리 깊이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내재화되어 있다. 그로 인해 인간중심주의의 문제를 충분히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인간중심주의의 문제를 논의하면서도 인간중심적인 개념을 끝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권리론’이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의 문제를 인간을 우월한 존재로 두고 생명을 위계적으로 평가하며 지구의 구성물질을 인간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의 문제는 그러한 위계적이고 우월적 사고 뿐만 아니라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분되는 존재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다시 말해 주체와 객체라는 이원론 자체가 서구 근대 이후 문명의 핵심이다.1

우리는 근대 이후에 형성된 세계관을 습득함으로 인해 인간이 기본적인 권리를 갖는다는 사고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인권에 관한 논의는 사람들 사이에 한정되어 사용했을 때는 국가 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을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론은 자연이나 다른 생명으로 확장하려고 했을 때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과거에 사람들은 인간에게만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만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제레미 벤덤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로 우리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을 규정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동물 또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또 피터 싱어는 고통을 느낀다 하더라도 인간인지 여부에 따라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을 규정해야 한다고 하다면 그러한 사람을 ‘종차별주의자’라고 규정하였다. 더 나아가 톰 레건은 ‘삶의 주체’에게는 누구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동물 또한 삶의 주체로서 기본권을 가지고 그에 따라 도덕적 주체인 인간은 동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동물을 인간의 목적에 따라 잡아먹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삶의 주체를 ‘1년 혹은 그 이상 된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포유동물들’로 한정하였다. 왜 레건은 삶의 주체를 1년 혹은 그 이상된 포유동물로 한정하였을까? 그것은 식물을 포함한 곤충, 세균까지로 삶의 주체를 확장하는 경우, 그들 생명체들 또한 누구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기본권을 가지며 우리는 그들을 음식물로 삼을 수 없고 그에 따라 우리는 굶어 죽어야 한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인간중심적인 권리론은 다른 생물로 확장될 때 어려움을 낳는다. 사진출처 : lil_dude
인간중심적인 권리론은 다른 생물로 확장될 때 어려움을 낳는다.
사진출처 : lil_dude

이러한 권리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엔 비비르의 세계관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세상의 어느 존재도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전체는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을 분리된 존재로 규정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하라(Craig K. Ihara)는 개인, 개인의 합리성과 자율성 그리고 개인이 주장할 수 있는 요구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서양의 특유한 관심사이며, 여러 전통적인 사회 그리고 계몽 시대 이전의 서구 사회에서조차 명백하게 인간을 다른 의미로 이해했고, 많은 공동체들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주장 없이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또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개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자는 개인적인 안전망이나 권리가 필요하게 된다고 말한다.2 우리는 권리론이 보편화된 사회에 살다보니 권리론만이 각 개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하며 그 방식을 동물이나 자연으로 확장하려고 하면서 ‘지구의 권리’와 같은 혼란스러운 논의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은 이미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원주민들은 서양 철학의 의미에 부합하는 ‘권리’ 개념을 내세우며 직접적으로 ‘권리’를 말하고 있지 않다.3 토머스 베리 또한 ‘권리’라는 용어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으며, 지구 시스템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현재의 법적 시스템(권리)의 개념을 활용해본다는 생각이었다.4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머니지구의 권리, 또는 자연을 지자체나 국가, 국제 제도의 법률적 질서에 포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한 걸음이지만, 이는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발표자 강조)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지구의 권리를 제안함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지구공동체, 즉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전체가 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5

결국 중요한 것은 부엔 비비르의 세계관, 다시 말해 모든 것은 연결된 하나라는 세계관을 우리가 얼마나 체화하고 삶에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모든 것이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은 새로운 세계관이 아니다. 불교의 ‘연기론’과 ‘윤회론’, 장회익의 ‘온생명론’이나 러브룩의 ‘가이아론’, 네스의 ‘심층생태학’, 헤러웨이의 ‘공산’ 또 제가 주장하는 ‘공생명론’이 모두 생명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며 상호의존적인 유기적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그와 비슷한 논의들은 차고 넘친다. 문제는 그러한 논의들을 단지 지식으로 인지하고 마느냐 아니면 스스로의 삶을 그러한 세계관 속에 체화하여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이다.


  1. 파블로 솔론, 크리스토프 아기똥 외,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김신양, 김형우, 허남혁 옮김, 착한책가게, 2018, 159쪽.

  2. Craig K. Ihara, “Are Individual Rights Necessary? A Confucian Perspective”, Confucian Ethics: A comparative Study of Self, Autonomy, and Community, Edited by Kwong-loi shun, David B. Wong, Cambridge Univ Press. 2004, p. 25.

  3. 파블로 솔론, 크리스토프 아기똥 외, 앞의 책, 151쪽.

  4. 파블로 솔론, 크리스토프 아기똥 외, 앞의 책, 182쪽.

  5. 파블로 솔론, 크리스토프 아기똥 외, 앞의 책, 148-149쪽.

박종무

지구 생명의 근원은 해님이라고 믿는 생태주의자. 해님의 에너지를 받는 지구 모든 생태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희망한다. 특히 동물들이 생태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동물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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