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의 유용성과 딜레마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유용한 개념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며 체제 전환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의로운 전환의 유용성과 함께 딜레마의 이유를 밝히고, 개념의 한계를 넘어 더 생산적인 이야기를 열어젖혀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와 사회에게 유해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산업과 일자리가 안전하고 더 좋은 일자리로 전환할 때 이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롭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이자 원칙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 있고 역사적으로 이런 아이디어나 사례가 여럿 있지만, 이 개념 자체의 연원은 미국 노동운동이다. 특히 석유화학원자력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의 경험과 제안은 이 개념에 매우 구체적인 맥락을 부여했다.

그가 어린 나이에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귀국했을 때 미국 연방정부는 제대군인 지원법(GI Bill)을 만들어서 몇 년 간의 학비와 취업을 지원했고, 그 역시 이 덕분에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다른 한편, 197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평화운동이 고조되고 조금씩 군비축소가 시작되자 군수산업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위협받게 되었다. 마조치는 다른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핵폭탄 금지 캠페인을 이끌었는데, 그가 원자력 노동자를 대변했던 만큼 군축이 되면 모순적인 입장에 처할 수 있었다. 유해한 원료를 사용하고 작업 환경도 좋지 않은 산업과 공장도 노동운동가로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다른 일자리, 다른 산업으로의 전환을 추구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재정, 프로그램, 그리고 사회적 인식과 합의 모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나 시장 상황의 변화로 인해 에너지 산업, 자동차 산업 등에서 이미 고용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데, 한국의 기후 정책과 그린뉴딜 정책에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할 아무런 고민이나 시도가 없다. by Chris LeBoutillier  출처 : www.pexels.com/ko-kr/photo/929385/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나 시장 상황의 변화로 인해 에너지 산업, 자동차 산업 등에서 이미 고용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데, 한국의 기후 정책과 그린뉴딜 정책에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할 아무런 고민이나 시도가 없다.
사진출처 : Chris LeBoutillier

1990년대가 되자 화석연료 소비로 인한 지구 온난화가 뚜렷해졌고, 마조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산업 전환과 이를 지원하고 보장할 공적 프로그램이라는 아이디어를 다시 부활시켰다. 그는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의 전환을 돕는 “노동자를 위한 슈퍼 펀드”라는 이름을 제안했는데, 동료들은 이 슈퍼펀드가 너무 부정적인 의미가 많다며 대신에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바꾸기로 했다. 어쨌든 마조치는 정의로운 전환은 그저 구호나 복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도움의 손길이라고 보았다. 이 개념은 캐나다 노동조합에서 받아들여진 다음 국제 노동운동의 공식 정책이 되었고, 국제노총의 지속적인 요구의 결과로 2015년 파리협정의 전문(前文)에도 포함되었다. 즉 기후변화 대응은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과 괜찮은 노동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원칙을 고려”하여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은 한국 정부에게 좋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의 유엔기후변화협약 대응이나 녹색성장 정책에서는 이런 문제의식 자체가 전혀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문서에 이 개념이 한국판 뉴딜 같은 정책 속에서 ‘공정 전환’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개념의 원래 맥락을 절차적 공정성, 즉 위법하지 않거나 사후적으로 응분의 보상과 지원을 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그린뉴딜 계획에는 공정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세부 방안조차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기후투명성 기구(Climate Transparency)는 주요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성과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는데, 평가 항목 중 하나로 정의로운 전환을 포함하고 있다. 이 기구의 2020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을 평가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전력 믹스에서 석탄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국가적 약속, 틀 또는 정책 도구가 부재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추진과 관련하여 진행된 논의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에너지, 교통, 공공 부문 노동자를 대표하는 한국 노동조합은 석탄과 핵 에너지의 단계적 폐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촉구했지만, 동시에 정부에게 로드맵을 개발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은 건강하고 정의로운 탈석탄으로 대기질 개선,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통한 일자리 기회 확대, 에너지 수입 의존도 감소 등 다양한 공익을 달성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나 시장 상황의 변화로 인해 에너지 산업, 자동차 산업 등에서 이미 고용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데, 한국의 기후 정책과 그린뉴딜 정책에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할 아무런 고민이나 시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 조직에게서도 정의로운 전환이 크게 관심을 끌거나 환영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석탄화력발전 수주의 축소로 경영이 악화된 두산중공업에서 노동조합은 오히려 신울진 3,4호기 핵발전소 건설 재개를 요구하고 있고, 현대자동차의 노동조합 조직은 전기차 전환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 우려에 다분히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충남 보령처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지역 경제가 위축될 것이 전망되는 곳에서는 다행히 지자체와 지역 조직들이 대응 논의를 시작하고 있지만 중소 협력업체의 일자리까지 살펴질지는 불확실하다. 공식 내셔널센터와 산별 조직들은 2019년의 전 세계적 기후행동의 물결 이후 정의로운 전환에 동의하는 입장을 내고 조합원 교육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까지 공감이 확산되거나 구체적인 제안으로 발전하지는 못한 단계다.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현장 노동자의 반응은 대략 이러하다. 기후변화에 왜 자신들이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가, 또는 일종의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왜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가? 경영진과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노동과 정부 또는 노사정 조직 사이의 신뢰가 매우 약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의 양보를 위해서 테이블이 마련된 경우가 많다 보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IMF 구제금융 때 긴축과 M&A를 위한 구조조정, 그리고 몇 년 전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같이 노동자들이 불공평하게 희생된 아픈 경험과 기억이 지금도 압도적이다. 당장 한달 뒤 또는 1년 뒤의 일로 딱 집어서 예고되기 어려운 기후위기라는 조건은 일단은 외면하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 자체에 대한 논쟁, 그리고 현실에서의 곤란은 한국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동자 네트워크(LNS)”에서 2015년에 진행한 인터뷰 조사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다양한, 그리고 매우 현실적인 인식들을 담고 있다. 한 노조 활동가는 정의로운 전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실제로는 사라지는 산업과 일자리에 그냥 ‘멋진 장례식’ 정도를 만들어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에너지 산업 노동조합의 경우에는 석탄화력발전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재생가능에너지 부문에서는 조합원이 늘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 사이에서 입장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사회운동 및 지역사회와 참신한 대안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분적으로 성공하는 사례들도 보고되지만, 그러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이 결국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보완하거나 기후위기 대응을 지연시키는 변명거리로 머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LNS의 보고서에서 미국의 주류적 환경단체 시에라클럽 대표 아론 메어는 정의로운 전환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보험 정책으로 묘사했다. 물질적 생산을 유지하거나 개선하면서 환경을 지킬 수 있다는 패러다임 속에 정의로운 전환이 위치한다면, 이는 녹색성장이나 생태적 현대화와 그다지 다르지 않거나 그 일부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 무브먼트 제너레이션(Movement Generation) 조직의 활동가는, 전환이라는 말이 부드럽고, 대부분 쉬운 과정으로 들리는 것에 유감을 표하고, 결국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단절,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문화적 전환, 마인드의 전환, 그리고 경제의 재구성을 포괄하는 상상력과 자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수용과 해석의 스펙트럼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이론적인 그리고 사회운동 사이에서의 명확한 합의가 아직 없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 공동연구회(JTRC)는 현재 대략 네 가지 접근이 존재한다고 분류한다. 첫째, 현상유지적 접근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다. 기업 주도의 저탄소사회 전환에 해당하며 녹색성장의 일부일 수 있다. 둘째, 개혁관리적 접근으로, 헤게모니에 도전하지 않고 기존 경제 체제 내에서 공평과 정의를 개선하는 전환이며 사회적 대화와 협의를 중시한다. 국제노총 등 공식 조직의 입장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구조개혁적 접근으로, 경제 체제의 구조적 개혁을 추구하면서 분배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가 모두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전환은 단순히 피해자를 보상하는 문제가 아니며, 이 과정에서 제도와 구조 자체의 개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으로, 노동자 에너지 협동조합이나 비영리 시민협동조합, 에너지민주주의를 위한 노동조합(TUED)이 이런 입장이다. 넷째, 변혁적 접근으로, 오늘날 사회-환경 위기를 만든 경제, 정치 시스템의 완전한 변화를 추구한다. 이 입장은 정의로운 전환은 성장주의 경제 체제와 인간-환경 관계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원주민 환경 네트워크(IEN), 정의로운 전환 동맹(JTA), 여성환경개발기구(WEDO) 등 여러 조직에 확산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성과는 아직 모호하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입장들이 이론적으로 존재한다거나, 자신이 어떤 입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해석과 수용들이 가능하거나 특정 방향이 우세하게 되는 조건들을 살펴야 하며, 그런 조건들을 바꿀 수 있는 요소와 기회들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정의로운 전환에 내재한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보다 큰 전환의 창문으로서의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여전히 유용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정의로운 전환 자체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최근의 강의나 토론에서 필자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 한편으로 근본적인 의구심을 던지는 질문들도 만날 수 있었다. 즉 정의로운 전환은 전통적인 제조업, 정규직, 남성노동자에 다가오는 위기를 역시 그러한 존재와 조건을 그냥 둔 채로 모종의 과거를 유지하는 프레임 속에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아무리 급진적으로 말하더라도 일정하게 성장과 권력 관계를 전제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와 노동자 조직 스스로가 다른 생산과 재생산, 다른 노동/비노동을 상상할 수 없다면 정의로운 전환은 방어적이고 현상유지적인 속성을 벗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지극히 올바른 것으로 여겨진다. 탈성장과 돌봄노동의 주류화 같은 제안과 운동은 정의로운 전환에 배치되는가, 또는 정의로운 전환은 그러한 전환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가? 정의로운 전환을 옹호하고 그 효용을 동어반복하기 보다는, 그야말로 더 큰 인식의 전환과 대안 프로그램을 통해 정의로운 전환 자체의 극복 또는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결국 이야기는 지금의 기후위기와 삶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떤 기후 문해력(literacy), 어떤 생산/비생산과 노동/비노동 그리고 나눔의 문해력을 가질 것이냐로 이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Barca, Stefania, 2017, Labour and the ecological crisis: the eco-modernist dilemma in western Marxism(s) (1970s-2000s), Geoforum Volume 98
  • JTRC, 2018, Mapping Just Transition(s) to a Low-Carbon World, UNRISD Research Report
  • LNS, 2016, “Just Transition” – Just What Is It?, An Analysis of Language, Strategies, and Projects
  • 김현우, 2017, 정의로운 전환: 21세기 노동해방과 녹색전환을 위한 적록동맹 프로젝트, 나름북스
  • 노라 래첼, 데이비드 우젤 엮음, 김현우 옮김, 2019,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이매진

김현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10년간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에너지체제의 정의로운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연구했으며, 에너지 전환, 도시 정치, 대중교통, 거버넌스의 민주화 등에 관심을 갖고 글을 썼다. 지금은 탈핵신문 운영위원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안토니오 그람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를 되찾자』, 『GDP의 정치학』,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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