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⑤ 행복을 알던 사람

언니의 몸은 이제 더 이상 행복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언니의 행복이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언니가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믿는다.

운전하다가 신호를 받으려 정지했다. 차창 너머로 낯선 이가 건널목에 서 있다. 헐렁한 윗옷을 입고, 헤드셋을 쓰고 있다. 고개를 까딱이며 살짝 리듬을 탄다. 초록불이 켜지자 내 앞을 지나간다. 휘날리는 곱슬머리 사이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 얼핏 보인다. 순간을 만끽하는 들뜬 기분이 전해진다. 스치는 향기를 맡듯 그가 맞은편에 도착할 때까지 내 눈길이 머문다. 저 이를 닮은 사람을 알고 있다.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넌 그가 부러워서 조용히 눈물이 흐른다.

이내 언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누워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그에게 함께 듣던 노래를 불러줬다. 분명 기분 좋을 텐데 도무지 웃지 않는 그가 서럽다.

“같이 부르고 싶은데, 몸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거 아니지? 그런 걸까 봐 무서워. 아니라면 눈을 감았다 떠봐. 알겠지? 깜빡. 깜빡. 깜빡!”

어느새 ‘깜빡’이라 말하는 내 목소리가 티브이 소리를 덮었다. 나는 여전히 언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그가 기록하고 싶어 했던 순간들로 가득하다. 같은 게시물에 나의 세 번째 댓글을 달았다. 행복해하는 언니의 존재가 실감 나자 그제야 안심이 된다.

언니에게 행복은 남다른 것이었다. 뇌하수체를 제거한 후 외부에서 호르몬을 투여받았던 언니의 몸은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쳐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우울함에 잠식돼 성격이 달라졌고, 기운이 없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병원에서는 갑상샘·부신피질 등 호르몬 문제와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몸의 상황에 비해 특정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무기력, 피로감, 의욕 상실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뜻이었다.

언니의 몸은 기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 예를 들어 긴장될 때 소변이 마렵고 땀이 난다. 보통 이때 신체는 각종 호르몬을 변화에 맞게 조절해 분비한다. 반면 언니의 몸에는 매일 주입받는 정량의 호르몬만 흘렀다. 정신과 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것이라면, 언니의 경우 한쪽 바퀴가 빨라져도 다른 바퀴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언니에게는 외부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강인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했다. 아픈 몸을 지니고 살았기에 평화로운 일상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고 있었다. 언제든 명이 다할 수 있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듯 언니는 감정의 높낮이를 최소화하고 주어진 하루를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애썼다. 누군들 행복이 귀하지 않겠냐만, 언니에게는 더욱 절실한 것이었다.

언니에게는 책이 행복이다. 사진 출처: julio_55

행복해지려면 언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떤 상황에서 흔들렸는지 끝까지 파고들며 기록했다. 끝없는 자기 탐구 끝에 언니가 발견한 행복의 원천은 책이었다.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책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위로를 얻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감정과 언어를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자주 마주 앉아 책을 읽었다. 나는 금세 지루해져 딴청을 피웠다. 턱을 괴고 언니를 바라봤다. 언니도 책을 덮고 나와 놀아주길 바라면서도 이미 책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책에서 시선을 단 한 번도 떼지 않았고, 이따금 옅은 미소만 흘렸다.

언니는 이토록 책을 좋아했기에 사서를 꿈꿨다. 물론 책과 관련된 직업은 많지만, 언니는 약값과 병원비를 감당할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즐거움을 알려주는 삶을 상상했다. 그렇게 언니는 평생 단 하나의 꿈, 사서를 품었고 마침내 이뤘다. 그러나 그 꿈은 신기루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근무하던 학교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퇴근길에, 단 몇 분 사이에. 나는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기도문처럼 자주 되뇌었다.

언니는 사고 이후 감정이 없어진 듯 보였다.
사진 출처: AbsolutVision

그러다 보면 사고 이전 언니의 삶이 전생처럼 느껴진다. 언니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꿈이 있어 생기 넘치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떠받치는 힘이 따뜻함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끝까지 믿고 타인을 한없이 품어주는 능력. 선함과 다정함이라는 거의 재능에 가까운 성품. 호르몬의 부재가 때때로 그를 삼켜도 단단한 마음으로 버텨내던 사람. 마음이 환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웃지 못한다. 이따금 표정이 달라지는 것도 망치로 무릎을 치면 튀어 오르는 것 같은 반사적 반응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그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한 번만 웃어달라고 말한다. 정말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마지막 기대를 걸어 말한다. 하지만 언니가 평생 쌓아온 행복으로 향하는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은 이제 없는 듯하다.

지금 그의 삶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언니가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하던 책을 읽지 못하고, 입꼬리 하나 올리지 못하는 그는 스스로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한계를 대신 정의할 수도 없다. 결국 나는 전생 같은 그때의 언니를 떠올리며 그의 행복을 빈다. 언니가 여전히 이 삶을 좋아하고 있을 거라고,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일을 다행이라 여기며 어딘가에서 미소 짓고 있을 거라고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상황에서도 분명한 것은 단 하나. 그의 몸이 지금 이 생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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