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산책] ⑨ 6월이 됐다는 건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도시 속에서 사는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할 뿐 아니라 변화에 맞서려고 듭니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는 뭇생명들이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생명살이의 장엄한 원리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계절을 따라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대견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찾아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 있는 도시 속에서 자연과 단절되어 계절의 변화와 무관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진 : 강세기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회색 시멘트로 지어진 집에서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고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더 큰 시멘트 건물 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밤을 마무리하는 우리는 그저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없음 속에서 하루하루를 쳇바퀴 돌 듯 살아갑니다.

매일 변동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늘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우리는 조금만 더워지거나 추워지면 부리나케 냉난방기를 켜댑니다. 어두우면 불을 켜고 밝으면 암막커튼이라도 쳐서 밤과 낮의 빛까지 조절하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즐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반복적인 일상을 방해하는 귀찮음일 뿐이지요. 날이 더워지는데 비라도 내리면 ‘출퇴근길 불편하겠네’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것처럼요. 그러니 월요일 다음에 화요일이 오는 것처럼 오월 뒤에 유월이 오는 것이, 봄이 지나 여름이 되는 게 뭐 별일인가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6월의 빨간 열매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버찌, 앵두, 자두, 오디

사월 뒤에 오월, 오월 뒤에 유월. 무미건조한 숫자에 불과한 것 같은 열두 달을 우리 이름으로 부르면 그 안에 담긴 자연의 오묘한 변화가 느껴집니다. 1998년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님이 시작하여 2003년부터 녹색연합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게재하고 있는 ‘우리말 달 이름’1에 따르면 1월은 새해 아침 해가 힘차게 떠오르는 달이니 ‘해오름달’이라 부릅니다. 2월은 꽃샘추위가 있는 겨울의 끝달이라 ‘시샘달’, 3월은 남녘으로부터 봄꽃 소식이 들려오는 달이니 ‘꽃내음달’, 4월은 저마다 잎들이 초록빛깔로 다투어 우거지는 달 ‘잎새달’, 5월은 마음마저 푸르러지는 모든 이의 즐거운 달이라 ‘푸른달’이라 부릅니다.

그럼 6월은 뭐라 부를까요? 남이 뭐라 하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6월의 추억이나 감성, 기억하고 있는 자연의 특징과 느낌대로 이름을 붙여 보시지요. 6월은 새콤달콤한 버찌, 앵두, 자두, 오디가 빨갛게 익어는 계절이니 ‘빨간 열매달’ 아니면 ‘새콤달콤달’이라 부르면 어떨까요? 아니면 비릿한 듯 야릇한 향을 내는 밤꽃이 더워지는 저녁하늘을 가득 채우고 온갖 새들과 맹꽁이가 짝을 찾아 번식하는 달이니 ‘사랑달’이라 불러볼까요? 6월의 영어이름 June은 쥬피터의 아내 로마 여신 유노(Juno)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유노는 결혼과 출산의 여신이라고 하니 과연 6월은 사랑하는 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말 달 이름’에 따르면 6월은 온누리에 생명의 숨소리가 가득 차고 넘치는 달이라 ‘누리달’이라고 부릅니다. 7월 빗방울달, 8월 타오름달, 9월 거둠달, 10월 온누리달, 11월 눈마중달, 12월 맺음달이라고 부르니 각 달의 이름 안에 담긴 계절의 흐름과 변화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 있는 도시 속에서 자연과 단절되어 계절의 변화와 무관하게 살고 있다지만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대견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3월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매화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한 직박구리.
사진 : 강세기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직박구리를 생각해봅니다. 직박구리에게 계절의 변화란 날씨와 온도의 변동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추운 겨울 얼마 안 되는 마른 열매로 버티다가 꿀과 향이 흐르는 봄꽃을 따먹으며 삶을 경축하던 직박구리는 이제 빨갛게 익은 풍성한 열매와 단백질이 풍부한 곤충 먹이를 마음껏 누리며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 6월을 즐길 겁니다. 이들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평생 단벌 신사로 살아갑니다. 철마다 옷장 가득 가득 채우고도 입을 옷이 없다는 우리와는 다르지요. 난방이니 냉방이니 그런 건 모르고 작은 나뭇가지와 나무껍질, 나무뿌리와 같은 친환경 건축재료로 비도 막을 수 없는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짓고 5~6월에 네다섯 개 알을 낳아 부부가 함께 자식을 키웁니다. 이들에게 먹을 것이 풍성해지는 6월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인생의 소중한 시간이지요. 모아 놓거나 쌓아 놓지도 않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직박구리들은 먹을 걸 발견하면 찌익찌익 큰 소리로 울어 동료들을 불러 모읍니다. 직박구리의 록스타 같은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방법도 독특해서 날개를 파닥거려 상승했다가 날개를 접고 하강비행, 다시 파닥거려 상승하면 또 날개를 접고 하강비행. 일정한 리듬으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것에서 마치 물수제비를 뜬 것 같은 아름다운 율동감이 느껴집니다.

6월 공원 숲에서 만난 개옻나무. 새봄에 낸 가지를 펼쳐 몸집을 키우고 있다. 사진 : 강세기

이들을 품고 있는 나무와 풀들은 대단한 존재들이지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던 얼어붙은 땅과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풍성한 여름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보면 그저 경이로울 뿐입니다. 그 연하고 부드럽고 조그맣던 잎새들이 불과 3~4개월만에 오직 빛과 공기, 물만으로 무성하게 잎과 가지를 펼쳐낸 것을 보면 그저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어서 잎을 키우고 가지를 뻗어 태양의 기운이 최고에 이르는 6월 하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니 바쁩니다. 이들에게 계절의 변화란 월요일 이후 화요일이 되고 오월 뒤에 유월이 오는 것 같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생명살이의 장엄한 원리입니다.

6월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대견한 존재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계절의 변화를 거스리지 말고 뭇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여름을 준비하십시다.


  1. 유종반, 「때를 알다 해를 알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9

강세기

빨리 이루고 많이 누리기 위해 무겁게 힘주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천천히 조금씩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풀과 나무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숲과 산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댓글 2

답글 취소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