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주제는 커먼즈(commons)이다. 한국에서 공유지, 공유재, 공유자원 등으로 번역되어 왔던 이 용어는 2010년대를 거치며 다채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학술적으로는 2010년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의 비극을 넘어(Governing the Commons)』(윤홍근 역, 2010)가 번역되었고, 제주와 서울을 중심으로 커먼즈 연구기관이 설립되면서 커먼즈에 관한 지식들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커먼즈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자치, 자율, 협력과 같은 가치를 강조하는 여러 사회·정치적 실천을 상징하는 용어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 글은 한국에서 커먼즈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지난 10여 년 간의 연구/활동을 통해 일종의 커먼즈 지식사회를 형성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커먼즈는 본래 일상적으로 잘 쓰이는 말은 아니었지만, 지식인들이 특정한 대상을 커먼즈로 상징화하는 과정에서 부각된 말이다. 그 방식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학술적으로도 커먼즈라고 불리는 구체적인 대상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만 그동안 지식인들이 커먼즈를 어떻게 상징화해 왔으며, 커먼즈 지식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는 2020년부터 제주에 있는 커먼즈 연구기관에서 일하면서 이 지식사회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커먼즈 연구/활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글은 그간의 경험을 복기하면서 한국의 비판적 커먼즈 담론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가늠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내가 한국 커먼즈 담론에 ‘비판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이제부터 이야기할 커먼즈론이 주류 커먼즈 담론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비판적 커먼즈 지식인들은 기존의 커먼즈 연구가 국가와 자본권력의 문제를 우회하면서 자원의 효율적 관리라는 경제학적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한국 커먼즈 연구는 주로 오스트롬의 작업들을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주로 자원관리에 대한 기술적 해법에 주력하면서 국가와 자본에 의한 자연의 파괴와 지속가능한 삶의 위협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일군의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커먼즈가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적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비판 담론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비판적 커먼즈 연구/활동은 매우 이질적인 실천들을 포괄한다. 아래에서는 그 중에서 가시리와 경의선이라는 두 장소에 주목할 것이다. 두 장소는 각각 제주발 커먼즈론과 서울발 커먼즈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비판적 커먼즈론의 두 가지 조류를 대표하는 장소이다. 제주와 서울은 각각 공동자원의 해체와 투기적 도시화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 곳으로, 커먼즈는 이 문제와 관련한 대안으로서 새롭게 재해석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시리와 경의선은 각각 공동자원과 공동체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복원한 사례이거나 새로운 도시 커먼즈 운동의 상상과 실천을 태동시키는 사례로 여겨졌다.
가시리: 공동자원–공동체 관계의 현대적 복원
가시리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서북부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이다. 예로부터 넓은 목초지가 있어 말을 사육하는 국영목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 목장은 공동목장으로 변경되었으며 관리 및 운영은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공동목장 조합이 맡게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제주 지역에 개발붐이 일면서 가시리 공동목장은 매각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대부분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마을 주민들은 공동목장을 마을의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했으며, 이에 저항하여 1978년 공동목장이 가시리 마을의 공동재산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런 역사로 인해 가시리 공동목장은 주변의 공동목장들이 골프장으로 개발되는 상황에서 마을의 공동자원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가시리는 2000년대 들어 안봉수 이장을 중심으로 공동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을만들기 전략을 수립하면서 마을만들기 사업의 성공 모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동목장과 같은 기존 마을 공동자원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소통 공간, 예술가들의 창작 지원센터, 문화센터 등 새로운 공동자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대자본에 의해 공동자원이 투기적 목적으로 매각되는 상황에서 가시리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역사적으로 공동자원과 맺어온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마을의 다양한 공간을 현대적인 필요에 맞게 성공적으로 공동자원화하는 사례로 여겨질 수 있었다.
이런 가시리의 사례는 제주의 비판적 커먼즈 지식인들에 의해 공동자원과 공동체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복원한 사례로 재해석되었다.1 오스트롬의 영향을 받은 기존 커먼즈 논의가 자원의 효율적 관리라는 경제학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었다면, 가시리의 사례는 공동체에 의한 자원관리 문제를 사회적·윤리적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에서는 마을의 공동자원을 생태관광화하는 마을 만들기 전략을 통해 공동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2 두 마을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선흘1리의 공동자원(동백동산)은 제주도와 중앙 정부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가시리는 가시리목장조합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3
위 사례에서 커먼즈란 곧 마을공동체에 의해 소유·이용·관리되는 ‘공동자원’을 뜻한다. 제주발 커먼즈론에서는 국가와 시장에 의해 공동자원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공동자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지속가능하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과정에서 마을공동체가 중요한 주체로 부각되며, 마을만들기 사업이라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로 인해 ‘외부인’들을 배제하는 폐쇄성의 문제와 국가의 개발전략에 의한 포섭이라는 위험이 따르게 된다.4 그러나 제주발 커먼즈론에서 여전히 가시리와 같은 사례는 지속적으로 (비판적으로) 탐구되고,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제주에서 공동자원, 즉 커먼즈가 과거의 공동체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실천을 상징하는 기표로 해석되기를 요청받고, 또 그렇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의선: 새로운 도시 커먼즈 운동의 상상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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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에서 커먼즈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등장한다. 여기서 경의선은 구체적으로는 2003년 경의선 지하화가 결정된 이후 철도 폐선부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새로 생긴 공유지인 ‘경의선공유지’를 말한다. 이 공간은 공원화를 명분으로 투기적 개발 시도가 끊임없이 전개되던 곳이었다. 마포구는 2012년 이랜드와 계약을 맺고 공덕역 옆 역세권 개발을 본격 추진하고자 했다. 그런데 건물을 올리기 전까지 비워둘 경우 노숙자 등 불법 점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2013년 7월 공덕역 옆 공터에 ‘늘장’이라는 시민장터를 운영하게 되었다.
2015년 마포구는 늘장을 운영하던 늘장협동조합에 곧 개발이 시작될 예정이라 더 이상 장터를 유지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계약 중단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대기업 중심의 국공유지 활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다양한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 시민들이 모여서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을 결성하고 공유지를 점거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른바 경의선공유지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경의선에 모인 시민들은 경의선공유지의 이용·관리라는 문제를 넘어서 이 공간을 다양한 이유로 쫒겨난 도시 난민들이 모이는 연대와 공유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5은 이런 지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활동 사례이다. 경의선공유시민행동의 활동가들은 서울시의 25개 자치구에서 쫒겨난 도시난민들을 위해 경의선공유지를 26번째 자치구로 선언하고 시민들과 함께 다양한 공유활동과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제로 경의선공유지운동에는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벼룩시장 노점상들, 거리 전시와 공연을 하는 문화예술인들, 살던 곳이 철거되어 거리로 내몰린 빈민들, 장사할 곳을 잃은 상인들, 철거와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해 왔던 문화예술인, 새로운 도시운동의 현장을 기록하고 연구하려는 연구자들, 철도 부지의 대안적 활용을 고민해온 활동가들 등은 2020년 5월 정부와 철도공단이 주도한 법적 소송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자진 철거 방식으로 활동을 마무리할 때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비판적 커먼즈 지식인들은 경의선공유지운동을 새로운 방식의 도시 커먼즈(urban commons) 운동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6 이 운동은 서울 지역에서 2010년대 문화적 실천을 통해 투기적 도시화와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고자 했던 궁중족발, 옥바라지골목, 아현포차, 두리반 등의 다양한 장소투쟁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운동들과 경의선공유지운동이 다른 점이 있다면, 운동의 출현 혹은 과정에서 ‘공유지’ 혹은 ‘커먼즈’를 직접적인 지향점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경의선운동이 경의선공유지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둘러싼 투쟁을 넘어서 사적소유에 입각한 억압적 국가와 독점적 시장체제를 문제 삼고 도시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서울발 커먼즈론에서 좀처럼 커먼즈는 공동자원과 같은 ‘자원’으로 번역/해석되지 않는다. 나아가 커먼즈를 자원으로 해석하는 관행에 비판적이면서 커먼즈를 커먼즈의 작동을 둘러싼 사회구조, 공동체, 자원, 제도, 실천의 총체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커먼즈를 공동자원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논의들이 커먼즈를 사회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분류·구분하고자 한다면, 이 논의들은 비판적 사회과학의 ‘비판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커먼즈를 사적소유에 입각한 근대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나아가 공동체와 자원이라는 근대적인 주체-대상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따라서 가시리의 사례와는 달리 커먼즈 연구와 활동은 한정된 공간에서의 자원 관리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사진출처 : Thomas Quine
이런 해석으로 인해 커먼즈는 보편적 차원에서 도시의 권리를 둘러싼 다양한 투쟁들을 결합하고, 그러한 결합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도시 커먼즈 운동이자 비판 담론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이는 경의선공유지운동을 끝나지 않은 운동으로, 지속되어야 하는 운동으로 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오스트롬과 이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한 제주발 커먼즈론의 기여는 공동자원을 둘러싼 자치, 자율, 협력적 실천이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오스트롬이 제시한 8가지 디자인 원리(design principles)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비판 담론으로 확장된 커먼즈론은 여전히 자치, 자율, 협력을 규범적으로 강조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결국 대안적인 삶과 주체성을 생산하는 실천인 커머닝(commoning)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경의선과 가시리 사이에서
이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경의선과 가시리 사이”의 의미를 해명할 차례이다. 먼저 커먼즈를 둘러싼 많은 실천들이 경의선과 가시리 사이에 혹은 두 구분을 넘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대표적으로 올해 발표된 『커먼즈란 무엇인가』(한경애, 2024)와 『예술과 공통장』(권범철, 2024)이 다루고 있는 해방촌의 ‘빈집’과 문래동의 ‘오아시스’, ‘LAB39’의 사례는 경의선과 가시리의 구분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종로구 송현동의 한진그룹 소유지를 중심으로 커먼즈 운동을 전개했던 ‘솔방울 커먼즈’가 말하는 ‘커먼즈’도 경의선공유지운동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읽힌다.7 애초에 매우 이질적인 실천들을 포괄하는 커먼즈 연구와 활동 담론을 두 가지 조류로 나눈다는 것이 무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경의선과 가시리라는 구분을 채택한 이유는 이 글이 커먼즈와 관련된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인들과 그들의 사회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커먼즈는 종종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보기에 커먼즈 담론의 확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지식인들이다. 여기에는 단지 직업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커먼즈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활동가들도 포함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커먼즈는 소수의 연구자들만이 사용했던 용어였지만, 현재는 공적 영역에서의 정책 담론과 문화·예술 영역,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수년 안에 우리는 커먼즈를 위시한 정치세력 또는 정치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지식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온 지식사회의 ‘현장’을 성찰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내가 이 현장이라는 말을 강조한 까닭은 지식인, 특히 비판적 지식인들이 투쟁현장이나 ‘아래로부터’의 현장에 접속되는 것을 열망하면서도 정작 스스로가 만든 현장을 돌아보는 데는 인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경의선과 가시리라는 이름은 지식인들이 걸어왔던 고유의 현장을 돌아보는 준거점이 될 수 있다. 제2의 가시리, 제2의 경의선을 연구하고 투쟁현장에 결합하는 것만큼 우리가 만든 이 현장을 함께 잘 가꾸고, 보존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만들어낸 현장에서 자치, 자율, 협력이 ‘실제로’ 수행되어야 한다.
최현·김선필(2016). 「공동자원의 지속가능성과 마을만들기 전략: 제주 가시리의 사례」. 공간과사회. 267-295 ↩
최현(2017). 「선흘1리 마을만들기와 공동자원의 지속가능성」. 환경사회학연구ECO. 41-69. ↩
이 차이는 각 마을의 공동자원의 관리방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가시리 목장조합이 가진 폐쇄성은 외부인이 마을만들기에 장기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선흘1리의 마을만들기에서는 동백동산이라는 국공유지를 생태관광을 위한 마을의 공동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마을만들기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최현(2024). 『제주사회와 시민적 공동자원론』. 진인진. 201-213을 참고하라. ↩
가시리는 2019년에 늘어나는 이주민들로 인해 발생하게 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마을공동체가 총유의 방식으로 보유하고 있던 마을공동목장을 목장조합 소유(합유)로 전환시켰는데 이로 인해 폐쇄적 성격은 더욱 강화되었다. 정영신(2020). 「한국의 커먼즈론의 쟁점과 커먼즈의 정치」. 아시아연구. 253 참고. ↩
선언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경의선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문 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경의선공유지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커먼즈의 도전』(박배균·이승원·김상철, 2022)과 『안녕, 경의선공유지』(김배리·김성은·김상철·박상덕·박선영, 2022)를 참고하라. ↩
솔방울커먼즈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본지의 [솔방울커먼즈 시리즈]를 참고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