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고 싶다, 죄책감 마일리지

비건라이프를 선택해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버리게 되는 플라스틱, 비닐이 엄청나다. 아무리 로컬에서 제철 식재료를 구입해도 탄소 배출로 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작은 생명체에게 해를 덜 끼칠까? 이 뜨거운 시국에 기업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비건지향인이 2021년을 사는 데엔 커다란 불안과 슬픔이 따른다. 신인류가 24시간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을 알아보고 대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사는 건 어렵다. 직장의 고충과 관계의 지난함도 그렇거니와 단순히 먹는 일만 생각해도 쉽지 않은 게 사는 일이다. 누군가 밥 세 끼를 차려 대령해준다면 덜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4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노동으로 시작하여 마무리하는, 더욱이 타들어가는 지구를 목도하는 일이 안타까워 비건 라이프(Vegan Life)1를 선택한 이라면 매일, 매끼가 고민의 연속이다.

1인 가구 비건지향인의 하루 식생활을 보자.

아무리 아끼며 살아도, 나는 월평균 97.9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14.8그루의 소나무를 빚지고 있다. 매달 112.7(97.9+14.8)씩 쌓여가는 죄책감 마일리지다. by Karolina Grabowska 출처 : https://www.pexels.com/ko-kr/photo/4210339/
아무리 아끼며 살아도, 나는 월평균 97.9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14.8그루의 소나무를 빚지고 있다. 매달 112.7(97.9+14.8)씩 쌓여가는 죄책감 마일리지다.
사진 출처 : Karolina Grabowska

2021년 7월 29일 아침. 날은 덥고 입맛은 없는데 빈속에 나갈 수는 없어 일단 냉장고에 있는 것을 꺼냈다. 밥, 김, 김치. 밥엔 일곱 가지가 들어간다. 쌀, 찹쌀, 현미, 흑미, 팥, 렌틸콩, 이집트콩. 지인찬스로 얻어먹는 무농약 쌀을 제외하곤 모두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렌틸콩은 캐나다산, 이집트콩은 미국산, 나머지는 국산이다. 다 비닐 지퍼백에 담겨 비닐 완충제에 싸인 후 투명 박스테이프로 마감된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채로 도착했다. 김치는 본가에서 대용량으로 주문한 것 중 일부를 얻어왔고 김은 전장김으로 한 포장에 10장씩, 5개 묶음으로 파는 제품을 샀다. 국산 김 51%에 49%는 중국, 인도, 헝가리, 러시아, 브라질, 에티오피아의 기름과 소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무려 6개국을 거친 김이라니.

점심은 중식당에서 콩국수를 먹었다. GMO(유전자 변형 식품)콩과 밀이겠지만 동물을 제한 식단은 그게 유일했다. 일행이 나에게 맞춰 ‘고기 없는 짜장면’을 고르지 않는 이상 손님 한 명을 위한 특별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텀블러를 가져가 식당 컵을 쓰지 않았다. 단무지 포함, 내 음식을 남기지 않았다. 냅킨을 한 장 썼고 영수증은 받지 않았다.

저녁밥은 친구가 이 더위에 택시를 타고 갖다 준 들깨버섯탕과 감자조림을 곁들여 먹었다. 느타리, 표고, 팽이, 송이버섯은 국산이더라도 비닐에 싸여 판매되었을 것이다. 감자는 그이네 가족 텃밭에서 캤다고 한다. 하지만 양념으로 쓰인 간장, 설탕, 기름은 가성비 좋은 GMO일 확률이 크다.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각종 식자재 플라스틱 포장지. 분리수거에 내놓자니 재활용 비율이 30%도 안 된다는 말이 떠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잘 씻어 집에 쌓아둔 상황이다. 사진제공 : 박혜림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각종 식자재 플라스틱 포장지. 분리수거에 내놓자니 재활용 비율이 30%도 안 된다는 말이 떠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잘 씻어 집에 쌓아둔 상황이다. 사진제공 : 박혜림

느지막이 손님과 티타임을 가졌다. 비건 베이커리에서 고양이 발만 한 3천 원짜리 케이크를 다섯 개 샀다. 세일할 때 사놓은 홍차와 몇 가지 상큼한 것들도 대접했다. 자두, 참외, 살구, 사과, 토마토, 감말랭이, 천도복숭아. “골고루 먹지 않으면 민폐다!”라는 신조를 가진 허약한 비건인은 식비에 투자하는 편이다(태생부터 허약체질, 비건식 이후 많이 나아졌다). 토마토는 우리집(경기도) 텃밭에서 수확했는데 사과는 모친이 행여나 자식이 굶어 죽을까봐 들고 다니며 먹으라고 ‘세척 사과’를 주문해버렸다. 다음엔 개별 포장된 제품보다는 대용량으로 구입, 가능한 직접 가서 포장 없이 들고 오는 게 좋다고 알려드렸다. 헌데 대용량이라도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긴 매한가지다. 가게에 돌려드리자니 그들도 필요 없다 했다. 분리수거에 내놓자니 재활용 비율이 30%도 안 된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잘 씻어 집에 쌓아둔 상황이다(찬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프리랜서라 그나마 부엌일을 할 여유가 있고 배달앱 없이 주변의 도움으로 먹고 살 수 있다. 그럼, 꼼짝없이 일에 매여 가공식품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의 처지는 어떠할까.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은 개인이나 단체가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 기체의 총량을 뜻한다. 원료채취, 생산, 수송·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지표란 말씀.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홈페이지(www.kcen.kr)에는 가정에서 배출하는 탄소량을 확인할 수 있는 계산기가 있다. 수도, 전기, 가스, 교통비를 입력하면 한 달에 배출한 탄소의 총량이 나오며 이를 상쇄하기 위해선 몇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나는 월평균 97.9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14.8그루의 소나무를 빚지고 있단다. 매달 112.7(97.9+14.8)씩 쌓여가는 죄책감 마일리지다.

나무를 못 심겠다면 생활 습관을 고쳐보라 제안한다. 대중교통 이용하기, 모아서 세탁하기, 짧게 샤워하기….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온실가스 1인1톤줄이기 캠페인’ 생활 속 실천 방안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제공 : 박혜림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온실가스 1인1톤줄이기 캠페인’ 생활 속 실천 방안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그간 익히 들어온, 초등학생도 아는 내용이다. 이미 어느 집에선 충실히 실천 중일 텐데. 누군가의 생사여탈이 달려있는 현 시국의 심각성에 비해 상당히 싱거운 대안이다. 기후를 연구하는 단체이니만큼 기후 재앙 시기에 맞게 좀 더 섬세한 안내를 해주면 좋았으련만. 예를 들면,

  • 의 : 환경을 해치지 않는 소재 고르기, 해진 옷 멋지게 리폼하기, 득템 가능한 기부처
  • 식 : 탄소 발자국 최소인 식재료 찾기, 조리시간 줄여 요리하기, 친환경 설거지 법
  • 주 :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는 건축자재, 오염물질을 덜 발생시키는 건설현장, 응용 가능한 해외사례
  • 기타 등등.

그런데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지? 정부는 뭘 하고 있을까? 억지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들을 본다. 왜 나는 바라지도 않은 ‘멀쩡한’ 쓰레기들을 끌어안고 사는 것인가. 또한 지구 각지에서 내 입에 들어오기 위해 비행기와 배를 타고 온 식품들도 생각한다. 석유를 태우며 날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고통 받았을까. 철저히 인근에서 생산한 제품을 구매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첫째, 희귀하고 둘째, 비싸다. 한 번은 스윽배송인가 하는 서비스에서 무수한 비닐이 쏟아져 나오기에 깨끗이 모아 반납했더니 “예, 저희가 버려드리겠습니다.”하는 것이다. 재사용이 가능한데 그냥 버리겠다니. 내 손을 거쳐 간 비닐이 거북의 목을 조를까봐 두렵다. 알바트로스의 식도를 틀어막을까봐 겁이 난다. 낙타가 집어삼킬까봐 애가 탄다.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내년부턴 일회용 컵을 모아 어느 카페에라도 갖다 주면 환급금을 주는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라 들었다. 부디 무산되지 않기를 바라며 남이 버린 컵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세제나 화장품을 #용기내어 리필하거나 고체형으로 바꿔 쓰고 있다. 물론 비싸지만 마음은 편하다(월등히 저렴한 제품을 보거든 먼저 성분표를 보자. 십중팔구 ‘팜유’ 함유다. 팜유 생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이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SNS에는 크고 작은 환경단체들이 기업에 요하는 국민 청원을 비롯해 다양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hotpinkdolphins, @greenkorea_united, @greenpeacekorea 등). 배달 회사가 배달 용기를 판매하는 구조, 재활용이 전혀 안 되는 화장품 케이스, ‘생분해’라는 허명虛名을 달고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포장재 등. 사회적 비용은 완전히 생략한 거대 자본이 자연을 초토화시키고 그 책임은 개인이 지고 있다. 북미의 폭염과 서유럽의 홍수, 비인간동물과 식물의 멸종, 담수 고갈로 인한 식수 부족. 어느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누구 하나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1. 비거니즘(Veganism)은 식습관뿐 아니라 모든 생활 패턴에서 동물 착취를 지양하는 철학이므로 환경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박혜림

고양이 한 분을 모시고 사는 비건지향인.
사는 동안 소수자 감수성을 잃지 않고 싶다.

댓글 1

  1. 지구 탄소줄이기 애쓰는 여러 소시민들 느끼는,불편 답답한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줘 좋은뜻 함께하는 마음 외롭고 헛되지않겠지요.. 작고 느리지만 천천히 실행하면서 동참인원 늘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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