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운동 퍼포먼스와 동조, 전염, 바람의 네트워크

기후 운동의 방향은 결코 수직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없으며, 많은 이들이 정동을 주고받는 탈중심적이고 분권적이며 자율적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땅속 균사체와 뿌리의 거대한 연결망처럼 순식간에 분산되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뻗어나가는 리좀과 같은 형태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이종적 조건으로 구성되는 다양체(multiplicity)인데 이것은 다양한 특성들-즉 나이, 성, 통치(reigns)-을 가로질러 그들 간의 연결 (liaisons), 관계(relations)를 수립한다. 그래서 아상블라주의 유일한 단위는 공동 기능하는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공생(symbiosis)이며, 동조(sympathy)이다. 그것은 분파(filiations)라기보다는 동맹(alliances), 합금(alloy)이며, 세습(suc- cessions) 또는 혈통(lines of descent)이 아닌 전염 (contagions), 유행병(epidemics), 바람(wind)이다.”

Deleuze and Parnet, 1987, 69; Muller, 2015, 28에서 재인용
사진: Ole V. Wagner, 2021, 덴마크 아마 펠러 공원을 보호하기 위한 생물들의 행렬 중, 시청 앞에서
사진: Ole V. Wagner, 2021, 덴마크 아마 펠러 공원을 보호하기 위한 생물들의 행렬 중, 시청 앞에서

제인 버넷의 『생동적 물질(Vibrant Matter)』을 읽다가 그녀가 인용하는 들뢰즈의 ‘아상블라주 Assembalge’ 개념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개념을 더 자세히 설명해주는 논문들을 찾아 읽다가, 들뢰즈가 1987년에 인터뷰에서 말했던 위의 문장을 찾았다.

공생, 공조, 동맹, 합금, 전염, 유행병, 그리고 바람…

위의 텍스트를 읽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후 운동 그룹들, 또 그중에 하나로 내가 참여하고 있는 기후 운동 퍼포먼스 콜레티브인 비커밍 스피시스(Becoming Species, Climate Activism Performance Collective)의 성격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2020년부터, 나와 우리 가족은 익스팅션 리벨리언 덴마크(Extinction Rebellion Denmark) 가족들 만남에 참여하였다. 그것을 통해 익스팅션 리벨리언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다와 스틴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소개로 9명의 여성들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기후 운동을 할 때 논쟁적인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시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하자는 뜻으로 모였다. 정치적 실천이 시급한 시대에 예술 + 운동 = 악티비즘을 실행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그룹의 멤버인 린은 말하기도 했다. 그룹명은 비커밍 스피시스, 생물종이 되어가기. 인간 너머 및 다생물종 이론에 영향을 받은 동료들이 이 이름을 제안했다. 우리는 각자가 에너지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성글고 여유롭게 모여 서로에게 퍼포먼스를 위한 워크숍을 열어주는 만남을 이어갔다. 기후와 다생물종 운동과 관련된 시위가 있을 때 간단한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과 계획을 한 뒤, 퍼포먼스로 참여하였다. 우발적인 퍼포먼스를 공공장소에서 하였고, 어떤 완성된 결과물, 대가,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다.

2020년 익스팅션리벨리언 덴마크의 봄 반란 때, 코펜하겐 시내 중심에서 다른 생물종이 되는 것처럼 명상을 하고 움직이며 거리를 행진하였다. 같은 해,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시내에 쇼핑을 나온 사람들과 대화 및 퍼포먼스를 하였다. 2021년부터는 코펜하겐의 거의 유일한 야생 지대인 아마 펠러를 코펜하겐시와 건설회사가 주택지로 개발하려는데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이 모인 시위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퍼포먼스를 행했다. 아마 펠러 야생 지대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하면서부터 다양한 환경단체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브루노 라투르의 ‘사물들의 의회’를 직접 재현하는 듯한 모습도 있었다. 야생 자연공원에 아파트 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의 주축이 되는 시민단체들이 ‘아마 펠러(야생 자연공원의 이름)의 친구들’와 ‘생물종의 대사(Ambassador of Species)’이다. ‘생물종의 대사’그룹은 비커밍 스피시스 ‘생물종 되어가기’와 자매 그룹과도 같은데, 두 그룹의 경우 한 사람마다 자신이 대표하는 생물종이 있다. 그 생물종의 특성에 관해 책으로 읽고, 자연에 나가 관찰하고, 움직임을 따라 하는 등, 과학적인 동시에 시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그 생물종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 운동을 통해 아마 펠러 옆에 세워진 지하철역에서 갑작스러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하고, 환경부 건물 앞과 로비를 주택 건설로 주거지를 잃은 살라만다로 변신한 운동가들이 뒤덮기도 했다. 이는 굉장히 강한 이미지들을 남기며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또 시의회, 정치인, 건설 회사 간부들만이 모여 이 건설의 찬반 회의를 할 때, 일반 시민들과 생물종들이 그 회의에서 제외된 것을 풍자해, 생물종들의 온라인 회의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다.

사진: Ole V. Wagner, 2020, 아들과 함께 한 지하철 퍼포먼스 중
사진: Ole V. Wagner, 2020, 아들과 함께 한 지하철 퍼포먼스 중

이때까지 했던 일련의 퍼포먼스는 마치 운동가들이 퍼포머가 되고 일반 시민들이 관객이 되는 기존의 공연 형식을 공공장소에 가져온 것에 가깝다면, 요즘에는 길가의 행인들마저 참여하는 거대한 퍼포먼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이 시위를 앞두고 몇몇 환경단체와 협업하여 아마 펠러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가면을 만드는 워크숍을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시위 날 그 마스크를 쓰고 아마 팰러에서부터 시청까지 행진하였다. 길가 곳곳에서 시민들이 생물종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 합류하였다. 중세 분위기의 요정 및 인물들을 코스프레하는 그룹이 중간에 합류하기도 했다. 마침내 천여 명의 시민들이 아마 펠러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얼굴 가면을 따라 아마 펠러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시청 앞까지 행진했다. 어떤 생물의 가면을 쓰고 그 생물처럼 행위 하는 인간적 재현은, 과거의 ‘기호는 의미를 완벽히 재현한다’는 본질주의적 태도 때문에 공연 미학적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생물이 살 수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재현 혹은 재현을 하는 과정(그 재현이 결코 완벽할 필요도 없는)은 많은 이들이 정동을 주고받고 동조된 벅찬 순간이었다.

탈중심적, 분권적, 수평적, 자율적인 콜렉티브

비커밍 스피시스 콜렉티브 안에서 각자가 가능한 만큼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나누고 함께 움직인 결과, 우리의 활동은 덴마크 내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퍼져나갔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협업을 제안하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나’라는 사람이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AI가 대신 일을 해주고 있거나, 보이지 않는 집단지성이 존재하여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저절로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연구자나 매체로부터 기후 퍼포먼스나 다생물종 워크숍에 대한 협력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우리의 콘셉트(우리 또한 인간 너머와 다생물종 이론과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와 닮아있는 다생물종이 되는 그룹들의 활동들이 더 보이기 시작했다. 땅속 균사체와 뿌리의 거대한 연결망처럼 순식간에 분산되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뻗어나가는 힘을 경험하였다. 그렇기에 이 글을 시작한 들뢰즈의 문장은 우리의 모습을 예견하여 설명하는 것만 같았다.

익스팅션 리벨리언과 비커밍 스피시스가 어떻게 ‘바람’과 같이 퍼질 수 있었을까? 특히 익스팅션 리벨리언은 어떤 경제적 수익구조 없이, 전 세계의 운동가들과 대중의 참여를 얻으며 뻗어가고 있다. (물론 현재 주목받고 있는 기후 운동들이 백인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익스팅션 리벨리언의 기후 운동가들은 식민주의 시대 이후 백인의 자원과 타 인종에 대한 착취의 역사를 알고 있고 그에 대한 부유한 국가 시민의 의무를 더 강조하고 있다. 비판적 거리 둠과 동시에 이들과 동맹을 맺어야 하지 않을까.) 익스팅션 리벨리언이라는 이름 아래, 중심적인 한 인물이 힘을 축적하고 다수의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다. 단기 목표 혹은 기후 액션에 따라 만들어진 소그룹들이 각자의 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그들은 완전한 자율성을 지녀서, 그룹들끼리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을 지닐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익스팅션 리벨리언의 몇 액션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또 새로운 공연 형식을 실험하고자 하는 공연예술인 입장에서는 이러한 운동들이 더 새로운 형식를 실험하며 대중들을 이 운동의 퍼포머로 포섭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수평적인 구조는 땅속을 횡단하며 자라나는 뿌리인 리좀과 닮았고, 각 부분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기관 없는 신체와도 닮았다. 한 그룹이 쉬고 있더라고 다른 그룹이 무언가를 생성해내며, 끊임없이 지속되는 힘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각 그룹끼리 의견이 상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비커밍 스피시스의 경우 그룹 안의 수평성과 자율성 덕분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물론 너무 많은 의견이 나와서 하나로 의사를 좁힐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멤버들의 동기부여가 떨어져 작업이 진행이 더뎌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각자 동기부여가 생기는 액션이나 워크숍만 참여하기로 했고, 각 프로젝트마다 단기 코디네이터 혹은 프로젝트의 리더를 정하게 되었다. 누구든 리더가 될 수 있고, 과정 중에 리더가 바뀔 수도 있다. 하나의 그룹이 계속 동기와 의지를 가지고 유지되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영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3년간은 그룹 안의 사람들이 가진 아이디어와 재능에 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배우며 이 그룹을 지속하고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협업의 아이디어가 샘솟고 있다. 우리는 누구든 우리의 활동에 영감을 받아 또 다른 비커밍스피시스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까지도 우리의 아이디어에 전염되어 여러분들의 비커밍 스피시스를 만들기를 소망한다.

콜렉티브의 지속성과 우발적인 동맹

새로운 콜렉티브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들-운동가들, 예술가들-은 공통된 문제를 마주한다. 이 콜렉티브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느냐, 영리가 존재하지 않았어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신념만으로 이러한 거대한 국제적 콜렉티브가 생성될 수 있었는데, 이것의 지속성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라는 공통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사실 익스팅션 리벨리언과 비커밍 스피시스의 활동에 참여하는 나와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프리랜서 작가이고 덴마크의 복지 체제에서 간간이 실업급여의 혜택을 보았다. 정부의 사회적 분배 기능을 통한 최소한의 경제적 수입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 운동을 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실업급여 형식의 복지는 국민을 국가의 잠재적 인적자원으로 계산하기에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구상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모두에게 기본임금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 공감한다) 사회복지의 분배적 기능을 통해 사라지는 다른 생물종의 목소리를 대신 낼 수 있는 시간을 벌고, 그 실천은 이 사회의 구석구석 공공장소의 퍼포먼스로,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으로, 다양한 언어와 움직임으로 침투한다. 우리는 국가의 복지 제도가 만들어 놓은 틈 속에 존재하지만, 그 국가를 배반하듯, 국가의 잘못된 선택에 저항하는 기후 운동을 벌인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예로는, 비커밍 스피시스는 코펜하겐시가 감행하려는 아마 펠러의 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인데, 그 코펜하겐 시의 소속 기관 중 하나인 이슬란드 브루게(Island Brugge)의 문화의 집(Kulturhuset)에서 비커밍 스피시스의 퍼포먼스와 워크숍, 스피시스 앰버서더의 전시를 의뢰하였다. 또 최근 오스트리아에서는 환경부가 교통 건설부의 새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환경과 기후 문제 해결에 어긋난다고 무효로 만들었다고 한다. 같은 몸을 가진 정부가 정부에 의해서 부정된 상황이랄까. 정부 기관과 관료라는 안정화되고 범주화된 것이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던 존재들과의 우발적인 만남을 통해 생성될 수 있는 것. 공무원과 운동가가 협업을 하는 배치가 형성된 것. 이것이 우발적인 새로운 아상블라주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우발적인 만남을 더 만들어달라고, 정부를 향해, 기업을 향해, 인프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각종 기관을 향해 요구하는 것을 상상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말할 수 있는 공간, 교육, 문화 활동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발적 배치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하나의 커다란 주름이 잡히듯이, 역으로 정부와 기업의 한 제도로 편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다른 그들과도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의 약탈적 기업을 적으로 싸우기보다 동맹을 맺어, 그들 안에 균열이 생기도록, 점점 다른 모습이 되도록 오염시키고, 변화시키기.

이 글은 서영란의 브런치(https://brunch.co.kr/@rosaria1110)에 올렸던 글을 재정리한 글입니다.

서영란

서영란은 서울과 코펜하겐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리서처, 기후운동가이다. 한국에서는 샤머니즘, 전통춤, 여신신화, 아시아의 근대화에 대하여 인류학적 조사에 기반한 다원적인 무용공연을 만들어왔다. 덴마크로 이주한 뒤 원주민의 지식, 인간 너머, 다생물종 운동에 영향을 받은 기후 운동 네트워크의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비커밍 스피시스' 기후 운동 퍼포먼스 그룹의 멤버로, ‘센싱 올드 에이지’ 인류학 프로젝트의 아티스트 리서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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