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자연과 정서적 유대 회복하기 – 텃밭생활이 주는 기쁨과 만족

도심에서 식물과 가까워질 방법은 텃밭을 가꾸는 것이다. 식물을 제대로 키우려면 애정과 관심은 필수지만 텃밭 생활은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즐거움도 선사한다. 신선한 과실과 향기는 덤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남산이라는 야트막한 산과 태화강 옆 삼호철새지구 대나무숲 사이에 끼어 있는 마을이다. 동네 앞 대나무숲은 태화강국가정원 삼호지구로 철새보호구역이다. 보호구역이라 대나무숲도 울창하고 자연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좋다. 건너편 동네에 살다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겨울이면 떼까마귀, 갈까마귀가 수만 마리 월동하고 여름이면 수천에 가까운 백로들이 번식하는 엄청난 대숲과 전망 좋은 태화강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녹색 식물과 자연을 그리워하기에 도심에서 나를 품어줄 만한 곳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곳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옥상이 있는 전형적인 무지개떡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건너편 동네에 살 때 원룸 건축물이 주는 외부 환경과 단절이 얼마나 사람 에너지를 고갈시키는지 경험한 터라 같은 방 2개 부엌이 딸린 이 집을 택했다. 옆 동네는 도시재생사업이 완료된 동네로 오래전 공단 조성으로 이주한 주민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 1층에 사시는 주인집 할머니 밭을 일구어 장에 내다 파시는데, 이따금 푸성귀를 가져다주신다.

새벽에 깨어나면 바깥이 궁금하다. 가까이 산이 있으니 산새들의 지저귐도 요란한 편이다.

한여름이 가까워져 오니 벌써 바깥은 훤하다. 현관문을 열면 펼쳐지는 2층 난간 통로에 빼곡히 찬 식물 화분을 둘러본다. 이제 한 40개 정도는 넘어섰다. 큰 화분 작은 화분 모종판 등 저마다 다양한 크기를 가지고 풀꽃이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것저것 눈을 맞춰 상태를 살핀다. 지난가을 삽목한 고무나무는 이제 막 작은 순이 3~4개 올라오고 있다. 폭염이 시작되자 이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박하는 볼 때마다 잎들이 푹 쳐져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잘 자라기는 하지만 물을 엄청 좋아한다. 식사 후에 이파리 하나를 따서 씹으면 멘톨 향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피부가 짓무르거나 가려울 때는 으깨어 문지르면 금세 가라앉는다. 물만 주는데도 시원한 멘톨 성분을 어디서 합성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호박은 커다란 잎을 먹으려고 키운다. 된장찌개에 넣을 재료로 딱 적당한데, 이제 제법 자라 나왔다. 사실 이 호박은 거름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버린 거름더미에서 저절로 나온 것이다. 아마도 인류는 쓰레기장에서 경작에 대한 발상을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지렁이를 많이 든 스티로폼 박스에서 자라 그런지 줄기가 쭉쭉 뻗어나간다.

초피나무에 붙은 호랑나비 애벌레는 이제 제법 자라 먹는 양이 많아졌다. 2층 베란다 난간에 나와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서 뿌려 준다. 가끔 미원이나 미량요소가 든 복합비료를 타서 주기도 한다. 화분이라 물을 자주 주고 돌봐야 한계는 있지만 잠시 기분 전환하기엔 너무도 만족스러운 정원이다.

매일 신선한 딸기는 몇 개 따먹는 즐거움은 몸과 마음에 생기를 줬다. 출처: 이동고
매일 신선한 딸기는 몇 개 따먹는 즐거움은 몸과 마음에 생기를 줬다. 출처: 이동고

이제 물조루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주인집 할머니가 채종을 위해 대파 열매를 볕에 늘어놓았다. 작년에 심은 딸기가 무성해서 올해는 딸기가 제법 달렸었다. 반쯤 익었지만 새 등 경쟁자들이 언제 와서 물고 갈지 모르니 바로 따먹는다. 빈속에 먹는 딸기는 파는 것보다 단맛은 덜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고추 모종은 4개를 심었는데 지지대를 세워줬더니 이제 고추가 여러 개 달려 자란다. 무성한 상춧잎 몇 개를 따서 또 씹어 먹는다. 약간 쓰지만 신선한 맛이 느껴진다. 하루를 식물과 만나는 것으로 하다 보면 식물의 생기가 나에게도 느껴진다.

식물은 대부분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것이지만 저마다 이력과 추억이 있다.

반 고흐와 평생 후원자이자 영혼의 교류자였던 동생 네오와 주고받은 편지글을 보다가 ‘아몬드 나무’에 매료되어 사보니 우리나라 복사꽃과 유사한 식물이었다. 화분으로 한 1~2년 지켜보다가 심을 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생각보다 빨리 자라는 나무이니. 그림처럼 꽃이 핀 것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간혹 여행지에서 잘라 온 가지나 씨앗을 심은 화분도 있다. 목포 항구를 돌아보다 잘라온 협죽도는 뿌리를 내려 큰형님 밭에다가 기증했다. 며칠 전에 가보니 벌써 붉은 꽃을 매달았다.

꺾꽂이로 키워낸 국화와 섬쑥부쟁이, 최근 마을 근처 철새홍보관 화단에 기증해 심었다. 출처: 이동고
꺾꽂이로 키워낸 국화와 섬쑥부쟁이, 최근 마을 근처 철새홍보관 화단에 기증해 심었다. 출처: 이동고

해안가 걷기를 하다 화단에 소복이 난 초피나무 모종을 발견하고는 여러 그루를 뽑아왔다. 아마도 횟집 양념으로 쓰고 버린 씨앗에서 싹이 튼 모양이다. 그 나무에 호랑나비가 언제 알을 낳았는지, 애벌레 두 마리가 자라고 있다. 초피나무도 여러 그루로 넉넉한 편이니 관찰해 보려 한다. 간간이 잎을 쓰다듬어 향기를 맡는다. 의외로 좋은 토종 허브식물이다.

몇 사람에게 화분을 선물했다. 화분은 아무에게나 선물하진 않는다. 애지중지 키운 식물이기에 그나마 죽이지 않고 돌볼 만한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준다.

이사 온 다음 해인 작년에 옥상에 천으로 만든 원형화단으로 옥상 텃밭을 준비했다. 작년은 감염병으로 바깥출입도 뜸했고 밀접 접촉자로 2주간 격리되는 지루함 속에서 옥상 텃밭은 탈출구였다. 특히 식물원을 떠나온 지도 오래된지라 ‘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 글쓰기에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식물과 더 살가운 접촉이 필요했다. 어떤 식물을 잘 이해하려면 키워보는 방법이 가장 좋다. 궁금한 식물이 이것저것 많다 보니 식물 화분도 하나둘 늘어난다. 주변에 심을 땅이 생기면 언제든지 레옹의 화분처럼 제대로 심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동고

물을 떠나 살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자연을 사랑한다. 특히 식물을 관찰하고 키우기를 좋아한다. 식물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을 최근 발간했다. 식물을 매개로 한 자연성 회복과 생태순환적인 성숙한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도시에서 생태순환 가능한 삶을 모색하고 자생식물로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조성, 식물의 가치와 존귀함을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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