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 출간] 함께 사는 집의 비밀번호가 가물거릴 때 그 비번을 알려 주는

이 책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를 잘 아는 친구처럼, 우리 시대의 공동 과제인 환경과 경제와 관계의 어그러진 상태를 잘 설명했고, 이에 대한 인식과 대안적인 실천들의 최신 흐름을 알려 주었다. 어떤 원고는 오래 묵은 질문을 기억나게 해서 치유해 주었다.

생태적지혜연구소 기획,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알렙, 2026)

5월 마지막 주말 오후, 생태적 지혜연구소에서 이 책의 추천사를 제안해 왔다.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산선)에서 7월 중순에 큰 행사가 있어서 다른 일들은 절제해야 한다고 내심 다짐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제안을 받기로 마음먹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꼭 필요한 공부가 될 거라는 강인한 어떤 예감 때문이었다. 최근에 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모금 숫자에 코를 박고 있다 보니 수개월간 하늘을 잘 보지 못했다. 작년에 꾸준히 연대했던 해고 노동자들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도 발걸음이 자꾸 미뤄지고 있었다. 기후와 불평등이라는 우리 시대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오면 현관의 비밀번호가 가물거리듯, ‘복합 위기’라는 공통의 현주소도 가물거리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이 책이 내게 왔다.

이 책은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를 잘 아는 친구처럼, 우리 시대의 공동 과제인 환경과 경제와 관계의 어그러진 상태를 잘 설명했고, 이에 대한 인식과 대안적인 실천들의 최신 흐름을 알려 주었다. 어떤 원고는 오래 묵은 질문을 기억나게 해서 치유해 주었다.

개념어 「공동 주거」(장종민)에는 새로운 시도와 경험은 큰 의미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운 실험이 업무가 되고 공동 주거 특유의 갈등과 균열이 생기며 막을 내리게 된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막을 내린 그것이 새로운 시도의 토양이 되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장종민은 말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모종의 치유를 경험했다. 그동안 협동조합을 하며 겪은 쓰라린 경험, 갈등과 분노와 아쉬움과 모호한 부분들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 삼았던 그들의 운영 방식이 어설픈 측면도 있었지만 대단한 시도였다는 것, 남은 우리의 보완 노력도 의미가 크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공동체」(이태영)에서 등장하는 ‘공동체가 가진 수만 가지 덕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과 배제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솔직해서 퍽 반가웠다. 「횡단성」(최소연)에 등장하는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비유는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외롭고 추워서 가까이 가면 서로를 찌르고, 떨어지면 춥고 외로운 상태가 되는 이 비유는 인간관계의 딜레마를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을까 하며 나도 곧잘 인용하곤 했었다. 그러나 관계가 참 어렵다는 그 결론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는데, 이 글에서는 이 관계의 뾰족한 찌름과 외로움을 오고 가며 ‘적당한 거리’를 만들 수 있다고, 그리고 이것을 ‘횡단성’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속이 확 뚫리는 경험을 했다.

또 다른 개념어 「호혜」(한영섭)에서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주는 의무’, ‘받는 의무’, ‘되돌리는 의무’라는 호혜의 체계가 시장 교환처럼 익명적이고 즉각적인 거래가 아니라,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강화하는 데 최우선 목적을 두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읽으면서 조용하고 인자하셨던 최무선 할머니에게서 들은 경구가 떠올랐다. “갈라 먹으면 감사(監司) 되고, 얻어먹으면 어사(御史) 된다.” 갈라 먹는 사람이 감사가 되는 것은 알겠는데, 얻어먹는데 거지가 아니고 어사가 된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린 나이에도 퍽 좋은 뜻으로 들렸었다. 이 책을 읽으며 호혜란 나눠 먹으면서도 상대를 억누르지 않고, 얻어먹으면서도 꿀리지 않고 떳떳하며 자유로운 관계의 형태일 것이라는 우리 할머니의 철학을 떠올릴 수 있어서 반가웠다.

「국지적 절대성」(이윤경)에서 필자는 오랜만에 서랍을 정리하며 발견하는 기쁨을 1박 2일 여행에 비유했다. 국지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그 자체로 충만한 절대적 강렬함을 경험하는 상태를 질 들뢰즈는 국지적 절대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국지적 절대성은 ‘제자리에서 여행하기’와 같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20대에 경험한 두 달간의 칩거와 내적 침묵이 선사했던 놀라운 해방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작은 방에서 침묵 속에 이뤄진 이 여행은 많은 것을 보게 해 주고 느끼게 해 주었다. 내 고삐를 발견하고, 젖은 빨래 같은 상처를 꺼내어 햇볕에 말리듯 말리는 시간이었다. 이것에 ‘제자리에서 여행하기’라는 이름을 다시 붙여 볼 수 있게 되었다. 외국 여행이 최고의 위로와 희망이 되는 시대에, 멀리 가지 않아도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그 장소에서의 반복적인 관계들 안에서 무수한 생성과 탈주, 절대적인 사유와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제자리에서의 여행’은 퍽 멋진 것이다.

‘더 가까이, 더 작게, 더 느리게’ 살아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RPA Studio

초월적 중심이나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특정 장소와 관계 속에서 충만한 삶, ‘더 멀리, 더 크게, 더 빠르게’의 방식에서 벗어나 ‘더 가까이, 더 작게, 더 느리게’ 살아가는 방식은 현대인의 삶에 꼭 필요한 관점이자 삶의 태도이며, 문명 전환의 방식이 될 것이다.

처음에 ‘개념어 사전’이라고 해서 좀 딱딱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50여 명의 다양한 저자가 참여하여 사전 특유의 지루함을 찾아볼 수 없었고 퍽 유익하며 말랑하기까지 했다. 신승철 소장 3주기가 되는 올해, 애초에는 『신승철 개념어 사전』으로 내려다가 조합원들이 대규모로 함께하는 책으로 바꾸었다고 들었는데 누구보다 신승철 소장이 퍽 기뻐할 일이다 싶다. 올해 3주기 추모 모임도 산선 강당에서 할 예정인데 1주기 추모 모임도 여기서 했다. 이때 ‘연대란 나와 다른 생각을 환대하는 것’이란 신승철 소장의 문장을 읽으며 참으로 놀라웠다. 생각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조직되고 연합하는 것이 연대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생각을 환대하는 것이 연대라고 하니, 이것은 기존 관념의 전복이자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지금도 탐구 과제로 내게 남아 있다. 신승철 소장의 첫인상은 두목처럼, 바위처럼 보였었는데, 알수록 세상 세심하고 다정하며 대장 노릇 하지 않았던 그 어려운 경지를 보여준 분이란 것을 알게 된다.

2010년대 초반부터 신승철, 이윤경 선생 두 분이 산선에 오셔서 생협의 조합원들과 책상을 접고 펴며 철학 수업을 할 때부터 이분들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 이 학습 공동체가 문래동 별난에 ‘생태적지혜연구소’를 열고 다양한 조합원들이 모여 현재는 대방동에 자리를 잡아 부드럽고 강인한 철학함의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공동체는 지금 생태 민주주의의 모형으로 성장하며 떡갈나무 혁명을 명랑하게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이 여정에서 나왔다.

도토리를 숨겨 두고도 연연하지 않고 떡갈나무 숲을 이루는 작고 날쌔고 강인한 다람쥐의 길을 알고 싶은가?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할 그 집(오이코스)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알고 싶은가? 이 책을 열어 보길 추천한다.

손은정(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손은정

저는 매일 아침 전철 안에서 성서를 읽어요. 마음에 닿은 한 구절을 생활의 등불로 삼아요. 최근 등불로 삼고 있는 것은 '새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늘 있듯이'(사66:22)
서른 살부터 지금까지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면서 노동과 협동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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