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⑭ 찐 계란과 삶은 고구마를 곁들인 마을학교

마을회관에서 ‘경로당 찾아가는 스마트교실’ 마을학교를 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휴대폰 끄고 켜기부터 시작해서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사이다같이 시원한 배움이 있는 마을학교입니다.

요거 누르셔야 와이파이 연결이 된 거예요.

와~따! 난 모르겠다. 와이파이가 뭔동 모르겠네.

와이파이는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쓸 때 추가요금 안 내시는 거예요.

내사 아~들(아이들)이 요금 내니까 그냥 할란다.

와이파이 연결해야 요금이 더 안 나가는데? 자녀분 돈 더 내도 괜찮아요?

안 되지!!!

그럼 연결하셔야 돼요.

그래그래. 그라마 해야지. 꽃 누르고 요 글자가서 파래지게 눌르라 했지?

네. 잘 하셨어요.

(설정의 톱니바퀴 모양을 꽃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다른 분은 국화빵이라고 하셨어요.)

경로당 찾아가는 스마트 교실

스마트 교실이 시작됩니다 (2021. 8. 18.)
스마트 교실이 시작됩니다 (2021. 8. 18.)

비조마을회관에서 스마트 교실을 열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쓰지만 전화만 해서, 사진도 보내고 싶고 카톡도 하고 싶은데 왕초보를 가르쳐주는 곳은 잘 없어요. 자가용을 타면 10분 거리인 면소재지 주민자치센터에 다니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배우려고 한나절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바쁜 농사철에는 결석도 하게 되니 배우러 갈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켜는 것부터 시작해서 박사님은 친절하고 천천히 알려주시고, 도우미로 온 청년들도 어머니, 할머니하고 다정하게 부르며 반복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강사소개를 하며 이 박사님은 율림마을 사신다고 하니 어르신들의 호감도는 급상승합니다. 지연은 중요해요.

대부분 70대 어르신들이라 아주아주 기초부터 알려달라고 하십니다. 천천히 조금씩 반복하면 된다고 박사님은 용기를 줍니다.

사랑해

왕초보는 아니지만 수업 분위기를 위해 빠짐없이 나오신 비조마을 노인회 회장님 (2021. 10. 2.) 사진 제공 : 김진희
왕초보는 아니지만 수업 분위기를 위해 빠짐없이 나오신 비조마을 노인회 회장님 (2021. 10. 2.) 사진 제공 : 김진희

한여름과 추석을 지나 늦더위가 물러가지 않은 10월 초에 다시 스마트 교실을 열었습니다. 연휴가 있어 이틀 연달아 4번을 더 공부했지요.

와이파이 설정, 배경화면 사진 바꾸는 법, 문자 보내기, 사진 보내기까지 배우니 휴대폰에 커다랗게 ‘임영웅~’하고 나오는 건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십니다. 전광판 앱을 깔고 글씨를 써봅니다. ‘사랑해♡’ 화면에 글씨가 흘러나옵니다.

근데 이거 어디 쓰노?

밤에 콘서트 가서 손에 들고 흔들죠.

요새 콘서트를 하나?

우리끼리 밤만디 콘서트라도 해야 되나 잠깐 생각해봅니다.

드디어 카톡 사용법을 배우고 ‘칠조 스마트폰 교실’ 단체 채팅방도 만들었습니다. 맨 처음 보내는 톡은 ‘선생님 고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재미있게 놀자’입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모르면 옛날 어른들이 한글 못 배워 못 읽은 사람들이 답답했던 거나 매한가지라며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 심정을 알겠다 하시며 안 잊어버리게 자꾸 해봐야지 하십니다.

비조마을회관 2층에서 열린 스마트 교실을 마치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시는 어르신들. (2021. 10. 10.) 사진 제공 : 김진희
비조마을회관 2층에서 열린 스마트 교실을 마치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시는 어르신들. (2021. 10. 10.) 사진 제공 : 김진희

수업을 마치고 어르신들께 ‘안녕히 가세요’ 하며 인사를 하고 방충망문을 열어드리고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입니다. 다리도 불편하시고 허리도 불편하셔서 계단 내려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가고 계십니다. 수업하는 곳이 1층 경로당이면 좋았을 텐데 2층에 빔프로젝터가 있어서 큰 화면을 보고 따라 해야 하니 수고스럽더라도 2층에 오시라고 했는데 막상 보고 있으니 애가 쓰입니다.

마지막 수업 날 찐 계란과 삶은 고구마를 가지고 일찌감치 오셔서 건네주십니다. 여기에 사이다만 있으면 소풍이지요. 소풍 같고 사이다같이 시원한 배움의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정해진 5번의 수업을 마치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어르신들은 박사님과 도우미 청년들에게 쉬는 날인데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고 강사진은 어르신들이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배웠다고 했습니다.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어르신들 모습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말입니다. 청년들은 봉사할 마음이 있다 하고 어르신들은 농한기에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는 가을걷이와 겨울맞이 준비를 마치고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두동마을학교 ‘경로당 찾아가는 스마트 교실’은 겨울에 다시 열겠습니다.

두동마을학교는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 울산군청의 지원사업입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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