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관계 중심의 생활협동조합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물품 거래는 사람과 사람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물신주의 사회에서 거래는 사람과 사람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생협은 어떻게 시장논리를 극복하고 관계 중심으로 매장 운영이 가능할지 생각해본다.

얼마 전 한살림 매장 앞에서 토박이 작물을 생산하는 생산자들과 무포장 장터를 열었다. 기후위기로 불어 닥칠지 모르는 식량난에 대응하여 우리 씨앗을 지키는 생산자들과 환경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합원간의 만남이었다. 면대면 대화의 장이 열린 것이다. 일회성 행사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평소에 잘 보지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생산자는 조합원에게 비닐과 종이를 쓰지 않고 포장해 주기 위해 짚을 엮어서 묶어주고 조합원은 빈 용기를 가져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물품을 담는 동안 농사 이야기도 나누고 요리법도 알려주면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 한 번의 행사를 위하여 생산자들은 바쁜 일손을 놓고 먼 길을 달려와 시간을 내주었다.

대화가 오가는 모습이 참 의미 있었지만 자주 열 수 없는 일회성 행사이기에 한계가 있다. ‘장(場)’은 사람들이 모여서 필요한 것을 사고팔면서 관계를 맺는 공간이다. 소비자는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생산자는 노동의 대가로 얻은 물품을 팔아 생활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생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직거래를 할 수는 없으니 평소에는 매장이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한다. 중간유통 마진을 남기려는 일반 매장과 달리 생협 매장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고리 역할이 주가 된다.

물품에는 사용 가치뿐만 아니라 생산되기까지 수많은 노동력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다. 물품을 단순하게 값으로만 바라본다면 물품에 내포된 가치를 떠올리기 어렵다. 가격경쟁만 있는 자본주의 시장이 그렇다. 일반 매장에서 보기 좋게 진열돼 있는 상품을 집어 들고 빠르게 계산하는 동안 누구와도 대화가 필요치 않다. 그저 생산자에서 매장노동자를 거쳐 소비자에게 상품만 기계적으로 이동한다. 생협의 매장도 외관상 크게 달라 보이지 않다. 물론 가치 있는 물품을 공급하고 조합원과 가까운 매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매장활동가들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생협에 물품이 다양해지고 편의성이 강조될수록 매장은 너무 바쁘고 복잡하다. 일부 조합원은 필요한 상품 구입처의 의미 이상을 두지 않기도 한다. 이런 생협 매장 상황은 누구의 탓일까?

조합원이 생협에서 물품을 이용하기만 해도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품 하나하나에 가치를 담아내고 안전성을 생각하는 생산과정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생협에서는 가치 있는 물품을 조합원이 안심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급망을 개선하려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생협은 조합원의 참여와 협동으로 이루어진다. 생협의 조합원은 백화점이나 마트의 고객과는 달라야 한다. 생협이 조합원의 이용편의성에만 치중하다가는 시장경쟁의 덫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생산과 유통과정에 대한 논의에 조합원이 참여하여 생협의 관계성을 살리고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며 최선의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생협이 지향하는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여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 by Polina Tankilevitch 출처: www.pexels.com/ko-kr/photo/3735170/
생협이 지향하는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여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
사진 출처 : Polina Tankilevitch

조합원은 대부분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생협에 가입한다. 생협 매장을 이용하면서 내 주변이 건강해야 나와 가족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는 걸 차츰 깨닫는다. 물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학비료와 농약을 배제한 살아있는 땅에 부지런한 농부의 땀방울이 떨어져야 건강한 1차 생산물이 나오고, 그 1차 생산물에 유해한 첨가물을 빼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안전한 가공품이 생산되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의 결과로 최고의 상품이 아닌 최선의 물품이 탄생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품이 조합원에게 전해지기까지 유통과정에서 보이지 않던 노동이 보이기 시작한다. 귀하게 생산된 물품을 이웃과 함께 이용해야 생산자가 꾸준하게 공급할 수 있고 환경도 사회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무조건 자신만을 위한 최고의 물품, 최상의 편리함을 고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조합원이 이 모든 상황을 모르는 채 단순히 매장만 이용한다면 생협이 지향하는 가치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조합원이 단순히 편의성과 개인의 욕구충족에 머무르지 않고 생협이 지향하는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여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 지금 대부분 생협은 조합원의 활동 참여와 매장 이용이 분리되어 있다. 이런 구조로는 앙상한 관계망에서 소통과 참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매장에서 물품의 구입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조합원이 든든하게 생협을 구성할 것이다. 당연히 매장 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합원과 일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여유와 가치를 잘 전달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되려면 지금과 같이 판매만 하기도 바쁜 최소한의 인원으로는 어렵다. 물론 생협의 구조상 인건비가 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는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고전하던 매출이 많이 회복되어 생존을 고민하는 위기는 일단 넘어갔다. 코로나19 이전 생존의 위기 속에 시장경제의 딜레마에 빠졌다면 이제는 성장논리에서 벗어나 구조의 재편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다.

위기의 시대 생협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더욱 커지는데 언제까지나 조합원 편의성만 따지면서 시장과 경쟁할 것인가? 매장 활동가의 충원과 역량강화가 당장 어렵다면 조합원과 조합원이 만날 수 있는 조합원 노동을 도입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 볼 일이다. 예를 들면 제로웨이스트에 관심 있는 조합원이 매장의 코너를 작게 시작하여 관리하면서 이용 조합원과 소통을 하거나, 일인가족을 위한 소분을 무포장으로 하여 용기 지참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다. 고령자나 아기엄마 등 돌봄이 필요한 경우 매장을 거점으로 소통도 가능하겠다. 또한 중앙 집중적인 관리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색에 맞는 자치적인 운영으로 지역주민 사이에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일부라도 지역이 자율권을 가지고 조합원 중심의 지역 활동을 펼친다면 조합원은 더이상 편의성만을 요구하는 손님이 아니라 생협의 주인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판매하는 매장(賣場)에서 관계하는 매장(媒場)으로 다시 설 것을 고민할 때다.

꼼지

학교 다닐 때 꼼지락거린다고 붙은 별명인데 남편이 30년째 부르는 애칭이 되었음. 지금도 여전히 꼼지락거리며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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