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토지에 보유세를,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헨리조지와 지대개혁』을 읽고

『진보와 빈곤』에서 헨리조지는 진보 속의 빈곤이 지대의 급속한 상승에서 초래된다고 보았다. 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지대를 지주가 전유하지 못하도록, 세금으로 환수하여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지대 조세제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안정적인 토지거래가 이루어지고 필요한 만큼 구매하고 이용한 만큼 세금을 내고 그 결과로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길, 200년 전 헨리조지가 꿈꿨던 그 미래를 실현할 수는 없을까?

1. 부유세는 조세저항의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다

2002년 대선, 권영길 대통령후보 핵심공약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부유세 공약과 ‘무상의료, 무상교육’등 파격적 복지공약이었다. 그 공약들은 북유럽 등 복지국가를 실현한 국가들이 이미 현실화한 정책들이라 국민들에게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1987년만큼의 열정으로 2002년 거리에서, 지역에서 부유세 공약을 연설로, 설명으로 지역주민을 설득하고자 했던 것은 부유세 공약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3% 득표율에 그쳤지만 그 당시 민주노동당이 내건 공약은 정책선거의 가능성을 열었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장을 펼칠 핵심의제가 되었으며 2004년 원내진출을 현실화한 튼실한 기반이 되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부유세 공약은 과표기준 10억과 세율 2%1로 이후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보다 강력한 기준이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핵심공약 중 하나로 부유세 도입을 내건 바 있다. 출처 : KBS뉴스 2002년 10월 6일 보도. “권영길 후보 토론, 부유세 등 현실성 검증”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4948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핵심공약 중 하나로 부유세 도입을 내건 바 있다. – KBS뉴스 2002년 10월 6일 보도. “권영길 후보 토론, 부유세 등 현실성 검증”
출처 : KBS

당시 민주노동당이 내건 공약들은 실제 득표율보다 훨씬 높은 지지를 얻었고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많은 부분이 현실화되었다. 2005년 제정된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의 목적은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하여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여 부동산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목적과 대동소이, 기준만 하향조정한 것이었다.

노무현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은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꼽을 만하지만, ‘세금폭탄론’을 앞세운 조중동 보수 언론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문제이지만, 정책의 내용이나 추진 방법에도 실책이 있었다. 나대지, 영업용 건물, 주택 가운데 주택의 보유세 부담을 단기간에 급격히 끌어올리고, 쓸데없이 대통령 대 강남의 대결구도를 연상시키는 발언을 해서 강남을 비롯한 버블세븐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야기했다.2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부자조세 강화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서민에게 복지로 돌아가는 것 또한 너무나 올바른 것이나, 중산층 이상은 물론 자산이 있는 국민 대다수가 조세저항에 나설 수 있는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보유세 과세 비율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소수에 국한되어 있음에도 전 국민적 조세저항과 심지어 권력 다툼에 이용될 수밖에 없는 보유세 정책이 이대로 좋은지 함께 고민해 볼 문제이다.

2. 헨리조지의 지대 조세제(Land value taxation)와 토지공개념

『진보와 빈곤』에서 헨리조지는 진보 속의 빈곤이 지대의 급속한 상승에서 초래된다고 보았다. 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지대를 지주가 전유하지 못하도록, 세금으로 환수하여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지대 조세제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헨리조지는 ‘토지가치세가 토지이용자에게 배타적 이용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평등지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3이라 제시한다.

1800년대 헨리조지 생전의 시대는 자원고갈이나 환경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터라 그가 주장한 범주는 주로 토지에 국한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보다 광물, 석유, 천연 동식물, 오존층 등 ‘자연공개념’의 범주로 헨리조지 사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김윤상 외 지음 『『헨리조지와 지대개혁』』(경북대학교출판부, 2018)
김윤상 외 지음 『『헨리조지와 지대개혁』』(경북대학교출판부, 2018)

이 중 토지공개념은 많은 나라들에서 헌법과 법률에 명시하기도 하고 그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어왔으나, 올바른 조세제도로 이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 122조에서는 ‘국가는 토지소유권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법에서도 ‘개인의 소유권리라도 권리는 남용하지 못하며, 개인의 소유권이라도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등 토지공개념을 현실화한 법들이 있었으나 재산권 침해 등 위헌 논란이 있었고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토지공개념은 소유와 불평등에 대한 일부 제약을 담아냈을 뿐 토지를 공유지 개념으로, 토지공개념을 제대로 담아낸 현실적인 제도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종부세 역시 부자조세 개념으로 토지공개념을 근본적으로 실현한 법은 아니라는 것과 불필요한 조세저항 논란을 야기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3. 진보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올린다?

요즘은 내 주변 사람들 중에도 10억이 훨씬 넘는 아파트 소유자들이 심심치 않게 있고 이들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현 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한결같이 이야기 한다. ‘진보정권이 창출되면 부동산이 오른다’는 속설도 떠돌고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유동성 강화로 전 세계 부동산이 올랐다는 옹호론 따위에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공급정책 없이 규제만 앞섰다.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규제정책이었다’는 등의 비판도 맥락을 모르겠고 시원치가 않다.

노무현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근본적 실책은 ‘토지공개념’을 현실화 하지 않은 채, 시장의 흐름도 간파하지 못한 불완전한 규제책들을 내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정한 진보를 구현하려 했다면, 대안경제로 ‘토지공개념’ 더 나아가 ‘자연공개념’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대안들과, 그것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법, 제도를 성공시킬 수 있는 과정에 대한 고민까지 제시될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4. 국토보유세로 기본소득을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 가진 진보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부자과세 전반은 부동산, 유동자산, 기타 모든 소득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토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공유지 개념으로 ‘국토보유세’를 주창한 이 책의 결론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소득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일명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됨에 따라 노동자의 지위는 점점 양극화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코로나19로 기본소득 제도를 부분적으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 같아 반갑다. 그것을 과감하게 주장하고 실천해준 정치인들을 칭찬하고 싶다. 기본소득이 정책적 대안으로 논의되고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공유경제’ ‘공유지’ ‘토지공개념’ 등 전국민적 공유경제에 대한 논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본소득의 대안으로 조세 전반을 검토해 봐야하겠으나, 이 책은 누구나 토지를 소유하면 일정한 비율을 세금으로 내고 전국민이 그 조세소득을 기본소득으로 나눠가질 수 있는 제도를 제안한다.

‘사람이 만든 자본과는 달리, 토지, 자원자원, 환경 등은 천부자원으로서 사람의 힘으로 생산할 수 없기에 공유자산으로 취급하여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옳다’4

이 책은 현행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국토보유세를 신설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강화는 과세 대상인원이 너무 적고 논란만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국토보유세 부과로 세수 순증분 전액은 1/N로 모든 국민에게 토지배당으로 나누어주면 국민 1인당 약 3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모형들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소득모형1에서는 전체 가구수의 96%가 순수혜 대상이 되고 4%만 순부담 가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모형1은 세수가 적어 그것만 가지고 의미있는 기본소득금액을 창출하기 어려운 한계를 갖고 있다. 이에 ‘토지세 환경세 시민세 연계형’ 기본소득모형2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모델이 궁금하신 독자들께는 일독을 권한다.

최근 LH땅투기 사건을 보며 전국민이 느끼는 상실감이 몹시 클 것 같다. 한 편 씁쓸한 것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했던 남한의 ‘토지개혁’이래 얼마나 많은 공공기관 혹은 권력자들의 ‘토지사기’가 있었을지 불을 보듯 뻔한 과거의 비리행적들이 눈에 그려진다는 것이다. 올바른 제도가 있었더라면 이런 투기나 사기들이 예방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음 대선의 주요의제로 ‘국토보유세로 기본소득을’ 다뤘으면 한다. 이에 대해 전국민이 논의하고 극심한 불평등의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안정적인 토지거래가 이루어지고 필요한 만큼 구매하고 이용한 만큼 세금을 내고 그 결과로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길, 200년 전 헨리조지가 꿈꿨던 그 미래를 다음 대선에서 실현할 수는 없을까?


  1.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정책보고서 ‘대안경제’편 165P

  2. 『헨리조지와 지대개혁』 제 12장 223P

  3. 『헨리조지와 지대개혁』 제1부 헨리조지 사상의 이해 28P

  4. 헨리조지의 지대개혁 제3부 지대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홍승하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동자서민의 금융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다람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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