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비건] ② 10년 차 아마추어 비건

사람들은 각자의 다양한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채식을 시작합니다. 수많은 이유 중 저는 어떤 이유에 기반을 둔 태도로 비건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과도기적 고민을 써 보았습니다.

배달 음식과 편의점 도시락을 주식삼던 내가 돌연 동물성 음식 재료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당연했던 일상을 거부하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의 분기를 만든다. 예전엔 편하게 메뉴만 선택해서 사 먹으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재료 구매부터 손질, 조리, 뒤처리 등의 모든 과정에 신경써서 개입을 하게 되었다. 삶이 더 자유로워졌다.(덤으로 요리실력도 많이 늘었다)

선택지의 제한이 곧 자유의 제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 자유로워졌다”는 나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내 동의 없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많은 선택지 가운데에서 조장된 욕망을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적 의지의 실현이 가능한 환경에서 스스로 선택지를 만들고 내 생각을 토대로 세상의 법도에 거스르지 않는 선택을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먹는 일에서 자유롭기를 추구하고 엄격하게 실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고 비건은 나를 정의하는 주요한 정체성이 됐다.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기에 이 실천을 존중해 줘서 사회적 갈등 없는 비건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잘 지내던 중 문득 비건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이 궁금했다. ‘한 번쯤 검색해 볼 만한데 왜 찾아보지 않았지?’라고 생각하며 인터넷에 비건을 검색하니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그 중 남초 커뮤니티의 댓글 반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비건을 욕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고 그중 어떤 댓글은 한 달만 다이어트해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는데 비건은 어떻겠느냐며 비건은 정신병이라고 단정 지어 혐오하고 있었다. 소수자 혐오, 여성혐오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는 이 반응을 보며 화도 났지만 무서웠다. 부끄럽게도 여태껏 살면서 존재 자체만으로 미움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후 그들의 혐오를 규탄하는 논리를 찾아보며 정신 무장을 조금씩 해 나가고 있던 와중 할머니를 뵙기 위해 간 인천에서 사촌을 만났다.

올해 103세이신 할머니를 문안하러 인천에 있는 요양원에 방문했다. 코로나 때문에 반갑게 살을 맞대진 못하고 유리문 밖에서 손짓과 표정으로 소통했다. 할머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나도 코끝이 찡했다. 문안을 마치고 큰아버지 집에서 오랜만에 친척들과 만났다. 큰어머니는 내가 온다고 해서 수육을 삶아 놓으셨다. 난 채식을 해서 정성껏 준비해 주신 음식을 먹지 못해 죄송하다고 정중히 말씀드리고 액젓이나 젓갈, 다시다를 쓰지 않은 나물 반찬 몇 가지를 얻어먹었다. 이후 사촌과 채식에 관한 대화를 했다. 그는 “너를 공격하려는 건 아닌데”라는 말을 덧붙이며 비건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따른 도덕적 우월성을 기준으로 남을 존중하지 않고 배척하는 모습이 위선적이라고 말했다.

난 조금만 관심 두고 들여다보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모든 급진적 활동가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그는 채식하는 이유 3가지(동물권, 환경, 건강) 중 환경 문제를 제외하곤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며 “나만 안 건드리면 돼” 라며 감정을 섞어 말했다. 공장식 축산이 인수공통 감염이 가능한 전염병의 원인 중 일부라는 점을 봤을 때 오늘 할머니를 유리문 밖에서 뵌 것도 육식에 대한 과도한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의 원인이지 않나 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구조적 문제점이 사촌을 포함한 수많은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 그가 생각하는 ‘나’의 범위가 어디까지이며 왜 그 범위를 침범받는다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여담으로 이 사촌은 “고기 평생 못 먹기 VS 100억 받기” 중 고르라고 하면 “고기 못 먹는데 100억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냐”라며 절대로 돈을 택하지 않겠다는 소신(?)이 있을 정도로 고기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비건임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투사가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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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임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투사가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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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야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만, 당시엔 내가 대변해야 하는 가치를 가지고 배타적으로 비건을 판단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처음이라 말을 하는 동안 왠지 긴장됐고 결국 마지막엔 ‘난 그런 비건이 아니야’라는 식의 스스로에 대한 변호로 대화가 끝났다. 서로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생기는 견해차가 만드는 관계의 구조가 굉장히 답답했다. 나는 존재만으로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걸까? 그 상황에서 나는 내 의견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싸웠어야 했나? 비건은 존중받기 위해 투사가 되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던 중, 13년지기 친구를 만나 같이 놀게 되었다. 마트에서 팜유가 들어가지 않은 감자튀김과 대체육을 어렵게 찾았는데 바코드가 인식이 안 되는지 계산이 안 됐다. 난 비건은 계산도 안 되느냐며 장난스럽게 툴툴댔고 친구는 같이 다니면 귀찮은 일이 많다며 나를 “*(남성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건”이라고 놀렸다. 순간 묘한 웃음이 오고 갔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이에서 격의 없이 내뱉은 농담이고 이후에 다시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며 친구에게 주의를 주고 넘어갔지만, 그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채식 실천에 대한 나를 초과하는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간 비건을 존중해서 나를 어렵게 대하거나 알지도 못하면서 혐오하는 사람들만 봐 왔는데 존중과 혐오 사이에 존재하는 대수롭지 않음, 쉬움, 만만함, 편안함 등이 내포된 말을 들으니 비건이라는 것도 나중엔 별것 아닌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변하면 추구하는 가치의 무게도 달라진다. ‘인권’도 처음엔 터무니없는 개념이었으나 지금은 공기처럼 당연히 존중하듯 공기 같은 ‘비건’이 가능한 날이 올까? 대부분의 비건이 투사가 될 필요가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비건이라고 하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으로 무장해서 무결하고 똑똑한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도 실천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참여의 허들이 조금은 낮춰지지 않을까? 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찜찜하지만 조금 위선적이면 어떤가. 위선과 예술은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는 내가 지속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실천은 무겁고 태도는 가벼운 비건 생활을 유지할 생각이다. 그래서 나중엔 10년 차 아마추어 비건이 되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탈렌트 프로젝트’로부터 시작한 채식, 그 이후의 몸과 마음의 변화에 관해 써 보고자 한다.

탈렌트

여러 해 동안 미술을 하다가 짧은 호흡으로 전시장을 전전하는 자신의 작업에 무력함을 느꼈다. 2020년부터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단위들을 미술화 하기 위해 어리석어 보이지만 배움이 있는 경험을 인위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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