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불능 우편물 되기

허먼 멜빌의 단편 속에서, 필경사 바틀비는 과거 ‘배달 불능 우편물’을 처리해오던 사람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던져졌으되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말들을 가려냈다. 시인인 나는, 예술이야말로 수신되지 못하는 말들을 잡아내어 들려주는 작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래전, 예술을 스스로 빛나는 것이라 여겼다. 창작자가 작품을 빚는 과정에서 독자나 관객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이미 필연적으로 상상되지만, 작품이 ‘드물고 높은’ 아름다움의 수준을 갖춘다면 그 밖의 것들은 모두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완전한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오래전, 예술을 스스로 빛나는 것이라 여겼다. 작품이 ‘드물고 높은’ 아름다움의 수준을 갖춘다면 그 밖의 것들은 모두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진 출처: nipunharitash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술의 가치와 성취에 관한 지배적 상징체계라 할 수 있다. 그 체계 안에서 나는 나의 울음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근사한 틀에 흘려 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불안해하는 가운데서도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게. 더 나은 미학을 성취하는 일과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고뇌하면서.

문제는 이랬던 나를 꿰뚫어 보는 힘이 내게 한동안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나는 나에게 이런 사람이기만 했다. ―세계의 거대한 부조리와 균열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언제까지나 그걸 앓는 사람. 그 순간들을 시적 언어로 붙든 뒤, 있는 힘껏 세상 쪽으로 흩뿌리는 사람.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인’이라는 피부를 입고서 시 쓰기라는 유일한 과업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이행하는 사람―

처음 시 쓰기를 시작한 건, 일반적인 생애주기로 본다면 꽤나 늦은 시기인 30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운 좋게도 습작을 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한 규모 있는 문예지의 본심에 올랐다. 그 뒤로도 내내 신춘문예를 포함해, 투고하는 곳마다 내 이름이 언급되었다. 하지만 당선이나 수상 없이 본심에만 오르는 상황이 거의 3년 동안이나 되풀이되자 지쳤다. 그래서 처음으로, 유명세는 덜하지만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진 문예지에도 시를 내봤다. 그곳에서 덜컥 신인상을 받게 됐다. 2016년이었다. 주위에선 아쉬워했다. 충분히 더 좋은 곳에서 등단할 수 있었을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나는, 쉽지 않은 관문 하나를 넘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는 흔들리는 일 없이 시인의 과업을 이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등단한 달은 3월이었는데, 그해 10월에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트위터(지금의 X)에서는 밤사이, 성폭력 가해 행위를 한 작가의 이름이 올라왔다 지워졌다. 그 이름을 말하고, 그 이름을 기다리고, 그러한 이름 부르기에 힘을 싣고자, 도처에 흩어진 많은 이들의 수많은 밤이 반납되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이름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 따라붙은 사건은 놀라웠다. 몇 달 사이에 사람들이 무더기로 피고소인이 된 것이다. 법의 심판대 위에 오른 사람은, 피해를 피해라고 말했을 뿐인 이들이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이 피고소인의 자리로 갔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두려웠고, 분노가 치솟았고, 다시 두려워졌다.

나 역시 남성 작가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 경험이 다수 있었고, 밤사이 거론된 이름 중엔 내가 숨죽여 기다린 이름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그들은 제도권 안팎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유명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 스스로도 그리 여겼겠지만, 그들이 써낸 것들은 문단과 출판계로부터도 ‘드물고 높은’ 작품이라는 공적 승인을 받았다. 도처의 승인은 아우라의 망토를 씌우는 자동기계였다. 그 작품들의 미학적 가치는 한층 더 끌어올려졌다.

그랬던 그들의 작품이 사방에서 찢겨 나갔다. 침 세례를 받았다. 재활용 수거함에 던져졌다. 한적한 곳에서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제야 그들이 무엇을 재료로 써왔는지가 드러났다. 어떤 경험과 어떤 존재가 그들에게 ‘영감’이 되었는지가. 영감은 영감에 머물지 않고,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여성혐오가 페이지 곳곳에 박힌 문학이 되었다. 여성혐오를 녹여 넣지 않는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가해를 반복한 몸으로 쓴 문장은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었다. 누가 쓴 것이냐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칼끝이 되었다. 칼끝으로 비롯될 상처, 그것이 자기 상처는 분명 아닐 텐데도, 상처 입을 앞과 옆과 뒤와 너머의 존재들을 이미 상상하며 아파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밑에서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와 상처의 곁이 돼준 이들. 그 앞에서 ‘작가와 작품은 분리될 수 있는가, 없는가’ 같은 논쟁은 지나치게 한가해 보였다.

2016년이 지나고 해가 바뀌는 동안, 아직 제도권의 승인을 받지 않은 많은 작가가 문학을 떠났다. 그중 대부분은 문단 내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가진 이였다. 가해자들의 이름이 불리고, 그들의 행위와 그들이 공유하는 묵은 수법과 문화가 탄로 나고, 그들의 문학이 버려지고, 또 그들이 교묘히 빠져나가거나 항변하거나 법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동안, 한쪽에서는 또 다른 층위의 비극이 일어난 거였다.

2018년이 되어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주변에서 ‘더 좋은 곳에서’ 했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워하는 그런 곳에서 등단을 했기에 나는 불안했었다. 예술이 아무리 스스로 빛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제대로 빛이 나려면 그 빛이 흔들림 없이 발산될 안정적인 장소가 필요했다. 그 장소가 문단이었다. 나는 다짐했다. 문단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사소하게라도 ‘찍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등단한 문예지 측과의 소통에서도 늘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그곳은 내게 문예지 교정 일을 맡겼다. 세 계절 동안 그 일을 했지만, 노동에 대한 값은 치러지지도, 거론되지도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나는 현장과 함께 하기로 했다. 사진 출처: viarami

2018년이었다. 문예지 측에 교정 일을 그만하겠다고 했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곧장 페미니즘 시선(視線/詩選) 수업을 열었다. 수업에 온 이들과 함께 문단 내 성폭력 및 여성혐오에 대해 시로 써서 앤솔로지 시집을 출판했다. 2019년에는 한 피해자의 법정 싸움에 실명 탄원서를 써서 제출했다. 공론화가 필요한 곳에 연대하며 실무를 도왔다. 문단 내 성폭력 아카이빙 모임에도 함께했다.

이때부터였다. 2016년의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알았지만 부정해왔던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 삶을 밟은 자리에서 쓰인 것은 문학이 아니라는 사실. 내 주변과 자기 스스로의 삶을 증언하지 않고 아주 먼 바깥만 휘휘 도는 것 또한 문학이 아니라는 사실. 증언하는 문학은, 세상과 얽히고설키는 데 소요된 땀과 울음 얼룩으로 증언하는 문학은 ‘아름다움의 완성도’로 평가될 수 없으며, 듣고 반응하며 대화하려는 이를 절박하게 필요로 하므로 결코 ‘완전한 하나의 세계’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이런 이유로 나는 크게 부끄러웠다.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지나는 동안에도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인 채, 문학이라 믿었던 편협하고도 거대한 것을 끝내 붙들며 홀로 살아남으려 하던 나였다. 그런 나의 몸짓이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동안 얼마나 안전한 자리에서 매끈하게만 글을 써왔는지를. 얼마나 꾸준히 자신의 눈물만을 곱게 매만져왔는지를.

알게 됐다. 문학은 온몸으로 폭로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일그러지고, 끝없이 낮아지고, 한정 없이 귀를 열어두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문학은 어쩌면 ‘정치적인 것’이라는 불순물 자체가 혈액이 되어 흐르는 신체, 바꿔 말하면 낱말과 문장부호와 여백이 어지럽게 ‘배치’된 ‘정치적 신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그 ‘배치’라는 것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무엇을 어디에 놓는가의 문제 말이다. 그것은 바로 미학(aesthetics)이 오랫동안 다루어온 질문이다. 원래 미학은 아름다움에 관한 학문이기 이전에, 감각에 관한 학문이었다. 알렉산더 고트리프 바움가르텐이 18세기에 이 단어를 처음 학문적 개념으로 정립했을 때, 그것은 고대 그리스어 ‘aisthesis’, 즉 감각적 지각을 가리켰다.1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따지기 이전에, 무엇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감각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가를 묻는 일이었다. 아름다움은 그 물음의 결과로 도착하는 것이었지, 출발점이 아니었다.

자크 랑시에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미학을 ‘le partage du sensible’, 즉 ‘감각적인 것의 나눔’2이라 불렀다. ‘partage’라는 프랑스어 단어는 ‘나눔’인 동시에 ‘분할’이고 ‘배분’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함께 나눈다는 뜻과, 경계를 그어 가른다는 뜻이 한 단어 안에 공존한다. 랑시에르가 이 이중성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란 공동체가 무엇을 공통의 것으로 경험하는가를 규정하는 동시에, 누가 그 공통의 것에 참여할 수 있고 누가 배제되는가를 결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이러한 나눔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감각은 이름과 의미를 부여받고, 어떤 감각은 단지 소리이거나 웅얼거림일 뿐인 것으로 처리된다. 어떤 것은 가시적인 것이 되고, 어떤 것은 비가시적인 채로 남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미학과 구별되지 않는다. 어떤 목소리가 말로 셈해지고 어떤 소리가 소음으로 처리되는가를 결정하는 일, 그것이 곧 감각의 배치이며, 감각의 배치가 곧 정치다.

무엇을 빛이 드는 자리에 두고 무엇을 보이지 않는 자리에 둘지, 어떤 경험을 언어의 영역으로 들여오고 어떤 경험을 언어 이전의 자리에 남겨둘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감각의 배치로 본다고 할 때, 이 모든 행위의 집합은 ‘작품’이며 그 행위의 주체는 ‘작가’다. 수집하고 선별하고 치우고 들이고, 쓰고 그려내고 만들고 설치하고, 승인하고 추대하고 추천하고 폐기하는 그 손과 손끝에는 의도와 의지가 담겨 있다. 미학은 그러므로 처음부터 중립적이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배치하는가의 문제는 언제나 이미 누구를 가시화하고 누구를 지우는가의 문제와 포개진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6년, 밤사이 이름들이 올라왔다 지워지는 동안, 피해를 피해라 말했을 뿐인 이들이 법정에 세워지는 동안, 제도권의 승인을 받지 못한 많은 작가들이 문학을 떠나는 동안, 나는 바로 거기에 있었으니까.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었으니까. 무엇이 목소리가 되고 무엇이 소음으로 처리되는지를, 누구의 경험이 ‘드물고 높은’ 언어로 변환될 자격을 얻고 누구의 경험이 그 자격을 박탈당하는지를 다 보았으니까. 그곳에도 감각의 배치가 있었다. 문단이라는 장소가 오래도록 작동시켜온 감각의 배치. 나는 그 배치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고, 그러기 위해 무엇을 나의 작업 무대 위에 배치하지 않을지를 조용히 결정했다.

이쯤에서, 필경사 바틀비3를 불러오고 싶다. 허먼 멜빌의 단편 속 인물. 그는 월스트리트의 한 사무실에서 처음에는 맹렬히 일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모든 요청에 같은 대답을 돌려준다. “I would prefer not to.”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떠받쳤던 작업인 필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I would prefer not to.”라는 대답이 반복 재생된다. 대부분의 이들이 그의 말과 행위를 거부로 해석하지만, 나는 이것이 거부이기 이전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어떤 경험과 장면들이 한 사람에게 신체화되어 나타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말들은 아무에게도 도달하지 못하고 버려진다.
사진 출처: Atlantios

바틀비는 월스트리트의 사무실에 오기 전,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반’에서 일했다. 끝내 닿지 못한 편지들, 수신자를 잃은 언어들, 발신되었으나 도달하지 못한 말들을 종일 다뤘다. 그리고 그것은 바틀비가 선택한 자리가 아니었다. 세계가 그를 그쪽으로 배치한 것이었다. 닿지 못하는 것들, 버려지는 것들을 처리하는 자리로 가라고 세계가 그에게 명령했다. 바틀비는 그 자리에서 세계가 무엇을 배달 불능으로 처리하는지를, 어떤 말들이 수신자 없이 소멸하는지를 목격했고 그 질서에 따랐다. 어떤 존재들이 발신은 되었으나 끝내 셈해지지 않는지를 손끝의 노동으로 익혔다.

그러한 시간이 그의 몸 어딘가에 독처럼 쌓였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아주 고요하게. 그것이 뒤늦게 몸으로 터져 나온 것이 “I would prefer not to”가 아닐까. 그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기능하기를 멈춘다. 항변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멈춘다. 세계가 그에게 부과한 것, 닿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들을 처리하는 존재라는 자리를 그가 더 극단적으로 당겨와 살아버리는 것. 배달 불능 우편물을 처리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배달 불능 우편물이 되어버리는 것. 그 선택은 한편으론 자기 파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온몸으로 폭로하는 행위 말이다. 그는 자신이 목격해온 것을 언어로 옮기는 대신, 그것이 되어버린다.

바틀비는 기존 세계의 감각의 배치를 송두리째 흔들면서 제 온몸으로 ‘감각의 재배치’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간 소음으로 처리되어 온 것들, 셈해지지 않는 존재들을 자신의 몸을 통해 가시화한다. 몸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자리의 논리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가시화는 일어난다. 감각의 재배치란 다른 방식으로의 재현이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하지 않고, 그 일이 몸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바뀐 몸이 세계와 어떻게 다르게 마주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언어가 어떤 몸에서 비롯되고 어떤 자리에서 발신되는지를 숨기지 않는 일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가야트리 스피박과의 대화를 엮은 『누가 민족 국가를 노래하는가』4에서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2006년 봄,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미등록 이주민들이 스페인어로 미국 국가를 불렀다. 법적으로 공적 발화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 이들이, 그들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공적 공간에서, 그들 존재를 금지한 나라의 국가(國歌)를 금지된 자신들의 언어로 바꾸어 부르는 행위. 버틀러는 이것을 수행적 모순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면 규칙을 어기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규칙이 작동하는 조건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언어가 공적 발화로 인정되는가. 어떤 존재가 공적 공간에 등장할 수 있는가. 그 조건이 바로 이 모순의 순간에 노출된다.

그리고 버틀러에 따르면,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이 말하는 순간, 발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가 생겨난다. 주체가 먼저 있고 그 주체가 발화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 발화를 통해 주체가 형성된다. 이때 ‘우리’는 완전히 인정된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며 흔들리는 상태로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성이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연다.

감각의 재배치는 이렇게 일어난다. 위험한 자리에서, 무릅쓰는 자리에서. 나는 이 장면들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야 질문했다.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이 말하는 순간 새로운 ‘우리’가 생겨난다면,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감각의 재배치가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낸다면, 그 재배치를 피한 채 안전한 자리에서 쓰는 것은 어떤 세계를 지속시키는 일인가.

나는 오랫동안 그러한 안전한 자리에서, 말하자면 바틀비의 반대편을 지키며 썼다. 배달 불능 우편물이 되기를 피했다. 세계가 어떤 목소리들을 그쪽으로 배치하는지 알면서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려 했다. 문단이 승인하는 감각의 배치 안에서, 찍히지 않으면서, 고분고분하게, 그렇게 안전하게. 무보수로 교정 일을 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문학을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사실은 배달 불능이 되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나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었다. 기존 배치를 따르거나 강화하는 행위였다.

2018년 들어 정신을 차린 뒤로 나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문법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연대자가 되었다. 그걸 시작으로 계급 부정의와 기후 불평등, 종차별을 말하는 자리에 어떻게든 함께했다. 기후정의행진에서, 살처분이 일어난 현장을 다녀와서, 대규모 생태파괴를 예정하고 있는 자리인 수라갯벌과 화성습지와 가덕도에서,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사는 경주 나아리와 밀양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집회에서,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의 추모 자리에서 몸을 함께 겯고 목소리를 보탰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자리들이 더 많았지만, 그걸 다 쓰는 것이 이 글의 몫은 아니다. 다만 한 자리만은 써두고 싶다.

2026년 3월, 나는 서울역 광장에서 고라니 가면을 쓰고 뛰었다. 살처분폐지연대가 기획한 액션이었다. 비 예보가 없었는데 비가 내렸다. 사이렌 소리와 살처분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방역복을 입은 이가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도망쳤으나 다시 붙잡혔다. 더 도망갈 수 없었다. 무릎을 꿇었고, 차갑고 젖은 바닥에 누웠다. 사방에서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누운 몸 위로 차가운 흙이 덮였다. 같이 울었다. 같이, 살고 싶었다.

이 액션은 살처분이라는 구조적 폭력을 참여자들의 몸으로 겪고 또 통과해보려는 액션이었다. 가축전염병을 이유로 자행되는 축산동물 살처분만이 아니었다. 생태 교란종 지정, 유해야생동물 포획, 보호소 안락사,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도태와 폐기, 그 모든 것이 살처분이라 할 수 있었다. 약하고 아프고 경제성이 없어서, 다른 종에게 불편을 줘서 그들은 죽임당했다. 국가와 자본의 논리가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하는, 이상하고도 끔찍한 구조를 우리는 온몸으로 감각했다.

바닥에 누운 채로 목소리를 들었다. 내 몸이 통과한 다른 몸의 목소리를.

살처분으로 처분되고 싶지 않다. 처분되는 끝을 맞고 싶지 않다. 처분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아프면 치료받고 싶고, 전염병이 돌면 병으로부터 보호받고 싶고, 병과 함께 돌봄받고 싶다. 이 땅 위에서, 이 물과 햇빛과 공기와 숲과 먹을 것들을 당신들과 오래오래 나누고 싶다. 나란히 나란히 살고 싶다. 늙어서 죽고 싶다. 어느 한 종이 다른 종을 죽이고, 빼앗고, 가두고, 내쫓고, 고통 줘도 괜찮은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2026년 3월 살처분폐지연대의 액션. 사진촬영 : 구마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 재편되는 순간이었다. 소음으로 치부된 목소리들이 서울역 광장의 공적 공간으로 불려 나왔다. 버틀러가 말한 수행적 모순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을 대신해 말하는 몸들이 그러한 발화를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리허설 중에 한 행인이 “여기 고라니가 있네”라 말하며 웃기도 했는데, 그 웃음은 이 세계가 어떤 존재를 어떻게 가두어 바라보는지를 알려주는, 아픈 표지판 같은 것이었다. 그 웃음이 흘러내린 자리에, 우리는 누웠다. 차갑고 젖은 바닥 위에. 그 순간이 시였다.

또한 나는 그런 이야기를, 문자화된 시로도 쓰고 싶었다.

나는 돼지다. 돼지 옆의 돼지다.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다. 웃는 돼지, 우는 돼지, 소리 지르는 돼지, 속삭이는 돼지, 사과하는 돼지, 춤추는 돼지, 달려가는 돼지, 사랑을 하는 돼지, 장난을 치는 돼지, 발을 헛디디는 돼지, 우정을 나누는 돼지, 같이 달리는 돼지, 상상을 하는 돼지, 치마를 입은 돼지, 치마를 빌려주는 돼지, 치마를 깃발처럼 흔드는 돼지, 돼지로 태어나 끝까지 돼지로 남고 싶은 돼지, 끝까지 살아가버리는 돼지, 돼지로서, 돼지 옆의 돼지로서 옆의 돼지와 손잡은 돼지, 돼지와 돼지,

옮겨지지 않는 돼지, 던져지지 않는 돼지, 매달리지 않는 돼지, 벗겨지지 않는 돼지, 분할되지 않는 돼지, 냉동되지 않는 돼지, 수출되지 않는 돼지, 가열되지 않는 돼지, 소화되지 않는 돼지,

끝까지 살다가 죽는 돼지, 죽어서 느리게 느리게 흙이 되는 돼지, 돼지 옆에서,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 옆에서 느리게 느리게,

― 시 「돼지와 돼지와 돼지와 돼지」 전문5

이 시는 설명하지 않고, 항변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돼지가 된다.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가 된다. 이 세계가 배달 불능으로 분류해 온 존재들을 재현하고, 그 존재들의 언어로, 그 존재들의 자리로 가서 재현한다.

옮기고, 던지고, 매달고, 벗기고, 분할하고, 냉동하고, 수출하고, 가열하고, 소화하기. 이 시는 돼지에게 가해지는 것들의 목록을 하나하나 호명하면서 그 모든 것에 “않는”을 붙인다. 이 부정의 문법은 바틀비의 “I would prefer not to”와 닮아 보인다. 같은 부정이지만, 방향은 다르다. 바틀비의 부정은 멈춤이다. 시스템의 요구를 거스르지만, 그 거스름은 결국 자신의 소멸로 향한다. 그는 사무실 한구석에서 움직이기를 멈추고, 마침내는 사라진다. 그 부정은 차갑다. 그러나 이 시의 돼지들은 다른 곳을 향한다. 분할되지 않는 돼지는 소멸하지 않는다. 끝까지 살다가, 죽어서 느리게 느리게 흙이 된다.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 옆에서, 손을 잡고, 치마를 깃발처럼 흔들면서. 이 부정은 저항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에 대한 염원이다. 바틀비가 멈추는 자리에서, 이 시의 돼지들은 손을 잡고 달린다.

이 시는 완전한 하나의 세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끝까지 열려 있다. 돼지 옆의 돼지 옆의 돼지 옆에서, 느리게 느리게, 마침표 없이 쉼표로써. 듣고 반응하며 대화하려는 이를 절박하게 필요로 하면서. 증언하는 문학을, 감각의 재배치를, 그래서 정치인 것들을 기다리면서 내내 열려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현진 님. 그는 2016년, 문단 내 성폭력을 공론화한 뒤 연대자들과 함께 7년을 싸운 끝에, 가해자의 실형을 이끌어냈다. 그는 수신자 없이 소멸하도록 방치된 목소리들의 자리에 스스로 섰고, 숨지 않고 재판정에서 발화했으며, 그 발화를 통해 이전에는 없었던 ‘우리’를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삼가 애도를 표한다.


  1. Alexander Gottlieb Baumgarten, Aesthetica, Frankfurt an der Oder, 1750.

  2. 전혜림, 「자기 해방으로서의 정치와 미학 – 랑시에르의 정치와 미학의 동일성」, 《인문과학》, 64, 185-224, 2017 참조.

  3.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공진호 역, 문학동네, 2021.

  4.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주디스 버틀러·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주해연 역, 산책자, 2008.

  5. 계간 《문학인》 2024 겨울호 발표.

이 글은 《오늘의 문예비평》 2026년 여름호에도 발표한 글입니다.

희음

기후-생태운동, 동물운동, 평화운동을 하면서 르포와 시를 쓴다.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로 활동한 지는 3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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