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가장이 아닌 영 케어러, 효자효녀가 아닌 돌봄자

영 케어러(young carer)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콜·약물의존을 가진 가족 등을 돌보고 있는 18세 미만의 아동 또는 젊은 사람을 가리킨다. 본고는 이전과는 다른 돌봄 관점을 통해 어린 혹은 젊은 가족 구성원이 주 돌봄자가 된 현재가 이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의논해보고자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

돌봄 연구를 시작하면서 이 속담만큼 돌봄의 속성을 잘 나타낸 문장이 없음에 매번 감탄한다. 한국사회의 가족 돌봄 담론, 돌봄의 어려움과 지속가능성, 신체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부모와 자식 간 주요한 정서인 ‘효(孝)’마저 상실되게 하는 것이 기나 긴 돌봄이며, 그만큼 돌봄이 힘든 일임을 시사한다.

전통사회에서 가족 돌봄은 여성, 주로 아들의 배우자가 주 돌봄자로서 수행해왔다. 현재까지도 가족 위치에서 어머니, 딸, 며느리로서 여성은 아픈 가족을 다정하고 능숙하게 돌봐야 한다는 역할기대와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초고령화, 비혼화와 만혼화, 새로운 가족형태의 등장은 돌봄 구조의 변동을 가져왔다. 친자녀 중심의 돌봄이 증가했으며, 성별 관계없이 딸과 아들이 공평하게 돌봄을 수행해야 된다는 인식이 성행하게 되었다(김유경, 2017).

한국 사회에서 돌봄을 주목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돌봄의 공백이나 돌봄 노동을 통해 돌봄 논의가 가시화되지만, 새로운 가족형태의 돌봄은 여전히 낯설어한다.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으나 선행연구와 한국의 가족 돌봄 담론을 분석했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족 돌봄이 효자든 불효자든 개인의 서사이자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때문에 돌봄이 공적영역에서 논의된 이후에야 영 케어러와 같이 가시화되지 않았던 돌봄자가 사회에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가족과 돌봄에 관련된 기존의 제도와 인식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왔기에 새로운 가족형태의 돌봄에 적용시키기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부터 논하게 될 영 케어러를 비롯한 비혼 돌봄자, 남성 돌봄자, 생활동반자 돌봄 등 새로운 돌봄의 형태는 아직까지도 사회가 소화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형태의 돌봄을 가시화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본고는 ‘영 케어러’에 초점을 두어 논의하고자 한다. 영 케어러에 대한 정의와 논의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있어 빠른 이해를 들기 위해 조기현 작가가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조기현의 영 케어러’시리즈 중 한 사례를 인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영 케어러란 무엇인가

희준씨(가명)가 12살이던 2017년, 그의 어머니는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중략) 희준씨 어머니가 치료를 받는 사이, 희준씨 아버지는 보호자 역할을 했고, 인테리어 사업이 망하면서 기울어가는 가세도 붙잡아야 했다. 희준씨 아버지에겐 병원비와 사업 빚을 처리해야 하는 역할이 떨어졌다. (중략) 희준씨 어머니가 아프면서 벌어지는 일은 오롯이 4인 가족의 몫이었다. 엄마가 아프고, 아빠가 돈을 벌면, 희준씨가 첫 번째 돌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마이뉴스, 조기현의 영 케어러 시리즈 2021.01.07.

영 케어러(young carer)란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콜·약물의존을 가진 가족 등을 돌보고 있는 18세 미만의 아동 또는 젊은 사람을 의미한다(시부야, 2018). 위의 사례에서 희준씨가 영 케어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가정의 생계부양자였던 어머니가 암투병을 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아버지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늘려가며 병원비를 벌어야 했다. 그 속에서 어머니의 주돌봄자 역할은 전부 희준씨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 또는 젊을 사람을 영 케어러라고 한다.
사진출처: https://www.irasutoya.com
아픈 가족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 또는 젊을 사람을 영 케어러라고 한다.
사진 출처 : irasutoya.com

‘영 케어러’는 1980년대 말 영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사회보장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커뮤니티 케어 정책에 의한 케어러(돌봄자)실태조사의 일부에서 미성년자의 가족 돌봄을 확인하게 되었다(시부야, 2018:ⅱ). 영 케어러를 연령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18세 미만의 아동을 ‘영 케어러’, 18세부터 넓게는 30세까지 ‘영 어덜트 케어러(young adult carer)’로 상정하며, 영 어덜트 케어러도 영 케어러와 마찬가지로 돌봄의 책임 부담은 동일하다고 본다(아오키, 2018). 하지만 ‘영 케어러’가 성장해서도 돌봄을 지속한다면 ‘영 어덜트 케어러’가 되는 것이며 돌봄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제도,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영 케어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실정이다. 오히려 이들은 ‘소년소녀가장’이라는 특정 부류나 전통사회에 얽매인 ‘효자효녀’로 호명할 뿐이다.

2. 영 케어러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이럴 바에 차라리 학교 안 다니고 집에 가서 엄마 보살펴야 되는데, 밥 차려야 하는데, 엄마 아파서 누워 있으면 어떡하지.’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런 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어버렸다. 어디선가 ‘쟤 뭐야’라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희준씨에게는 새로운 학년에 적응하기 위해 써야 하는 에너지가 바닥나 있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 변해버린 가족 환경에 적응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오마이뉴스, 조기현의 영 케어러 시리즈 2021.01.07.

영 케어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애주기에 따르는 과업들을 돌봄으로 인해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례의 희준씨조차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또래 아이들과 같은 학교생활에 ‘에너지’를 쏟을 시간에 가족과 어머니 돌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했다. 돌봄으로 인해 희준씨는 이미 높은 우울감을 느꼈으며 학교생활, 교우관계, 진로 등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편적으로 10대 나아가 20대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거나 준비하는 단계다. 인생에서 제일 자유로운 시기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모색하고 도전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기도 하는 연령대다. 하지만 포기하거나 시작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돌봄을 부담하기에 진학, 커리어 선택, 연애나 결혼, 취직, 취업 활동 등 그 이후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아오키, 2018).

돌봄이 개인과 가정으로 축소되면서 어린 혹은 젊은 돌봄자들은 놓치는 과업, 돌봄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과업이 발생한다. 물론 돌봄자의 연령대에 따라 놓치는 생애과업은 항상 수반된다. 하지만 영 케러어들은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도 못한 그리고 교육권과 성장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인생의 기반을 닦아나갈 연령대이다.

게다가 중장년층 돌봄자보다 상대적으로 10, 20, 30대 영 케러어들은 돌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경제적 자립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추상적인 표현을 하듯이 돌봄으로 ‘청춘’을 잃어버린 것 이상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영 케어러 문제에 있어 굉장히 현실적인 지적이다. 또한, 돌봄을 종료한 뒤 이미 소진된 에너지와 돌봄으로 놓쳐버린 경력, 길어진 진로이행기는 어디서 어떻게 보상받기도 어렵다. 앞 문단에서 인용한 아오키(2018)의 ‘이후의 인생에도 큰 영향’에서 가리키는 것이 이러한 경제적 여건들도 포함되어있다.

영 케어러를 소년소녀가장과 다를 바 없으니 굳이 이와 같은 명명이 필요한지 문제제기를 하는 혹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家長)’이라는 가부장제적 관점으로서 가족의 어린 구성원을 ‘소년소녀’로 간주하는 것은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현 시류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효자효녀’라는 칭찬의 맥락이라는 포장 하에 개인의 됨됨이에 따라 가족을 돌보는 자라고 칭하는 것 또한 돌봄을 공론장에 내세우는 데 방해물이 여겨질 수 있다.

지금까지 사례를 빌려 영 케어러의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점을 적시해보았다. 한편, 본고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 지점들을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 케어러들의 돌봄 수행 그 자체가 문제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둘째, 영 케어러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돌봄의 공포심을 조성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어린 혹은 젊은 가족 구성원이 주돌봄자가 된 현재가 이후의 삶과 이후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함이 본고의 주된 메시지이다. 이와 같은 의제를 발전시켜 제도와 사회서비스로 정착시킨다면 영 케러어가 돌봄을 사적 영역에서 ‘강제된’ 조건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선택’적으로 돌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영 케어러 공론화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참고문헌

  • 김유경. 2017. “사회변화에 따른 가족부양 환경과 정책과제”. 보건복지포럼(2017.10), 한국보 건사회연구원
  • 오마이뉴스. 조기현. 2021.01.07. 조기현의 영 케어러 5화 “엄마의 암 말기 진단 12살 인생은 이렇게 바뀌었다”
  • 斎藤 真緒. 2019. “子ども・若者ケアラー」支援のための予備的考察”. 立命館産業社会論集“
  • 青木 由美恵. 2018. “ケアを担う子ども(ヤングケアラー)・若者ケアラー”. 認知症ケア研究 誌
  • 澁谷 智子. 2017. 『ヤングケアラー―介護を担う子ども・若者の現実』. 中公新書

조명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젠더와 노인, 그리고 돌봄.
앞으로 다양한 가족과 젠더의 돌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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