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픈 병실생활] ② 병실동지

병실동지 선영언니의 말버릇은 “그러지 그러지”하며 맞장구치는 거다. 그 추임새는 상대방을 북돋는 중독적인 주문이었다. 나보다 딱 스무 살이 많은 언니는, 내 친구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나는 언니의 친구 중에 가장 어리다. 그녀가 나와 죽이 잘 맞는다는 걸 만나자마자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 선영언니는 동네 주민이었다. 일주일이나 바로 옆 자리였지만, 병실생활을 정리하며 그제야 통성명을 했다. 평촌에서 이십 년을 살았지만, 과외수업은 주로 서울이나 다른 경기도 지역이었기에… 나보다 딱 스무 살이 많은 언니는, 내 친구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나는 언니의 친구 중에 가장 어리다.

병실에 온 병문안 손님들은 솔직히 귀찮았다. 아파서 입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쉬도록 내버려 두는 게 어떨까 싶다. 평소 언니-동생하며 친하던 아들 친구 엄마는 내게 병실 호수를 전화로 물어왔다. 내가 그 넓은 종합병원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게다가 무어라 대답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를 찾아온 그녀는 엄청 화를 냈다. 엉뚱한 병실 호수를 말해주어 헤맸다며.

한편 고집 부리던 나를 응급실에 보내준 고마운 수영장 동료들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왔는데, 수영장을 상대로 안전소홀을 문제 삼아 이래저래 따져야 한다며 나의 결단(?)을 촉구했다. 무언가 즉각적인 판단을 내릴 힘이 나에게 있던가. 병원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우리에게 매뉴얼은 없었다.

입원한 6인실은 입원 첫날부터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사진 출처 : Adhy Savala

나를 찾아온 손님들 외에 찾아오는 방문객은 왜 그리 많은지. 입원한 6인실은 입원 첫날부터 북적였다. 선영언니의 손님들은 자주 찾아왔고, 놀랍게도 젊은 층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하하 호호 떠드는 그들의 수다가 어찌나 또릿하게 들리던지, 잔뜩 예민해진 나는 괴로웠다. 하지만 매일 도시락을 싸오는 언니의 남편분은 “계란 후라이는 이제 그만 싸오라고 했잖아!”하는 언니의 짜증을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퇴원 후에 두 사람의 식사, 장보기, 청소 등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계신 남편분의 서사는 차차 언니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접하게 된다.

며칠 지나니 머리가 너무 감고 싶었다. 혼자 살살 걸어서 욕실 벽을 짚고 서서 기어이 감았다. 친해지고 나서 나중에 선영언니는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잘 걷지도 못하면서 비척거리면서 혼자 머리를 감더라구.”

구치소 공용화장실에서도, 수갑을 세면대 물속에 풀어놓고 머리 감던 내가 아닌가. 정신은 오락가락했지만 고집은 온전했다.

엄마는 병실에 입원 첫날과 퇴원하는 날 병원에 왔다. 상주하던 우리 집에서 어린 손주 둘을 돌보고, 멈춰선 살림을 복구하느라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선영언니는 친해지고 나서, 당시에 들었던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하도 딸래미 병실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계모인 줄 알았단다. 내 소식에 혼비백산 뛰어왔지만 집안 꼴에 더 혼비백산 했을 엄마도, 돌보는 사람 없이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나를 안쓰럽게 봤던 선영언니도, 모두 이해됐다. 각자의 처지와 생각은 그래서 다르지 않던가.

언니와 학의천을 따라 같이 걸었던 건 내 기억보다 더 늦었던 때였나 보다. 5킬로 정도 되는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나와 죽이 잘 맞는다는 걸 만나자마자 알아차렸다. 언니의 말버릇은 “그러지 그러지”하며 맞장구치는 거다. 그 추임새는 상대방을 북돋는 중독적인 주문이었다. 나보다 훨씬 동네 지리에 밝은 그녀는, 회복을 위해 같이 걷자고 했다. 그때 나는 잘 회복이 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고, 언니는 요양병원에서 퇴원한 직후였다.

우리의 의기투합은, 주로 ‘아프니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것과 ‘결혼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수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선영언니가 아마 지금 옆에 있으면, “그러지 그러지”할 것 같다.

마이티

‘마이티’는 ‘힘센’이라는 뜻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던 카드놀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우누리 시절, 나의 아이디였다.

한살림 조합원 오 년 차.
녹색당원 육 년 차.
생태적지혜 연구소 조합원 이 년 차.

나는 스러지는 불처럼 살고,
흐르는 물처럼 글 쓰며,
상처입은 나무처럼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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