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정치 세미나_캘리번과 마녀(11월 모임후기)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에 관한 세미나가 2021년 11월 한달간 매주 토요일마다 오후2시 연구공간L 주최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었다. 11월 모임에서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를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2716.0746

역사와 정치 세미나(online)

■커리큘럼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6.

일시 : 2021년 11월 6일(토요일) 오후 2시 – 4시 30분

■내용:

『캘리번과 마녀』는 “자본주의 이행”을 조명하고 새로운 사회적 주체의 관점에서 착취와 저항의 새로운 근거를 밝히는 여타의 모든 새로운 혁명운동들의 뒤를 잇는 작업이다. 이 작업에 동기를 부여한 두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성 노동자계급의 역사와 분리된 “여성의 역사”가 갖는 한계를 피하면서 동시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재고하고자 하였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캘리번과 마녀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이런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템페스트에서는 원경에 국한되었던 마녀의 모습이 이 책에서는 무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마녀는 자본주의가 파괴해야만 했던 여성 주체라는 세계(이단자이자 치유자, 반항적인 아내, 감히 혼자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 주인의 음식에 독을 섞고 노예들의 반란을 책동하는 여성 마술사)의 체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둘째, 자본주의적 관계가 새롭게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자본주의의 근원과 연관된 일단의 현상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수백만의 농업생산자들로부터 토지를 박탈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클로저”나,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묘사한 “대유폐”를 연상시키는 대규모 유폐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빈곤하게 만들고 범죄화하는 것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박해로 인해 새로운 이산자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런 박해는 16세기와 17세기 유럽에서 “부랑자들”을 지역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도입한 “피의 법률”을 연상시킨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최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일부 국가(남아프리카와 브라질)에서는 마녀사냥이 부활하기도 했다. Q1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려는 마당에 어째서 많은 노동자들이 아직도 빈민이나 마녀 아니면 범법자로 규정되고 있을까? Q2토지몰수와 대규모 빈민화는 여성에 대한 꾸준한 공격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Q3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발전과정을 검토할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여성과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문제를 중심으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이행” 문제를 재검토했다.


일시 : 2021년 11월 13일(토요일) 오후 2시 – 4시 30분

■내용:

“자본주의 이행기”의 여성과 재생산의 역사는 소농, 장인, 날품팔이와 같은 중세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온갖 방식으로 봉건권력에 맞섰던 투쟁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봉건제의 위기에서 여성이 수행한 역할이 무엇인지, 또 어째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3세기에 걸친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권력을 파괴해야만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투쟁들을 그 다양한 요구, 사회적·정치적 열망, 적대적인 관행과 함께 불러내야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구질서의 태내에서 발육하고 있던 경제세력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진화”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수세기에 걸친 사회적 갈등은 봉건영주, 도시귀족, 주교와 교황의 권력을 흔들고 진정으로 “온 세계에 큰 충격을 한방” 줬다. 자본주의는 이것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이었다. 자본주의는 반봉건투쟁에서 등장한 가능성을 파괴해 버린 반혁명이었다.

한편 노역, 임금수준, 지대, 십일조와 같은 계급투쟁의 고전적인 영역만 보고 그 투쟁이 만들어 낸 새로운 사회생활의 전망과 젠더관계의 변형을 무시한다면, 여성사와 자본주의 발전사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새로운 전망과 변형은 하찮은 것이 아니었으며, 기존 질서에 맞서 공동체적 삶의 대안적 모형을 구성하는 데 기여한 유럽의 풀뿌리 여성운동사에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반봉건투쟁의 과정 속에 있었다. 또 지배적인 성적 규범에 도전하고 남녀간에 한층 더 평등주의적인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최초의 조직적인 시도가 반봉건투쟁으로부터 나왔다. 이와 같이 의식적인 형태의 사회적 도전은 예속노동과 상업관계에 대한 거부와 결합하여 봉건제뿐만 아니라 그것을 대체해 버린 자본주의적 질서에도 강력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다른 세상이 어째서 실현되지 않았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1장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 노동인구 재생산이 봉건지배에 맞서 어떻게 재정의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일시 : 2021년 11월 20일(토요일) 오후 2시 – 4시 30분

■내용:

유럽의 광범위한 공동체주의적 사회운동과 반봉건 반란이 사회적 평등과 협동에 기반한 새로운 평등사회의 전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525년 독일 “농민전쟁” 또는 블리클이 “보통사람의 혁명”이라 부른 것은 분쇄되고 반란에 대한 보복으로 10만 명의 반군이 학살당했다. 지상에 신국을 강림시키려던 1523년 뮌스터 재세례파의 “신예루살렘”도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가부장적으로 전환한 지도부가 일부다처제를 강요하자 내부의 여성들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패배들, 그리고 마녀사냥의 확산, 또 식민지의 팽창이 원인이 되어 유럽의 혁명적 진전은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봉건제의 위기는 군사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중세 후기 봉건경제는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축적위기로 인해 그 운을 다 했다. 1350년부터 1500년 사이에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권력관계가 크게 변했음을 보여 주는 몇몇 기본적인 추정치로부터 몰락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실질임금이 100% 상승했고, 물가가 33% 하락했으며, 지대도 하락했다. 또 일일노동시간이 감소했고, 지역적 자급자족 경향이 나타났다. 당대 상인 및 지주의 비관주의와, 유럽 각국이 국내시장을 보호하고 경쟁을 억압하며 사람들을 주어진 조건 하에서 노동하도록 강제하려고 취한 조치들이 그 시기의 만성적 탈축적 상황을 입증한다. 봉건경제는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자본주의 사회가 “진화”해 나올 수도 없었다. 자급자족과 새로운 고임금 체제가 “인민의 풍족함”을 가능케 하면서 “자본주의적 부의 가능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배계급은 이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서 세계적인 공세를 펼쳤다. 최소 3백 년에 걸쳐 새로운 부의 원천을 전유하고 경제적 기초를 확대하며 새로운 노동자들을 자신의 휘하로 불러들이려는 이 가차 없는 노력의 과정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토대가 놓이는 등 지구의 역사가 탈바꿈하게 되었다. “정복, 노예화, 약탈, 살인, 즉 폭력”이 그 과정을 떠받쳤다. 따라서 “자본주의 이행” 개념은 많은 면에서 허구다. 이 “이행” 개념은 변화란 긴 과정이며, 따라서 자본의 축적이 아직 완전히 자본주의적이지는 않은 정치구조와 공존했던 사회들이 오래 지체되었다는 사고를 발전시키는데 유용하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점진적이고 단선적인 역사적 발전을 암시하는데, 실제로 그 용어가 가리키는 것은 역사상 가장 유혈낭자하고 불연속적인 시대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맑스의 “시초축적”개념이 “반봉건적 반동”과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전을 특징짓는 사회적 과정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행”이라는 용어를 시간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맑스의 해석을 재고해 봐야 한다는 비판에 동의한다는 점을 밝힌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인구 재생산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가져다준 심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16-17세기의 “대마녀사냥”은 한때 공동으로 사용했던 토지에서 농민들을 축출함으로써 유럽 농민들의 패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시초축적에 대한 맑스의 분석은 국가를 등에 업은 이 같은 테러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일시 : 2021년 11월 27일(토요일) 오후 2시 – 4시 30분

■내용:

전체의 논증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형성과 “축적”수단은, 유럽 농민으로부터 생계수단을 빼앗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토착민을 “신대륙”의 광산과 플랜테이션에서 노예처럼 부린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2. 이 과정에서 신체는 노동기계로 탈바꿈하였고 여성은 노동인구 재생산에 종속되었다. 무엇보다도 아메리카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마녀”의 박멸을 통해 여성의 힘을 파괴할 필요가 있었다.

3. 그러므로 시초축적은 착취할 수 있는 노동자와 자본의 단순한 축적과 집중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차이와 분할의 축적이기도 했으니, “인종”과 나이 외에도 성별에 따라 세워진 계서제가 계급지배와 근대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대다수 맑스주의자들처럼, 자본주의 축적을 남녀를 막론한 노동자의 해방과 동일시할 수 없고 자본주의의 출현을 역사적 진보의 계기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착취를 강화하고 은폐하는 심원한 분할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신체에 이식함으로써 더욱 잔혹하고 교활한 형태의 노예화를 창출했다. 지구 곳곳에서 자본주의 축적이 계속해서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많은 면에서 이와 같이 강요된 분할들 때문이며, 특히 남성과 여성의 분할 때문이다.

2장에서는 특히,

1. 자본주의의 출현을 구체화한 주요 사건인 토지사유화와 가격혁명을 추적하는 한편, 둘 중 그 어느 것도 자생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형성과정을 촉발시키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2. 자본가계급이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규율·재생산·확대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들의 대략적 윤곽을 그릴 것이다. 그 정책들은 여성을 공격하는 데서부터 시작했고,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를 구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임금 가부장제”라고 정의한다.

3. 식민지에서 일어난 인종적·성적 계서제의 형성을 살펴보고, 그 계서제가 어느 정도까지 토착민·흑인·유럽인 여성 간에, 그리고 여성과 남성 간에, 대립 또는 연대의 영역을 형성할 수 있었는지 고찰한다.

연구공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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