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⑨ CCTV에 갇힌 언니

사고가 나던 날 CCTV에 담긴 언니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다. 화면 속 언니는 웃는 얼굴로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그가 세 걸음을 떼었을 때 트럭이 숨 가쁘게 좌회전한다. 눈 깜빡할 사이에 언니가 넘어간다.

예전 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사고 당시 CCTV에 담겨있다. 사고 현장에서 경찰과 함께 영상을 확인했다. 화면 속 언니는 웃는 얼굴로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그가 세 걸음을 떼었을 때 트럭이 숨 가쁘게 좌회전한다. 눈 깜빡할 사이에 언니가 넘어간다.

나는 그 뒤에 이어지는 상황을 보지 못했다. 나의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언니가 건넌 건널목을 향해 그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다. 두 번 다시 사고 영상을 보지 않았다. 안 봐도 됐었다. 그 장면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언니가 근무하던 학교 스쿨존 횡단보도엔 신호등이 꺼져 있었다. 2021년 4월에 세워진 신호등은 이후로 정상 운영된 적이 없다. 차량 교통을 원활하게 하고자 횡단보도 불을 껐다고 한다.

“언니 억울한 거 내가 다 풀어줄게. 억울해하지 마.”
사진 출처 : Claudia Soraya

그래서 언니가 퇴근하다 차에 치였다. 나는 그가 누워 있는 응급실 앞에서 밤을 새우며 상황을 곱씹었다. 억울했다. 언니가 이대로 숨이 멎는다면 아무래도 억울했다. 그에게 일어난 일을 알리고 싶었다. 이것 좀 보라고, 일어나지 않아야 했을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검사실로 이동하는 언니 옆에 찰싹 붙어 다급하게 말했다.

“언니 억울한 거 내가 다 풀어줄게. 억울해하지 마. 언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잖아. 내가 다 해결해 줄게.”

감긴 언니 눈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사고 이틀째였다. 의사는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했지만, 나는 그때 언니가 내 말을 들었다고 확신했다. 그 눈물은 분명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음 날, 사고 경위와 가족 의견을 정리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빗발쳤다. 나는 사고 원인을 짚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언니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궁금해 했다. 결과를 전시하기 바쁜 기사들이 쏟아졌다. 언니 사고가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이야기를 주워 담기엔 늦었다. 다급한 질문들에 폭격을 맞자 내 정신이 몽롱해졌다.

여러 방송사에서 사고 CCTV 영상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다시 보기도 힘든 그 영상을 넘길 수 없었다. 언니 모습이 뉴스에서 어떻게 소비될지 짐작됐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요청에 단호히 대응했다. “그러면 우리가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이 돌아왔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한 기자가 물었다.

“그러면 언니분이 응급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 주세요. 아니면 손과 발을 훑은 영상이라도 달란 말입니다.”

그는 자기 일을 했을 뿐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침묵하다 그것도 어렵겠다고 답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숨이 막혔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병원을 나왔다. 길가에 섰는데 온통 차만 보였다. 순식간에 나를 향해 달려들 것만 같아 호흡이 가빠졌다. 숨을 고르고 오른손을 번쩍 들어 길을 건넜다. 길모퉁이에 도착해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해로운 연기가 내 몸 안에서 돌고 나서야 겨우 살 것 같았다.

그때 언니 몸은 식어가고 있었다. 만지면 차가운 손과 발을 나더러 찍어 달라 청하는 무심함이 역겨웠다. 그것은 기록이 아니라 착취에 가까웠다. 고통받는 몸을 이토록 쉽게 소비하려는 세상이 두려웠다. 아픈 언니를 사람으로도 대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언니 모습이 뉴스에서 어떻게 소비될지 짐작됐기에, 나는 CCTV 영상을 넘길 수 없었다.
사진 출처 : cottonbro studio

그 기자에게 묻고 싶었다. 그 몸이 어떤 몸인 줄 아느냐고. 언니가 얼마나 힘들게 지고 산 몸인지, 우리 가족이 얼마나 공을 들여 보조한 몸인지, 그렇게 버티다 사고를 당한 얼마나 억울한 몸인지. 그토록 가벼운 태도로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는 걸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었다. 다른 피해자 가족에겐 그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전화를 다시 걸지 못했다. 내 판단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언니 사고를 다룬 뉴스가 유튜브에 올라갔다. 수많은 댓글 중엔 악플도 있었다. 조심했어야 한다며 언니를 탓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무력감에 심장이 쪼여 드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아픈 몸에 서린 억울함을 풀어줄 방법은 딱히 없었다. 연거푸 피우던 담배를 버렸다. 힘이 빠진 몸을 이끌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언니는 얕은 숨을 내뱉고 있었다. 앙다문 그의 눈꺼풀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댓글 1

  1. 피해가족을 배려하지 않는 기자들의 행태는 세월호 참사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집니다..참으로 불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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