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과 기본소득] ③ 기후위기 해법으로서 기본소득과 탈성장 경로

기후위기는 앞으로 우리가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점점 좁혀오고 있습니다. 탄소 집약적인 제조업과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제는 탈탄소라는 체질 변화 없이는 더는 세계 시장을 상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결론은 '탈성장'일 수밖에 없지만, 지금의 생활양식을 단숨에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서 기본소득과의 조우는 정책적인 대안을 포함하고 있는 매우 적절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뒤따를 수 있는 인플레이션 등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을 통해 탈성장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 이 글은 지난 2024년 12월 6일(금)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개최된 〈2024한국기본소득포럼-‘생태-사회-경제’의 단초를 찾아서〉 중 「탈성장과 기본소득」 세션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주최 측의 허락을 받아 《생태적지혜》에 게재합니다.

들어가는 말

책장에 줄지어 있는 녹색평론을 후루룩 훑다가 2013년 7-8월호를 꺼내 들고 고(故) 김종철 선생님과 곽노안, 강남훈 교수님의 기본소득 좌담을 읽었습니다. 10년 전이라 AI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입니다. 일자리가 줄어들어서 기본적인 삶을 누릴 권리에 대해 기본소득(현금 혹은 현물)이 지급되는 것에 대해 옳은 방향으로 일치된 의견을 보입니다. 그 당시 이미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기본소득이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꺾지는 않는다는 것에도 쉽게 동의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정부에서 50만 원을 준다면 일을 하지 않으실 겁니까?” 이 질문 하나로 말입니다. ‘탈성장시대와 기본소득’이라는 소제목의 내용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이후 대안을 찾고 있는 정치권에서도 좌파와 우파 모두가 향후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검토한다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처럼 좌-우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까지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사회에서, 정치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하는 상상까지 해보게 됩니다. 그만큼 일자리의 미래는 경제정책의 핵심이고,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자동화 설비와 AI가 사람들의 삶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칠 걸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동화 설비와 AI가 사람들의 삶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칠 걸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진출처 : Aidin Geranrekab

며칠 전 접한 뉴스에 따르면, 국제로봇연맹(IFR)의 ‘세계 로보틱스 2024’ 보고서에서 한국의 로봇 밀도가 직원 1만 명당 로봇 1012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2018년 이후 한국에서 로봇 밀도가 연평균 5%의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하니, 자동차와 전자제품 조립과 생산 등 제조업은 경제인구 감소와 무관하게 자동화의 수순을 차곡차곡 밟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은 줄어도 생산량은 줄어들 계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기후위기와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은 계속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농업은 어떨까요? 도시화와 산업화로 농촌의 인구는 계속 줄었지만, 심지어 경지면적도 1975년에 비해 72만754ha가 줄어들어 2023년 151만2145ha이고, 경지이용률도 1975년 140.4%에서 108.6%로 줄어들었지만, 농가당 경지면적은 1975년 1ha 미만에서 2023년 1.51ha로 늘었습니다.1 면적을 인구로 나눈 값이기에 모든 농민이 평균적으로 늘었다고 볼 수는 없고, 고령의 소농이 다수 있고, 대농이 그만큼 경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런 큰 경지를 경작할 수 있는 배경에는 기계화가 있습니다. 1975년 1만1884대였던 이양기가 2022년에는 52만7700대로 늘었습니다.2 벼농사의 기계화율은 99.3%로 대부분 트랙터와 콤바인으로 벼농사를 짓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토지생산성은 2023년 10a당 176만5577원으로 1970년 대비 79배 증가하였습니다.3 여기에 보태서 쌀 소비는 줄고 고기 소비는 월등히 늘어났지요. 쌀을 포함한 식량작물 생산액이 농업 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5.5%(1970년)에서 17.6%(2020년)로 감소하고, 과일과 축산물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습니다.4 특히 축산물은 1970년 1,180억 원이던 생산액이 2022년 25조2240억 원으로 213배로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5 제조업의 생산설비가 로봇으로 교체되면서 생산성이 계속 증가하였듯이 농업에서도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기술발전은 생산을 끊임없이 증가시켜 왔습니다.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내수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제조업과 경제성장으로 변화된 한국인의 식품섭취 성향으로 농업에서도 성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GDP 성장은 격동기 몇 해를 제외하고는 성장의 경험을 누적했습니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주제를 떠안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성장세를 크게 꺾지는 못했는데요, 왜일까요?

[그림1] 국내총생산 및 경제성장률 (출처: 통계청 e-나라지표, 2024.11.27 다운로드)

기후위기와 탈성장

저는 기술과 무역을 우리나라 성장의 기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던 말이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고, 섬과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인적자원이 ‘노동력’이 아니라 교육수준에 따라서는 기술발전의 원천이라는 의미입니다. R&D예산 감축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 이유도 그렇습니다. 기술발전이 곧 성장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사실이 그러니까요. 그러나 무역을 빼고 말하면 반쪽짜리 이야기입니다. 중공업과 제조업의 발전은 무역에 기반합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반도체까지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이고, 지금은 중국과 인도와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기후위기’라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탄소 집약적인 제조업과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성장은 중국과 같은 다른 경쟁자 외에도 탈탄소라는 체질 변화 없이는 더는 세계 시장을 상대로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어떤 성장을 할 것인가.

제 주변에는 탈성장론자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탈성장, 즉 1.5℃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것을 소비하지 않아도 생활이 즐겁고 윤택합니다. 그러한 삶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고, 조금 덜 따뜻하고, 덜 시원해도 견딜 만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1.5℃ 삶을 대한민국 표준 생활양식으로 만들려고 하면 어떤 교육과 홍보 활동이 필요할까요? 이러한 시도를 안 해 본 것이 아니라서 감히 ‘정말 어렵다’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탈성장이 성장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가치를 변화시켜보자, 혹은 행복은 성장에 있지 않다는 말인데,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냐, 금욕주의냐 등등 제대로 전달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기후위기에 처한 지금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자원을 동원해야 합니다. 모두가 변화된 생활양식을 선택한다면 큰 고민 없이 기후대응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생활양식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환경 혹은 생태전환 교육과 홍보는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텀블러와 대중교통 이용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넛지6 이상의 정책적 변화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기본소득과의 조우는 생활양식의 선택보다는 정책적인 대안을 포함하고 있어서 적절한 고려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 실험

기본소득은 국가의 근간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정책도입의 설계에 따라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책지원금을 도입하거나 노령연금, 농민기본소득, 청년기본소득 등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한 예가 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국가 부채가 늘어났지만, 시장에는 또 그만큼 돈이 많이 풀렸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 소상공인들은 정책지원금을 받아서 숨통이 트였지만, 많은 돈이 임대업자에게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습니다. 지대추구(Rent seeking, 기득권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 활동을 경쟁적으로 하는 현상)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사회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에서 자원 배분의 왜곡을 일으키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지대추구는 기업이나 개인이 생산적인 투자와 혁신보다는 규제나 법적 장치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입니다. 부동산 임대업에 자본을 쏟아 부어 횡재를 기대할 뿐, 노동과 혁신적 노력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달콤한 유혹이 그동안 너무나 많았습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방송에서는 스스럼없이 건물주가 되려는 꿈들이 등장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경우엔 이런 지대추구가 더 많이 발생하는데, 경제가 성장할 경우에 경제활력이 넘쳐서 지대를 지급하고자 하는 수요가 충분히 많을 경우 임대업이 호황을 누립니다.

그러나 수요가 충분히 많지 않아도 지대추구가 발생합니다. 특히 금리를 낮추면 부동산 가격 상승을 고려해 대출을 받아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하는 예가 많아집니다. 이러한 수요가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주택뿐만 아니라 상가나 사무실 등 산업에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금리를 올리면 곡소리가 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최근 전세 사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데, 바로 대출과 전세제도가 시너지를 냈기 때문입니다. 안정적인 자금 없이 대출을 받고, 세입자의 전세금까지 얹어서 집을 구매(갭 투기) 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계속 부동산 가격이 올랐지만, 1인 가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서 2~3년 후에 문제가 터지게 됩니다. 선호하지 않는 지역부터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사무용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은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하고 있는데, 2년 전 분양가가 2억도 넘게 나갔던 물건입니다. 저(임차인)는 매달 임대료를 35만원 냅니다. 분양을 받았던 임대업자는 당시 90%의 대출을 받아서 이 사무실을 분양받았습니다. 계약을 맺을 당시 이 사무실의 대출금이 1억9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러니 못해도 현재 금리로 대략 한 달에 90만원 이상의 이자를 지급해야 할 것입니다. 35만원을 제외한 약 55만원은 다른 소득원천에서 감당하고 있을 터입니다. 임차인이 임대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이러한 문제가 우리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간 부동산이 계속해서 가격이 올랐고, 자본을 부동산에 집중할수록 더 많은 부를 창출했던 경험치가 작용한 것이겠지요.

장황하게 부동산과 지대추구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된 이유는, 돈의 흐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해서입니다. 또한, 우리가 탈성장을 이야기하고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 가장 큰 걸림돌 역시 돈의 흐름입니다. 예를 들면 금리가 낮을 때 대출을 받아서 무리하게 부동산을 산 사람들은 부동산의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대출을 무조건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금리가 높아지면 소득 증가보다 대출 압박이 크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정 어려우면 경매나 개인파산으로 이어집니다. 정부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앓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의 하향을 막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시장에 풀리는 돈을 잘 거둬들이는 정책이 기본소득의 성공을 가르는 정책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돈의 흐름과 함께 절대적으로 시장에 풀린 돈의 양이 중요합니다. 즉 인플레이션을 막는 정책이 중요한데, 시장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방법으로는 세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세금 개혁이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과 인플레이션 방지에 있어서 세제 정책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탄소세나 국토보유세(부동산 보유세)와 같은 세금을 꺼내 드는 순간 사회주의 논란에 휩싸이면서 기본소득은 또다시 정치 전선에서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돈의 흐름과 함께 돈의 양을 함께 생각해봅시다. 지속가능발전이나 기후위기, 탈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본소득의 가장 큰 매력은 불평등 감소와 노동 강도의 약화로 봅니다. 즉 기본소득으로 재정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재화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서 경쟁의 평준화, 즉 불평등 완화에 이바지합니다. 또한, 노동 강도의 약화를 이룰 수 있어서 주4일 근무 혹은 2일 근무로 줄어들 것을 예상합니다. 그러나 핀란드의 기본소득이나 우리나라에서 일부 실현되고 있는 기본소득들을 떠올려 보면 노동 강도의 약화 효과는 크게 기대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예술인이나 농민이 받는 기본소득은 효율성에 기반한 산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술은 창작과 다양성이 힘이고 농부는 기후재난에 정말 취약합니다.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병이나 균이 돌거나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면 삶의 질이 극도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즉 노동 강도와 무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신은 정부에서 50만원을 준다고 하면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저라면 50만원을 받고도 일을 할 것입니다. 첫째 정부 정책의 불안정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정권이나 지도자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정책이 뒤바뀌는 나라에서 누가 이 나라의 정책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라면 저축을 하거나 평소에 사기 어려운 물품을 구매하는 데 그 돈을 쓸 것입니다. 코로나19 정책지원금을 받았을 때 가장 호황을 누렸던 상품은 자전거였습니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공돈”이 생겼으니 건강도 생각하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 번씩 타는 자전거를 구매한 것이지요. 자전거는 그래도 양반입니다. 녹색 교통에 들어가니 말이지요. 포장 음식이나 육류 판매량도 증가하였습니다.

[그림2] 육류소비량 (데이터 출처: (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2024.11.27 다운로드)

소득이 늘어나면, 장사가 안 되어서 본인의 인건비는 못 받더라도 임대료는 꼬박꼬박 지급합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물건을 더 소비하거나 기후위기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육식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19 기간에 소고기 소비량이 닭고기를 능가하게 된 것처럼요. 추가적인 소득으로 비싼 소고기를 사 먹은 것입니다. 조류독감 등 사회적 이슈가 있지 않은 한 소고기보다는 닭고기 판매가 많았습니다. 돈이 풀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일관성, 신뢰의 문제가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들여다본 셈입니다. 행정비용으로 인해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조금 지급했을 때 일어나는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은 탈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기후위기의 해법을 탈성장이라고 보는데, 앞서 살펴본 이유들 때문에 기본소득이 탈성장의 해법일까에 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기본소득을 통해 탈성장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기본소득을 통한 탈성장 경로

기본소득이 성장이 아닌 탈성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돈의 순환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시스템 사고를 통해 기본소득을 도입하였을 때 어떤 영향이 발생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인과순환지도(CLD)를 그려보았습니다. (그림3) 매우 복잡한 도식이라 몇 가지 순환원리만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림3] 기본소득에 관한 인과순환지도 (추가적인 데이터 보완이 필요하므로 인용 불가)

우리가 아는 경제순환구조는 일차적으로는 생산요소시장과 재화/서비스 시장의 순환구조입니다. 생산요소시장에는 노동, 대지, 자본이 투입되는 시장으로 이에 대한 대가로 임금, 지대, 이자가 지급됩니다. 말은 다 다르지만 어쨌거나 그 순환의 핵심 매체는 “돈”입니다. 임금을 받은 노동자 가정에서는 그 돈으로 일반적인 기초생활에 필요한 비용(의식주), 전기요금, 세금, 외식비, 보험료, 여행비, 의료비, 교육비, 적금, 주식(투자금) 등으로 돈을 지불합니다. 이 부분이 재화서비스 시장입니다. 지대를 받은 임대업자/법인이나 자본가도 수익을 비슷한 용도로 돈을 씁니다. 노동자라고 해도 주주가 될 수 있고, 가상자산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은 재화/서비스 시장으로만 흘러 들어가지 않고, 여유자금은 은행과 주식시장, 가상자산, 부동산 시장 등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여기에 기본소득이 발생했을 때 돈의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를 예상해서 바람직한 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계획경제가 망했듯이 전체 순환구조를 계획할 수는 없습니다. 매우 역동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의 목적과 탈성장의 목적 중 일치하는 부분인 불평등 완화의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탈성장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부담을 줄이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즉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장치가 붙어야 합니다.

최근 강남훈 교수님은 기본소득과 기후위기를 함께 연결시켜서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본소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재생에너지 공공지분투자를 통한 탄소배당과 주민이익공유제와 유사한 햇빛바람연금입니다. 현물로서 지방정부가 땅의 1.5%를 재생에너지 개발용지로 지정하여 지분투자하고 이에 대한 탄소배당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신안군이나 다른 지역의 사례에서도 해외자본이 투입된 부분을 주민들이 저리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1,000만원 정도씩 지분투자를 하여서 그에 대한 배당을 받는 겁니다. 이러한 제안은 특정한 자본가에게 많은 이익을 몰아주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기본소득과 탈성장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는 무엇일까요? 제가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앞서 생각해 본 인과순환구조를 가지고 핵심 지점을 찾아보려 합니다.

기존의 일자리, 즉 고용이 창출하는 시장은 생산요소시장과 재화/서비스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자본과 자산, 금융 자본이 차지하는 부분 중 우리는 자산과 금융자본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보다는 자산으로 얻는 불로소득이 커지다 보니 누구나 자산시장을 늘리는 데 관심을 기울입니다. 게다가 노동을 대신하는 로봇과 AI 시대는 자산이 더 중요한 부의 원천이 될 것이고,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생깁니다. 피케티 지수(연간 국민총소득 대비 자산총액)가 1980년대 이후 선진국 대부분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경우 2010년 7.4에서 2019년 8.6, 2020년 9.2, 2021년 9.6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7 즉 연간 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부동산과 예·적금(주식)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커지면서 자산 중심의 사회가 되고 있다는 뜻이고, 청년이나 일반 노동자와 자산을 가진 계층 사이 불평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림3)의 인과순환지도에서 저량(stock)은 박스로 그려져 있고, 개인의 예·적금, 정부 예산(세수), 부동산, 연금, 그리고 연금과 신용기관(예·적금)의 돈이 흘러 들어가는 주식시장이 있습니다. 가상화폐 시장은 아직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이 흐름에서 기본소득이 자산으로 흘러드는 돈을 다시 정부로 보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방향을 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자연자본에 관한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연자본은 우리가 얻는 모든 생태계서비스와 그 원천인 자연 자체(저량)를 의미합니다.

자연자본은 경제성장에 의한 공해,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재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직접적인 개발행위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경제행위를 모두 오염으로 표현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로 인해 자연자본의 손실이 발생하면 기업은 비용을 치러야 하고, 자연자본이 확보되면 기업은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으니 양의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봅니다. 반면 자연자본의 손실은 인간 후생에도 영향을 줍니다. 즉 깨끗한 공기, 자연은 예방과 치유 모두에서 인간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을 맺습니다. 따라서 후생에 들어가는 예산은 자연자본과 음의 관계를 이룹니다. 즉 자연자본 손실이 발생하면 후생에 정부 예산이 더 많이 필요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개인에게서도 보건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기본소득을 통해서 기후위험을 줄이고 자연자본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정부와 개인이 치러야 할 비용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을 통해 후생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예산이 녹색기술투자, 즉 기후변화 대응에 많이 투자되어야 하고, 자산 역시 그 부분에 투입되는 돈이 늘어나야 합니다. 재생에너지를 통해 기후변화 완화 사업을 하고, 녹색전환기술로 기후변화 적응에도 대비해야 자연자본의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림4] 소득에 영향을 주는 요소와 소득이 흘러가는 방향

반면 기본소득을 통해 추가되는 금액이 기초생활 수급 이하일 때에는 고용률에 거의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풀리는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이것이 세금으로 회수되어 정부로 가서 탄소중립 정책을 이행하는 데 쓰이거나 직접 재생에너지 투자에 쓰이도록 한다면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면서도 기본소득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배당을 통해 소득을 추가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수십 년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균형모델을 창출할 수 있어서 임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토지개혁만큼이나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 초기 기본소득 지급액이 선순환의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조건이 붙어야 하는데, 이 대목이 고민인 지점입니다. 기본소득이 반드시 재생에너지나 녹색전환기술 투자로 이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면 그것이 기본소득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청년기본소득은 청년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지불해야 하고, 그것이 기본소득의 취지에도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임대료나 소고기값으로 지불된다면 기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단기적으로는 자산시장을 더 부풀리는 역풍을 맞게 될 수 있습니다. 정책평가는 거의 1~2년 안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역풍이 생기면 정책은 후퇴하게 됩니다. 따라서 초기에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기후행동 참여소득으로 지급되는 것이 정책 신호를 정확하게 주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의 내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또 있습니다. 시장은 우리가 의도한다고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더 많은 이익을 내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물론 기본소득은 그 사상적인 배경이 사회주의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평등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당장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이고, 기후위험을 줄이고, 지구 행성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를 통한 수익이 화석에너지보다 비싼 상황에서 그리드 패리티(화석에너지와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이 교차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화석에너지 전력가격이 올라야 합니다. 즉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경제학자 누구나 동의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기후 정책모델에서도 탄소가격(Carbon pricing)이 가장 효과적인 장치 중 하나이기도 한데, 전력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투자를 활발하게 하는 선순환 구조의 핵심 동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기술이 발전하여서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더 내려갈 수는 있습니다. 그럼 그리드 패리티에 빨리 도달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지대가 너무 비싸서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가격이 여전히 비싼 편에 속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화석연료로 인한 자연자본의 손실, 즉 생태계서비스 훼손이 거의 계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이 너무 싼 것입니다. 이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지불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기본소득 혹은 ‘기후행동 참여소득’ 지급이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겠습니다. 탄소세 등 화석연료 기반의 전기요금에 추가되는 부분이 명기되어야 합니다.

또한, 재생에너지 투자가 계속되더라도 건설부지가 당연히 많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유휴부지, 개발예정지에 대한 도시계획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에너지시민단체나 환경단체 등에서 경기도에 태양광을 세울 수 있는 공공 유휴부지, 주차장 등을 조사한 바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얼마 전 경기도에서는 ‘공유부지 RE100’ 후보지 1600곳을 발굴하였고, 최종 후보지 600개를 11월 말까지 정리할 것으로 보입니다.8 다만 이 과정에서 시장가치 분석이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제 사무실 앞에 있던 대규모 시유지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요금도 받지 않는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땅인데, 수천 평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주차장에 태양광을 세우지 않는 이유는 도시 계획상 개발예정지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도시계획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잠재적 개발 이익 때문에 쉽사리 20~30년 이상 개발이 묶이게 되는 태양광 발전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빠르게 진행되는 지방에서 태양광 사업이 더 이익이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개발 압력이 적고, 고령의 농민들이 누릴 수 있는 안정적인 농가소득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수도권이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면서도 빈 땅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개발 이익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토지 지분투자와 배당을 위해서는 국토의 균형 발전이나 인구 분산과 같은 정책이 동시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최근 AI 등의 활용으로 인력 수급에 대한 기업들의 요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합니다. 현재 데이터 센터가 수자원과 인접한 곳에 건설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원 공급이 가능한 곳으로 공장이 옮겨질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지나 담수, 에너지원이 기업에는 더욱 중요한 상황이 되리라 전망합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환경영향평가법」, 「산지관리법」, 「농지법」, 「전기사업법」 등 많은 법률이 정책적 일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국무 조정이 필요합니다. 이 이후부터는 누구나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후위기에 대한 국민 인식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나가는 말

불룸버그신에너지재정연구소(BNEF)는 기후위기 대응을 2개의 시나리오로 이야기합니다. 경제적(시장의존) 시나리오와 넷제로(정책의존) 시나리오를 말하면서 경제적 시나리오의 경우 2.6℃ 경로가 될 것으로 보고, 넷제로 시나리오를 따라갈 경우 1.75℃ 경로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경제적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 수준, 즉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합니다. 그렇기에 보다 적극적인 넷제로 시나리오를 따라야 한다고 투자자들마저도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넷제로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림 5] 시장의존 시나리오와 넷제로 시나리오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과 지구온난화 수준. 자료출처 : BloombergNEF

전기요금의 상승과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를 포함한 기후행동 참여소득에서부터 기본소득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류는 산업화 이후 착취의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노동을 착취했고, 자연자원을 착취하여 그 편익을 자본가들이 누리며 산업화를 빠르게 진행했습니다. 노동조합 등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조직들이 생겨났지만, 환경단체의 등장이 자연자원의 착취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환경단체가 자연을 대신해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원고 적격(소송 당사자로서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자격)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착취의 방식을 없애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 상승분에 대한 부담을 저소득층 보조금과 참여소득으로 감당하도록 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분투자를 개인 한도를 통해 투자할 수 있도록 하여 투자금을 회수하는 배당 등 다양한 형식의 순환구조를 개발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기본소득을 통한 불평등이 개선되는 시점이 되면 생산 자체를 줄여나가는 연착륙의 탈성장 생활양식이 보편화될 수 있는 문명적 전환이 필요하겠습니다. 특히 자연자본이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를 누구나 누리는 사회가 바로 생태문명이라고 봤을 때, 그 전환점의 시작은 재생에너지, 즉 에너지의 소유가 공공이 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 전환과 기본소득, 그리고 탈성장으로 이어지는 전체의 과정이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1. 농민신문 (2024.6.14)

  2. Ibid.

  3. Ibid.

  4. Ibid.

  5. Ibid.

  6. 편집자 주) 넛지(nudge)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은 《넛지》에서 넛지에 대해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용어를 새롭게 정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심리편, 이동귀)

  7. 한국세정신문(2022.10.7일자)

  8. 경기도 뉴스포털 (2024. 9. 26) 경기도, ‘공유부지 RE100’ 후보지 1천600곳 발굴. 시군과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립 추진

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발전과 환경정책, 기후변화, 리질리언스 등 우리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생태시스템 분석틀을 적용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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