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가방끈 운동과 진로에 대한 생각

대입 중심의 교육시스템과 줄 세우기 방식의 낙후된 경쟁사회도 이제쯤은 과감하게 끝내야 하지 않을까. 이 급변하는 시대에 인류의 ‘생존’이 걸린 ‘전환’과 ‘대안’의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둘러앉는 인디언 아이들의 지혜를 익히고, 좋은 삶이 궁극의 목적이 되어 경쟁하지 않는 자립이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일, 미래 진로의 해답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6.25때 남한으로 내려온 아버지는 생존과 생계를 위한 자립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혈혈단신 맨몸으로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의 선택은 오직 죽거나 아님 살아남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교육철학은 당연히 대학은 사치고 국가 의무교육까지가 상한선이었다. 당시 의무교육은 ‘국민학교’까지였으니 자식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내는 일은 아버지에겐 큰 각오이자 결심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상업계 고등학교를 가서 빨리 기술을 배워 취업하길 바랐고, 할 수만 있다면 미싱이라도 미리 배워두길 바라셨다. 정규 교과 외에 아버지가 나를 위한 교육의 자발적 투자가 있었다면, 한때 잠깐 유행했던 007가방 같은 케이스에 한가득 들어있는 기억법 테이프 전집을 사다준 것이 전부였다. 짐작컨대, 그 흔한 부모들의 교육열이었다기보다는 남들에겐 생각보다 귀가 얇았던 아버지가 영업맨의 상술에 넘어갔던 것이었으리라 추측한다.

나는 기어이 대졸자가 되었다.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고 원했던 기회가 내게 따박따박 주어져서도 아니었다. 고집스럽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으나 나는 공부가 재미없었고, 당연 성적도 나빴다. 수 차례 고배를 마시고 힘겹게 대학에 갔지만 학업보다는 학생회실과 대학가 주변을 더 즐겼다. 졸업을 하고 나서야 진로를 고민했고, 어렴풋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그를 위해선 공부가 더 필요했다. 갸우뚱하는 심정으로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 맛본 걸로 곧장 끝냈다. 재미도 없었고 등록금도 아까웠다. 대학 가느라 흘려보낸 시간과 캠퍼스의 낭만에 취하느라 보낸 허송세월까지 유예한 시간과 기회비용은 그것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투명가방끈 운동

투명가방끈 운동은 2011년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당사자들로부터 시작된 올해로 12년차 된 조직이다. 사회로부터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한 선택을 대체 그들은 왜 시작했을까. 1989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투명가방끈운동이 있었다면 나는 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NO’다. 당시는 지금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세상이 심플했고, 노동으로도 자립과 성공의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핑계 아닌 핑계지만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너무 좁았고,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용기도 없는 쫄보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노동자계급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두려움에 나는 어떻게 해서든 대학은 가자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지껏 해온 일이 이도 저도 아무것도 아니다 싶을 땐 지금도 간혹 생각한다. 그때 아버지의 바람대로 미싱이라도 배울 것을, 뭐하나 뾰족한 기술이라도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출처 : 투명가방끈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hiddenbag) 2021. 11. 18
출처 : 투명가방끈 페이스북 2021. 11. 18

한국사회에서 대학지상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잘려나가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인권’이라 외치며 2000년 전후 시작한 두발자유화 운동은 20여 년의 운동의 역사를 거쳐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기도 했지만 2018년 조희연 교육감의 두발자유화 방침에도 일부 학교에서는 여전히 규제 중이라고 한다. 하물며 투명가방끈 운동은 어떠할까. 대학입시 거부로 시작된 운동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라는 인권운동이다. 이 험난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운동을 그들은 ‘왜’,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을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사회가 제시하는 입시제도와 통념을 따른다 해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라는 자명한 사실, 내 아버지 세대의 ‘생존’의 의미와는 다른 이 역시 지금 시대의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와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투명가방끈 8대 요구안]

  • 줄 세우기 무한 경쟁 교육에 반대한다
  •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주입식 교육에 반대한다
  •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별차별과 학벌 사회에 반대한다
  •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살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 투명가방끈, 오월의봄. 2015.

진보는 경쟁에 대해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해야

2011년, ‘카이스트 사태’라 불렸던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떠올랐다. 원인은 당시 서남표 총장의 징벌적 등록금제로부터 시작된 경쟁적 시스템이었다. 2011년 창간한 《오늘의 교육》 2호 여는말 ‘선의의 경쟁은 없다’에서 박복선 편집장의 이 사태에 대한 해석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던 사태였음에도 서남표 총장은 자리를 보존했고 흐지부지 잊혀질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은 ‘보수 언론은 개혁 방안은 문제가 없는데 소통이 부족했다‘고 했고, 진보 언론은 사태의 원인이 ‘지나친 경쟁’에 있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진보에서도 경쟁을 효율성 제고에 필요한 수단이며 승자를 뽑는 공정한 수단으로 받아들이면서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친’이 문제라고 보는 인식이 근본적인 문제이고, ‘선의의 경쟁’이라 칭하며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단호히 ‘아니다’라고 진보는 말해야 한다는 점,경쟁을 승인하는 순간 대안을 상상하고 모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명가방끈 저,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오월의봄, 2015)
투명가방끈 저,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오월의봄, 2015)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3년째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 시대를 이제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암암리에 공감하고 있다. 비대면의 대면을 직면한 세상은 급작스럽게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이에 준비된 교육현장은 없다. 2020년 들이닥친 코로나19로 대학 신입생들은 한동안 캠퍼스를 밟아보지도 못했고 ‘새내기’가 누려왔던 ‘낭만?’ 내지는 통과의례도 없이 그 시기를 지났다. 대학캠퍼스의 낭만과 새내기 시절을 누려봤던 사람들은 지금의 신입생들이 안쓰럽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고 불편함도 모른다고 한다. 시대는 바뀌었고 사람도, 배움도,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배움을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이고 미래 진로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난감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배움의 방식이 달라져야 하고 배움의 현장도 더이상 학교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3의 특권과 고3 가정의 몸살을 온 사회가 당연하게 끌어안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대입 중심의 교육시스템과 줄 세우기 방식의 낙후된 경쟁사회도 이제쯤은 과감하게 끝내야 하지 않을까. 이 급변하는 시대에 인류의 ‘생존’이 걸린 ‘전환’과 ‘대안’의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청소년에게, 세상사람 모두에게 배움은 평생 필요하다. 투명가방끈 역시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제도를 거부하는 것이지 배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배움의 선택지가 다양해져야 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투명가방끈의 책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의 첫 장에서 ‘대학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말이다.

비진학 자기주도 학습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의 8가지 원칙’에 기반하면서 전환을 수용할 수 있는 상상력을 키우는 다양한 배움의 터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책’이나 사람책의 강연 버전인 ‘세바시’와 같은 강의들, 그리고 몇 해 전 시작된 서울시 ‘청년인생설계학교’나 인생이모작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을 위한 ‘50플러스센터’ 같은 배움터도 좋은 사례들이다. 이러한 배움의 방식들이 사회적으로 보다 다양하게 준비되고 등장해야 한다. 개인으로는 환경운동가이자 철사아티스트 좋아은경 작가를 비진학 자기주도 학습의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하고 싶다. 일상 속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철사를 수집해 레이첼 카슨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는 홈스쿨링으로 시작하여 스스로 스승을 선택하고 배움을 설계한 진로 찾기의 좋은 예이다.

좋아은경 작. 2021. 작은환경미술관[아이공유]
좋아은경 작. 2021. 작은환경미술관[아이공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둘러앉는 인디언 아이들의 지혜를 익히고, 좋은 삶이 궁극의 목적이 되어 경쟁하지 않는 자립이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일, 미래 진로의 해답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영미

굴러 굴러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에 있습니다만 날마다 진로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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