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장미’를 칠하는 사회를 넘어

‘파란 장미 이야기’는 겉모습을 꾸미는 일이 본질의 회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생태 담론도 자연을 실제로 되살리기보다 친환경적 외양만 덧칠하는 데 머물 때가 많다. 꽃과 강, 숲은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흙·물·생물·계절이 얽힌 관계망 속에서 존재한다. 『비밀의 정원』처럼 진정한 회복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살리는 상호적 과정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파란 장미’가 아니라 생명이 스스로 피어날 수 있는 생태환경이다.

어릴 적 읽은 동화 가운데 오래 남는 이야기가 있다. 줄거리는 희미한데 어떤 장면, 어떤 상징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는다. 그중 하나가 ‘파란 장미’를 둘러싼 이야기다. 혼기가 찬 공주가 파란 장미를 가져오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많은 이들이 저마다 파란 장미를 만들어 바친다. 누군가는 유리로 장미를 만들고, 누군가는 붉은 장미에 파란 물감을 칠한다. 그러나 공주는 모두 거절한다. 마침내 한 사람이 평범한 붉은 장미를 들고 왔을 때, 공주는 오히려 그것이 자신이 찾던 장미라고 말한다.

이 짧은 이야기는 단순한 기지나 반전의 동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물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매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겉을 바꿨다고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진실은 종종 인위적인 덧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너무 자주 파란 장미를 칠하는 방식으로 자연을 대한다. 숲을 지키는 일보다 보기 좋은 조경을 먼저 생각하고, 강을 살리는 일보다 물가를 정돈하는 데 익숙하다. 생태계를 회복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자연의 리듬과 순환을 복원하기보다 인간의 관리와 통제에 맞는 형태로 다시 꾸미려 든다. 겉으로는 친환경의 색을 입혔지만, 그 안의 관계와 구조는 그대로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진실은 인위적인 덧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진출처 : Easy-Peasy.AI

자연은 인간이 원하는 색으로 덧칠하면 되는 대상이 아니다. 꽃은 스스로 피는 것 같지만, 실은 흙과 물, 햇빛과 바람, 벌과 나비, 이름 없는 미생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강 역시 물만 흐른다고 강이 아니다. 상류의 숲, 주변의 토양, 계절의 변화, 생물들의 이동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강은 강으로 존재한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연 바깥에서 자연을 관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변화하는 존재다.

이 대목에서 『비밀의 정원』 같은 동화가 다시 떠오른다. 그 이야기는 얼핏 보면 버려진 정원을 되살리는 성장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실은 정원이 아이들을 살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메리와 콜린은 정원을 돌보는 과정에서 건강과 생기를 되찾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일방적으로 변화시킨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고, 무너졌던 관계가 회복되며,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 가깝다. 정원이 살아나자 아이들이 살아났고, 아이들이 정원을 돌보자 정원도 더욱 깊이 살아났다. 회복은 늘 이렇게 상호적이다.

그래서 생태를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 보호를 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묻는 일이다. 우리는 자연을 꾸미고 이용하고 대체할 수 있는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생명의 세계를 하나의 살아 있는 관계망으로 보지 못한 채, 여전히 표면의 색깔만 바꾸는 데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파란 장미 이야기의 공주가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희귀한 물건이 아니라 본질을 알아보는 시선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생태 위기는 자연을 파괴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연을 살린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연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회복하지 않은 채 겉모습만 친환경적으로 덧칠할 때 더 교묘하게 심화된다. 우리는 여전히 붉은 장미에 파란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생태를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짜 변화는 겉모습의 조작에서 오지 않는다. 관계의 회복에서 온다. 죽어가는 땅에 초록색을 덧입힌다고 숲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고, 생태라는 말을 반복한다고 공존이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돌보는 과정에서 인간 자신의 감각과 삶의 방식 또한 함께 변할 때, 그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생태적 전환이란 어쩌면 거창한 기술혁신 이전에, 인간이 자연을 보는 눈을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 찾아야 할 것은 파란 장미가 아니라,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세계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세계를 회복하는 동안, 어쩌면 가장 크게 변화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 자신일 것이다.

동글이

철학과 환경커뮤니케이션, 생사학에 관심이 많다. 실제 철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공부했다. 환경적인 문제를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외부 환경 생태와 우리 몸의 관계, 행복권, 자아와 객체 간의 관계 등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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