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가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먹을거리는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 나에게 오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왜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하는지 정치경제학의 용어와 개념을 빌려 분석합니다. 대학 때 어렵게 읽었던 『자본론』의 축약본 같습니다. 『자본론』에서 다루는 개념들을 가져와 자신의 논지를 이끌어 가는데 단번에 그 의미를 붙잡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상품, 이윤, 사용가치, 교환가치,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 절대적 잉여가치… 잊고 있었던 단어들에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과 파악하기 어려운 난해함이 교차해 묘한 감정에 빠져듭니다. 그럼에도 한 장 한 장 읽어가는 설렘과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간 농사를 지으며 품었던 의문과 맞닿아있는 질문들이 책 곳곳에 숨어있어 그걸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밑줄 진하게 그으며 마음에 담아둔 문장은 이곳입니다.
“‘왜 유기농 생산물이 그렇게 비싼가?’라는 질문은 ‘왜 유기농 생산물이 좀 더 비싸지 않은가?’가 된다. 그 답은 일단 유기농 생산물이 상품이 되면 그것의 교환가치는 대체로 유사한 재래식 생산물을 생산하는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의 양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92)
설명이 필요한 개념이 있어 문장을 이해하는 데 걸림이 있는데 이걸 제 나름대로 풀어보겠습니다. 농사지은 지 제법 되지만 매년 저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의 하나는 농산물 가격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농사를 짓고 몇 가지 농산물을 수확해 팔아 생계를 꾸리지만 얼마에 팔아야 할 지 정하는 것은 늘 쉽지 않습니다.

어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원자재, 그걸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기자재, 그리고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상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단연 노동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고 팔리는 재화(財貨)는 인간의 노동이 들어가고 노동을 통해 가치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서로 교환되기 위해선 척도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가격입니다. 눈앞에 선명하게 표시된 수치는 교환이 적정한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요약하면 어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본다면 유기농산물이 소위 관행재배 농산물보다 비싼 것이 이해됩니다. 벼농사의 경우 기계화가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자기 논에 한 발자국 딛지 않고도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옷이나 신발에 흙 한 자밤 묻히지 않을 수 있어 양복에 구두 신고 벼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유기농은 상대적으로 품이 조금 더 듭니다. 모를 건강하게 돌보려고 모판에서 키우는 기간이 좀 더 깁니다. 풀을 잡지 못하면 논에 들어가 김매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노동력으로 연결됩니다. 즉, 품(노동)이 더 들고 그에 비해 수확은 떨어지니 유기농산물은 관행재배 농산물에 비해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토종벼농사를 짓는다면 일상적으로 관행재배, 나아가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분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저희 집의 경우, 모판에 쓸 상토를 만들고, 손모내기를 하고, 낫으로 벼를 베고 볏단을 묶고 한곳으로 모으고, 알곡을 털고, 다시 널고 포대에 담는 일은 온전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관행재배로 짓는 논농사에 비교할 수 없는 노동력이 들어가는 겁니다. 만약 농산물의 가격이 노동력(품)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면 저희가 파는 쌀은 지금 가격의 몇 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유기농산물은 왜 그렇게 비싼가? 라는 질문은 유기농산물은 왜 좀 더 비싸지 않은가? 라는 질문으로 치환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유기농산물 나아가 토종쌀은 왜 좀 더 비싸지 않을까요? 쌀가격을 주도하는 것은 관행재배로 지어진 쌀이기 때문입니다. 2025년 11월 현재, 관행재배 쌀의 소비자 가격은 1킬로에 대략 4천 원 선에서 거래됩니다. 유기재배는 이보다 살짝 높은 5천 원 정도입니다. 저희는 6천 원에 팔고 있습니다. 6천 원에 파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수확량도 적은데 5천 원에 팔아선 생산비에도 못 미치고 그래서 당연히 한해 나는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고 그렇다고 더 비싸게 팔기엔 사드시는 분들이 가질 수 있는 심리적 부담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6천 원이라는 가격이 적정한 것도 아닙니다. 생산비에도 생계비에도 여전히 모자랍니다. 그러나 그 이상 받기에는 심리적 상한선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리하자면 저희가 파는 쌀 가격은 관행재배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 정해지는 가격보다 비싸게 팔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럼 관행재배로 생산된 쌀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그보다는 관행재배로 생산된 쌀은 왜 그렇게 싸게 거래될까요? 관행재배로 생산된 쌀도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과 비교하면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투입된 원자재,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건비, 농기계 감가상각비 등을 고려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거의 모든 물건가격이 동시에 상승하지만 쌀값은 20년 넘게 제자리걸음입니다. 왜 그런지 이해하기 위해 이런저런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논의를 위해 조금 단순하게 정리하면 쌀생산량이 수요량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즉 쌀이 너무 생산되고 많아진 것이 큰 원인입니다. (* 물론 이런 분석은 한국이 쌀을 일정 부분 수입하고 이것이 쌀가격 하락의 주요한 요인이기도 한 점을 가린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논의를 위해 일단 이 부분은 생략해 보기로 합니다)
쌀이 흔해지니 제값은커녕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쌀 생산량이 많아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책의 저자 히메네즈의 용어를 빌리면 농업 쳇바퀴 때문입니다. 정부와 농기업은 농민들에게 생산량의 비약적 증대를 약속합니다. 자신들이 기획한 방법만 잘 따라 하면 기존에 해왔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일부 농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봅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실제로 수확량은 늘어났습니다. 수확량이 늘었다는 건 농가의 수입이 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실은 인근 농가에 삽시간에 번집니다. 너도나도 이 선구적인 농민의 방법을 따라 합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생산량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농산물 가격은 떨어집니다. 재화가 흔한데 비싸게 주고 살 이유는 없습니다. 농부 입장에서 떨어진 수입을 만회하는 유력한 방법의 하나는 농지를 늘려 더 많이 생산하는 겁니다. 일종의 박리다매(薄利多賣)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농산물의 생산량은 더 늘어나고 농산물이 많아지니 이에 발맞춰 가격은 더 떨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와 농기업들이 권장한 방식은 농민들이 선뜻 따라 하기엔 제법 문턱이 높다는 겁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선 먼저 정부와 기업이 권장하는 종자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받아왔던 종자로는 높은 생산량을 담보할 수 없었습니다. 바꾼 종자는 씨를 받아 다시 파종을 해보니 생산량이 떨어지는 건 둘째치고 처음 심었던 작물과는 다른 엉뚱한 모양을 한 것이 나오기 일쑤여서 매년 종자를 사야 했습니다. 새로운 종자는 많은 물과 양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물을 원하는 때에 손쉽게 넣고 뺄 수 있는 관개시설을 구비해야 했습니다. 양분에 민감해 양분을 주는 만큼 더 많은 수확량을 내었는데 전통적인 퇴비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마침 종자개발과 발맞춰 전통적인 퇴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가 좋은 화학비료가 개발되었고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새로 개발된 화학비료를 넣어주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종자로 키운 작물들은 키가 작아 잡초와 경쟁력에 뒤처졌습니다. 작물은 살리고 작물 이외의 풀들은 없애야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제초제였습니다. 또 새로 개발된 종자는 병해충에 취약해 잦은 방제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살충제, 살균제 같은 농약이 만들어졌습니다. 늘어난 농지를 잘 관리하고 이런저런 약제를 살포하기 위해선 대형농기계 역시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요컨대 농작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와 농기업이 권장하는 농사방법은 종자, 대형농기계, 관개(灌漑), 비료, 제초제와 살충제, 살균제 같은 화학 약제가 반드시 한 묶음으로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것도 목돈이 들어갑니다. 대형 농기계 같은 경우 웬만한 집 한 채 값이 들기도 합니다. 당장 큰돈이 없는 농민은 은행 빚을 내어 이 목록들을 구비해갑니다. 농부는 이 빚을 갚기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합니다. 즉 경지를 늘리고 농산물을 많이 생산해 팝니다. 농사 말고 다른 일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니 농사를 많이 짓는 것 이외 다른 일을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생산량이 늘어나면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고 농부는 다시 농지를 늘리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농업 쳇바퀴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관행재배 쌀 가격은 생산비는 물론이거니와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낮거나 현상유지에 가깝게 형성됩니다. 쳇바퀴에 올라서게 되면 벗어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게임의 승자는 농부일 리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농기계회사, 농약회사, 종자회사, 그리고 은행입니다.
농산물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은 큰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농업 쳇바퀴에 빠진 농사방식은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닙니다. 근대농업이라고 불리는 이 농사방식은 인류가 당장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인 기후변화에 일조합니다. 기후변화 메커니즘은 단순합니다. 지구를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 천국이 되게 했던 것은 지구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온실기체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구를 적당히 따뜻하게 유지했던 온실기체가 늘어나 지구를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온실기체가 늘어난 건 화석연료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했기 때문인데 이는 인간의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길면 500년 짧으면 200년 사이 벌어진 일로 이 시기를 근대 혹은 산업화, 자본주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뜨거워진 지구는 산업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폭염, 폭설, 강한 태풍, 가뭄, 긴 우기 같은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농업 쳇바퀴에 올라탄 농사, 즉 수확량이 높은 종자, 대형 농기계, 관개, 비료, 제초제, 살충제를 전제로 한 근대농업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에 기대고 있고 이것은 지구를 뜨겁게 합니다. 근대농업은 지구를 덥히는 농사방식인 겁니다.
농업 쳇바퀴에 걸려들고 싶은 농부는 없습니다. 일하는 족족 수입이 내 몸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사용되는 게 아니라 은행 빚 갚는 데 써야 하는 것만큼 맥 빠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것도 평생 해야 한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농부 입장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농사 이외 다른 일을 생각해 보지 않은 농부라면 농산물 가격이 낮아져 수입이 줄어들면 경지면적을 늘려 많이 생산해 줄어든 수입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일 겁니다.
그나저나 농업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요? 네덜란드 농학자 얀 다우 판 더르 플르흐 교수는 농업 쳇바퀴라는 위험 혹 유혹에 맞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극복하는 전 세계 소농들의 실천(저항)을 목격하고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사실 그는 소농보다는 농민농업이라는 표현을 선호했지만 그가 논의하는 농민농업은 들을수록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소농과 유사해 이곳에서는 소농으로 불러보겠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득세한 사회에서 농민을 압박하는 문제는 농산물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농사짓는 비용은 상승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플르흐 교수는 농민이 처한 이 상황을 이중 쥐어짜기라고 흥미롭게 표현했습니다. 이중 쥐어짜기 상황에서 소위 관행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대응은 앞서 논의한 농지를 늘리는 것 혹은 정부 보조금을 늘리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것, 농사를 포기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소농의 전략은 조금 다릅니다. 소농의 대응 방식은 절약형 영농, 심화, 확장으로 가름할 수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새는 비용 줄이기(절약형 영농), 유기재배방식으로 전환, 농산물 직거래(심화), 창고 지붕이나 빈터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해 팔거나 농장을 관광, 교육 등과 연계한 공간으로 변환해 수익을 창출하기, 농사와는 무관한 경제활동(확장) 등으로 수입을 다변화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플르흐 교수의 논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소농의 대응전략은 농지를 늘려 농업의 쳇바퀴에 들어가거나 농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이웃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농지를 지키고 그래서 농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농지 형상을 유지하는 농사방법을 구상하고 실행한다는 겁니다. 이런 소농의 방식은 지구를 덥히는 것이 아니라 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앞서 소개한 토종벼농사의 경우, 소형농기계를 이용한 논갈이, 손모내기, 인력으로 하는 김매기, 낫으로 벼베기 등은 화석연료를 적게 혹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온실기체를 적게 배출하는 방식인 겁니다.
소농의 실천은 그러한데 도시민은 어떻게 이 흐름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이상적인 것은 도시민들이 시골 지역 곳곳으로 내려와 소농으로 살거나 도심 곳곳의 유휴지에서 소농의 방법을 모방해 자신이 먹을 것을 작게나마 심고 거두어 들판에서 식탁에 이르는 과정을 온전히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그게 어렵다면 지구를 식히는 방법으로 농사짓는 소농들을 찾고 그들과 연대해 그들이 한 해 나는데 필요한 생계비에 합당한 농산물 가격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일 겁니다. 그렇게 도시민과 농민은 연결되고 의지하는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한 미식가의 자본주의 가이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낯설고 어렵지만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혼란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적절한 질문, 그리고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내딛는 용기 있는 실천일지 모릅니다.

저도 몇년 안되었지만 작게나마 심고 거두어서 먹고 있는데, 이 재미를 많은분들이 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한적 있어요.
힘이 들긴들지만 뭐랄까 등산도 힘들지만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듯이 자급자족 농사도 취미로 참 괜찮은것 같은데 말예요. 물론 그런 고급취미를 하느라 서울과 하동을 왔다갔다 하면서 휘발유를 얼마나 때고 있는지 몰라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