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인간기관차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20세기 전설의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이 한 말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이지만,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과 더불어 다른 종목 금메달을 가진 사람이 한 말이라 명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무’라는 한 단어를 더해 문장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무는 서있고”로 시작하지 않을까요? 그렇지요. 식물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동하느냐 못하느냐라고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새나 물고기나 인간과 달리 나무는 한 번 뿌리내린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서있습니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할매」를 통해 널리 알려진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600년을, 용문사 은행나무는 1,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나무가 제자리에서 풀어낸 삶의 세 가지 난제

나무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있으려면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먼저 모든 삶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뛰어다닙니다. 여기저기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느라 바빠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합니다. 먹을 것을 놓고 싸우는 일은 삶의 일부, 아니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며 싸우는 대신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창조적인 일을 합니다. 덕분에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이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동물은 다른 생명을 양분으로 삼아 먹어야만 하기에 종속영양생물이라고 하고 식물은 스스로 양분을 만들기에 독립영양생물이라고 합니다. 식물은 다른 생명을 잡아먹지 않고 오직 물, 공기, 햇빛으로 양분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으로 식물은 스스로 살고, 곤충과 초식동물은 식물을 먹고, 육식동물은 곤충과 초식동물을 잡아먹어야 살 수 있으니 모든 생명은 독립영양생물인 식물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거지요.

두 번째 문제는 어떻게 안 잡아먹히느냐입니다. 잡아먹힐 위험에 처하면 새는 날아서, 물고기는 헤엄쳐, 사람은 날 살려라 달아납니다.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입니다. 그런데 독립영양생물로 모든 생명의 밥이 되어주는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니 이 문제를 어떡하지요? 나무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장미나 밤송이처럼 가시를 만들기도 하고 나무껍질을 갑옷처럼 두껍게 만들기도 합니다. 쓰거나 떫은맛이 나게 하여 먹지 못하게 하거나 여러 화학물질을 만들어 곤충이나 동물의 접근을 막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걸 또 이용하는 게 사람이지요. 차나 커피의 카페인, 담배의 니코틴, 양귀비의 모르핀 등 식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물질을 얻어 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물과 공기와 햇빛만으로 제자리에 서서 양분도 만들고 이런 수많은 화학물질도 만들어 내는 나무들이 신기하지요? 그런데요 나무는 자기를 먹으러 오는 수많은 생명들, 곰팡이, 세균, 곤충, 동물, 사람을 밀어 내치는 방법보다 더 지혜롭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자기를 지켜냅니다. 자기 생명의 기운을 여기저기 흩어놓아 치명적인 장기가 없도록 만든 거지요. 나뭇잎도 수만 장, 혈관이라 할 수 있는 물관과 체관도 수만 개, 가지도 뿌리도 수십 수백 개를 만들어 놓아 한두 개쯤 떨어져 나가도, 수십 수백 개쯤 뜯어 먹혀도 괜찮습니다. 심지어 줄기가 잘려나가도 밑동에서 새순을 내어 다시 시작하기도 합니다. 나무는 싸우고 밀쳐내고 달아나는 게 아니라 제자리에 서서 포용하고 안아주며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할까의 문제입니다. 동물들은 짝을 찾아, 새끼를 낳아 기를 곳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 과정에서 싸움은 피할 수 없지요. 하지만 식물은 제자리에 서서 중매쟁이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나무는 바람과 빗물, 나비와 벌과 곤충들, 새와 동물과 사람을 이용해 짝짓기를 합니다. 꽃가루를 날려 보내고 묻혀 보내고, 씨앗을 열매에 넣어 새와 동물과 사람에게 먹여 멀리 보냅니다. 어렵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짝을 놓고 싸우지 않아도 평화롭게 지구 곳곳에 펴져 나갑니다.
나무의 부동이 지닌 의미

이렇게 현명하게 삶의 난제를 해결한 나무는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돌아다니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고요한 평화를 선택한 거지요. 만일 나무가 동물이나 사람들처럼 돌아다닌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우리가 하듯이 내가 먹어야겠다고, 더 먹어야겠다고, 내가 가질 거라고, 더 가져야겠다고 하면서 저 크고 무겁고 단단한 몸을 마구 휘젓는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아마도 세상은 나무들의 무참한 전쟁터가 되겠지요. 나무들의 등살에 인간들은 아마도 일찌감치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 인간들에 의해 멸종된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처럼 말이지요. 어쩌면 나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가만히 서있는 나무가 만들어 준 산소와 양분에 기대어 사는 이 땅의 모든 종속영양생물들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 때문 아닐까요? 오랜 시간 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무 앞에서 겸손히 살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