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연결망 속에서 마주한 생태적 지혜
생태적 지혜연구소에는 다양한 관계망이 역동하고 있다. 세미나와 콜로키움, 낭독회가 열리고,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그 곁에서 달공, 모모, 또봄, 길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네 마리가 무심한 듯 유유자적 노닌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모임의 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연구소에 직접 모여 공부하고 놀 때면 맛난 음식을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연구소 근처에 사는 필자는 이곳을 자주 들락거리며 수다를 떨고, 고양이들과 악수도 나누며, 수많은 우연과 필연을 마주하고 있다.
고(故) 신승철 소장이 처음 연구소 가입을 권유했을 때, ‘연구자도 박사도 아닌 내가 연구소 조합원이 되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의구심을 떨쳐 낼 수 있었던 것 은 바로 이 촘촘한 연결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연결망은 생태주의의 끝으로 이어지고 다른 연결망은 예술가 네트워크로 이어졌다. 또 다른 연결망은 오랜 사회 운동의 경험으로, 또 다른 연결망은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었다. 이 연결망 속에서 다양하게 숨 쉬는 ‘생태적 지혜’와 조우하며, 과거에 내가 바라보았던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다르게 해석하게 되었고, 새로운 실천의 실마리도 발견했다.
이곳은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 진보 정당 운동을 거쳐 온 소위 ‘586’인 필자가 다소 은둔 상태로 주변을 맴돌 때 만난 안식처이기도 하다. 한때 사회주의적 이상을 꿈꿨던 활동가로서, 마르크스주의 이후 포스트모던 철학을 접하며 길을 잃은 듯했던 1990년대 언저리의 기억이 철학과 생태 환경 책을 함께 읽으며 다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일시에 권력을 뒤엎는 그러한 혁명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시대, 생태 위기가 우리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시대, 정치·경제·군사·문화적 사안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슈가 생성 및 소멸되는 속도와 유동성의 시대에 나는 연구소에서 사회 운동의 큰 흐름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길러낼 수 있었고,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 방안도 모색할 수 있었다. ‘전 환은 빠르게 삶은 느리게’라는 연구소의 구호는 그러한 실천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책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그 과정에서 필자에게도 (처음 연구소에 왔을 때는) 다소 생경했던 여러 의미를 친숙하게 담아낸 책이다. 이 책에는 여러 철학자와 이론가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상당히 낯설고 이질적인 개념들을 참고하고 있다. 이 책은 나를 비롯한 여러 저자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경험과 역사, 흔적을 녹여 내는 과정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사유를 촉진하며, 그 해답을 풀어내려는 노력이 빚어낸 산물이다. 그만큼 이 책이 소개하는 여러 개념어는 아카데믹한 이론가들의 단순한 전유물로 머물러 있던 것을 열린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 우리의 고민을 투영하고, 다시 우리 몸에 맞게 재개조한 실천적 지혜들인 것이다.
세 가지 지혜의 지도

생태적 지혜연구소 출판위원회는 생태적 지혜를 ‘공유지의 지혜’, ‘연결망의 지혜’, ‘정동의 지혜’라는 세 가지로 범주화했다.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수많은 필자를 매개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거나 경계를 넘나드는 의미들을 때로는 교집합으로, 때로는 합집합으로 헤쳐 모이게 했다. 어쩌면 그 개념들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저 개념어만 쭉 훑어보는 사전이 아니라, 이 시대를 읽어 내는 지도와 같다.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정형화된 지식을 나열한 책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생태학적으로 재해석하고, 서로 연결된 담론과 철학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유기체 안에는 대멸종 위기에 처한 자연 생태가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초고속 성장으로 발생한 불평등과 착취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 그리고 공동체 붕괴로 고통받는 사회 생태도 존재한다. 나아가 소비주의와 성장주의를 뒤쫓는 대신 탈성장과 공동체 복원을 지향하며, 따뜻한 돌봄으로 이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려는 마음 생태까지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생태 문제를 다루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와 마주하고 그것들을 교차시킨다. 계엄 사태 등을 거치며 더욱 강렬해진 우경화와 파시즘 경향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또한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 생태 위기는 자연 생태에만 한정된 위기가 아니라 사회 생태의 위기, 즉 경제적 불평등과 더불어 심화된다. 이렇게 여러 위기와 재난이 중첩되어 진행되는 까닭에 어떤 명확한 해결책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수는 있다. 우리는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을 다중 재난 아래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불안과 절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근본적인 질문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고자 했다.
출구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선거철이 지나고 나면 쏟아지는 언론과 SNS의 평가 속에서, 사람들은 표심의 변화나 대중의 보수화·파편화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담아내곤 한다. 이념적 갈등과 각자도생의 정서가 팽배해진 사회적 징후를 보며 혀를 차는 목소리들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섣부른 자조와 우려를 멈추고, 시대를 가로지르는 이 고통 이면에 숨겨진 아픈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고 코스피가 신기루 같은 숫자를 기록하며,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이 평생을 땀 흘려도 만져보지 못할 천문학적인 액수라고 언론이 떠들어 댈 때, 수많은 보통 사람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막막함은 어떠한가. 국민연금은 우리가 노년에 이르기 전에 고갈될 것이라는 경고가 이미 내려졌고, 매달 꼬박꼬박 모은 월급으로는 수도권의 콘크리트 숲에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는 것조차 기적이 되어 버린 아득한 자산의 격차 앞에서 우리 모두의 가슴은 시려 온다.
밤낮없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대도시의 불빛 아래에는, 물류 창고에서 소리 없이 스러진 노동자들의 가쁜 숨결과 24시간 무형의 궤도 위를 질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가혹한 서글픔이 얼룩져 있다. 이 숨 막히는 아스팔트 사막 위에 던져진 이 시대의 모든 개인에게, 과연 제 손으로 피워 낼 희망의 씨앗 같은 것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기성 정치권과 주류 언론은 대중의 정치적 선택과 사회적 아우성을 두고 지나치게 단순한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하거나 염려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이 마주한 불안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특정 이데올로기적인 경도가 아니라 철저히 고립된 생존 본능의 발현, 즉 ‘코나투스(conatus)’에 가깝다.
오직 무한성장론과 승자독식의 경쟁 논리만이 유일한 정의로 작동하는 사회 체제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로 밀어붙여진 우리 모두의 실존적 위기를 먼저 읽어 내야 한다. 자본주의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점점 더 많은 구성원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기획할 가능성을 박탈당했다. 이 불평등의 극단에서 시민이 느끼는 절망감이 고스란히 정치적 반발과 사회적 분열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 Timon Studler
성장 논리로 경쟁 사회에 밀어붙여진 이들이 설 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 순간에도, 우리가 언제 이 기후위기 시대의 파국적 결말을 맞이할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임을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듯하다. 당장의 생존이 시급한 현대인들에게 인류세와 여섯 번째 대멸종, 그리고 탈성장을 이야기하는 게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생각해 본다. 이 불평등의 끝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유한한 삶을 받아들이고 탈성장과 공생공락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지 막막하기만 하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자본의 압도성은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에서 규명하는 자본주의의 단면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자연과 생명, 그리고 소외된 노동을 자신의 문명 외부로 상정하고 이를 무자비하게 포획하고 착취함으로써 성장 동력을 가동해 왔다. 오늘날 플랫폼 노동과 극단적인 자산 격차는 자본주의가 더는 착취할 외부가 사라지자 인간의 내면과 사회 전체의 미래 자체를 내부로 흡수해 갉아먹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절박함 속에 서있는 현대인들에게 거대 담론으로서의 생태학을 함께 이야기하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공생공락의 길을 향하여 : 웅성거림과 떡갈나무 혁명
유한한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타자와 함께 누리는 삶의 즐거움인 공생공락의 길은 결코 막막한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다. 이 책은 완전한 정답을 제시하는 세련된 지침서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 앞에서 인간과 비인간,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모여 대안을 고민하는 다양한 목소리의 ‘웅성거림’이자 그 자체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마주한 불안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성장주의 문명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시대적 전조다. 불안을 감추거나 억누르기 위해 각자도생의 파시즘적 정서에 기댈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을 동력 삼아 새로운 문명의 판을 짜는 책임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이 책은 따뜻하게 다독인다.
우리에겐 거대한 담론을 한 번에 뒤집는 단번의 혁명이 아 니라, 삶의 국지적인 자리에서부터 균열을 내는 분자 혁명이 필요하다. 울창한 떡갈나무 숲을 이루는 시작은 거창한 설계도가 아니라, 다람쥐가 겨울철 먹이 창고에 모아 두었다가 깜빡 잊어버린 한 톨의 도토리에서 비롯된다. 자연의 책략은 다람쥐의 완벽함이 아니라 그 망각과 우연을 통해 실현되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새순을 틔워 낸다.
이 불안정한 시대에 우리가 시도하는 작은 대안적 삶의 모색들―공동체 밥상을 고민하고, 비거니즘을 실천하며, 플랫 폼 노동과 파편화된 일상의 소외에서도 서로에게 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연결망의 시도들―이 바로 미래의 숲을 예시하는 도토리들이다.
새로운 생태 문명의 첫 번째 세대를 위하여
평생 벌어도 모으지 못할 성과급과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자산 격차라는 허구의 트랙 위에서 스스로를 조급하게 다그치고 불안해하기보다, 이 문명의 트랙 자체가 지닌 파국적 결말을 직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파국을 기다리는 마지막 세대가 아니라, 삶의 유한함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 문명의 ‘첫 번째 세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이 건네는 수많은 사유의 언어를 디딤돌 삼아, 고립된 ‘나’를 넘어 연대하는 ‘우리’가 되고 불안의 한복판에서 서로의 웅성거림을 연결하며, 이미 새로운 출구를 함께 넓혀 가고 있다.
벌써 고(故) 신승철 소장의 3주기가 지났다. 이 책은 신승철 소장에서 비롯되었지만 생태적지혜연구소라는 공동체의 증폭된 웅성거림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에 더 많은 내용을, 더 깊은 울림으로, 다양한 주체성을 담아내기 위해 함께 노력한 우리 조합원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는 모든 이에게, 그리하여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하게 다가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2026년 7월, 홍승하 생태적지혜연구소 출판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