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콜로키움 : 『탄소 사회의 종말』 읽기

문제제기들

  1. 기후위기를 생태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화하여 접근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가질까?
  2. 기후위기를 재앙과 같은 인권적 구조의 시각에서 접근할 것인가? 주체성 생산의 구성적 시각에서 접근할 것인가?
  3. 강력한 기후행동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가?

모시는 글

“어느 순간에 딱 저와 우리야말로 멸종위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 19 사태는 기후위기를 앞둔 소방 훈련에 해당된다.”, “절호의 위기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에서는 자가격리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 책의 서문에서의 글귀들은 기후위기 시대를 이제 온몸으로 맞이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시민들에게 하나의 경각심을 심어준다. 이 책은 코로나19사태의 원인이 기후위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얘기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감축과 적응을 얘기하지 않고서는 그동안 부지불식간에 누려오던 모든 인권 역시도 성립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적시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기후위기의 상황은 엄청난 전율을 일으키는 막대한 상황이며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의 상황이다. 강력한 태풍, 팬데믹을 초래한 감염질환의 확산, 가뭄과 물 부족, 식량위기, 더욱 막대해진 재난 등의 상황에 한 가운데 우리가 내던져지리라는 예상을 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그런즉슨 재앙을 동반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최대 피해자는 제 3세계 민중과 사회적 약자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인권적인 시각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보고 불평등 해결과 사회정의를 통해서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전환사회를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한다. 기후위기와 인권의 만남이라는 제안을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후위기가 갖고 있는 생태적 관점과 더불어 인간적 관점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직접적인 시민들의 삶에 대한 부분으로 간주된다.

기후위기의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 미래세대는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미래적 전망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감축과 적응이라는 시각에서 생활방식과 기업환경의 변화가 없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만약 기후위기를 그대로 둔다면 필자의 예견으로는 사회 자체가 부지불식간에 와해될 것이라는 예견도 가능하다. 인간사회가 없어진 기후위기 상황은 그야말로 문명의 모든 권리가 해체되는 밑바닥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처에서 실존적인 위기와 절규와 아우성이 발신되는 상황일 것다. 이런 상황은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으며, 기후위기를 획기적으로 막는 다양한 조치가 없다면, 우리가 직면할 미래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행동의 조직화가 아주 중요한데, 필자의 입장에서는 기후행동을 위해 생태적 관점으로 어필하기보다는 인권적 관점에서 어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이웃과 미래세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기후행동에 나설 때 우리는 환경이나 생태의 문제가 우리와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인권과 삶, 실존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의 광범위한 기후위기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올 것이 왔구나”라는 현타감을 던져준다. 동시에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왜 막대한 기후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실천과 주체성 생산의 과정형적이고 진행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왜 그의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다시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위에서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바텐더는 술을 따르고, 요리사는 요리를 하는 등의 기능적 현실 망각의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보다 강력한 지식과 정보의 현실 인식과 함께 동시에 우리 자신의 실천을 구성하려는 지혜와 정동(affect)의 방법론에 대해서 목 말라할 수밖에 없다. 살 떨리는 현실, 전망 상실, 빠져나오려는 안간힘, 필사의 절규만으로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기후행동을 통해서 전환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필자의 얘기처럼 생태, 환경, 생명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오히려 기후위기를 인간의 문제 즉, 인권의 차원에서 조명하는 것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이야기구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기후위기를 인권이나 사회구조의 차원에서 제시할 때 ‘주체성 생산’의 여지가 축소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필자의 방대한 문헌학적 연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프리즘으로 비추어진 기후위기가 너무 절망적인 페이소스(pathos)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강렬한 기후행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누가? 어떤 뜻과 의지를 가지고 나서게 되는가? 또 누가 판을 깔아야 하는가? 이런 의문과 질문이 들게 된다. 이러한 기후위기를 인권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또 다른 시각과 접속하기 위하여 생태적지혜연구소 콜로키움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필자 조효제는 『탄소 사회의 종말』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간화와 관련된 이야기구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간혹 이런 꿈을 꿉니다. 어떤 시골 농가에 불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이층 창문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즉시 소방서에 신고했지만 장난 전화라고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절박해도 도대체 믿어주지를 않습니다. 이런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94p

□ 주제 : 『탄소 사회의 종말』(2020, ㈜북이십일21세기북)
□ 일시 : 2021년 3월 25일 목(木)요일 저녁 7시 줌(Zoom)으로 링크 공유
□ 발제 : 이나미(한서대 연구교수), 공규동(생태적지혜연구소 편집위원)
□ 논평 : 오민우(대전 한밭레츠 대표), 김혜경(한살림 서서울지부 활동가)
□ 사회 : 신승철(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
□ 대상 : 기후위기에 따른 인권문제에 관심 갖고 있는 모든 사람
□ 주관 :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 문의 및 신청 : 010.9칠44.칠칠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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