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 이야기] ⑤ 내 안의 느림이 마을을 만날 때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남인도 시골 마을의 야외 테라스,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치는 카페는 마치 혁명의 본거지처럼 느껴진다. 느리지만 열띤 대화 속에서 어떤 새로운 일이 탄생할까 내심 기대하게 되는 곳- 나는 내 고유한 영혼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오로빌에 왔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이 마을과 화음이 되어 스며들어 있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여기가 우리를 위한 각별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카페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라면 이내 발길을 멈추게 된다. 배경음악도 없이 미처 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국적의 언어가 한데 섞여서 한순간에 축제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카페는 정말이지, 신난다. 부지런한 그릇들이 컵과 입맞춤을 하는 소리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게다가 간간이 들리는 남인도 사람들의 정감 있는 타밀어는 어딘지 모르게 한국말과 닮아서 마음이 달뜬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치는 카페는 왠지 혁명의 본거지처럼 느껴진다. 열띤 대화 속에서 어떤 새로운 일이 탄생할까 내심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던 흔적들이 바람에 유유히 쓸려간 다음에도 나직하게 남아있는 온기가 나의 발목을 감싸주는 그런 카페가 오로빌에 있다.

1층에는 태양열을 이용해서 요리하는 공동식당인 솔라키친이 있고, 나선형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2층에는 라테라스(La Terrace)카페가 있다. 불어로 된 이름처럼 넓은 옥상에 야외 테이블이 있고, 음료를 주문하는 일자형 바에서 아이들이 팔을 괴고 매달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기도 한다. 실내에도 조용한 자리가 있고, 바 앞으로 펼쳐져 있는 자리도 있지만, 나는 보통 나무 그늘이 드리운 바깥 자리에 앉아서 하늘을 원 없이 구경한다. 옥상 난간 가장 자리가 평평하고 조금 여유 있어 어떤 이는 누워서 즐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한다. 점심시간이 한바탕 지나가면 그 자리에는 은색 스테인리스 컵과 그릇들, 수저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서 뜨거운 햇빛 소독을 한다.

1층에는 태양열을 이용해서 요리하는 공동식당인 솔라키친이 있고, 나선형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2층에는 라테라스(La Terrace)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잘 놀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으면, 어디선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랑 어린 시선들이 느껴져서 자세를 가다듬고 나도 흐뭇한 눈빛으로 화답한다. 사진제공 : 윤경

오로빌을 방문한 게스트가 여기서 돈으로 계산하고 마음껏 사 먹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곳이다. 가지고 있는 현금보다 당신이 누구인지 더 중요한 곳인 것만 같다. 바에서 주문한 게 나왔다고 찾으러 올 때까지 이름을 몇 번이고 노래하듯 불러 댄다. 테이크 아웃도 없다. 그러니 일회용 컵은 있을 리도 없고, 이 마을에서 차 한잔 여유롭게 마실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할 것이 어디 있겠나 싶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당장 누군가가 나서서 제동을 걸 것만 같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온토(穩討)하며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기쁘게 하는지, 무엇이 행복한지, 무엇이 고마운지, 무엇이 슬픈지, 무엇이 지독하게 싫은지, 무엇이 괴로운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서서히 살아났다.

일하는 사람들은 기계적인 움직임이 하나 없다. 가끔 주문한 것이 잘못 나오기도 한다. 간혹 주문을 잊어먹기도 한다. 그렇다고 화내거나 실랑이 하는 걸 본 적은 없다. 주문할 때면 서로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뭘 더 팔아야 되겠다는 조급함도 없다. 여기 흙으로 빚은 도자기 컵에 담겨서 나오는 진저레몬티는 질리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들이닥쳐도 카페는 놀라지 않는다. 흙발로 뛰어 올라와도 말이다. 아기가 울어대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잘 놀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으면, 어디선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랑 어린 시선들이 느껴져서 자세를 가다듬고 나도 흐뭇한 눈빛으로 화답한다. 2층 위로도 한참 더 키가 큰 나무가 가만히 손을 내리고 아이의 손을 잡아준다. 떨어뜨려준 열매 알과 잎사귀로 소꿉놀이가 한창이다. 암만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으면 하는 밤, 밤새워 노동하는 자가 없다는 것, 멈추지 않는 벨트 위에서 내려온 것만 같은, 자연에 반하지 않는 인간의 생활 리듬을 되찾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진제공 : 윤경

마을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집 말고도 맘 편히 갈 수 있는 장소가 생길 때마다 이 마을에서 우리의 삶이 점점 더 안정감을 더해갔다. 남편이 일터에서 오로빌 사람들과 마주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서 오로빌 사람들을 만났다. 장을 보고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괜히 들리면서 사람들을 보았다. 앞으로 우리의 삶은 어찌 흘러가게 될까, 나는 이곳에서 둘째 아기를 무사히 잘 나을 수 있을까, 여기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어떤 꿈을 펼칠 수 있을까, 남편은 학문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단우는 어떤 학교로 들어가야 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부터 막연한 일들까지 이곳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그려 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장소의 분위기를 보면 그 마을이 어떤 곳인지 대략 가늠하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쫓기지 않는다. 그들은 뭐든 느리다. 이 마을에 흐르는 깊은 저음의 박자가 내 마음에도 강하게 고동치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에선 내가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서서히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잘 낳고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찬 내 역할과 나의 존재가 온전히 존중받는다는 당연한 감정을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느끼기 어려웠을까. 뭔가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엄마로 있어야 될 시기를 재빨리 떼내야 할 것만 같고, 자꾸 어디론가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위태로운 감정이 들게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한국에서 무엇에 쫓겼던 것일까.

편의점도, 홈쇼핑도 하나 없이 24시간 풀가동이 되지 않는 마을에서, 밤이면 온전하게 달님이 뿌려주는 고요에 취해 잠에 빠져들고, 아침이면 잎사귀보다 더 많은 새가 나무에 붙어 앉아 요란하게 우는 바람에 눈을 뜨게 된다. 새소리가 이렇게 컸었나, 마치 약동하는 생명의 질서가 뚜렷한 정글 속 같았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으면 하는 밤, 밤새워 노동하는 자가 없다는 것, 멈추지 않는 벨트 위에서 내려온 것만 같은, 자연에 반하지 않는 인간의 생활 리듬을 되찾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침에 가뿐하게 눈이 떠지는 것은 오로빌(Auroville)이 새벽의 도시라는 이름 때문만은 아니리라.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느린 오로빌 마을에서조차 삶이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면, 나의 고유한 박자를 놓치기도 했다. 그것은 오로빌 특유의 밤과 낮이 생성하는 느린 박자와는 다르게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지 않았을 때이다. 지금 여기에, 내 호흡이 온전히 스며들지 못했을 때이다. 내 안의 작은 혁명이란,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내 내면에서 흐르는 시간을 잘 지켜낼 때이다. 나는 내 고유한 영혼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믿는다. 그냥 난 멋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공기가 흐르는 2층 카페가 좋았다. 그 속에 우리가 이 마을과 화음이 되어 스며들어 있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여기가 우리를 위한 각별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경

시골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보다 나답게 사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댓글 2

  1. 빗소리 들으며 이 글을 읽는데 참 좋네요 가본 적도 없는 그 곳의 흙냄새와 따스한 햇볕과 포근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2. 나는 왜 내가 원하는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가? 한참 생각해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온토라는 귀여운 말도 알려주시고.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