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한알 속의 우주』를 읽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기후 위기의 증후가 하나 둘 씩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있다는 생명 사상을 펼친 장일순 선생님의 글, 강연, 대담이 담긴 책을 읽어보았다.

작년 말에 내가 세 들어 사는 건물의 주인이 바뀌었다. 1층으로 이사 들어온 새 건물주는 평생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장만한 이 건물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손봤다. 망가진 채 관리 되지 않던 대문과 우리 집 수도꼭지를 고쳐줬고, 지저분했던 작은 정원은 말끔하게 치워졌다.

『나락 한알 속의 우주』장일순 저(2009, 녹색평론사)
『나락 한알 속의 우주』장일순 저(2009, 녹색평론사)

그런데 얼마 전, 앞집에 사는 이웃 친구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두 그루의 나무에 우리 건물주가 구멍을 여러 개 뚫고 갔다는 것이다.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그 나무는 아주 천천히 죽어간다고 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왜 했을까 물으니 이유는 더 비참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건물주의 하수구를 막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찌 이리 이기적일 수 있을까. 남의 나무에 몰래 해를 가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그는 그가 한 행동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모를 터였다. 안다면 그런 행동을 섣불리 할 수 없을 테니까.

건물주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나락 한알 속의 우주』(장일순 저, 2009, 녹색평론사)에 적힌 말들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 사회운동인 ‘생명 사상’을 펼친 사회운동가 장일순 선생님의 글과 강연, 대담이 담긴 책이다. 그는 도농 직거래 협동조합인 ‘한살림’의 선두자이기도 하다. 동학, 신학, 노자, 간디 등 동서양 사상을 막론한 집합체인 그의 사상은 이 ‘한살림’이란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책에서 그는 이처럼 말했다.

“일체의 존재는 하늘과 땅, 우주와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by Skitterphoto 출처: www.pexels.com/ko-kr/photo/9198/
“일체의 존재는 하늘과 땅, 우주와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사진 출처 : Skitterphoto

“‘한살림’이란 이야기 그 자체가 뭐냐. 생명이란 얘기거든. 하나란 말이야. 나눌 수 없는 거다 이 말이야. (…) 땅이 없인 살 수 없잖아요? 하늘이 없인 살 수 없지요. (…) 하늘과 땅과 떠나서 살 수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떠나서 존재할 수가 있다고 하는 곳이 있다면 말씀해봐요. 일체의 존재는 하늘과 땅, 우주와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고. 그럼 그런 자격으로 봤을 때 일체의 중생, 풀이라든가, 벌레라든가 돌이라든가 그런 것들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가? 동격(同格)이지요. (…) 그런데 이건 더 아름다운 거, 이건 고귀한 거, 이건 좋은 거, 이건 나쁜 거, 이건 누가 정하는 거냐? 사람의 오만, 사람의 횡포가 정하는 거지. 그런데 오늘 이 시점에 와서 보니, 사람이 자기횡포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 우주는, 인간의 미래는 끝나는 거지.”

우리 집 앞 나무들은 이 근방의 유일한 나무로, 아침이면 수십 마리의 참새와 직박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와 같은 텃새들이 찾는 쉼터다. 태양이 뜨거운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 지나가는 길고양이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가을에는 오동통한 홍시가 수십 개 달려 매연만 실컷 마시던 새들에게 달달한 한 끼를 선사하곤 한다. 그 뿐이랴! 나무에 살고 있는 수많은 벌레들과 유기물의 터전이며, 이 근방 사람들이 유일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특히 나는 매일 나무를 찾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했고, 그건 이 집이 좋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이 나무들도 생명인 것을… 어찌 이 사건이 크지 않을 수 있을까. 장일순 선생님의 말처럼, 사람의 오만과 횡포가 이유가 되어 이런 잔인한 행동이 행해지고 말았다. 편리함만 바라보았던 건물주로 인해 우리는 숲과 우주와 미래를 잃었다.

어찌 보면 건물주의 행동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양이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독이 든 덫을 놓고, 건물·터널·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생명의 집을 부수고, 맛있다·따듯하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고문하는데도 정당화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사고와 자본주의라는 역병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오늘이 그 증거다. 편안함에 눈이 멀어 지구 자원을 마음껏 소비하며 살아왔던 우리는 이제 전처럼 안이하게 살아갈 수 없다. 당연하게 행했던 것들에 다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장일순 선생님은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내포되어 있듯이, 너/나로 구분 지어 ‘타자화’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과 생명체는 모두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기본적인 이치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를 논하기에 앞서, 풀 하나도 우주 만물이 키워낸 생명체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길러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다 보니까, 이 산업문명 자체가 계속 자연을 파괴해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땅 마저도 망가뜨려가고 또 그 속에서 생산되는 우리들의 농산물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질병을 가져다주고 이렇게 되니까, (…) 땅이 죽고 사람이 병들고 그러면 끝나는 게 아닙니까? 자연이, 생태계가 전부 파괴되고. 그것은 정치 이전의 문제요 근원적인 사람의 문제다, 이 말씀이야. 그러니까 오늘날의 정치라든가 경제라든가 이런 것은 경륜이 없는 거라. 살아가는 길이 없는 거예요. 막힌 짓들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살아가는 길을 틔워주는 방향에서 우리가 서로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저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생명 사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자. 당연히 먹었던 것,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오히려 왜 당연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게 나와 너와 우리를 함께 죽이는 일은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이게 과연 당연한가? 라는 질문을 할 줄 알게 된다면 귀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구에겐 숲이고 우주이고 하늘일 수 있는 나무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건물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의 한 구절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기본적으로 산다는 것 그 자체도 하늘과 땅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벌레 하나도 하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시오? 살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화랑정신에선 살생유택이라, 함부로 죽이지 말아라 그랬단 말이에요. 꼭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지, 아무 때나 죽이지 말아라 이 말이에요. (…) 그 모기 하나라는 존재도 우주가 뒷받침해주고, 우주가 있기 때문에 있는 거라 이 말이에요. 생명이 그렇게 거룩하고 엄청난 거예요.”

이연우

생물과 무생물을 모두 좋아한다. 직업은 시각예술작가이자 출판/콘텐츠/문화기획자, 한마디로 프리랜서다. 독립출판물 가지가지도감과 장롱다방:대화집, 방산어사전 등을 엮었으며, 〈Portrait in Plastic〉과 〈정서적고향〉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동물권과 환경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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