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민주주의』를 읽고 -구도완 저(2018, 한티재)

새해를 맞이하여 복 받기를 기다리는 것을 넘어 스스로 복을 짓자는 말을 하고자 한다. 팬데믹, 기후위기 상황에서 만들어내야만 하는 복이란 신음하는 지구,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 그리고 인간을 넘은 지구의 모든 존재들을 향해야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생태민주주의』 구도완 저(2018, 한티재)
『생태민주주의』 구도완 저(2018, 한티재)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말연시다 무언가 미래 세계로 나아갈 것 같았던 2020년은 처음과 끝을 코로나로 장식했고, 그런 와중에도 문자와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가올 새해에는 복 받으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인류가 살면서 매해 받았던 그 많은 복은 어디 갔을까? 복이 오기나 한 걸까? 먼저 받기 전에 지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복은커녕 2021년도 어김없이 팬데믹, 기후 위기 등 ‘화’만 가득한 한 해가 될 것 같아 암울해진다.

복 = 순수증여, 자연

선물을 주고받으면 상품을 사고파는 것보다 더 큰 편안함과 즐거움이 찾아온다. 물론 되갚아야 하는 부담과 고통이 함께 오기도 한다. 그런데 선물의 증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맨 처음 선물은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부모님의 선물은 부모님의 부모님에게서 왔을 것이고 그 위를 끝까지 좇아가보면 무엇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결국 종교적인 또는 철학적인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유대, 기독교 전통에는 이를 하느님의 창조와 원초적 선물은 바로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은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햇빛과 바람과 비를 공짜로 우리에게 준다.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을 한다고 해서 지구나 태양이 우리에게 요금청구서를 보내지는 않는다. 나카자와 신이치라는 종교학자는 이것을 순수증여라고 부른다.

p.34

복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복은 베푼 만큼 돌아온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내줄 것 같은 자연은 사실 공짜가 아니다. 특히 무한할 줄 알았던 자원도 산업혁명이 이후 급격하게 고갈되고 있다. 그에 따른 각종 사회 환경문제 등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진짜 문제는 불균형에 있다. 한국을 포함한 ‘탄소 불량 국가’들이 탄소 배출의 절대적 우위에 있으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탄소 저 배출 저소득 국가가 크다. 진짜 화는 엉뚱한 사람에게 피해가 오는 것이다. 무심코 돌린 빨래건조기가 지구 반대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화 = 생태위기

생태위기는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고 있지만, 그 피해는 사회경제적, 생물학적 약자들에게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황사와 미세먼지는 한반도 전체를 뒤덮지만 어떤 이들은 공기정화기가 있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이를 피하고 어떤 이들은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른다. 도시인들이 전기를 펑펑 쓰는 동안 석탄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 송전탑이 거미줄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은 한숨을 쉰다.

p.101
“Save Our Future”라는 구호 뒤에 “Help!”가 있다. 저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의 미래를 약탈해 가는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출처 : https://images.app.goo.gl/qofK5BCEmw3tt6qH8
“Save Our Future”라는 구호 뒤에 “Help!”가 있다. 저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의 미래를 약탈해 가는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사진 출처 : Garry Knight (Public domain)

2001년 911 테러사건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절망했고, 동시에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생각해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국민은 무엇을 하면 될까요?”라는 물음에 “가서 쇼핑하라”고 답했다.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게 고작 투표 당일에만 주권을 가진 자가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라면 인권, 여성, 소수자 권리를 위해 직접 거리에 나서는 흑인 민권 운동, 여성운동, 소수자 운동 등을 떠올려야 하는 건 아닐까?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공론조사는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공론조사가 끝났다고 사회적 공론 과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원전 주변에는 위험성을 떠안은 4백만 주민이 있고,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가 있다. 이들은 지금 공론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연으로 돌아간 후에도 신고리 5·6호기 주변에서 핵폐기물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들의 삶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p.139

전화위복 = 생태민주주의

그렇다면 자연과 사회에서 태어났으나 그 바탕을 허물고 있는 국가와 시장을 어떻게 다시 자연과 사회 안으로 불러들일 것인가? 나는 생태민주주의라는 길을 통해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좋은 삶, 즉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미래세대와 자연을 ‘우리’라고 생각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생태민주주의는 울타리 안에 갇힌 우리를 확장시켜, 버려진 사람들,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 말 못하는 생명과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우리’로 받아들이는 정치다.

p.6

생태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하나의 정치 형태인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를 고쳐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생각이고 실천이다. 민주주의는 귀족정, 관료주의, 능력주의, 독재, 권위주의보다 더 좋은 정치이다. 하지만 현재의 인간만이 참여한다는 한계가 분명하며 국민국가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전 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많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기반이자 우리 삶의 토대인 지구와 자연 그리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크게 고쳐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미래세대, 비인간 인격체 그리고 지구의 시위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생태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약자와 미래세대는 물론 비인간존재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들이나 이들의 대리인 혹은 후견인들이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소통하고 숙의하고 행동하는 정치’

p.99

모두가 복을 짓고 살아간다면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살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꾼다.

“2021년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천근성

문래동에 작업실을 두고 자투리잡화점 ‘피스오브피스’와 게스트하우스 ‘웨어하우스D’, 인테리어 및 각종 제작 사무소 ‘국제평화상사’를 운영하는 노동자이자 자영업자이자 예술가이다. 주요 전시는 ‘In dust real’ 문래예술공장, 서울 2016, ‘반복노동대행서비스’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16, ‘공동의 기억: 새석관시장’ 성북예술창작터, 서울 2018, ‘가을소풍’ 로하스참사랑요양병원, 서울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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