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보호’의 역설 – 가축보호법과 가축전염병예방법을 중심으로

AI, 구제역, 돼지콜레라와 같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면 가축들에 대한 살처분이 뒤따른다. 이 패턴은 언젠가부터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 살처분의 기준이 완화되어 예방적 살처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가축을 기르는 최종적 목적은 그 가축을 죽여야 달성되기 때문인가? 가축보호법은 53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밀도살을 금지한다던가, 도살의 기준을 규정한다는 등 ‘죽이는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45만 마리의 돼지들이 살처분됐다. 그리고 얼마 전인 올해 2020년 1월 9일, 그동안 살처분 기준의 완화로 논란이 되어 계류되었던 가축전염병예방법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제 전염병 발생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돼지가 살처분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소, 말, 양, 돼지, 닭, 오리 그 밖에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축산물 위생관리법 제1조 1항)을 의미하는 ‘가축’은 동물보호법이 보호하는 ‘동물’의 범주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주로 축산물위생관리법이나 가축전염병예방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동물들이다. 최근 축산법시행령 개정안은 개도 가축에 포함시켜 동물권 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 글은 그 ‘가축으로서의 동물’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는 가축보호법의 역사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보호도 못하는 판국에 가축보호가 무슨 소리냐’

전쟁이나 국가적인 혼란의 시기, 동물권은 사치스러운 개념으로 인식된다. 6.25전쟁 이후 ‘가축보호’란 말은 비난받기 쉬운 주장이었다. 사진은 시리아의 한 농촌 풍경이다. (https://flic.kr/p/owohdM)
전쟁이나 국가적인 혼란의 시기, 동물권은 사치스러운 개념으로 인식된다. 6.25전쟁 이후 ‘가축보호’란 말은 비난받기 쉬운 주장이었다. 사진은 시리아의 한 농촌 풍경이다.
출처 : https://flic.kr/p/owohdM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2월 8일 가축보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된다. 그 법은 전문 6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주요 내용은 가축의 등록제 실시, 종축(種畜)의 설정, 가축 매매교환의 일원화를 위한 가축시장의 개설, 기타 가축공제 벌칙 등을 규정한 것이다. 원안에는 가축 학대를 금지하는 벌칙 조항이 있었으나 삭제되었다. 가축도살과 관련해서는, 학술적으로 필요한 경우, 수의사 진단에 의하여 절박 도살이 필요한 경우, 사용능력이 없는 경우, 기타 주관 당국의 도살을 인정하는 경우 외에 도살이 금지되었다. 한편 이 법의 공포에 따라 축우도살제한법은 폐지되었다. 이 법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감소일로를 걷고 있는 가축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소 말, 양, 돼지 등 네 종류에만 적용되었다.

당시에는 현재와 달리 동물 자체를 위해 동물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무관심과 조롱을 받았다. ‘동물보호’가 아닌 ‘가축보호’라는 표현과, 또한 그마저도, 소, 말, 양, 돼지에 한정한 것을 보면 당시 동물보호 내지 동물의 권리라는 관념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한국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기여서 더욱 그러했다. 사람 목숨도 보호받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동물보호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 1953년 12월 26일 국회에서 “종축을 확보하여 가축의 개량증식 이용의 촉진을 목적으로 한 가축보호법”을 심의하다가 성원미달로 축조표결을 못하고 산회한 것도 그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백남식은 “사람보호도 완전히 못하는 이 판국에 가축보호가 무슨 군소리냐”고 고함을 질렀다. 또한 본 법안 26조에 “우마를 학대하는 자는 그 정상에 의하여 백 원 이하의 과료에 처한다”는 벌칙 규정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 못하는 소 말이라 학대를 받더라도 호소할 방법은 없을 것이나 여하간 우마차 차부들은 하루에 과료금 3, 4천씩은 준비하고 다녀야 할 판”이라고 언론은 꼬집었다. 비슷한 주장이 4년 후에도 제기되었다. “가축보호장려비로 농림부에서 약 6억 환 이상의 예산을 청구하고 있는데 국민학교 신영비가 불과 15억 환이니 도대체 사람의 새끼보다 돼지새끼가 더 중하다는 말인가”라고 지적되었다.

가축보호법안 : 연령 미달 축우(畜牛)의 밀도살 방지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냉장고가 없던 50년대에는 ‘소 잡는 날’을 정해두고 구매할 부위를 사전에 약속하였다고 한다. 마을에서 소를 잡으면 약속대로 각 부위를 나눠서 먹었다. 53년도 근대적인 가축보호법안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도살은 불법화 되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f/Isaac_van_Ostade_-_Pig-Killing_-_WGA16762.jpg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냉장고가 없던 50년대에는 ‘소 잡는 날’을 정해두고 구매할 부위를 사전에 약속하였다고 한다. 마을에서 소를 잡으면 약속대로 각 부위를 나눠서 먹었다. 53년도 근대적인 가축보호법안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도살은 불법화 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1953년 12월 28일 가축보호법안 전문 37조가 통과되었다. 이 법은 “가축의 보호보다는 밀도살 방지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관리법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평가되었다. 이에 대해 “의료시설과 사료 등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여 명실공히 가축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라고 설명되었다. 1954년 1월 23일 가축보호법이 공포되자 농림부 축정국은 이 법에 의거하여 1954년 4월부터 소, 말, 양, 돼지의 가축 등록을 전국 시ㆍ읍ㆍ면 단위로 실시하여 가축의 증산과 아울러 밀도살을 방지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예산에서 1천만 환을 계상했으며 이것이 실시되면 연간 수만 두로 예상되는 축우 밀살이 방지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법으로 ‘축산동업조합’이 탄생하는데, 이 조합이 종래 농회가 축산 관리로 수수료를 받던 권리를 빼앗았다고 지적되었다. 또한 이 법으로 인해 소와 말도 사람의 호적부처럼 축적부를 만들어야 하고 농민은 가축을 등록해야 하므로 소, 말을 몇 십리씩 끌고 다녀야 했다고 언론은 지적했다. 즉 당시 가축보호법은 가축보호 외에 다른 이해관계와도 얽혀있었다.

동아일보는 “우공(牛公) 울릴 가축보호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 내용은 “가축보호법에 의거하여 현재 제한도살하고 있는 도살제도가 해제되어 자유도살이 실시”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계당국자는 가축보호법에 의해 모든 소가 완전히 등록되어 소의 연령이 명확하게 밝혀짐으로써 현재와 같이 나이 어린 소나 태우의 도살이 금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러한 자유도살제가 실시되면 현재 수준 이상으로 농촌의 소가 도살될 것은 필연시 될 뿐 아니라 앞으로 농우확보에도 커다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1955년 4월 20일 1,300여 두의 축우 밀도살 사건은 위에 언급된 자유도살의 위험과 축산동업조합의 문제가 동시에 불거진 사건이었다. 서울 근교 광주에서 축산동업조합 장부를 조사한 결과 서울로 이전된 연령 미달 소가 1,300여 두에 달했지만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그 소들이 모두 밀도살된 것으로 보였으며 그 외에 밀도살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이 사건은 가축보호법이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았으며 축산동업조합의 고의적인 처사로 야기된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이 사건의 영향인지 이후 가축보호법 제35조에 의한 축산동업조합은 해산된다. 그 업무와 재산은 모두 지역별로 해당하는 리・동조합, 시・군조합중앙회 및 중앙금고가 인수하여 이를 청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신문에 축산동업조합 관련 기사가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합이 다시 구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더구나 조합의 문제점은 계속 지적되었다. 조합은 농민을 괴롭혀 재원을 마련한다고 비판되었다. 농민들이 애지중지 기른 소를 팔 때 “장똘뱅이 엉터리들이 순박한 농민을 이리치고 저리 넘기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맞는 것을 보고 웃으며 사무실에 관이연체 하고 앉아 영수증 하나 쓰고 소 한 마리에 2, 3천 환씩 떼고 진짜 중개인은 그 다음에 들러붙어 뜯어먹는 형편의 우시장중개수수료. 이것은 마땅히 농민의 소리로 시정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됐다. 그런데도 “이것 없이는 경영이 불가한 형편에 처한 축산조합을 그대로 독립 존속시키자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젖소, 말, 돼지, 산양 등 다양한 가축에 확대

가축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하면 나머지 가축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염 경로에 있는 모든 가축을 죽이는 것을 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생명을 다루는 법인만큼 다른 ‘자원’이나 ‘재산’의 관리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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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하면 나머지 가축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염 경로에 있는 모든 가축을 죽이는 것을 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생명을 다루는 법인만큼 다른 ‘자원’이나 ‘재산’의 관리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출처 : geograph.org

1958년 10월 가축보호법시행령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도살제한이 대폭 완화된다. 한우에 국한했던 종축사업이 젖소, 육우, 말, 돼지, 산양 등에까지 확장되고 가축시장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회계가 설치되었다. 1959년 2월 9일 다시 한 차례 가축보호법시행령이 개정되는데 그 골자는 도살 금지를 젖소의 경우 종전의 9세 미만에서 8세 미만으로, 육용 암소, 말, 한국 암소의 경우 종전 9세 미만에서 6세 미만으로, 거세한 소를 제외한 한국 수소는 종전 4세 미만에서 3세 미만으로 완화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 시기 가축보호법은 그 이름과 달리 단지 가축관리법으로서 도살완화법이고 축산동업조합 구성을 위한 법으로서, 동물보호와 무관하고 또한 축산업의 주체인 농민의 이익에도 부합되지 않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축보호법은 죽이는 기준일 뿐인가? 생명 자체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

이후 가축보호법은 가축법(가축전염병예방법)으로 바뀌었고 현재의 주요 쟁점은 전염병 예방과 살처분이다. 또한 올해 2020년 1월 9일 살처분 기준이 더 완화된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 법에는 ‘역학 조사 또는 정밀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오거나, 임상증상이 발견된 경우에만 출하 권고를 허용’했는데 그 법을 더 완화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때” 살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안은 올해 초까지 반대 의견이 강해 계류 중이었다가 지난 1월 9일 통과되었다. 개정된 법안은 ‘시장ㆍ군수ㆍ구청장으로 하여금 가축전염병 발생ㆍ전파를 막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때에는 가축의 소유자 등에게 도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 되어 있다. 다만 살처분 명령은 역학조사 결과 가축전염병 특정매개체와 가축이 직접 접촉했거나 접촉했다고 의심되는 경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한한다고 되어 있다.

과거 가축보호법이나 현재 개정된 가축법의 공통점은, ‘가축’과 관련된 문제를 ‘죽이는 기준’의 완화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가축을 포함하여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또한 최근 많이 제기되는 주장처럼 ‘균’에 대한 재인식과 더불어 생명 자체에 대한 심층적 재논의가 필요하다.

이 글은 이나미의 『한국시민사회사: 국가형성기 1945~1960』(학민사 2017)의 일부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이나미

한국의 정치이념과 정치사를 주로 연구해왔다. 정의가 구현되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해법은 무엇인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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