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성(intersectionality)과 돌봄, 그리고 영 케어러

‘돌봄자’도 교차성 개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 돌봄 수행자들의 정체성이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돌봄은 수행자와 수혜자 모두의 자원, 재능, 권력 및 지위에 의존하며 매우 다양한 조건 속에서 수행된다. 돌봄자의 젠더, 가족적 위치와 역할, 연령, 계층 등이 어떻게 교차하며 돌봄을 수행하는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

1.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란 무엇인가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란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에는 젠더, 인종, 성적 지향, 계급, 장애, 연령, 종교 등 다양한 억압이 상호교차적으로 작용하기에 이를 복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교차성 이론은 1989년 미국의 흑인여성 법학자인 킴벌리 크렌셔(Kimberlé Williams Crenshaw)가 처음으로 고안하고 체계화하였다. 이 이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1970년대 흑인 여성들이 백인 여성 중심으로 주도된 페미니즘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이다. 흑인 여성 대다수가 노동자 혹은 그 이하의 위치에서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인종, 계급 등의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임을 주창하였다. 교차성이 발전되어 온 전통은 결코 사회적 위치성에 대한 단순한 범주적 개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복잡하고 경쟁하는 권력의 배치가 드러날 수 있는 특수한 위치의 입장을 강조해왔다.

이 개념은 서구의 학계와 사회운동가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이 개념을 사용하는 운동가나 학자들이 최근에 늘어났으며, 특히 교차성 개념을 독자적으로 사용하기보다 페미니즘 이론과 함께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여러 차별 반대 운동에서 일부 활동가들이 이 개념을 사용해 차별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여성이 겪는 다양한 차별 경험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에서 차별 경험이 기인된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별 이외에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연령 등 또한 차별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연구의 주제인 ‘돌봄자’도 교차성 개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 돌봄 수행자들의 정체성이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돌봄은 수행자와 수혜자 모두의 자원, 재능, 권력 및 지위에 의존하며 매우 다양한 조건 속에서 수행된다(린치·라이언스. 2016). 돌봄자의 젠더, 가족적 위치와 역할, 연령, 계층 등이 어떻게 교차하며 돌봄을 수행하는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

2. 돌봄과 교차성

이미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돌봄 노동에서 젠더가 크게 작동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돌봄노동을 사적 영역이나 공적 영역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젠더와 동시에 혼인 여부 또한 돌봄이 역할을 결정한다(지은숙, ,2017; 린치·라이언스. 2016). 가족 내에서 비(미)혼의 자녀들이 아픈 가족(주로 노인)의 돌봄을 수행해주길 바라거나 이미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떠맡겨진 사례들을 확인된 바 있다. 나아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교차적인 위치에서는 1순위로 노부모 돌봄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도 있다(지은숙, 2017). 이미 많은 연구들과 페미니스트들이 돌봄과 젠더에 대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돌봄자의 정체성은 상당히 경화되어 있는 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차성 개념은 돌봄자 정체성을 유화시키는 도구로써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by Pixabay 출처 : https://www.pexels.com/ko-kr/photo/45842/
현재 한국 사회에서 돌봄자의 정체성은 상당히 경화되어 있는 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차성 개념은 돌봄자 정체성을 유화시키는 도구로써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Pixabay

사회적 계급 또한 돌봄자의 교차성에 큰 영향을 준다. 린치와 라이언스(2016)는 돌봄을 수행하는 대상자들의 교차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회계급을 살펴보았는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돌봄의 형태가 그들의 소득, 자원, 사회계급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돌봄을 수행하기 위해선 돌봄을 구매하거나 직접 수행해야 한다. 즉, 돌봄을 구매할 수 있는 돈, 또는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저임금의 자율성이 제약이 있는 일자리를 가진 돌봄자는 복지제도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적 계급이 높고, 고임금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일자리에 있는 돌봄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교차성을 통해 동일하게 돌봄을 수행하고 있더라도 돌봄 부담의 무게가 다르며 돌봄자들에 대한 담론과 논의를 구성할 때는 이들이 가진 젠더, 계급, 가족적 위치 등의 교차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3. 영 케어러와 교차성

교차성 개념을 분석도구로서 영 케어러에 접근하기 적절한 점은 한국사회의 돌봄자 헤게모니를 지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영 케어러가 교차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이미 영 케어러 정의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픈 가족원을 돌보는 어린 또는 젊은 돌봄자라는 점에서 연령, 어리거나 젊기때문에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1에서 사회계층 등 그 이외에도 젠더, 가족적 위치, 사회적 위치 등이 교차성 개념을 투영할 수 있다.

이러한 영 케어러들이 경험하는 돌봄과정과 사회적 인식에서 한국 사회가 이미 돌봄자의 헤게모니가 견고해진 나머지 교차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통해 돌봄 문제를 지원방안을 내놓는 것이 보인다. 가족 내에서 아픈 가족원이 발생하면 주 돌봄자 역할의 전가 대상을 1순위 여성, 2순위 연령대가 중장년 혹은 노년, 3순위 기혼자이며 가장 아래 순위까지 내려간다면 남성까지로 전제를 둔다. 따라서 교차성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돌봄자가 아동, 청소년 나아가 청년까지 상정되기 어렵다. 혹시 이들을 가리켜 ‘소년소녀가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교차성을 고려한 대상이 아니라 특수하게 불우한 상황으로 접근하는 것에 가깝다. 때문에 영 케어러들은 가시화되기 어려우며, 영국이나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실태조사를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영 케어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교차성 개념은 다양한 돌봄자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4. 교차성의 유의할 점

교차성 개념이 한 정체성에 걸쳐져 있는 다양한 변수를 분석하는 데 보다 세밀하고 복잡한 패턴들을 이해함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하는 주장도 있다.

교차성 이론은 ‘가난한’, ‘레즈비언’, ‘여성’이라면 억압에 관해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더하기모델(additive model)이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억압을 정량화해서 비교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합니다. 뿐만아니라 낙인찍힌 정체성을 겹겹으로 쌓아 오히려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 경험을 분절적이고 독립적이며 누적 가능한 것으로 환원하는 점, 한 사람이 갖는 정체성들 또는 정체성들에 기반한 차별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가정하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교차성X페미니즘』, 한우리, 2018 재인용; Bowleg·Lisa, 2008

위와 같이 교차성 개념이 ‘더하기 모델’에 매몰되거나 정체성에 걸쳐져 있는 변수들을 순위매기는 등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차별의 요인이 되는 것들이 분절적, 개별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이는 서로 다른 차별이 갈마든다는 현상 묘사를 넘어 차별이 왜 일어나는지, 서로 다른 차별이 왜 교차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정진희, 2018). 예를 들어, 앞서 영 케어러에 대한 사례를 설명했는데, 영 케어러가 보편적인 돌봄자 인식 틀에 벗어난다는 점에서 교차성 개념은 돌봄자 스펙트럼을 넓혀준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일한 영 케어러 범주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청년 케어러’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케어러’로 구분을 두었을 때 물론 전자보다 후자 쪽이 돌봄의 무게가 가중되는 것은 여과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① 영 케어러, ② 저임금 노동자라는 교차성으로 후자의 경우가 더욱 힘들다는 결론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인정하게 된다면 영 케어러보다 2절에서 언급한 저임금 노동의 돌봄자가 더 힘들다는 인식체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러한 어느 쪽의 돌봄 상황이 더 힘든지, 불행한지 대결구도로 몰아간다는 것에 불과하다. 또 다른 사례로 영 케어러도 연령대로 구분되는 경우도 있는데, ‘아동·청소년 케어러’의 경우는 ‘청년 케어러’보다 연령도 더 낮고 사회적 보호와 규제가 있기에 더욱 힘들다고 볼 수 있는가. 사실상 청년 케어러들이 아동·청소년기 때부터 영 케어러로서 아픈 가족을 보살피며 자라왔고 아동·청소년 케어러에서 나이가 들어 청년 케어러로 진화한 것뿐인데, 연령으로 이들의 돌봄 부담을 가르는 것은 영 케어러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비판점들은 영 케어러 사례뿐만이 아니라 각 돌봄자의 영역에서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돌봄자의 정체성은 상당히 경화(硬化)되어 있는 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차성 개념은 돌봄자 정체성을 유화시키는 도구로써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진희(2018)의 주장처럼 돌봄자를 교차성 개념으로 이해하는 이유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근본적인 어려움을 찾아내기 위함이지 마치 누가 더 힘들고 우울한 환경에 놓여져 있는가를 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영 케어러의 궁극적인 목적은 돌봄자의 다양한 스펙트럼 확장과 인정이다. 그저 어린, 미성숙한, 사회초년생으로서 그들이 갖는 특성에만 초점을 둔다면 영 케어러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어린 구성원’ 또는 ‘젊은 구성원’이라는 분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영 케어러와 그에 따르는 교차성을 활용할 때는 돌봄자 정체성에서 연속적인 존재로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캐슬린 린치. 2016. 『정동적 평등- 누가 돌봄을 수행하는가』. 강순원 옮김. 한올아카데미.
  • 한우리 외 3명. 2019. 『교차성X페미니즘』. 서울:여이연.
  • 정진희. 2016. “‘교차성’은 차별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인가?”. 마르크스21. 16호
  • 지은숙. 2017. “남성돌봄자 증가와 젠더질서의 역동 : 일본남성의 노인돌봄을 둘러싼 담론과 정책의 변화를 중심으로”. 翰林日本學. 31권

  1. 한국사회에서 생애과업에 따르면 보편적으로 20~30대 초반은 경제적 자립이 중장년 연령대보다 더디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전제를 두었다.

조명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젠더와 노인, 그리고 돌봄.
앞으로 다양한 가족과 젠더의 돌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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