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에서의 체제전환의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기후운동은 이제 무게 중심을 온실가스 감축 요구에서 체제전환을 위한 토대구축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 이윤극대화와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를 축소하고, 청정에너지, 재생 농업, 공중보건 등 돌봄 경제와 더불어 먹거리, 주거, 에너지 등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경제로 전환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300여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비상행동으로 구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단톡방은 기후위기대응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지닌 1천여 명이 들어와 있다. 그 때문에 상반된 견해에 대해서 의견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왕왕 보게 된다. 9월 17일, 청년의 날을 하루 앞두고 국무총리가 참석한 기념행사에서 여러 청년 그룹이 모여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은 체제의 문제 때문”이라며 체제전환을 요구했다가 12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인권단체들이 청년들에 대한 연행을 비판하는 글을 기후위기비상행동 단톡방에 올렸다.

평소에도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능한 빠르게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농지에도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지역의 한 환경운동가는 ‘체제전환’이라는 말이 매우 불편했던 모양이다. “어떤 방향으로 체제전환을 하자는 것이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 가자는 것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이어서 원로 운동가는 “체제전환 같은 뜬구름 잡는 논쟁은 기후위기 대응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해가 될 수 있다며”며 불을 끈 이후에 체제전환을 이야기할 것을 제안했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어쩌면 기성세대 운동가보다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문제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출처 : John Englart https://www.flickr.com/photos/takver/33509454598
어쩌면 기성세대 운동가보다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문제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출처 : John Englart

한국 시민사회의 기후운동 안에서 체제전환을 주장하는 이들이 아직은 전환의 비전과 비전을 달성할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환경운동가가 주장한 것처럼 체제전환을 기후위기 대응에서 뜬구름 잡는 문제나, 또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해서 탄소중립을 다 이룬 뒤에야(물론 지금과 같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과잉생산하고 과잉소비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 탄소중립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거론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역사적으로 남반구의 자원과 노동력착취에 기대어, 성장과 불평등을 동력으로 삼아온 경제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해온 정치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후위기의 원인이 표면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의 급격한 이용 증가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다. 밭에 난 잡초를 제거하려면 뿌리를 뽑아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올해 9월 24일 글로벌 결석시위를 진행한 청소년들이 “체제를 전복하라(Uproot the Systems)”는 구호를 내걸었던 이유도 경제성장과 불평등에 토대를 둔 지금의 체제를 엎어야 기후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기성세대 운동가보다 청소년들이 문제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체제전환을 이유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는 전 세계가 2050년 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현재와 같이 전 세계가 매년 2~3%씩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면 에너지 수요 또한 증가할 것이다. 또한, 현재 세계인구 78억 명은 2050년 전에 100억 명에 육박할 것이므로 에너지 수요는 더 많이 증가하게 된다.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 이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가.

게다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시설과 전기 자동차, 그리고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 이용되는 리튬과 코발트의 육지 매장량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초국적인 자원개발 기업들은 리튬과 코발트를 찾아 심해 해저를 뒤지고 있다. 그밖에도 재생에너지에 사용되는, 철, 구리,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금속의 채굴은 대체로 화공약품을 이용하기 때문에 토양을 오염시키고 산림을 파괴함으로써 생태계 파괴와 생물다양성 손실의 원인이 된다. 또한, 금속 채굴 과정에서 주요한 탄소흡수원인 토양과 산림이 파괴되어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 금속물질들을 추출하고, 수송하고, 가공하여 원료로 만들고, 제품을 만들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도 에너지가 투입되고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보면, 에너지와 물질 수요 모두를 줄이는 것이 답이다. 그래서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의 아눌프 그루블러(Arnulf Grubler) 교수는 공급중심의 발전모델에서 저수요 모델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그루블러의 저에너지 수요(Low Energy Demand, 이하 ‘LED’)는 전 세계 에너지 수요를 40%까지 줄여서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LED시나리오는 공공건물 및 상업용 건물, 제조업과 건설, 화물 운송, 농업과 토지이용에서 에너지와 물질 투입을 줄이는 한편, 에너지 서비스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IPCC의 「1.5도 특별보고서」는 “식량 안보에 대한 압박을 현저히 줄일 수 있고”(기술보고서), “지구온난화를 1.5℃에 가장 가깝게 제한하도록 하는 시나리오, (중략) 화석연료와 공정과과정에서 배출되는 양을 급격하게 줄이는”(chapter 2) 시나리오라고 인정한 바 있다. 에너지와 물질투입을 줄이는 LED시나리오는 일종의 탈성장 시나리오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에너지와 물질투입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물질 이용 모두를 줄여야 탄소중립 달성이 더 쉬워진다는 점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8월 한국의 탄소중립위원회가 내놓은 3개의 탄소중립 시나리오 어디에서도 에너지 수요관리를 통해서 에너지 수요를 줄이겠다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산림 흡수 등 탄소포집 기술(불확실한 기술 수단)을 통해서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것인데, 현실성이 없다. 게다가 3개 시나리오에서 명시된 산업 부분의 배출량이 모두 동일한 것을 보면, 기후위기로 인한 대멸종과 문명의 붕괴과 더불어 인류의 멸종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이 경제성장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정부와 산업계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 이후 8월 말 국회에서 통과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끊임없이 성장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기후운동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는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성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제이슨 히켈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빼앗는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돌려준 것보다 더 많이 빼앗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 우리가 보게 될 성장의 기본 메커니즘”(『적을수록 풍요롭다』(김현우/민정희 옮김, 창비)이라고 역설한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성장을 위해 자연과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를 통해서 생명세계의 균형을 깨버렸다. 기후위기보다 더 큰 위기, 즉 토양침식, 산림 훼손, 대기오염, 쓰레기 오염, 부영양화, 생물종다양성의 손실을 포함한 생태위기의 가장 큰 책임 또한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이처럼 성장 강박증을 갖고 있는 체제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아무리 많이 전환한다고 해도, 세계는 계속해서 자원을 채굴하고 재생에너지를 이용해서 기존과 같이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의 기후운동은 이제 무게 중심을 온실가스 감축 요구에서 체제전환을 위한 토대구축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출범 초기부터 체제전환에 관해 목소리를 내왔으나 체제전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밝히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비전, 즉 좋은 삶(buen vivir)과 인간과 비인간자연의 조화로운 관계와 안녕에 토대를 둔 세상의 비전을 그리고 그 비전에 도달할 전략을 세우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윤극대화와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를 축소하고, 청정에너지, 재생 농업, 공중보건 등 돌봄 경제와 더불어 먹거리, 주거, 에너지 등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경제로 전환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민정희

불교단체에서 국제연대 사업을 주로 맡아왔으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환경·경제·사회정책위원회(CEESP)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기후위기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의 이사, 국제기후종교시민(ICE) 네트워크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옮긴 책으로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 『적을수록 풍요롭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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