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과 기후위기

성육신 신앙은 무한성과 전능성의 포기야말로 신의 길이며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영성은 상승이 아닌 하강의 영성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기독교 신앙은 성장의 무한성과 기술혁신의 전능성에 현혹되어 기후위기를 자초하면서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경제적 풍요와 편리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단초가 될 수 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2:5~8

기독교인의 신앙은 예배와 실천으로 구성된다. 예배와 실천의 관계는 존재와 행위의 관계와 같다. 존재는 행위를 수반하고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 예배가 없다면 기독교인의 실천은 방향성과 동력을 얻지 못한다. 실천이 없다면 기독교인의 예배는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실제적인 현실에서 육화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배와 실천은 기독교인의 신앙을 살아있게 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기독교인의 예배는 성육신 신앙을 기억하는 것이다. 성육신 신앙은 하나님이 자신의 무한성과 전능성을 포기하심으로써 인간이 되셨다는 고백이며 이로써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고백이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예배를 통하여 인간이 자신의 무한성과 전능성의 포기하고 인간의 유한성과 무력함을 깊이 인식할 때, 그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을 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예배를 드릴 때마다 확인한다. 예배는 인간의 무한성과 전능성을 전제로 하는 모든 삶의 양식을 부정하라는 요구 앞에 기독교인을 세운다. 무한성과 전능성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며 인간이 자신의 것이 아닌 무한성과 전능성을 욕심내면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과 전능을 비우고 포기하심으로써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을 믿는 성육신 신앙은 인류에게 임박한 기후재앙이라는 위기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기후위기 시대

지구의 기온이 1.5℃ 상승하면 적도 지역에 거주하는 인류의 40%는 직접적인 생존 위협에 놓이게 된다. 
사진출처 : Parij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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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기온이 1.5℃ 상승하면 적도 지역에 거주하는 인류의 40%는 직접적인 생존 위협에 놓이게 된다.
사진출처 : Parij Photography

인류는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가설이 아닌 현실적 재앙으로 인류에게 임박해 있다. 과학자들은 기후재앙의 시기와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5℃ 상승한다면 지구의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기후재앙을 막고자 한다면 인류는 최소 205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탄소중립을 통해 지구 기온의 상승 폭을 1.5℃에서 멈추지 못한다면 지구는 기후재앙을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과학자들의 예상에 따르면, 지구의 기온이 1.5℃ 상승하면 적도 지역에 거주하는 인류의 40%는 직접적인 생존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기온 상승은 극지방의 빙하를 녹여 전 지구의 해수면은 상승하여 지구의 많은 지역이 위협적인 침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며 이와 함께 대규모 산불, 생태계 파괴, 바이러스 창궐, 식량 위기 등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또한, 극한 고온, 이상 고수온, 생태학적 가뭄의 빈도와 강도가 더욱 증가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호우 현상이 강력해지고 빈번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물 순환과 관련된 문제도 발생하는데, 대략 3억 5천만 명의 도시인들이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에 노출될 것이다. 극적인 탄소 소비 감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와 같은 기후재앙이 20년 이내에 가시화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역할

이처럼 임박한 기후재앙 앞에서 기독교 신앙의 역할이 있는가? 기후재앙의 극복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문제로만 보인다. 따라서 기후재앙의 극복을 위해 과학이나 기술이 아닌 기독교 신앙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처럼 보인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터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2021, 김영사)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터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2021, 김영사)

그러나 기후위기를 과학과 기술혁신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했으며 더 이상 과학과 기술에 기대를 거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과학자와 환경 경제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근본은 과학과 기술혁신의 부족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근본에는 인간의 무한성과 전능성에 관한 신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풍요와 편리를 가져다주는 경제성장의 가능성이 무한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혁신의 전능성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기후위기의 근본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학자 사이토 고헤이는 그의 책,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 성장을 포기하는 탈성장으로 나아가지 않고 기술혁신을 통해 기후위기를 모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인류가 기후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아주 구체적으로 인류는 1970년대 후반으로의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인류가 구축해 놓은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구조는 이미 지구의 생태학적인 한계를 한참이나 초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여전히 성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성장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적정선을 한참 초과한 풍요와 편리의 달콤함에 길든 사람에게 현재의 풍요와 편리를 포기하라는 것은 설득하기 매우 어려운 요구다.

이러한 요구가 성취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이 자기 욕망을 넘어서는 자기 초월의 모험을 감행할 때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자기 초월은 신앙의 주제로서 욕망을 넘어서는 자기 초월의 동력을 제공할 책임이 기독교 신앙에도 있다.

초월을 말하면 흔히 상승을 떠올리지만,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성육신 신앙에서 드러나는 초월은 상승이 아닌 하강이다. 무한하고 전능한 존재에서 유한하고 무력한 존재로의 하강이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초월이다. 바로 이런 아래로의 초월이 인간과 역사에 구원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기후위기 시대 기독교 신앙이 제공할 수 있는 영성일 것이다.

이와 같은 하강의 영성이 풍요와 편리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한한 경제성장의 신화와 전능한 기술혁신의 신화에 현혹되고 있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전환시킬 단초가 되지 않을까?

김희룡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성문밖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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