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의 방주] ①서론, 기후위기 시대를 지나보내는 마음

꿈을 바꾸기로 했다. 학자를 꿈꾸었는데, 지금은 방 한 켠에서 하고 싶은 공부나 연구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목수가 되기로 했다. 온 세상이 물 혹은 불에 휩쓸릴 테니 방주를 만들어 대비해야겠다. 지금도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널빤지 조각을 다듬고 있는 것이다. 유례없는 시대를 마주해 이례적인 오늘을 살기에 나의 공부는 연구이자 활동일 수밖에 없으며 나는 연구자도 활동가도 아닌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로 스스로를 호명한다. [노마의 방주] 시리즈는 이런 마음에서 2020년을 맞아 전환의 청사진을 그려보려는 기획이다. 거대한 전환을 꿈꾸어본다.

믿음의 회복을 위해 글을 쓰다

호주 산불이 5개월째 잡히지 않는다. 최소한 3월까지는 현재의 불길을 잡기 어렵다고 전망된다. 불에 타 죽은 코알라와 캥거루의 이미지는 평소 호주를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고 알던 사람들에게 음영이 뒤바뀐 듯 충격적인 영상으로 다가선다. 정작 호주 총리만이 이번 최장기 산불의 원인이 기후변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https://flic.kr/p/2em8CAW)

새벽 공기가 쌀쌀하다. 나아갈 길에 대하여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대하고 막막한 작업이지만 이를 말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발을 내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없는 용기를 쥐어짜 본다. 철학이 부재한 시대고 윤리가 사라진 시대다. 선악의 범주가 파훼되고 믿음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혼란에 직면했다. 이 시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쓰는 것은 믿음의 회복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위기다. 지구는 한계를 넘었다. 지구 온도가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인 임계점(Tipping Point)을 넘어간다는 연구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보수적인 추산인 IPCC의 전망치에 따르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8년뿐이다.1 기후위기는 북극곰 몇 마리 죽고 날씨 좀 따뜻해지는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인류가 구가해온 문명의 종언을 말하며 우리가 알고 살아온, 그리고 사랑해온 모든 것이 고통과 혼돈 속에 놓임을 뜻한다.

개인은 사회 속에 사회는 자연 속에 묻어들어 있다.2 우리가 쉽사리 잊고 사는 이 자명한 진리 속에 기후위기의 속성이 깃들어 있다. 기후는 연속적이고 다차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 위기는 ‘전염’된다. ‘지구가열(Global heating)3’은 가뭄과 산불 등의 ‘인재4’ 발생가능성·영향5을 증가시켜 농작農作)을 불가능하게 하고, 이는 식량, 물, 에너지, 환경, 보건 등 기반사회 전체의 위기로 확장된다. 이는 다시 기존의 위협을 배가시키고 불안정을 촉진시켜 사회정치적인 분쟁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구체화된 시나리오들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끔찍하다. 뇌관이 어디에 있든, 누가 불을 붙이든 이번의 호주 산불과 같이 인간이 손쓸 수 없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질 것이다.

각국 정상들은 기후변화 문제해결을 위해 분주히 만나기 시작했다. 2019년 유엔기후정상회의,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5) 등. 언제까지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사진은 74차 UN총회의 한 장면. (https://images.app.goo.gl/SBV7Pvd9nEcDTdn78)
각국 정상들은 기후변화 문제해결을 위해 분주히 만나기 시작했다. 2019년 유엔기후정상회의,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5) 등. 언제까지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사진은 74차 UN총회의 한 장면. (https://images.app.goo.gl/SBV7Pvd9nEcDTdn78)

호주 화재가 삼킨 10억 생명을 추모하며

그러므로 모든 이야기는 이 위기인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과 우리의 인식 간 괴리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온 곳에서 감도는 “어떻게든 되겠지.”의 근거 없는 희망과 “될 대로 되라지.”의 무책임한 낙관은 무엇일까. 칼 폴라니의 말을 빌려 고하자면 “이 희망이라는 독주는 진보라는 관념에 고스란히 담겨서 사람들을 흠뻑 취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앞으로 다가올 크고도 끔찍스런 혼란의 고통마저 정당한 것으로 보게 만들었다.”6

우리는 사태를 간과하고 있다. 어쩌면 인식적 간과를 넘어서, 다가올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는지도 모른다. 백석의 시구처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니까. 어느 노랫말처럼 ‘매일 몇 번씩 무너져 버리는 세상 따위가 내 알 바 아니니까.7’ 우리의 근저에 짙게 깔린 냉소에 자주 데이곤 한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기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상상하기가 더 쉽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근대의 견고함 속 상상의 빈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이 위기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재(Reality)에는 변함이 없는 생각이 견디기 힘들다. 작년에는 기후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한 것도 우울한 거지만 사는 이유를 상실한 듯한 전락이 버거웠던 것 같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감정들이 여럿 있었다. 며칠 전 광화문에서 호주 산불로 인한 생명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있었다. 발언을 부탁받았는데, 나는 어떤 말들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어려워했다. 이 이야기는 비할 데 없이 슬픈 이야기인데 사람들에게 힘은 주고 싶고. 하지만 참담한 현실을 두고 마냥 으쌰으쌰 파이팅 할 수는 없고. 학자로서 청사진을 보이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를 지나보내는 마음에 대해 말했다. 그 시공간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몇 자 옮겨본다.

“제가 사는 마음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시구 같습니다. 이미 들판을 빼앗겼고 다가올 봄조차 불확실한 시대, 우리는 이 시대를 잘 지나 보낼 수 있을까요.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에 사는 이유를 둡니다.8 공멸을 앞두고 사는 마음이 여간 마뜩잖지만 이 위기를 통해 만나는 슬픔과 고통의 무기력한 연대에 희망을 둡니다. 이 애틋한 만남과 오가는 마음에서 희망을 얻어갑니다.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되고 우리가 된다는 말을 떠올립니다.”9

발언의 마지막에는 애정하는 가수 도마의 노랫말을 들려드렸다. 이 지면에도 옮겨본다.

호주산불 촛불집회 윤석 발언. by 이두원
호주산불 촛불집회 윤석 발언. by 이두원

/ 지구의 어느 모퉁이엔 / 태양이 비춰도 도저히 녹질 않는 마을이 있대 / 서로 껴안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 극단적인 마을이 있대 / 그런 곳에 가야만 알겠니 / 그런 곳에 가야만 알겠니 / 멀리서 보이는 부러운 저 작은 섬은 / 하나의 포옹이 포옹으로 모여 만든 검은 둥지 / 하얀 바람이 불어와 우리를 떼어놓으려 해도 / 토실토실한 엉덩이로 이겨낼 수 있어 / 우리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로 이겨낼 수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근대 문명을 생태 문명으로 전환할 청사진과, 이를 이루어낼 방법론과 정치적 역량, 그리고 이 모든 시도의 바탕인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 필요하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때이지만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먹어야 할 때이다. 요가를 하며 깨달은 바를 전하자면 손을 멀리 뻗으려면 힘을 빼야 한다.10

공멸(共滅)을 앞둔 심정은 무겁다. 목숨을 끊는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처절하다. 그들이 차마 견딜 수 없었던 무력감의 맛을 알기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이 무거움에 짓눌려, 사는 이유를 잃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저물고 싶지는 않다.

시지프 신화 혹은 우공이산의 태도로

시지프는 평생을 산꼭대기로 돌덩이를 굴리며 살았다. 결국 굴러떨어질 줄 알면서도 정상으로 돌덩이를 굴리는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기후위기를 말하는 것도 겉보기에는 무의미하고 무슨 소용인가 싶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 굴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섣불리 회의하기 쉽다. 하지만 모른다. 시지프에게 정해진 전철을 거역하는 야심찬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신의 감시가 헐거울 때, 바위를 그냥 저편으로 던져버린 채 당당히 주체성을 내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길은 걸어봐야 아는 법. 섣부른 판단을 뒤로 치워놓고 수확을 바라지 않으며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임하자. 우공11도 결국 산을 옮겨냈다지 않은가.

생각을 간단하고 단순하게 정렬하면, 위기는 기회다. 당연하게도 인류사에서 이제껏 지구의 근본부터 말아먹는 이런 사태는 없었고, 우리는 이 미증유의 위기를 역사 속에서 있었던 삶과 투쟁들을 힌트삼아 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지구한계과학자 록스트륌의 말처럼 “우리는 인간 발전을 뒷받침하는 지구 시스템 능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첫 번째 세대다. 이는 심오하고 새로운 지혜이자 어쩌면 아주 무서운 깨달음이다. 또 이는 엄청난 특권이기도 하다. 왜냐면 우리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환골탈태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세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12

지뢰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조마조마 떨리지만 한편으로는 설렌다. 지금껏 약자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던 자본가들과, 자연과 인간을 무자비하게 착취해온 적폐들을 처벌하고 이제껏 착취당했던 생명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자. 이 위기를 만든 이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질기디 질긴 근대의 시대를 우리가 저물어내고 공생의 문명을 세우자. 어찌나 아름답고 통쾌한지. 그러니 너무 우울해하지 마시라.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횡단하며 오늘을 뒤집고 내일로 가는 서사시를 써보자. 너도 있고 나도 있으니 못할 게 무엇이랴.13

오늘을 뒤집고 내일로 가는 서사시를 쓰고 싶다

‘지구온난화’의 정보는 북극곰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2마리의 새끼 옆에 있는 엄마곰. (https://images.app.goo.gl/zHEySNkSwTQP7qAFA)
‘지구온난화’의 정보는 북극곰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2마리의 새끼 옆에 있는 엄마곰. (https://images.app.goo.gl/zHEySNkSwTQP7qAFA)

여는 말이 길었다. 이 서론의 뒤를 이을 ‘장(章)’들에 대해 간략히 말하자면, 2020년을 맞아 전환을 꿈꾸는 청사진을 그려보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연구는 나보다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사람이 몇 없는 곳이다. 한국에서 참되게 한국철학의 주체성을 형성하려 한 이도 몇 없으며, 생태 경제학은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은 한 명도 없다. 유례없는 시대를 맞아 이례적인 오늘을 살기에 나의 공부는 연구이자 활동일 수밖에 없으며 나는 연구자도 활동가도 아닌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이다.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단초만 끄적여 놓은 이야기들을 매달 풀어보겠다.

《목차》

  1. [서론] 기후위기 시대를 지나보내는 마음
  2. [생태경제학]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비교 및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차 – 노드하우스의 기후카지노를 평가 ‧ 비판하며
  3. [그린뉴딜] 전환을 꿈꾸며 – 그린뉴딜 담론이 간과하고 있는 지점과, 어떤 전환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상. 이전의 뉴딜 ‧ 새마을운동 ‧ 녹색성장의 반성과 성찰
  4. [탈성장] 성장과 탈성장 – GDP의 종언, SEES(환경경제통합계정)과 행복지표
  5. [기후금융] 전환의 재원 마련과 유동성 – 부와 에너지의 차이는? 생태경제학의 관점으로. 금융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6. [지대] 토지문제의 근원을 찾아서 – 지오멘탈리티와 커머닝의 재구상. 기후변화 시대에 지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산의 토지개혁과에서 배우며.
  7. [심리] 기후위기 시대를 지나보내는 마음. 기후심리. 기후우울증(Climate Depression) 과 기후위기 심리학. 마음의 생태학.
  8. [사회적 경제, 순환경제] 칼 폴라니의 전체적, 총체적 사고. 대안적인 기후경제의 기획 : 사회적경제와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9. [기후계급] 기후계급, 착취와 피착취를 가르는 새로운 경계선 – 시간적(수직적) 공간적(수평적) 계급이론
  10. [마르크스 에콜로지] 자연과 인간의 관계. 생태와 경제의 관계. 인간 존재를 철학적, 과학적으로 톺아보기.
  11. [한국철학] 전환과 서로주체성. 이 땅의 문제를 우리 생각으로 풀고자 하는 시도. 근대를 넘어서. 김상봉, 함석헌, 정약용, 장일순, 동학과 개벽을 톺아보며.
  12. [생태적 지혜] 근대를 넘어서는 철학의 모색.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지혜는 무엇인가. 펠릭스 가타리와 이반 일리치를 공부하며.

  1. IPCC(Intergovermental Pannal on Climate Change)의 「지구온난화 1.5℃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바탕으로 현재의 탄소배출 추계로 1.5℃의 온도상승까지 걸리는 시간, 남아있는 탄소예산이 모두 소진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2. 그럼에 경제도 사회 속에 묻어들어(Embeddedness)있다. 칼 폴라니는 경제적 과정이 사회적 과정에 묻어 들어가 있는 형태를 크게 호혜성(reciprocity), 재분배(redistrbution), 교환(exchange)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3. 2019년 가디언(Guardian)에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를 지구가열(Global heating)로,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기후위기(Climate Crisis, Climate Caose)로 바꾸어 쓰자고 제안했고, 기후활동가들은 이에 응답해 사태의 본질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용어들로 바꿔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

  4. 자연재해라 쓰는 것이 맞는가. 자연재해는 기후위기 시대에 와 ‘인’재가 되었다. 태풍과 가뭄, 산불 등 모든 재해의 빈도 수와 영향(규모)는 온도상승에 비례한다.

  5. 발생가능성(Likelihood)과 영향(Impact)을 곱하면 위험(Risk)가 나온다. 기후위기 시대는 울리히 벡(Ulrich Beck)의 논지처럼 ‘위험사회’를 말한다.

  6. 칼 폴라니(Karl Polanyi), 거대한 전환, 홍기빈 역(2009), 도서출판 길, 262p.

  7. 가수 조월의 노랫말, 「어느새」 중

  8. 영화 「벌새」 중 김영지의 대사.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다. 다만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9. 철학자 김상봉의 말. 『서로주체성의 이념』 중

  10. 시인 김수상의 시, 「지구를 위한 시, 그레타 툰베리에게」 중

  11.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 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의 비유.

  12. 요한 록스트륌, 「The Great Accleration」/ 케이트 레이워스,『도넛 경제학』, 홍기빈 역(2018), 학고재, 70p 에서 재인용

  13. P.S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는데, 다시 돌아보니 섣부른 확신이었나 싶어 글을 엎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구태여 하는 까닭은, 이처럼 어느 하나 굳게 믿기 힘든 시대에 태어난 약하디약한 나고 당신이고 그러니 함께 가보자 그 말 하려고.

장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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