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서 공간의 얽힘과 리좀

유치원 공간은 유아들이 궁금한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가운데 놀이와 의미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그릇이다. 유아에게 자유로운 공간이 허용된다면 유아는 공간에서 만나는 많은 신호들을 기호로 읽어내며 감응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리좀을 닮았다. 유아와 공간이 함께 얽혀져 놀이가 되고 다시 얽혀지는 유아~공간~놀이의 얽힘은 유아의 삶이며 배움이 된다.

공간이란 무엇일까? ‘공간(空間)’은 빌 공(空)의 사이 간(間)으로 사전적 의미는 ‘1) 없는 빈 곳, 2)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3)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2020).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지만, 그 공간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고, 어떠한 경험들이 생겨날 수 있는 영역이며 세계이다. 즉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지만, 사람이 그 안에 머무르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잠재성의 영역이다.

코로나-19로 거리 두기와 방역, 밀집도 등을 고려한 조치가 실내, 실외 공간의 특징을 고려하여 이루어졌다. 교실 공간은 유아들이 개별 공간에서 놀이하고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 책상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유아들은 자신의 책상에서 놀이할 수 있다. 반면 실외에서 유아들은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뿐만 아니라 텃밭, 화단, 계단 이동통로 등 유치원의 모든 공간에서 놀이할 수 있다. 교사들은 유아들이 더 충분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놀이할 수 있도록 실내공간보다 실외놀이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교사들이 놀이터에서만 놀이해야 함을 강요하지 않고 유아가 원하는 공간에서 주도적으로 놀이하는 모습을 허용하고 관찰하면서 유아의 놀이와 경험, 공간과의 관계에서 유아들의 놀이와 공간의 얽힘이 나타났다. 놀이에서 공간의 얽힘과 리좀을 발견하였다. 유아가 공간 속에서, 공간과 함께, 공간을 통하여 얽혀가는 모습, 놀이가 생성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변신을 기다리는 공간

유치원의 놀이터와 교실로 연결되는 통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늘이 생기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사방에서 바람이 통하는 시원한 장소이다. 그늘이 없는 모래 놀이터에서 놀이하다 보면 덥고 땀이 난다. 아이(들)의 몸은 시원한 곳을 찾아 이동한다. 유치원 현관 앞에는 이동을 위한 공간이 있다. 지금까지 현관 앞 공간과 통로는 놀이를 그만하고 싶은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앉아서 기다리는 곳, 쉼터, 교실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비탈진 공간~매트~아이의 얽힘

아이는 신발을 벗고 보라색 매트에 앉아 쉼을 하다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첫 번째 시도는 비탈진 오르막의 특징이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미끄러짐을 발견하고 미끄러짐을 느끼기 위해 난간을 손으로 잡고 몸을 다양한 방법으로 움직여본다. 그러다가 아이는 매트를 쭉 펼친 후 손으로 몸을 밀며 내려간다. 잘 내려가 지지 않는다.

매트~아이~비탈진 공간~빌리보의 얽힘

아이는 교실에서 빌리보를 가지고 온다. 빌리보를 가지고 나와, 빌리보를 매트에 놓고 위에서 아래로 굴리고, 돌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빌리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실험한다.

이어지는 시도는 빌리보의 움푹 들어간 공간에 앉아서 넘어지지 않으면서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짐을 시도한다(좌). 이어지는 시도는 빌리보를 등에 얹어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잡고 경사로를 내려간다..

매트~아이~비탈진 공간~빌리보~끈의 얽힘

“선생님 빌리보를 묶어주세요.” 나는 아이의 옷에 붙어있는 분홍색 리본을 발견했다. 분홍색 리본 덕분에 빌리보는 거북이 등딱지처럼 보이게 고정시킬 수 있었다(좌). 이어서 아이는 거북이처럼 기어서 비탈길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아이의 거북이-되기놀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번져갔다. 거북이-되기 놀이는 비탈길과 계단으로 번져갔다.

리좀을 닮은 놀이 : 비탈진 공간~매트~아이~빌리보~비탈길~계단의 얽힘

비탈진 공간에 있는 매트는 아이에게 미끄러움이라는 감각을 유발시키고 움직임을 촉발시켰다. 빌리보의 모양은 아이에게 팽이를, 썰매를, 거북이 등을 연상시켰고, 아이는 이전에 놀이했던 이전 경험과 빌리보의 모양이 유발시키는 신호에 감응한다. 유아는 매트와 매체들이 보내는 신호에 감응하면서 팽이 돌리기, 썰매 타기, 거북이-되기를 놀이한다. 아이의 놀이는 계속 변신한다. 공간도 계속 변신한다. 유아~공간~놀이는 얽혀져 하나가 된다.

아이~공간~놀이의 얾힘에서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

유치원 공간은 유아들이 궁금한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가운데 놀이와 의미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그릇이다. 아이는 유치원 현관 앞 이동통로를 놀이터로 만들었다. 아이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공간과 함께 연결되어 있는 매체 등이 보내는 신호에 감응한다. 아이의 감응은 우연한 마주침과 기호를 읽어내며, 스스로 알고 있는 것, 경험했던 것, 예상되는 것,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 등 의도와 욕망을 담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지속된다. 공간은 유아가 주도하는 놀이에 따라 배치가 바뀌고, 동시에 공간의 분위기, 구조, 특징, 상황 등은 유아의 시도, 실험, 운동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아이~공간~놀이의 얽힘에서 유아는 세상을 배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문제해결, 이전 경험을 새로운 놀이로 연결시키는 상상, 다른 친구와 함께 놀이하기 위한 방법, 비스듬한 곳과 계단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놀이하기 위한 방법 등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몸에 담아 넣는다.

서풍

나의 이름은 서화니이다. 나의 이름을 누군가 받아 적을 때, 환희, 하늬, 하니 등으로 받아 적어 적잖이 난감하다. 재미있는 별명을 생각하면서 난감했던 상황이 떠올라 하늬바람의 뜻인 서풍으로 정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하늬바람이 남풍도 동풍도 아닌 서풍이니, 우연이지만 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늬’는 뱃사람의 말로 서쪽이다. 따라서 하늬바람은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말한다. 습하고 무더운 ‘된마(동남풍)’에 상대되는 바람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부는 하늬바람은 말의 느낌만큼이나 실제로도 상쾌한 느낌을 주는 바람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쾌한 느낌을 주며 살고 싶다.

댓글 1

  1. 아무것도 없지만, 채워가는 곳이라는 구절이 뭔가 심장을 뛰게 하네요. 공간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 서풍님.ㅋㅋ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변주처럼, 우리 모두도 빈 공간을 채워 우리만의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쁘게 만들어보고 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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