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⑱ 아이들은 어떻게 놀이를 할까?

“~은 ~이다”라고 고정된 의미로 단정내릴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과 제도, 관료시스템에 얽매여 있는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외부를 보지 못한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의미와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특히 아이들처럼 놀이의 활력과 에너지가 이 단조롭고 비루한 일상을 만드는 문명의 해독제가 될 것이라 제안한다.

놀이에서 공간의 얽힘과 리좀

유치원 공간은 유아들이 궁금한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가운데 놀이와 의미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그릇이다. 유아에게 자유로운 공간이 허용된다면 유아는 공간에서 만나는 많은 신호들을 기호로 읽어내며 감응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리좀을 닮았다. 유아와 공간이 함께 얽혀져 놀이가 되고 다시 얽혀지는 유아~공간~놀이의 얽힘은 유아의 삶이며 배움이 된다.

‘놀아 주는’ 게 뭐가 문제야.

아이와 ‘놀아 주는’ 것이 아이를 놀이의 객체로 전락시키고, 아이가 놀이 주도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는 항간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놀아 주는’이 문제가 되는 건 실제로 아이와 놀(아 주)면서 어른들의 돌봄과 교육의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표현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표현 주체의 문제이다. 아이들과 같이 논다고 하면서 잘못 놀(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잘 놀(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진짜 문제가 되어야 한다.

재미와 의미 사이 : 놀이와 배움

아이들에게서 발현되는 재미있는 놀이와 이야기들은 교사의 관점에서 가치있다고 포착되는 배움의 장면에 대한 기록작업(documentation)으로 의미가 부여된다. 유치원 교실에서 재미와 의미사이는 아이의 놀이~선생님~시간~공간~노래~이야기~웃음~즐거움~재미~배움 등으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 끊임없이 차이 생성된다.

놀이는 일상이 아니라 이벤트다

아이들의 놀이와 이벤트, 일상과 이벤트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관점을 전제하는 ‘아이들에게 놀이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아이들의 놀이가 일상이라는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특이성의 사건(들), 즉 이벤트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이들에게 이벤트-사건(들)로 존재하지 않는 놀이란 불가능하며, 아이들의 일상은 수많은 이벤트-사건(들)로 포착되고 생성되는 놀이가 펼쳐졌다 사라졌다 하는 순간들의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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