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를 찾아서_한 톨 도토리가 만든 떡갈나무혁명

작은 변화나 대화가 누군가에게 싹을 틔워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

《Planting a Seed ; 뿌리》 전시 포스터
《Planting a Seed ; 뿌리》 전시 포스터

며칠 전 《Planting a Seed ; 뿌리》 전시를 마무리했다. 인쇄 매체를 기반으로 한 해방해방1(이연우, 박현주) 콜렉티브의 2019년부터 2022년까지의 작업물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시였다.

전시 서문 중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은데, 신기하게도 이 글의 주제와 관련이 깊다.

“해방해방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찾아 나서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살피고 어루만지며 그것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략적으로 ‘이런 작업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고, 작업물이 쌓이니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인터뷰를 할 때면 종종 “저희 작업을 보는 분들께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생각의 씨앗이 심어지길 바랐어요.”라고 답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충분히 가치가 있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있거나 익숙하기에 지나치던 것들을 다루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는 것. 우리의 생각을 뿌리고, 그 생각이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으로 뿌리내리길 바라면서… 그것이 삶의 태도가 되길 바라면서 해왔던 우리의 작업은 어느새 민들레와 닮아있었다.”

지난 8월, 신승철 선생님으로부터 ‘안녕하세요. 박현주님. 11월 5일을 마감으로 “다람쥐를 찾아서_한 톨 도토리가 만든 떡갈나무 혁명”이라는 제목의 글 써주실 수 있나요?’란 메시지를 받았다. 이미 두 번이나 마감을 미룬 터라 더 미룰 수 없기도 하지만, 마치 《Planting a Seed ; 뿌리》 전을 예감한 것 같기도 하여, 이 전시를 막 끝낸 ‘지금이 이 글을 쓸 때이구나’ 생각했다.

《Planting a Seed ; 뿌리》 전시장 전경 by 박현주
《Planting a Seed ; 뿌리》 전시장 전경 by 박현주

지난 2년 동안 이전과는 아주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이나 ‘앨리스’, ‘나니아 연대기’의 주인공들처럼 모험을 다녀온 기분이다. 처음에는 모험을 시작하는 줄도 몰랐다. 나 또한 누군가가 잊어버렸거나 날려 보낸 도토리, 또는 민들레 씨앗 같은 것을 받았던 것 같다. 또는 내가 그 작은 존재였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이 있었고 그게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되진 않았다. 동료들이 생겼고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했고 조금씩 같은 크기와 양의 일을 더 빨리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정확하지 않던 개념들이 점점 명확해졌다. 동시에 상황이 달라졌고 환경도, 생각도 달라졌다. 올해는 지난 2년과는 다른 삶의 방식과 작업방식을 선택하려고 재정비 중이다. 나의 작은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나고 있는 것을 느낀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의 행보가 이전과 크게 달랐던 것은 동료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점이다. 해방해방을 비롯하여 나는 3~4개의 팀을 운영하거나 참여했다. 중간에 사라지거나 자연스럽게 하나의 팀으로 합류가 되었지만 시작한 프로젝트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한시기에 여러 가지 역할로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장 큰 장점은 각 프로젝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역할이 어디까지의 영역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해를 할 수 있다고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배웠다.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관찰도 동시에 할 수 있었다(본인의 상태에 대해 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란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할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거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은 막을 수 없었다.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는 일과 이미 뿌리내린 사람의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는 것 또한 정말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예전에 외국에 살던 친구와 작업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너무 다른데 언젠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는 함께 앞으로 갈 수 있게 현재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만나는 일이 생기면 그땐 후회 없이 함께 멋진 걸 해보는 거야. 그러다가 또 길이 갈라지면 다시 마주칠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거지’란 대화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아직 한 번도 그 친구와 함께 작업이나 일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근 미래에 함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또 그 여정은 그 여정대로 즐거울 것 같다. 이러한 대화 또한 그 당시의 우리가 심었던 씨앗인 것 같다. 이 대화를 함께 한 친구와는 아니지만 나는 동료를 만났고 함께 했고, 또 어떤 것은 함께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든 다시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전시 마무리와 함께 그동안 벌려 놓았던 일들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오랜만에 방학을 맞이한 기분이다. 미뤄 두었던 하고 싶은 것들을 해 보았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거나 일과 무관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잡담을 나눈다거나 종일 누워서 티브이를 보는 일들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에서는 앞으로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른다. 금세 또 뭔가 설레는 일을 찾아내어 다소 무거운 책임감과 그것을 해결했을 때의 만족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살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1. 해방해방은 시각예술과 인쇄 매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예술가 그룹이다. Do it for freedom!(해봥,해방!)을 외치며 소소한 것에서 나오는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고, 그 시선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출판 기획, 출판/인쇄 디자인, 문화 기획 등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해방해방 소개 사이트

박현주

동양화, 판화를 전공하고 시각작업과 제작업을 하고 있는 박현주입니다. 실질적인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적절하고 적당한 영향을 주고받음을 목표로 합니다. 공동체, 비예술인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활동을 많이 합니다. 그러한 작업과 활동에 영향을 받아 창작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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